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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부_ 사랑과 인식의 출발 나의 첫 기억 청포도의 계절 초콜릿 장화 할머니와 코끼리 퍼레이드 여름 야시장 유치원 가던 날 군산의 클레멘타인 실낙원, Memento Mori 흥부 놀부 이야기 첫 시련_뽀테또 사건 닌꾸단렌(忍苦鍛鍊)의 후예들 까까머리 손님 도사님을 만나다 그 아이는 어찌 되었나? 2부_ 유학의 맛 미국 대학 장학생이 되다 일본 동경 경유 하와이섬을 지나 LA로 Stephens College 등록 학교 기숙사와 식당 풍요로운 미국 사회 수업 시간 방문객 소중히 여긴 우리 문화 공로상을 받다 일리노이주립대학교 _나의 ‘롱다리 아저씨’(Daddy Long Legs) 다양한 기숙사 비행기 여행 Homecoming Queen 유학의 뜻 3부_ 우리 아이들 한 여름밤 이야기 사랑스러운 미영이, 그리고 엄마 아기들에게_엄마 일기에서 어느 여름 바다 이야기 엄마 닮았네 할머니도 선생님이 있어요? 우리 둘만의 저녁 Mauna Kea의 노래_할머니가 휴양지에서 너희들에게 부활절 달걀 찾기 새 생명 탄생의 기쁨 4부_ 짧은 이야기 히말라야의 소왕국, 부탄 이야기 돌지 씨와 송이버섯 돌지 씨의 골프장 저녁 파티 돌지 씨와 부탄 ‘Dzonkha Druk-yul’ 王家 팀푸에서 티베트 국경까지 Paro의 밤_부탄이여 안녕 어느 크리스마스 이야기_1996년 크리스마스 세기(世記)의 두 발 승가사의 추억 정월 인수봉(仁壽峰) 하와이 랩소디_와이콜로아의 브런치 페이터의 산문 용암의 광야 백색과 무색의 시간 네네의 사랑 알로하 오에 하와이_하와이와의 인연 푸아코의 신부님 5부_ 수필 그리고 시 작은 꽃과 작은 꿀벌 회상의 사과 깎기 고양이 정원 Tombe La Neige_눈이 내리네 바닷바람, 부산 바람 추억을 담은 보쌈김치 숲속의 작은 도서관 첫 증손자 뉴포트의 아침_장미여, 그 순수한 모순이여 첫눈_비원의 눈 강우일 베드로 주교 서품식 날 밤에 올리는 기도 만정도화(滿庭桃花)로소이다 부활절의 눈물 가을 산소에서 용인 산소에서 5월의 애가_피에타의 슬픔을 안고 그리운 엘리시아 춘원 선생님을 기리며 마법의 도시 서울에서 소중한 인연 깊어가는 가을의 기도 구십 고개 EPILOGUE_인생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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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에 시작하여 1905년 9월에 종전 협상으로 끝난 ‘러일전쟁’ 이야기를 초등학교 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 가장 많이 부르던 노래 역시 이 전쟁 노래였다. 일본의 승리로 끝난 전쟁이었으나 일본이 치른 재정과 인명의 손실은 실로 막대하였기에 전후 40여 년이 지난 우리 세대까지 이 전쟁 이야기는 회자 되었다.
이 전쟁은 한반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일본 대 러시아의 무력 충돌이었으니 한반도 주인인 우리가 어찌 무심하게 넘길 수 있으랴. 그러나 나는 어느 선생님에게서도 그런 역사를 배운 적이 없다. 오로지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할 뿐이다. 할머니 이야기의 힘이다. 일본이 미국을 향해 선전포고도 없이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억지스러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본은 초등학생인 우리까지를 들들 볶았다. 어느 날 새벽, 우리는 주먹밥 하나, 눈깔사탕 몇 개만 가지고 교문을 나섰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대구에서 아주 먼 어느 절까지 걸어갔다가 학교로 돌아오니 서산에 해가 기울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그렇게 하루를 걸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인들이 강요한 닌꾸단렌(忍苦鍛鍊)의 일면이다. 대구비행장 건설을 위해 그 질기고 뿌리 깊은 골프장의 잔디를 캐내는 작업을 종일토록 했다. 보리가 자랄 때는 보리밭을 밟았다. 모내기 철에는 거머리가 들러붙는 논에서 모심기를 거들었다. 또 높은 산에 올라가 송진을 톱으로 캐는 노동도 했다. 비행기 연료로 기름을 짠다는 것이었다. 우리 손으로 켜가는 송진 양이 얼마 된다고. 여름에는 매일 잡초 1kg을 교정 퇴비장에 묻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동네 잡초가 동이 났다. 이렇게 혹독한 단련을 받은 탓에 우리 세대는 저력과 내공이 쌓였다. 그래서 웬만한 고생은 참아낼 수 있었다. 해방과 6.25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조국을 세워 일으킬 저력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뒤돌아보면, 어린아이들은 아무리 고된 일들도 고생인 줄 모르고 치르게 된다. 자고 나면 힘이 솟으니까. 이웃에 사셨던 춘원 이광수 선생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님 이 겨레와 이 나라를 사랑하신 그 충정이 바다와 같이 깊었습니다. 하늘이 내리신 님의 글재주를 뉘라서 감히 견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님은 시대의 죄를 홀로 짊어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신 님을 위해 효자동 담장 위의 능소화도 붉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