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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Ⅰ. 일제침략기 호남의병 개요 1. 전기 호남의병 2. 후기 호남의병 Ⅱ. 호남동의단 성립 이전의 호남의병 1. 호남의병의 원조 면암 최익현 의병장 2. 일제침략기 호남 최초 순국의병장 정시해 3. 토역복수(討逆復讐)의 화신 백낙구 의병장 4. 영호남 대규모 일본 군경과 격전 벌인 고광순 의병장 5. 능주 쌍산의진 이끈 양회일 의병장 6. 덕유산·지리산 넘나든 김동신 의병장 7. 영호남 누빈 호남창의대장 정일국 의병장 8. 목숨보다 충의를 중시했던 이석용 의병장 9. 호남창의회맹소 대장 기삼연 의병장 10. 일제침략기 호남 대표 의병장 김준·김율 형제 11. 13도창의대진 호남창의대장 문태서 의병장 12. 전라북도창의소 대장 이장춘 의병장 13. 선전관 출신 육남소모대장 유종환 의병장 14. 남원성 점령했던 양한규 의병장 15. 김준 의진과 연합 투쟁한 나주의병장 조정인 16. 삼남의병대장으로 활약한 유지명 의병장 17. 전북 익산의진 이끈 이규홍 의병장 18. 대포까지 동원했던 종2품 조규하 의병장 19. 전남 중동부에서 활약한 노인선·신정우 의병장 Ⅲ. 호남동의단 성립 이후의 호남의병 1. 대동창의단·호남동의단 대장 전해산 2. 호남동의단 제1진 의병장 심남일 3. 호남동의단 제2진 의병장 박도경 4. 호남동의단 제3진 의병장 김영엽 5. 호남동의단 제4진 의병장 조경환 6. 호남동의단 제5진 의병장 신화산 7. 호남동의단 제6진 의병장 이대극 8. 호남동의단 제7진 의병장 이기손 9. 호남동의단 제8진 의병장 오성술 10. 호남동의단 제9진 의병장 권영회 11. 호남동의단 제10진 의병장 안계홍 12. 대동창의단 선봉장 정원집 의병장 13. 대동창의단 도통장 김찬순 의병장 14. 대동창의단 도포장 이범진 의병장 15. 대동창의단 척후장·선봉장 임장택 의병장 16. 대동창의단 호군장 박영근 의병장 17. 대동창의단 후군장 국호남 의병장 18. 대동창의단 참모장 이봉래 의병장 19. 대동창의단 참모 김공삼 의병장 20. 대동창의단 종사·중군장 김원국·원범 형제 의병장 21. 대동창의단 참모 이성화 의병장 22. 대동창의단 참모 이영준 의병장 23. 대동창의단 수습한 신보현 의병장 24. 대동창의단과 연합투쟁한 김영백 의병장 25. 심남일 의진 전군장·부장(副將) 강무경 의병장 26. 심남일 의진 중군장 안찬재 의병장 27. 심남일·안계홍 의진 선봉장 장인초 의병장 28. 이대극 의진 선봉장 서종채 의병장 29. 조경환 의진 좌익장 이원오 의병장 30. 호남동의단과 연합투쟁한 박민홍·여홍 형제 의병장 31. ‘폭도대토벌’에 맞섰던 임창모·학규 부자 의병장 32. 임창모 의진 선봉장 정태화 의병장 33. 전남 동부 의병장 강진원 34. 전남 중부 의병장 양진여·상기 부자 35. 대장장이·포수 출신 전남의병장 강사문 36. 신출귀몰의 화신 전남 광주의병장 김동수 37. 영산포헌병분대장과 담판 벌인 박사화 의병장 38. 전북 순창·임실 의병장 양윤숙·이황룡·최산흥 39. 전남 완도 유형수·황준성 의병장 부록 1. 호남의병 포상자 현황 2. 호남의병 미포상자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찾아보기 |
李兌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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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 23일(음력 6월 21일) 일본군 육군 소장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가 혼성여단 5천여 명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쳐들어와서 조선 국왕과 왕비를 겁박하는 가운데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는 그 앞잡이들에게 내각을 꾸리게 하는 갑오왜란(甲午倭亂)을 일으켰다.
일제는 그 앞잡이 내각과 ‘조선은 일본군의 진퇴와 그 양식 준비 편의를 도모해 줄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조일공수동맹(朝日攻守同盟)’을 비밀리 체결하고 청일전쟁을 일으켜서 승리한 후 이듬해 그들의 침략에 방해되던 조선 왕비를 참살하는 을미왜란(乙未倭亂)을 일으켰다. 이에 배달겨레는 ‘국수보복(國讐報復, 나라의 원수를 갚자, 국모의 원수를 갚자)’을 기치로 의병을 일으키니 일제침략기(1894~1910) 전기의병이었다. 1903년 10월부터 일제는 그 앞잡이들을 내세워 비밀동맹을 체결하여 러일전쟁이 일어나면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도록 획책하였는데, 광무황제는 이를 재가하지 않고, 비밀리 이용익(李容翊) 일행을 청국 지푸(芝?)로 보내어 ‘만약 러일전쟁이 일어난다면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라고 선언하였다. 이에 일제는 이용익을 일본으로 납치하고, 다른 사람들은 감금한 채 황제의 재가가 필요한 ‘조약’ 대신, ‘의논(議論)해서 정(定)한 문서(文書)’라는 의미의 ‘의정서(議定書)’라는 용어를 만들어 일본공사와 일제로부터 비밀리 거액의 뇌물(1만 원, 당시 쌀 1만 석 가격)을 받은 외부대신 임시서리 이지용과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다. 이에 국권회복(國權恢復)을 위한 의병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경술국치 전후까지 7년 동안 줄기차게 일본 군경을 상대로 싸웠던 의병이 후기의병이었다. 일제는 의병 진압을 위해 일본군사령부를 용산에 두고, 남부수비관구에 보병 2·14·47연대, 한국파견기병대, 중포병대대를, 북부수비관구에 보병 13·23·27·45·64연대, 기병 6연대, 야포병 6연대, 공병 6대대를 배치했고, 1909년 6월에는 14연대 대신 보병 12여단과 보병 3연대를 영남에, 보병 1연대를 호남에 배치했으며, 해안에는 군함과 수뢰정을 운용하였고, 전국에 헌병분대·분견소, 경찰서·주재소를 두고 헌병·경찰 5만여 명, 헌병보조원·밀정 수만 명을 동원했으니, 일제가 러일전쟁을 할 때 우리나라에 파견한 일본 군경 수보다 훨씬 많았다. 일본 군경의 기록에 따르면, 1907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일본 경찰이 간여한 의병 진압 횟수는 1,976회, 의병 수 82,767명, 순국자 5,721명이고, 1907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의병이 13,445명이었다. 이는 전기의병과 을사늑약 전후부터 의병이 가장 거세게 일어났던 1907년 여름과 가을, 1908년 5월 이후부터 경술국치 전후까지 의병투쟁 통계가 나온 것이 아니기에 이를 보태면 일제침략기 의병 순국자와 부상자는 10만여 명, 투옥된 자는 5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데 학자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화승총으로써 대포와 기관총, 6연발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재산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 이들이 일제침략기 의병이었다. 이 책에는 전남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 수비대·중포병대대 등 「영호남 대규모 일본 군경과 격전 벌인 고광순 의병장」, 전남에서 가장 맹렬한 의병장을 붙잡기 위해 기병·특설순사대 8개 부대가 동원된 「일제침략기 호남 대표 의병장 김준·김율 형제」, 광무황제의 비밀조칙을 받고 호남 연합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재판정 최후 진술에서 “내가 죽은 후에 나의 눈을 떼어 동해에 걸어 두라. 너희 나라가 망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리라!”라고 준엄하게 호통친 「대동창의단·호남동의단 대장 전해산」, “섬나라 도적을 섬멸하지 않으면 죽어 혼백조차 돌아오지 않겠다.” 하고 2년여 의병투쟁을 전개해 오던 1909년 1월 10일, 일본군이 “총탄 996발을 소모했다.”라고 한 어등산전투에서 전사 순국한 「일제침략기 어등산 의병대장 조경환」 등 호남지역 의병장 66인의 삶을 정리하였다. 특히 1906년 6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북 태인 무성서원에서 거의한 것은 일제침략기 후기 호남의병사에서 의병투쟁의 불씨를 던진 것이고, 1907년 10월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설치한 것은 호남지역 우국지사들의 의분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1908년 8월 광무황제의 비밀조칙을 허리띠에 소지한 전 시위대 참위 정원집(鄭元執)이 유배지 전남 지도(智島)를 이탈하여 순국한 김준(金準)·김율(金聿) 형제 의진을 수습하고 있던 전해산(全海山)을 찾아와서 의병장에 추대함으로써 전해산의 대동창의단(大東倡義團)이 결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전남 지역 11개 주요 의진의 연합체인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이 결성됨으로써 호남 전역에서 의병투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된 것이었다. 이 책은 일제침략기 전국 주요 의병장의 의병투쟁을 살펴본 『일제침략기 의병장 73인의 기록??(전 5권) 중, ‘제4권 호남지역 편’의 19인에 47인을 추가하여 66인의 기록이니, 일제침략기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주요 의병장 행적을 총정리하였으나 소규모 의진을 이끈 수십 명의 의병장이나 의병장으로서 활동한 후 부적절한 행위를 한 경우는 싣지 않았으며, 호남의병 포상자 현황과 호남의병 미포상자 281인의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를 정리하여 부록에 실었다. 이 책은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총서 3호(통권 7권)로서 이를 간행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박종태 국립인천대학교 총장님, 곽동화 인천학연구원장님, 최용규 전 국립인천대학교 학교법인 이사장님, 특히 독립운동가 삶을 조명하는 데 앞장서시는 광문각 박정태 대표이사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원고를 정리하는 데 편의를 도모해 준 독립운동사연구소 신혜란·이윤옥·임동한·전영복 연구원님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대한민국 105년(2023) 11월 17일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 이태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