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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1. 칼 라르손 _‘지금, 여기’서 나는 행복한가? 02. 카를 슈피츠베크 _당신도 외향인인 척하는 내향인입니까? 03. 하랄드 솔베르그 _고독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습니까? 04.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_행복한데 왜 자꾸 불안할까? 05. 빈센트 반 고흐 _사랑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06. 에드바르 뭉크 _반짝이지 않는 내 모습도 사랑할 수 있을까? 07. 펠릭스 발로통 _내 취향도 확장판이 될 수 있을까? 08.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_‘인생 노잼 증후군’, 삶이 권태로우십니까? 09. 피에트 몬드리안 _내 삶은 넘치거나, 모자라거나, 알맞거나? 10. 장 시메옹 샤르댕 _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은 11. 폴 세잔 _조금 느려도 정말 괜찮을까? 12. 구스타프 클림트 _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가 있나요? 13. 미켈란젤로 _그래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14. 클로드 모네 _여행하듯 오늘을 살고 있나요? 15. 라몬 카사스 _멈춤이 두렵다면 16. 피에르 보나르 _덕질, 하세요? 17. 렘브란트 반 레인 _이런 나라도 괜찮나요? 18. 브리튼 리비에르 _함께라면 무조건 완벽할까? 19. 귀스타브 카유보트 _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까? 20. 키리악 코스탄디 _다정함은 정말 승리할까? 21. 마르크 샤갈 _내 인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면 22. 르네 마그리트 _그래서 나다운 게 뭔데? 23. 존 컨스터블 _나는 내 인생의 주연일까, 조연일까? 24. 앙리 마티스 _안전한 착지를 위한 삶의 비행법을 아시나요? 25. 앙리 루소 _꿈이 대체 왜 필요하냐고 물으신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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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질 때,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칼 라르손의 그림 앞에 선다. 그러면 ‘딱 알맞은 정도의 행복감’을 맛보게 된다. 라르손의 그림은 이토록 충만한 라곰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누구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만’ 행복해진다. 그가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고 불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칼 라르손_ 〈‘지금, 여기’서 나는 행복한가?〉」중에서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위장 외향인’의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내향적인 성격이 사회생활에 좋지 않다며 터부시하고, 활발하고 사교적으로 어울려야만 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누구나 조금씩은 내향(內向), 즉 내면을 향하고픈 욕구를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러한 사회인의 속마음을 넌지시 비춘다는 측면에서 슈피츠베크의 그림은 묘한 동질감과 조용한 응원을 불러일으킨다. ---「카를 슈피츠베크_ 〈당신도 외향인인 척하는 내향인입니까?〉」중에서 워터하우스가 그린 또 다른 그림 중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라는 작품은 이런 고민에 작은 실마리를 던져준다. 작품엔 이미 수많은 꽃송이를 가슴팍에 품고 있는 소녀들이 허리를 굽혀 또 다른 장미 봉오리를 살뜰히 거두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영원할 것 같은 오늘의 시간은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고, 이 순간의 행복도 불행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 들판에서 여인들이 부지런히 장미 봉오리를 모으듯 현재의 매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간직하라고, 그림은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_ 〈행복한데 왜 자꾸 불안할까?〉」중에서 뭉크의 삶은 분명 눈부신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캄캄한 흑야에 가까웠다. 그의 그림 또한 그랬다. ‘생의 프리즈’라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인생의 다양한 지점 중 가장 밑바닥 순간을 다뤘다.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생의 얼룩들을 그는 기꺼이 마주했고 붓으로 담담히 그려냈다. 내면의 깊고 눅눅하고 불쾌한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직면하며 그림으로 승화했다. 사람들은 뭉크의 실제 삶과 닮아 있는 그의 그림들을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결핍과 그림자를 경험하기 마련이고, 그럴 땐 더 깊은 어둠으로부터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 ---「에드바르 뭉크_ 〈반짝이지 않는 내 모습도 사랑할 수 있을까?〉」중에서 모네의 작품들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장면들을 담고 있건만 유난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순간순간 발견한 찰나의 반짝거림을 진지하게 포착하고, 거기서 받은 자신의 인상을 고스란히 그림에 새겼다. 스쳐 지나갈 법한 일상의 사소한 단면조차 소홀히 여기지 않고 진득하게 연작으로 그려낸 그의 여문 솜씨는 단연 돋보인다. 문득 생각한다. 모네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본다면, 일상을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클로드 모네_ 〈여행하듯 오늘을 살고 있나요?〉」중에서 몇 해 전 한 미술관에 샤갈의 그림 원화가 전시되었을 때 나를 비롯해 많은 관람객이 〈인생〉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저마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멋지다,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을 넘어, 그림이 각자에게 건네는 말에 저마다의 답을 찾고 있는 듯했다. 그건 어쩌면 ‘내 인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의 세계는 어떠어떠한 것들로 구성되고 있나’와 같은 질문들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결국 한 사람의 세계관에 대한 물음과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 샤갈_ 〈내 인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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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서 나는 행복한가?
· 당신도 외향인인 척하는 내향인입니까? · 사랑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인생 노잼 증후군’, 삶이 권태로우십니까? · 조금 느려도 정말 괜찮을까? · 내 인생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긴다면? · 그래서 나다운 게 뭔데? 그림에서 발견한, 생의 어느 순간엔 답해야 하는 물음들! 그림 앞에 가만히 서면 그림이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무엇이 보이고 어떤 기분이 드느냐고, 너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그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끝에는 항상 ‘나 자신’이 있었다. 그림 속 상황과 비슷한 내 삶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각양각색의 감정에 공감하며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살폈다. 때론 작품을 그린 화가의 생애를 살피며 끙끙 앓고 있던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얻거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기도 했다. _ 본문 중에서 그림 한 점에는 화가의 세계관, 즉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담겨 있다. 어려서 가족을 연이어 잃고 가장 고통스럽고 어두운 생의 이면들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예술로 승화시킨 뭉크, 학대와 빈곤으로 점철된 불행한 유년시절을 극복하고 소소하고 알맞은 행복을 가꿔나가며 이를 그림으로 남긴 칼 라르손, 빼고 제하며 최대한 대상의 본질만을 포착해 표현하며 자신만의 미적 세계와 질서를 구축해 나간 피에트 몬드리안, 화가로서의 자신의 이력보다 가난한 인상주의자들의 후원 역할에 더 몰두한 귀스타브 카유보트, 49세가 되어서야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서 ‘일요화가’라는 주변의 조롱을 받았지만 끝끝내 딛고 일어서 자신의 꿈을 이뤄낸 앙리 루소 ……. 저자는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톺아보며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채 외면해 두었던 질문들을 떠올린다. “지금 여기서 나는 행복한지, 내가 외향인인 척하는 내향인은 아닌지, 나는 고독을 즐길 수 있는지, 반짝이지 않는 내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지, 혹 삶이 권태롭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인지, 나다운 게 대체 무엇인지…….” 그렇게 그림과 대화를 나누며 드러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살피고, 꼭 한 번은 마주해야 할 인생 물음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림으로 더 단단해지고, 더 다정해졌다! 저자는 불행으로 점철된 유년시절에도 불구하고 안온하고 따뜻한 집을 가꾸며 행복을 그려나간 칼 라르손에게서 자신의 일상 속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한다. 또 혼자 있는 인간의 가장 솔직하고 은밀한 모습을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슈피츠베크의 그림에서 내향인인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용기를 낸다. “마침내 심연에 빠지는 그날까지 난 그곳을 걸을 것”이라며 인간의 가장 처절하고 어두운 면들을 캔버스 위에 쏟아낸 뭉크의 그림에서 반짝이지 않는 내 모습도 받아들이겠노라 다짐한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절묘하게 포착한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럴싸하지 않은 내 모습까지도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는 걸 깨우쳐준다. 그림은 삶이 흔들릴 때마다 꺼내 먹는 영혼의 양식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림을 본다는 것은 평가함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공감함으로써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과도 같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림 한 점이 내 삶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믿음직한 삶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