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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정석원
문예출판사 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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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 top100 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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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축복
술집에서
행복한 가정
비누
장명등
조리돌리기
까오 선생
고독한 사람
죽음을 슬퍼함
형제
이혼

작가와 작품 세계

저자 소개2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중국의 문학가, 사상가, 혁명가이자 교육가. 본명은 저우수런이고 자는 위차이이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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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조부에게서 한학(漢學)을 익혔다. 1978년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 대만사범대학교 국문연구소에서 문자학으로 석사학위(1983)를, 대만 동오대학교 중문연구소에서 한중문화교류로 박사학위(1991)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의 문화와 한자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재미있는 漢字旅行》(1, 2권), 《新千字文》, 《부수로 통달하는 한자》, 《지혜를 열어주는 故事成語 120》, 《문화가 흐르는 한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루쉰의 《방황》, 위앤커의 《중국의 고대신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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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40*210*20mm
ISBN13
9788931026214

책 속으로

음력 세밑이야말로 가장 세밑다운 기분이 난다. 시골이나 중소 규모의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도 곧 불어닥칠 새해의 기상이 나타난다.
--- p.7 「축복」 중에서

다만 천지신명께서 인간이 바치는 제물과 향불을 기꺼이 흠향하시고 모두 거나하게 취한 나머지, 루전의 모든 사람에게 한없는 행복을 내려주시려고 비틀거리며 하늘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 p.36 「축복」 중에서

나는 내가 묵고 있는 여관을 향해 걸었다. 싸늘한 바람과 함께 내리치는 눈발이 얼굴을 때렸지만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보니 이미 황혼이었다. 집이며 길거리는 온통 쏟아지는 눈의 새하얀 그물에 뒤덮이고 있었다.
--- p.57 「술집에서」 중에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갑자기 침대에서 펄떡 일어났다. 전부터 생각해온 것이 있었다. 반드시 몇 푼이라도 고료를 받아야 생활을 할 수 있다고.
--- p.59 「행복한 가정」 중에서

등불이 비추는 곳에서는 그녀의 우거지상이 보였다. 무슨 기쁨이나 분노의 기색도 드러나 있지 않은. 활기 없고 무표정한 얼굴에다 두 눈동자 또한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 p.91 「비누」 중에서

금기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고 찻집에 자리 잡고 앉은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제 딴에는 한가락씩 한다고 자처하는 청년들이다. 그러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들이야말로 하나같이 집안을 망치는 놈들로 보였다.
--- p.94 「장명등」 중에서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왔다. 인력거꾼이 묵묵히 앞만 보고 달린다. 마치 머리 위에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에서 도망쳐 빠져나가리라도 하듯 말이다.
--- p.113 「조리돌리기」 중에서

불현듯 까오 선생은 분위기가 매우 적막하다고 느꼈다. 야오푸 선생은 이미 사라지고 자신만이 교단 옆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교단에 올라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태도에 위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 p.132 「까오 선생」 중에서

그것은 길게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했고, 상처 입은 이리 한 마리가 깊은 밤 광야에서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참담한 그 상처 속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내 마음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담담한 심경으로 축축하게 젖은 자갈길을 걸었다. 달빛을 받으면서.
--- p.176 「고독한 사람」 중에서

인간이란 참으로 우스운 동물이라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큰 영향을 받곤 한다. 처음에 우리는 그저 말없이 쳐다보았지만 차츰 이 일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 p.190 「죽음을 슬퍼함」 중에서

꿈의 흔적들이 습격해오는 바람에 그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또한 이 같은 꿈의 흔적들을 꽉 눌러서 깡그리 잊어버리고 싶었다.

--- p.225 「형제」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근대화 이후의 격변으로 혼란에 휩싸인 중국에서
투철한 현실 인식과 민중에 대한 절실한 애정으로 쓴
중국 신문학의 개척자, 루쉰 문학의 백미!

오에 겐자부로는 “루쉰은 20세기 아시아에서 배출된 가장 위대한 작가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 역시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으로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라고 말한 바 있다. 위대한 문학가였던 루쉰이 평생을 씨름한 것은 근대화와 조국의 운명이었다. 일본으로 유학 가 의학을 공부하던 중 조국이 마주한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질병을 치유하는 것보다 국민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 여겨 평생을 저술과 번역에 메달렸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러나 사회 사상가로도 불린다. 그가 근대적 격변과 소용돌이에 휩싸인 중국 사회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가식이나 에누리 없어 투명하게 펼쳐 보인 후, 중국과 중국인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중국의 반봉건적인 사상을 타파하고 계몽하기 위한 중국 인민의 투쟁 과제가 무엇인지를 선구적이고 용감하게 제시했다. 그의 작품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청년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썩은 정신을 도려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휘두른 필설

《방황》은 1926년에 출간된 루쉰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1924년부터 1925년 사이에 쓰였다. 이 시기는 중국의 반제국주의 운동인 5.4운동의 퇴조기였고, 중국 인민에게는 다음 이정표가 필요한 때였다.

〈축복〉과 〈이혼〉은 당시 농촌 사회의 비참한 생활과 여성에 대한 봉건사상의 속박을 폭로한다. 사회가 강제한 책무에 압박받는 여성의 비참한 운명을 동정하며, 이를 통해 봉건 질서에 대한 회의를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술집에서〉, 〈고독한 사람〉, 〈죽음을 슬퍼함〉은 한때는 높은 이상을 품었으나 사회에서 소외되어 몰락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을 그렸다. 이들 작품을 통해 격변기 중국에서 어떤 꿈이 끝끝내 피어오르지 못하고 좌절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행복한 가정〉, 〈비누〉, 〈까오 선생〉 등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현실과 타협하는 속물 지식인을 풍자한다. 이는 좌절한 지식인의 단면을 다룬 루쉰의 작품과 대비를 이루어 격변기에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과 채무는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한편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민중의 근성을 그린 〈조리돌리기〉는 전통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중국인에게 근대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각성을 강렬하게 촉구한다.

사그라드는 중국을 회생시키기 위한 필사의 외침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루쉰의 일갈

루쉰은 모든 허위를 거부했다. 근대적 격동기가 초래한 몰락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던 조국을 면밀하고 치밀하게 관찰하여 병들어 있던 당시 사회를 거침없이 질타했다. 이것이 바로 환부를 도려내기 위한 메스 대신 자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펜을 든 루쉰의 높은 이상이 실현된 방식이다. 썩은 정신을 도려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휘두른 필설은 사그라드는 중국을 회생시키기 위한 필사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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