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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와 내 밖의 세계 7
2장 행동과 커뮤니케이션 51 3장 방법론적 이기주의 105 4장 맹세: 동기주의적 관점에서 결과주의적 관점으로 143 5장 코기토의 욕망: 자기애와 자기편애 167 보론 199 주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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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코기토가 행동을 어떻게 관찰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 p.11 디포와 소로가 보여준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삶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장소는 무인도도 아니고 한적한 호숫가도 아닌 21세기 대도시의 한복판이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 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집. 인터넷을 통한 생필품의 구입과 배달 서비스, 그리고 인터넷 게임, OTT 영화 보기 등의 여가 생활. 무엇보다도 치안과 냉난방을 지원하는 도시 인프라. 독거를 넘어 자발적 고립이 가능한 대도시의 한복판에서는 죽음조차도 자족적이다. 도시 인프라 덕택에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사회적 고립이 아니라 자기충족적 삶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경제적 자립이다. 고소득 전문직, 전업 투자자부터 다양한 종류의 프리랜서에 이르기까지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 덕에 도처에 월든이 구현되고 있다. --- p.15~16 인간을 독립적인 개인(individual)으로 정의하든 사회적 역할(person)로 정의하든 인간의 역사에서 이 둘은 공존해왔다. --- p.17 사유에서 오류나 환각을 몰아내면 사유는 곧 존재가 된다고 믿은 데카르트, 물자체로서 존재는 인식할 수 없다고 사유의 한계를 고백한 칸트, 사유를 자기의식적 사유와 사유되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이 둘의 거리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푸코 모두 코기토 밖의 세계를 온전히 인식하고자 하는 코기토의 열망을 긍정한다. 코기토 밖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든 “윤리적 정치적”으로 인식하든 코기토는 언제나 코기토 밖의 세계를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인식하고 설명하는 언어를 찾아 헤맨다. --- p.21~22 “인간의 어떤 측면을 커뮤니케이션 속으로 끌어들여 ‘나’라는 사람됨을 구성할 것인가, ‘그’라는 사람됨을 구성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구조다. --- p.29 코기토는 행동을 통해 세상과 만난다. --- p.37 이 책의 주제를 루만의 용어로 다시 쓰면, 이 책은 심리적 체계에 초점을 맞춰, 코기토의 자기지시에 의해 구성되는 나와 타자지시에 의해 구성되는 세계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룬다. --- p.47~48 근대화를 거친 현재 동아시아 사회에도 禮는 사회규범 곳곳에 남아 일상의 규율로 작동한다. 그런데 禮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품위 있는 사회와는 달리 禮가 속물사회의 개념적 도구로 사용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禮와 관련된 맥락이 인간 존중이 아니라 모욕인 경우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무례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버릇없다”, “어른을 몰라본다” 등 禮와 관련된 말들은 종종 다른 사람을 도덕의 수준에서 모욕하는 데 사용된다. --- p.57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dependent) 존재다. 이러한 존재를 “그 자체가 하나의 단위가 되는 불가분(individual)의 독자적인(independent) 존재”로 만들어주는 개념적 틀이 禮다. --- p.60 다른 사람을 가까이 하여 격이 없이 대하는 행동을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함을 표시하려는 선한 의도는 상대를 낮춰 대하는 친압(狎)으로 이어질 수 있다. --- p.69 오히려 생각은, 인간이 산산이 나누어지지 않고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집중된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 개인으로 만들어진다. 요컨대, 유가철학을 중심에 둔 동양철학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전제하고, 관계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 p.80 “이 세계는 우리 자신에 대한 마음씀 속에서 개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세계와 맺는 관계가 자기중심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에 따른 세계 인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파악하는 코기토 이외의 세계는 코기토의 관찰에 불과하며 극단적으로는 환영일 수도 있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다. 코기토는 코기토 이외의 세계를 관찰한다. 호네트는 코기토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시사하는 코기토 중심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관계라고 말한다. --- p.109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말, 즉 논변은 군자가 하는 말의 특징이다. 군자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말을 통해 듣는 사람의 행동을 유도한다.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말은 관찰하도록 하며 명확하게 하도록 하고 논리를 세우게 한다. 군자는 논변을 통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을 다시 잘 살피게 하고 단서를 주어서 사물을 분명하게 파악하도록 인도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별 사물의 본질과 각각의 차이를 드러내보임으로써 논리를 세우도록 한다. 군자의 말을 들으면 사물을 관찰하게 되고 분명히 인식하게 되고 사물에 대한 논리를 정립하게 된다. --- p.193~194 자기애에는 타인의 존재가 없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미 자기편애의 범주로 넘어간다. 그러나 자기애로부터 비롯된 행동과 자기편애로부터 비롯된 행동, 즉 실천적 차원으로 범위를 넓히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개인들을 보면 자기편애와 자기애가 구별되지 않는다. --- p.181 어리석은 사람은 실천적 차원에서 볼 때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을 해치는 사람, 즉 자기애가 결여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적 차원에서 볼 때, 자기편애는 강하지만 자기애와 연민은 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대조는 소인과 군자의 대조로 구체화된다. 군자도 지혜로운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비교한다. 그러나 교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은 소인에게서 그대로 드러난다. --- p.183 자기애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욕망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먹기를 욕망하고 더 따뜻하기를 욕망하며 더 편안한 곳에서 쉬기를 욕망으로 변할 때, 의식주의 예절이 필요하게 된다. --- p.190~191 인간 평등의 개념을 자기편애에 추가하면, 다른 사람의 존재를 항상 의식한다는 점에서 양적으로 확대되고 지속가능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과 평등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점에서 양질의 인간애를 도출할 수 있다. --- p.197 상대적 박탈감을 평등에 대한 믿음이 보내는 신호로 인식하고 이를 상대적 죄책감과 사회계약에 대한 책임감으로 바꾸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 p.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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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와 내 밖의 세계』는 동양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온 동양철학자 고은강의 신작이다. 저자는 전작 『선진철학에서 개인주의의 재구성』(2020, 눌민 출간)에서 합리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서양과 정서적이고 관계 중심적인(공동체주의적인) 동양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탈피하고, 선진 시대의 다양한 사상가들의 문헌에서 발견되는 개인, 개인성, 개인주의에 주목하여 “자유롭고 평등하며 서로 연대하는 개인”은 근대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보편적 정의라고 밝힌 바 있다. 전작에서 동양철학에서 개인과 개인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면 이 책에선 “코기토”로 표현되는 “나”와 타인, “나”와 사회, “나”와 사회 제도에 대해 탐구하며 육체적, 정신적 불평등을 넘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저자는 먼저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삶이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헨리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과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의 주인공들의 삶을 예시로 든다. 두 주인공 모두 타인의 도움 없이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고립 생활을 영위하는 듯하지만 실은 이웃의 도움과 조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이 독립적인 개인(individual) 또는 사회적 역할(person), 이 둘 중의 하나로만 정의되지 않고 그 둘 사이에서 공존해왔으며, 『월든』과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들 또한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전략을 보인다. 인간은 개인(individual)인가, 인격(person)인가? 관계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저자에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dependent) 존재다. 그리고 유가철학의 전통은 인간을 불가분(individual)의 독자적인(independent) 존재로 보기보다는 인간 관계라는 숙명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보았다. 여기에서 저자는 관계 속의 인간을 전제로 하고 그와 더불어 개인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 평등을 유지하며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즉 저자가 80쪽에서 서술하듯이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 개인으로 만들어진다. 요컨대, 유가철학을 중심에 둔 동양철학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전제하고, 관계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는 “관계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한 답을 유가철학의 기본 개념들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관계 속에서 친하고 가까움을 표시하는 선을 넘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행동인 친압(親狎)은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거리를 두며 공경하는 경(敬)이라는 개념으로 통제할 수 있다. 예(禮)는 서로 애매모호한 사람들 사이를 나누고 확정하고 규정하여 관계를 분명히 하는 개념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듯이나 감정, 욕망, 즐거움을 강요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 감정, 욕망, 즐거움을 자신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공경이다. 사(辭)는 거절이 아니라 관계 맺기에서 시간과 공간을 버는 행동이다. 성인은 훌륭한 행동을 항상 성공적으로 해내는 사람이다. 군자는 성인의 도를 닮기 위해 늘 배우고 익히는(時習) 사람이다. 저자의 표현처럼(22쪽) 삶이란 도를 통해 덕을 쌓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듯 관계 속에서 개인으로 살아가는 길, 개인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구성하는 길은 언제나 기본 개념을 배우고 익히고 부단히 실천하여 훌륭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한 바는,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연적인 불평등을 넘어선 도덕상, 법률상 약속과 권리의 인정이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사회적 관계, 사회 제도, 공동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사회 속의 불평등과 차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사회에 만연한 “재산을 늘려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열망 때문에 서로를 해치려고 하는 옳지 못한 경향” 때문이다. 나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차별로 제도화하여 질투와 상대적 박탈감을 제도에 대한 믿음으로 억누르고 불평등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저자는, 남보다 우위에 서려는 경향, 즉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이롭게 하려는 자기편애(이기심)는 사회를 망치는 악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자신만을 향하는 자기애에는 타인의 존재가 없지만, 자기편애에는 이미 타인이 존재하여 그 사람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편애가 공동선으로부터 멀어져 악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바로 질투심이다. 자기편애를 가지면서도 질투심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고려하고 배려할 수 있으므로 타인과 화합을 추구할 수 있다. 군자와 현자는 타인을 의식하고 타인의 능력과 자신의 능력을 비교한다. 그러나 교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타인을 나만큼 평등하다고 믿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의(義)가 있고 작동하기 때문이다. 의(義)는 자기편애가 질투심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줄 자원의 희소성을 두고 경쟁과 투쟁을 하기보다 화합을 통한 공동의 이익 추구가 가능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욕망 추구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질투, 억압, 착취, 폭력, 악행, 무관심으로 얼룩진 사회 속에서 의식과 관찰 없이 사는 삶에서 서로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삶에 대해 고민한다. 저자는,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a’ Invisibili)』에서 재인용된 마르코 폴로의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지옥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관찰과 구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고, 지옥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공간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