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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1부 불화를 읽는 법 1장 불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불화, 어떻게 볼 것인가 | 공간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불화 2장 새롭게 등장하는 불화의 명칭과 그 의미 만다라, 의식을 위한 단 | 의식과 불화 | 부처를 눈앞에 마주하는 방법 3장 불교의식집을 왜 알아야 하는가 불교의식집이란 무엇인가 | 조선 후기 의식집의 특징 2부 주불전에 걸린 불화의 조합 4장 주불전의 부로하와 삼단의례 「진관사수륙사조성기」와 조선 전기 삼단의 기록 | 『진언권공』에 수록된 일상의례 | 주불전의 불화들 5장 후불벽 뒤편의 〈관음보살도〉 주불전의 〈관음보살도〉 벽화 | 관음단과 의식 | 〈관음보살도〉 벽화의 유형 3부 세 개의 단, 세 점의 불화 6장 이름보다도 널리 알려진 별명, 상단탱· 불상 뒤에 거는 그림, 후불탱 | 상단 의례의 정비와 불화 7장 의식의 실세, 중단탱 중단 불화의 변화 | 수륙재와 〈삼장보살도〉 | 예수재와 〈지장시왕도〉 | 일상의례와 〈신중도〉 8장 영혼을 위한 불화, 하단탱 시식의례와 하단탱 | 하단을 배치하는 방법 | 상설화된 하단탱, 〈감로도〉 4부 전각 밖으로 나온 불화 9장 의식단의 확장과 괘불의 조성 야단법석 | 괘불과 성물의 이동 10장 도량에 걸리는 작은 불화들 도량을 꾸미는 불화 | 수륙재의 성행과 새로운 불화의 등장 | 네 명의 사자와 다섯 명의 왕 11장 연결된 공간 에필로그 본문의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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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부의 빛에 익숙해지자 그제야 불화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주 벽면 이외에도 기둥과 공포 사이의 벽면, 천장, 창방에 이르기까지 여백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벽화가 있었다. 흙벽이나 목조 기둥에 그려진 붉고 노랗고 초록색의 안료는 오래된 나뭇결 사이에 스며들어 건축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우리 곁에 이런 그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반가웠다.
--- p.17, 「프롤로그」중에서 대웅전에 걸리는 불화 중에는 〈감로도〉, 즉 ‘단 이슬[甘露]’이라는 재미있는 명칭을 지닌 불화도 있다. 〈감로도〉는 불행한 죽음을 맞은 이들을 위로하고 영혼을 천도하는 의례의 장면을 그린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그렸기에 조선시대 사찰에서 꼭 갖춰두고자 하는 불화 중 하나가 되었다. --- p.20, 「프롤로그」중에서 생애 처음 대형 불화를 본 느낌은 마치 오래된 마을 어귀의 큰 당산나무를 볼 때의 감동과 비슷했다. 평생 한 가지 주제를 공부할 수 있다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 불화를 단순히 그림으로, 화면에 그려진 요소로만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현장에서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었다. --- p.28, 「프롤로그」중에서 불화는 단지 불교의 세계관을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식 공간을 하나의 연극 무대처럼 느끼게 하는 데 기여했다. 불교회화의 확장된 기능은 조선시대 주불전에 갖추어 두어야 할 불화의 조합과 주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 p.79, 「2장 새롭게 등장하는 불화의 명칭과 그 의미」중에서 시간이 흐르면 정해놓은 하나의 원칙도 점차 느슨해진다. 조선시대 의식집에는 시간과 지역에 따라 느슨해지는 방식을 통일하고 올바른 방식을 알려주려는 의지가 스며 있다. 이 의식집들에는 내용에 대한 설명과 주석뿐만 아니라 단 배치법, 의식문의 형식 등 의례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수록했다. --- p.250, 「8장 영혼을 위한 불화, 하단탱」중에서 주불전에 걸린 ‘감로도’ 앞에서는 많은 의례가 베풀어졌다. 실제 그림에서만큼 다양한 음식과 풍성한 단을 차릴 수 없더라도, 불화가 걸린 단 앞에서 살아있는 이들은 세상을 떠난 이를 대신해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 p.279, 「8장 영혼을 위한 불화, 하단탱」중에서 우리 곁에 이런 그림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놀랍고 반가웠다. 당신에게도 불교회화를 보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불교 미술의 전파와 이동 경로를 함께하며 인류가 쌓아 올린 지혜와 그 지역만의 자생적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 p.379, 「에필로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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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조선의 불화인가? 전쟁과 화재를 자주 겪은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전각과 전각 내부의 성보(聖寶)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흔히 조선시대를 ‘억불숭유의 시대’라고 치부하지만, 당시 불교 교단은 유교적 가치관을 수용하는 공존의 노력 등을 통해 불교를 전파하였다. 이러한 조선시대 불교계에 대한 재평가 없이 우리나라 불교회화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화란 불교의 교리를 엄격한 법도에 따라 시각적으로 재현한 종교화이다. 세속적 의미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림에 담긴 교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불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은 조선 불화 자체보다는 조선 불화의 기능과 기능하는 공간에 더 주목한다. 불화가 걸린 공간에서 진행된 의례는 불화에 관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불화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단지 불화에 그려진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나, 그림에 재현된 시공간을 알아차리는 것을 넘어선다. 1부 「불화를 읽는 법」에서는 불화의 내용과 주제에 한정하지 않았을 때 보이는 것들에 관해 알려준다. 이 책에서 불화에 대한 설명은 그림 안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사찰 입구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찰의 입구인 일주문을 통해 성스러운 영역인 경내로 들어서면, 사천왕이 보호하는 천왕문을 지나, 낮은 지붕이 있는 누각에 다다른다. 그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사찰의 가장 커다란 법당인 주불전 중앙에 형성된 아늑한 마당에 도착한다. 이 텅 비어 있는 작은 공간이 바로 불화를 보는 시작점이다. 물론 이곳에서 전각을 바라봐도 내부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한 불상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불화는 오랫동안 불상을 보조하는 기능을 맡았다. 불상이 없다면 불전이 성립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신앙의 중심은 불상이었다. 1부에서는 불상에 가려져 있던 불화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안내한다. 불화를 기능과 공간의 관점으로 새롭게 보기 위해 익혀두어야 할 것들, 의례적 기능에 따라 새롭게 불리기 시작한 불화의 명칭(‘상단탱’, ‘괘불’ 등)과 의례를 표준화하는 역할을 한 일종의 매뉴얼인 불교의식집에 대해 소개한다. 2부 「주불전에 걸린 불화의 조합」에서는 주불전에 다양한 불화가 걸리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주불전에 걸린 다양한 불화는 불교문화를 공유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또 고려시대와도 구별되는 조선시대만의 특징이었다. 조선시대 사찰에서는 의식 전용 전각을 짓는 대신, 사찰을 찾은 참배객이라면 반드시 들리는 주불전에 삼단(三壇)을 갖춰두고 의식을 체계적이고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 개의 단을 뜻하는 삼단은 조선시대 승려들이 생각한 장엄한 불교의식의 기본 구조였다. 삼단, 즉 상단, 중단, 하단에는 각 단을 상징하는 불화가 걸렸다. 불상을 정면에 두고 바라볼 때, 상단은 정면에 있는 불상의 뒤쪽을 말하고, 중단은 오른쪽, 하단은 왼쪽에 자리한다. 상단은 불상과 불화가 함께 봉안되지만, 중단과 하단에는 불화만 걸렸다. 기능과 공간에 따른 새로운 불화의 수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삼단의례는 주불전에 한 점 이상의 불화가 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3부 「세 개의 단, 세 점의 불화」에서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조선 불화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조선 불화는 삼단의례에서 불화가 걸린 공간에 따라 ‘상단탱’, ‘중단탱’, ‘하단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상단탱은 정면 상단에 거는 불화로, ‘불상 뒤에 거는 그림’이란 의미로 ‘후불탱’으로도 부른다. 전란(임진왜란·병자호란) 직후 조성된 불상은 대체로 규모가 작았기에, 그 뒤편에 걸리는 후불탱은 불상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해졌다. 이를 위해 후불탱에는 본존인 석가모니불 그림이 앞에 놓인 불상보다 크게 그려졌다. 반면 조선 후기에 들어서 주불전에 압도적인 규모의 불상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불화에 그려진 본존은 불상으로 인해 가려졌고, 불화는 예배자에게 잘 인식되지 않았다. 불상에 가려진 부분을 생략해 그리기도 하였다. 이렇듯 기능과 공간은 불화의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3부에서는 각 단이 지닌 의례적 기능과 특징을 소개하고, 상단탱, 중단탱, 하단탱으로 사용된 다양한 불화들을 소개한다. 4부 「전각 밖으로 나온 불화」에서는 야외에서 진행한 의례에 내거는 거대한 불화인 ‘괘불’에 대해 다룬다. 전각에서 치를 수 없는 대형 의례는 야외에 단을 마련해 진행하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전각에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의 불교의식이 많아지게 된 걸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의승군을 조직해 국난을 막는 데 동참했던 불교 교단은 전란 이후에는 피해를 복구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전염병과 기근으로 위기 상황은 계속되었다. 현실의 고난이 커질수록 유교가 수행하지 못하는 종교적 기능에 대한 요구는 더욱 높아졌고, 사찰은 천도재(遷度齎)를 마련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사찰의 야외 의식은 무너진 사회를 일으키고 공동체를 통합하는 데 기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불화를 건다’라는 의미의 ‘괘불’은 야외 의식 전용 불화의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4부에서는 괘불의 도상들을 소개하고, 불화뿐만 아니라 불패(佛牌), 위판(位版), 번화(幡?), 가마 등의 역할을 소개하면서 의식에 필요한 설비와 절차에 관해 다루면서 야외 의식 전체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떠들썩한 모습을 나타내는 ‘야단법석’이란 표현은 야외에 단(壇)을 만들어 불법(佛法)을 펴는 자리를 마련한 데서 유래한 불교용어다. 의례가 진행될 때 사찰의 모든 공간은 음악과 무용, 도량을 장엄한 그림 등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으로 가득 채워진다. 불상이 함께 하지 못하는 그 공간에서 불화는 축제의 화룡점정을 찍는 주인공이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 주변의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임에도 불화를 어렵게만 느껴왔던 독자들에게 그것이 사용된 공간과 기능이라는 맥락 속에서 좀 더 실재적인 방식으로 불화를 감상할 것을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