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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처녀
2부 정조를 잃고 3부 새로운 삶 4부 결과 5부 여인의 대가 6부 알렉의 개심 7부 인과응보 작품 해설 토머스 하디 연보 |
Thomas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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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점심을 먹는 테스의 예쁜 모습을 천막 안에 퍼지는 담배 연기 사이로 지켜보았다. 그 담배 연기 뒤에 자기 인생의 비극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테스는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에 꽂힌 장미꽃을 내려다보았다.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그녀의 젊은 시절 속에서 핏빛으로 뚜렷하게 흔적을 드러내게 될 그 비극은 그녀의 겉모습에서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성숙한 자태는 아직 관능미를 풍길 정도는 아니지만 풍만한 모습과 무르익은 육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었고 바로 그 비극의 시작이었다. 알렉이 테스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 아름다운 용모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지만 그 용모가 연상시키는 성품만은 테스는 달랐다.
--- p.58 테스는 곧 몸을 돌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의 태양이 산봉우리에 낮게 떠 있어, 숲으로 햇살이 비쳐들기는 했지만 따스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썰렁한 숲 근처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글픈 처지의 테스만이 애잔한 시월의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 pp.112-113 꽃송이 같은 입과, 크고 순한 눈을 가진 테스가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애절한 모습을 본다면 설사 그녀의 적이라 할지라도 그녀를 동정했을 것이다. 검지도 푸르지도 그렇다고 잿빛이나 자줏빛도 아닌, 이를테면 그러한 갖가지 빛깔과 또한 그 밖에 무수히 많은 빛깔을 뒤섞어놓은 듯한 테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엿볼 수 있는 빛깔, 즉 그림자 뒤에 또 그림자가 있듯이, 한 빛깔 너머로 또 다른 빛깔이 어리는 그런 빛깔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웬만한 부주의한 성품만 없었더라도 테스는 거의 모든 여인의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 pp.129-130 오랜 생각 끝에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대책 없이는 그녀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습관처럼 매일 만나면 이제 움트기 시작한 애정의 싹을 더욱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가까이 지내면서 자주 만나면 감정은 더욱 격렬해지고, 그 감정의 물결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 그녀에게 이렇다 할 상처를 준 것은 아니므로 당분간 둘이 만나는 일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pp.223-224 에인절이 사랑을 고백한 뒤 그들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테스였지만, 계단 바로 밑까지 다가오는 그의 다정한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깨달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클레어는 얼른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고 상기된 뺨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 p.243 정신적인 망각은 지적인 기억과 공존했다. 그래서 그녀가 사랑의 빛 속을 걷고 있을 때도 등 뒤에서는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어느 때는 멀리 사라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때는 다시 가까이 다가오곤 했다. --- p.282 그녀는 이제 과거를 버렸다. 마치 연기를 피우며 타오르는 위험한 석탄불을 발로 밟아 끄는 것과 같았다. 사나이가 여자를 사랑할 때, 클레어처럼 욕심 없이 강한 의협심으로 여자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고 테스는 미처 몰랐었다. 에인절 클레어는 이 점에서 테스가 생각했던 사람하고는 아주 딴판이었다. 정말 놀랄 정도로 달랐다. 그는 참말로 동물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이었고, 자기 자신의 욕망도 제법 억제할 줄 알았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야비스런 티 하나 엿보이지 않았다. 본시 냉정한 성미는 아니었으나, 열광적이라기보다는 명랑한 편이었다. 이를테면 바이런보다도 셸리에 가까운 편이었다. --- p.287 불현듯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수도승인 로렌스의 말이 떠올랐다. “이처럼 불길 같은 기쁨은 불길처럼 사라지느니라.” 인간에게, 이것은 너무나 심하며, 지독하며, 무모하며, 치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아, 사랑하는 에인절, 저는 왜 이토록 당신을 사랑할까요?” 테스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진정한 제가 아니라 저의 허물을 감싸고 있는 여자랍니다. 지난날의 저의 모습일지도 모를 여자란 말예요.” --- p.308 그들은 난로 앞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사그라져가는 난로의 새빨간 불꽃은 마치 심판의 날의 무시무시한 불꽃처럼 보였다. 테스의 큰 그림자가 뒤쪽 벽과 천장에 떠올랐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구부리자 목에 건 다이아몬드 알이 마치 두꺼비가 눈을 껌벅이듯 불길하게 번쩍였다. 테스는 에인절의 관자놀이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 알렉 더버빌을 알게 된 경위와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눈을 내리깐 채 두려움 없이 그녀는 이야기를 해나갔다. --- p.323 “내가 당신을 용서했듯 날 용서해주세요. 당신은 용서받았잖아요. 에인절.” “그래. 당신은 날 용서했어.” “그런데 당신은 날 용서할 수가 없나요?” “테스, 당신은 경우가 달라. 당신은 용서받을 수가 없어. 지금의 당신은 이미 예전의 당신이 아니오. 어떻게 용서라는 말이 그따위 괴상망측한 요술에 적용될 수가 있겠소.” 그는 말을 멈추고 요술이란 말의 뜻을 곰곰 생각하더니 마치 지옥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이상하고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 p.329 마차는 천천히 움직여 언덕길을 올라갔다. 클레어는 마차를 바라보며 테스가 잠깐만이라도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테스는 실신한 사람처럼 의자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었고 또 그럴 기력도 없었다. 클레어는 멀어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다가 답답한 나머지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마음대로 고쳐 읊조렸다. --- p.365 “한 가지 명심할 게 있어요. 난 도덕적인 면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오. 문명인의 눈에서 본다면 말이오. 즉 서구 문명인의 눈으로 본다면 당신과 함께 떠나는 내 행동은 죄악이란 말이오.” --- p.387 마치 머시 챈트에게는 없는 아름다움이 자신에게는 있다고 세상에 알리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테스는 안타깝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아무도 보지 않아. 예뻐봤자 나 같은 버림받은 여자 따위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 p.431 낡은 도덕적 관념은 의당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덕적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인간을 말하는 것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도덕적인 여자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성품의 아름다움과 추함은 행실 자체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나 동기와도 관계가 있다. 성격의 진실한 역사는 과거에 있지 않고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나가느냐에 달렸다. --- p.487 두 사람 중 하나는 에인절 클레어였고, 한 사람은 키가 크고 한창 피어나는 꽃봉오리와 같은 처녀, 반은 소녀이고 반은 여인이었다. 테스보다 몸매는 가냘팠지만 테스만큼 눈이 아름다운 그 처녀는 테스를 정화시킨 듯한 모습을 지닌 클레어의 처제 리자 루였다. 그들의 창백한 얼굴은 반쪽으로 수척해져 있었다. 손을 마주 잡고 묵묵히 걷고 있는 그들이 고개를 수그린 모습은 마치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두 사도〉와도 같았다. --- p.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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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도덕이 한 여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19세기 영국의 도덕과 계급, 성별 권력을 정면으로 고발하다 “그녀는 이제 과거를 버렸다. 마치 연기를 피우며 타오르는 위험한 석탄불을 발로 밟아 끄는 것과 같았다.” 토머스 하디가 뽑은 자신의 대표작이자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을 고발한 문제작 토머스 하디의 장편소설 《테스》는 18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비극의 아름다움이 모여 만든 감동의 대서사시이자 토머스 하디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도덕적 위선과 계급 구조, 성 윤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시골 처녀의 비극적인 인생 역정을 통해 인습적 관념을 대담하게 다루면서도 애틋한 슬픔과 감동적인 비극미를 자아낸다. 《테스》는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모순적인 사회 구조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종교적인 편견을 신랄하게 고발하여 발표 당시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20세기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영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운명에 짓눌린 한 여성의 비극적 삶과 풍요로운 자연이 빚어내는 인간 존재의 무력감 《테스》는 가난한 농가의 딸 테스 더비필드가 자신의 조상이 몰락한 귀족 가문 ‘더버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부모의 기대 속에서 테스는 부유한 더버빌 가문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알렉 더버빌에게 유혹과 폭력을 당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 사건으로 테스는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곧 죽고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고된 노동 속에서 살아간다. 이후 테스는 농장에서 에인절 클레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지만, 신혼 첫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뒤 에인절에게 버림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인절은 자신의 과거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여기면서도 테스의 과거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버림받은 테스는 생존을 위해 다시 알렉에게 의존하게 되고 결국 에인절이 돌아왔을 때 테스는 절망 속에서 알렉을 살해한다. 테스는 잠시 자유를 느끼지만, 끝내 체포되어 처형당하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토머스 하디는 테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아름다운 전원 풍경과 교차시키면서 서사를 전개하고, 이러한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은 오히려 테스의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인간이 사회적 규범과 계급, 성도덕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며,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적 판단 사이의 간극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테스라는 한 여인을 통해 드러난 사회적 폭력과 여성 인물 형상의 혁신성 토머스 하디는 《테스》의 비극을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로 제시한다. 즉, 테스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물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와 계급 질서, 이중적인 성 윤리에 희생당한 존재다. 하디는 테스의 삶을 통해 ‘순결’이라는 개념이 여성에게만 가혹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고발하며, 도덕이 인간을 보호하기보다는 억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영국은 도덕성을 판가름하는 데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댔고 하디는 그러한 도덕적 이중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남성의 성적 일탈은 관용의 대상이 되지만, 여성의 과거는 평생 낙인이 되는 현실은 에인절 클레어와 테스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디는 도덕이 인간성을 기준으로 삼지 않을 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작품 전반에 걸쳐 고발하며, 그 속에서 여성이 얼마가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고발한다. 하지만 하디는 테스를 그저 수동적 희생자로만 그리지 않았다. 테스는 끊임없이 선택하고 고민하며, 자기 삶에 책임을 지려는 주체적 인물이자 감정과 사유를 지닌 입체적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 형상은 빅토리아 시대 여성상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후 여성 문학과 페미니즘 문학 논의에서도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전으로 남은 사회 비판의 기록이자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문학적 질문 《테스》는 단순한 비극 소설을 넘어, 사회 구조와 도덕, 인간 운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토머스 하디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적 규범보다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테스의 처형 장면은 정의가 실현된 순간이 아니라 사회가 한 인간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작가는 독자에게 ‘과연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판단의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 묻게 한다. 또한 《테스》는 문학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테스가 겪은 고통은 현대 사회의 성폭력 피해자, 사회적 약자의 현실과도 깊이 연결된다. 또한 이 작품은 독자에게 법과 도덕, 사회적 판단이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배제하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성별에 따른 불평등, 사회적 낙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가 여전히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테스》가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