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육필 편지 - 지하련이 최정희에게 · 7
추천의 글 - 미니픽션 〈욱에게〉 박서련 · 15 결별 · 27 가을 · 67 산길 · 99 종매(從妹): 지루한 날의 이야기 · 127 양(羊) · 197 옮긴이의 글 - 야릇하고 쓸쓸한 세계 백종륜 · 229 |
이현욱李現郁
‘웬일일까? 내가 이렇게 비위가 잘 상하는 것은 그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제법 맹랑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로서는 또 뭘 그렇게 치우쳐 다잡아 볼 것 없이 그저 남편을 사랑한다고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이러지 않고는 사실 일이 너무 거창해서인지도 모른다.
--- p.27 “정말 인어라는 게 있을까?” 형예는 싫을 만큼 들어온 이야기지만 어째 이상한 생각이 다소곳이 들어서 정희보고 말한 것인데 “그럼 있지 않고요” 하고 신랑이 말을 받았다. ‘내 보기엔 당신네들부터 수상한 것 같수다’ 하는 것처럼 색시들의 얼굴을 보며 웃는 것이다. --- p.57 ‘저 기다랗게 끼록끼록 하는 것은 지렁이일 테고, 끼득끼득 하는 것은 귀뚜라미일 테지만, 저 솨르르 솨르르 하고 쪽쪽쪽 하는 벌레는 대체 어떤 형상을 한 무슨 벌레일까? 왜 저렇게 몹시 울까?’싶다. 갑자기 밀물처럼 고독이 온다. 드디어 형예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 p.62 지금껏 그는 이처럼 마구 쏟아지는 눈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턱으로 뺨으로 함부로 쏟아지는 눈물에 비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싸늘한 태도가 어쩐지 여자의 알지 못할 운명 같기도 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과연 여자의 울음은 단지 벗을 잃은 슬픔만은 아닌 듯했다. --- p.87 “쓸쓸하니 말이죠……. 사랑하기만 하면 백 년 천 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 p.92 “날 비난하시려거든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이제 내게도 말이 있다면 그분을 사랑했다는 것, 사랑 앞에서 조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p.110 평화해야만 하는 부부 생활이란 이런 데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하는 알 수 없는 생각에 섬뜩하다. 문득 좌우로 무성한 수목을 헤치고 베 폭처럼 희게 벋어나간 산길을 성큼성큼 서둘러 올라가던 연희의 뒷모양이 눈앞에 떠오른다. 역시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했다. --- p.123 문득 요란한 바라 소리가 뚝 그친 법당으로부터, 외길로 찬찬한 염불 소리가 호젓이 들려왔다. 석희는 밤이 이슥해진 것을 깨달으며, 지금쯤 아무 영문 모르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철재를 생각하며 일어섰다. --- p.166 “당신은 이야기를 얼마나 지녔소?”하고 물어봤더니, 정래는 이 말에 대답은 없이 다만 소리를 내어 조금 웃을 뿐이었다. 성재는 그 웃는 얼굴이 몹시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이번엔 그곳에 야릇하게 끌리고 있는 자기를 발견했다. --- p.214 “우리 훨씬 늙거든 어디에서고 만납시다. 그래서…… 그곳에서…… 우리도 그 ‘승천(昇天)’이란 것을 하게 합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 p.222 |
지하련 소설이라는 문학적 암호
대중에 지하련 소설이 다시 관심 받게 된 데에는 바로 작가 최정희에게 보낸 서신의 영향이 크다. 애틋한 감정이 묻어나는 편지의 발신인이 지하련이고 수신인이 최정희였다는 사실은 지금껏 취해온 지하련 소설의 독법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실제로 최정희의 독려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하련이 편지에서 “남은 세월을 정희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이 살아가련다”라고 서술한 바, 우정과는 다른 퀴어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는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 「결별」「가을」「산길」「종매」「양」을 퀴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에서는 모두 부부와 신여성, 남매와 지식인 남성이라는 삼각형의 인물 구도가 그려지는데, 그동안 이를 남녀간의 관계로 읽었다면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에서는 퀴어성을 열어둔 새로운 독법으로 지하련 소설의 암호 같은 관계를 풀어 나간다. 〈결별〉 “학교를 마치던 해에 정희와 도망갈 약속을 어겼던 일, 별로 맘이 내키지도 않는 것을 어머니가 몇번 타이른다고 그냥 시집갈 궁리를 하던 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가 한 일이래도 모두 지랄 같다.” 정희의 혼인 축하연에 초대된 형예가 겪는 마음의 변화를 그린다. 여학교 시절 함께 도망할 것을 약속했던 정희와 오랜만에 다정하지만 어쩐지 점점 마음이 편치 않는 시간을 보낸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의 이야기에 무시로 일관하는 남편의 모습에 형예는 외로움과 모욕을 느낀다. 비로소 지난날과 결별할 때가 왔음을 느끼며,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 가는 모습이 소설 전반에 그려진다. 〈가을〉 “쓸쓸하니 말이죠……. 사랑하기만 하면 백 년 천 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주인공 석재가 아픈 아내를 떠나보낸 뒤, 아내와 각별했던 친구 정예를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도 정예와 얽히는 일이 편하지 않았던 석재는 죽은 아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정예의 눈물 앞에서 ‘단지 벗을 잃은 슬픔만이’ 아님을 느낀다. 〈산길〉 “연희의 뒷모양이 눈앞에 떠오른다. 역시 총명하고, 아름다웠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했다.” 남편이 자신의 친구 연희와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재가 연희로부터 만나자는 편지를 받고 약속 장소로 나간다. 사랑 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연희와, 한갓 실수이니 용서하면 될 일이 아니냐는 남편 앞에서 오히려 예쁜 연희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되는 순재의 내면을 그린다. 〈종매〉 “이젠 형도 옆에 계시고, 또 열도 차차 좋아지고 하니까, 어떻게든 꼭 낫게 하겠습니다” 석재 역시 조금 전 철재의 웃는 얼굴에서와 같은 이상한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그래, 얼른 낫게 합시다” 하고 말을 받으면서, 일변 좀 더 다정한 말이 있을 것도 같아서 잠깐 머뭇거리고 있는 참인데, 별안간 어색하였다. 그래서 별 생각도 없이, 그저 얼결에 옆에 놓인 철재의 손을 잡아보았다. 석희가 사촌 여동생 정원의 부탁으로 몸이 아픈 청년 철재를 간호하게 된다. 사찰에서 함께 기거하게 된 이들 틈에 석희의 절친한 친구 태식이 방문하게 되고, 철재를 의식한 듯 태식과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석희의 모습에서 묘한 기류가 생긴다. 〈양〉 ‘내가 뭐 하러 이것을 샀을까? 사천육백 평이나 되는 울창한 삼림을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이 그저 좋아서 샀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설사 말이 된대도 이건 결코 그리 떳떳지 못한 이유임에 틀림이 없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도무지 떳떳지가 못한 것일까?’ 그는 못내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재는 정래와 함께 벽지 산골에서 짐승과 화초를 함께 가꾸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성재가 가족의 성화에 못이겨 선을 보고 집으로 돌아 온 날, 정래의 여동생 정인이 찾아온다. 정인의 혼인 이야기를 나누던 정래와 성재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고독이란 괴물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억누르던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체성을 찾아 나선 이들의 자기서사 관습에서 벗어난 ‘지하련 다시 읽기’ 남성 작가 중심의 연구 관행에서 벗어나 여성 작가들에게도 주목하게 되면서 지하련의 작품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살아 있는 내면 서사는 페미니즘과 심리소설 등의 측면에서 남녀의 심리를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추적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따금 난 네가 몰라져서 쓸쓸탄다』는 여성문학의 프레임을 벗고 새로운 앎을 향한 즐거운 탐색을 펼치려 한다. 지하련이 사회주의자 오빠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 역시 같은 이념을 지향했던 까닭에 「종매」와 「양」을 비롯한 몇몇 작품은 사회주의 이념과 제국주의 사이에 좌절된 정체성들을 그려낸 소설로 읽혀왔다. 반면 「결별」과 「가을」, 「산길」은 근대 신여성의 여성성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구분되어 왔으며, 그중에서도 「결별」은 최정희 소설 「인맥」의 소재였던 남편의 외도를 지하련이 여성 주체적 관점으로 바꾸어 서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다섯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동성 간의 미묘한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면, 전혀 색다른 ‘다시 읽기’를 경험하게 된다. “오직 이성애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하는, 그리하여 모든 형태의 낭만적 감정을 단 하나 이성애적인 것으로 귀속하고 환원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본다면, 지하련 소설은 남녀 모두가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파악해 나가는 자기 서사로 우리를 이끈다. 이로써 지하련 소설이 담고 있는 퀴어성이 여성문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젠더 서사를 읽고 쓰는 데에 새로운 지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