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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가을밤 그림자의 작별 구걸자 나의 실연(失戀) 복수(復讐) 1 복수 2 희망 눈[雪] 연 아름다운 이야기 나그네 죽은 불 개의 반박 잃어버린 좋은 지옥 묘비명 무너진 선의 전율 주장(主張) 죽은 후 이러한 전사(戰士) 총명한 사람과 바보와 종 책갈피의 단풍잎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느낌 ≪들풀≫ 영문 번역본 서문 부록: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 백초원(百草園)에서 삼미서옥(三味書屋)으로 후지노(藤野) 선생님 판아이눙(范愛農)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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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풀은 뿌리가 깊지 못하고 꽃잎이 아름답진 못하지만, 이슬을 빨아들이고 물을 빨아들이며 썩은 송장의 피와 살을 흡수해 저마다 자신의 생존을 다툰다. 살아 있을 때 역시 짓밟히고 잘림을 당한다. 죽어서 없어질 때까지. 2. 내 사랑하는 임은 강가 저편에 찾으러 가고파도 물이 너무 깊어 고개를 떨어뜨리니 어쩔 수 없는 눈물 가슴을 적시네. 선물로 주신 것은 황금 사슬. 무엇으로 답례할까, 발한약(發汗藥). 임은 정녕 날 돌아보지 않는가. 무슨 까닭인지 내 신경을 쇠약하게 만드네. 3. 종은 항상 신세타령할 만한 사람을 찾곤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총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그는 슬프게 말했고 눈자위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정말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먹는 거라고는 하루에 한 끼, 그것도 개, 돼지도 먹으려 하지 않는 수수 찌꺼기뿐입니다. 그나마도 겨우 한 공기뿐이지요….”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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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아직도 루쉰인가.
얼마 전, 중국 교과서에서 루쉰의 작품이 대거 빠지고 현대 소설가 위화의 작품이 수록됐다는 소식이 국내 일간지에도 제법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이는 단순한 문학사적 사건이 아니라 ‘중국의 변화’를 시사하는 상징적 사건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아직 루쉰인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중국이 버린 이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탈을 벗겼을 때야 드러나는 루쉰 문학의 참모습, 냉정한 현실 인식과 엄격한 자기비판, 바로 ‘각성’과 ‘반성’이기 때문이다. 딱히 해 놓은 것도 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날씨가 추워지나 싶더니 어느새 12월입니다. 그조차 30일이 채 남지 않았네요. 딱히 해놓은 것도 없는 한 해. 시간은 어쩌면 이렇게도 빨리 흘렀을까요. 지난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져 책을 한 권 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내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이 ‘허망’ 속에서 삶을 부지해야 한다면, 나 역시 사라져 버린 그 슬프고도 아득한 청춘을 찾아 나서겠노라. 설사 내 몸 밖의 청춘이 사라져 버리자마자 내 몸 안의 황혼도 곧바로 시들어 버린다 해도. 루쉰은 이 글을 쓸 당시를 ‘어둠’뿐이었다고 회상한다. 가장 암울했고, 내면적으로도 숱한 방황과 갈등을 겪었다. ≪들풀≫에서는 그 긴장의 시간을 시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응하려는 그의 강인한 정신을 볼 수 있다. 더불어 마음은 흔드는 강인한 어조에 숨은 솔직한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 루쉰 스스로도 자신의 철학을 모두 담았다고 밝혔다. 그간 ≪들풀≫은 크게 일역본을 중역한 것과 중국 동포 학자가 번역한 것 두 가지뿐이었다. 이 책은 원문을 충실하게 옮겼다. 행간에 담긴 작자의 의미나, 문장의 전후 맥락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데도 소홀하지 않다. 허무한 시간이란 없다. 그 모두가 치열한 죽음과 살아남의 연속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