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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_ 하이든 교향곡 제45번 F샤프 단조 [고별]
그는 왜 교향곡의 아버지인가?|하이든의 교향곡 세계|음악가들 최초의 경고성 파업|[고별 교향곡]을 들어봅시다!|모차르트, 런던, 그리고 베토벤 2장_ 모차르트 교향곡 제40번 G단조 K.550 천재, 여행을 통해 완성되다|모차르트의 교향곡 세계|교향곡 제40번을 들어봅시다!|엉덩이를 걷어차인 천재 3장_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플랫 장조 Op.55 [영웅] 그는 왜 악성으로 불리는가?|베토벤의 교향곡 세계|보나파르트를 위한 장송행진곡|[영웅 교향곡]을 들어봅시다!|괴테와 [운명 교향곡] 4장_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Op.14 자신을 불사른 낭만주의의 화신|베를리오즈의 교향곡 세계|유명 여배우를 사랑한 무명 작곡가|[환상 교향곡]을 들어봅시다!|희대의 살인자가 될 뻔한 베를리오즈 5장_ 멘델스존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 가장 행복했던 낭만주의자|소리로 그림을 그린 ‘음의 풍경화가’|멘델스존의 교향곡 세계|[스코틀랜드 교향곡]을 들어봅시다!|[결혼행진곡] vs [축혼행진곡] 6장_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베토벤의 교향곡을 계승한 낭만적 보수주의자|브람스의 교향곡 세계|교향곡 제1번을 들어봅시다!|클라라 슈만과 교향곡 제1번 7장_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 E단조 Op.64 환상 속에서 왈츠를 추다|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세계|서유럽 방랑생활의 산물|교향곡 제5번을 들어봅시다!|폰 메크 부인과 교향곡 제4번 8장_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에서] 기차와 비둘기를 사랑한 음악가|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세계|아메리카 신대륙에서 향수병을 앓다|[신세계 교향곡]을 들어봅시다!|독일의 브람스, 보헤미아의 브람스 9장_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20세기 최후의 낭만주의자|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세계|최면과 자기암시 요법으로 재기에 성공|교향곡 제2번을 들어봅시다! 10장_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혁명] 스탈린 치하에서 음악가로 생존하기|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세계|스탈린을 화나게 한 ‘맥베스 부인’|사실화를 그려야만 했던 비운의 천재|교향곡 제5번 [혁명]을 들어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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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잘 아는 [운명 교향곡]에는 베토벤의 사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고뇌를 넘어 환희로’라는 베토벤의 정신세계가 전 악장에 걸쳐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지요. 베토벤은 위대한 자유사상을 가진 작곡가였습니다. 비록 독일 작곡가이지만 그의 음악은 이제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베토벤 음악이 서양의 것이라 하더라도 연주만 잘 하면 우리의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즐기는 사람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 p.9「교향곡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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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질투했는지 모르겠으나 하이든은 모차르트와 우정어린 교류를 했습니다. 하이든은 대기만성형 작곡가였고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작곡가였습니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빈에서 모차르트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즉흥적인 현악사중주를 함께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되었지요.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존경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여섯 개의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하여 하이든에게 바쳤습니다.
--- p.51「하이든, 한 천재를 잃고 또 다른 천재를 얻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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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은 브람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녀 역시 브람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클라라는 스물네 살의 브람스에게 데트몰트에 있는 한 공작의 저택에서 음악교사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브람스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을 창작할 때에도 도움을 주었지요. 그리고 브람스는 교향곡 제2번을 작곡할 때도 클라라에게 피아노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제2번이 완성되자 피아노 연주용 자필초고를 클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었을까요?
--- p.177「브람스, 클라라 슈만과 교향곡 제1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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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음악으로 펼쳐지는 드라마!
하이든의 [고별] 베토벤의 [영웅] 베를리오즈의 [환상] 쇼스타코비치의 [혁명] 등 마에스트로 금난새가 추천하는 불멸의 교향곡 금난새, 창조적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무대 위의 나는 새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지휘자로 데뷔한 금난새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술이나 문화는 강요당하는 것도, 특별한 사람들만 즐기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일상생활에 젖어 있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해왔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1980년부터 12년간 맡아온 KBS 교향악단을 그만두고 지방악단인 수원시향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제도권 밖에서 사설 오케스트라인 유라시안 필하모닉을 창단했고, 포스코를 찾아가 로비 콘서트를 제안했으며 ‘해설이 있는 음악회’ ‘울릉도 음악회’ ‘도서관 음악회’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창조적이고 신선한 방식으로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클래식 음악은 돈 있는 사람, 학식이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하고 힘들고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의 것임”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창조적인 열정과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간 『금난새의 내가 사랑한 교향곡』은 지휘자 금난새의 이런 신념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음악가로서 그의 삶과 음악에 영향을 준 대가들의 교향곡 열 곡을 가려 뽑아 그 곡의 탄생배경부터 작곡가의 삶과 작품세계 그리고 작품과 작곡가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한다. 지휘자로서 클래식 음악의 풍요로운 세계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시도와 노력들을 이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향곡, 클래식 음악의 모든 요소를 담은 기악음악의 꽃 ‘서로 주고받는(交) 울림(響)’이라는 뜻의 교향곡은 다양한 소리와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음악으로 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 모든 악기들이 총동원되어 연주된다. 그 많은 악기들이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하모니를 이뤄내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라 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교향곡에는 작곡가의 음악적 정서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상, 감정, 나아가 문학적인 내용 등 모든 세계관이 담겨 있어 고도의 정신과 감정이 집약된, 소리로 만들어진 가장 위대한 인류문화의 총화라 할 수 있다. 교향곡이 독립된 기악협주곡 명칭으로 나타나는 것은 17세기 초반부터이지만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라고 하면 하이든 이후에 작곡된 것을 말한다. 18세기 후반 형식이 갖추어진 교향곡은 고전주의 이후 가장 중요한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교향곡은 음악으로 펼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가 모두 포함되지만, 교향곡은 오로지 소리로만 승부하는 드라마이다. 30분에서 길면 60분 동안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만큼 고도의 예술성과 다양한 음색, 심오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 교향곡 제45번 [고별] 하이든은 여러 작곡가들이 발전시킨 교향곡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그래서 하이든에게는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붙는다. 하이든에 이르러 교향곡은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하나의 완성된 예술양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하이든은 35년 동안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 기간에 교향곡을 고전주의 최고의 장르로 발전시켰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하이든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낭만주의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남긴 것도 하이든의 선구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이든이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향곡 작품 수에서도 하이든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단연 압도적이다. 그는 35년 동안 100여 편이 넘는 교향곡을 썼다. 교향곡 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이다. 모차르트가 41편, 베토벤이 9편을 작곡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많은 수이다. 물론 초기작품 중에는 오페라 서곡이나 협주협주곡 양식 등 과도기적인 작품들도 있지만 후기에는 [놀람 교향곡] [군대 교향곡] [시계 교향곡] 그리고 만년에 작곡한 [잘로몬 교향곡] 등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냈다. 베토벤, 음악의 프로메테우스: 교향곡 제3번 [영웅]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 이르면 교향곡은 거대한 산을 이룬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이어 베토벤은 교향곡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이전 작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혁신적인 작법으로 그야말로 교향곡 사상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고 그가 남긴 아홉 편의 교향곡은 고전주의 교향곡을 완성시켰고 낭만주의 교향곡의 모체가 되었다. 교향곡 3번 [영웅]에서 강한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의 교향곡들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자유로운 형식에 문학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또한 기존에 쓰지 않던 악기를 도입하여 악기편성을 새롭게 하고, 기악음악인 교향곡에 성악음악인 합창과 독창을 삽입하여 후대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미뉴에트 대신 해학적인 스케르초를 교향곡에 넣은 것도 베토벤이 처음이다. 작곡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각상실이라는 고난을 겪으면서,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에 대한 비통한 심정과 분노를 절절이 담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까지 쓰며 절망에 빠졌던 베토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형벌의 고통을 감수한 프로메테우스처럼 베토벤은 청각상실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답고 고결한 음악을 창조했다. 브람스, 베토벤의 교향곡을 계승한 낭만적 보수주의자: 교향곡 제1번 C단조 Op.68 오페라를 제외하고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브람스는 낭만주의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고전주의자라 평가된다. 특히 그는 베토벤의 전통을 계승한 작곡가이다. 다른 작곡가들이 첫 교향곡을 이십대 이전에 작곡한 데 비해 브람스는 43세가 되어서야 첫 교향곡을 발표했다. 브람스가 작품을 구상한 지 20년 만에 완성한 교향곡 1번은 지휘자 한스 폰 뵐로가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 부를 정도로 베토벤의 아홉 편의 교향곡을 잇는 걸작이다. 브람스는 모두 네 편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구성이 견고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감정과 아름다운 서정성을 담고 있다. 브람스 교향곡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실내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교향곡은 씨줄과 날줄이 얽히듯 교묘하게 다성적인 전개를 해나간다. 그러면서도 장대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특징은 바흐를 비롯한 바로크 음악에 영향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몇 번 듣다보면 정교한 조각품을 감상하듯 그 완벽함에 감탄하게 된다. 쇼스타코비치, 스탈린 치하에서 음악가로 생존하기: 교향곡 제5번 [혁명] 베토벤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했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탄압으로 고난의 삶을 산 작곡가이다. 13세에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고 19세에 작곡한 첫 교향곡에는 젊음의 열정과 낭만, 흥분, 불안이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생동감 넘친다. 이후 단연 두각을 나타내며 소련 작곡계의 총아로 떠오른 그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발표하면서 영욕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스탈린이 이 오페라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호된 비판을 받았고 29년 동안 이 곡은 연주금지곡이 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 [혁명]을 발표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복권되어 다시 인민의 우상으로 떠올랐으며 3년 후에는 스탈린상을 받기도 했다. 고립된 소련 사회에 있었던 쇼스타코비치는 계속해서 사실화를 그려야 하는 화가가 되었고 국가의 요구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새로운 하모니와 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로 고민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서는 지적이면서 억압받는 사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려 해도 갈 수 없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이상적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마치 종이 오선지가 아닌 돌에 악보를 새기듯 쉽게 써내려가지 못했다는 것을 그의 곡을 들으면 느낄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품을 쓴, 구태를 벗고 새로운 가능성의 음악을 제시한 작곡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