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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프롤로그 1장~13장 2권 14장~25장 에필로그 작품 해설 |
Ralph El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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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아니, 그렇다고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잘 나오는 무슨 유령 같은 것은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심령체 같은 것도 아니다. 나는 실체를 가진 인간이며, 살도 있고, 뼈도 있고, 힘줄도, 체액도 다 있는 인간이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또한 내 몸에 무슨 생화학적 이변이 일어나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 내가 말하는, 안 보이는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의 눈이 갖는 특이한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 ‘내부의’ 눈 구조, 다시 말해, 신체의 눈을 통해 현실을 볼 때 그들이 사용하는 그 눈의 구조 때문이다. 불평하는 것도, 항의하는 것도 아니다. 안 보이는 것이 간혹 편리할 때도 있다. 물론 대개는 상당히 신경이 피곤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 「1권」 pp.9-10 나는 빛을 사랑한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빛을 필요로 하고, 빛을 원하고, 빛을 사랑한다니 기이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다름아닌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빛은 나의 실재를 확인해주고, 내 형체를 탄생시켜준다. --- 「1권」 pp.13-14 나는 흑인들에게 배척적인 읍내의 대부분 백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나는 바람직한 행동의 본보기로 여겨졌던 것이다?할아버지의 경우와 꼭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것을 ‘배신’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이었다. 행동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받을 때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마음이 켕겼다. 나는 지금 어떤 면에서 보면 실은 백인들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짓을 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알면 반대로 행동하기를 바랄 것이다. 난 잘 토라지고 비열하게 굴어야 한다. 그게 정말은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리라. 비록 자기들이 속아서 내가 지금 하는 방식으로 행동해 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는 그 사람들이 나를 배신자로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난 볼짱 다 보게 된다고 생각하자 겁이 났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는 더더욱 두려웠다. 백인들이 그런 걸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저주나 다름없었다. --- 「1권」 p.28 “자네는 아무런 존재도 안 돼. 자넨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야?그걸 모르겠나? 백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가르치지?나 같은 사람들은 예외지만 말이야. 나는 그 사람들을 가르친다네. 백인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인가를 가르쳐주는 게 내 생활이야. 놀라울 거야. 그렇지 않나? 하지만일이 그렇게 되어있어. 역겨운 일이지. 나도 그걸 늘 좋아하는 건 아냐. 하지만 내 말 잘 들어보게. 그런 식으로 만들어 놓은 건 내가 아냐. 그렇지만 난 내가 그런 현실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것도 알아.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현실 속에서 내 지위를 쌓아왔네. 그래, 난 현재의 내 지위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이 지방 흑인들을 내일 아침까지 한 명도 남김없이 죄다 나무에 목을 매달아 버릴 수도 있어.” --- 「1권」 p.206 같은 사람으로서, 나는 백인들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친절했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인들이 한결같이 무관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주 무관심하면서도 내게 정중하게 대한다든가, 사람들 틈에서 몸을 스칠 때 죄송하다고 말한다든가 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예의 바르게 대할 때도 나를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곰이 어쩌다 자기 일에 정신이 팔려 길을 가고 있다고 할 때, 그가 길을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에게 죄송하다고 말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헷갈렸다. 그게 바람직한지 아닌지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1권」 pp.240-241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오? /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갑자기 그가 하나의 이름을 지어준 것 같았고 머릿속을 표류하던 그 애매모호한 상태를 정돈해준 것 같았다. 그래서 금방 나는 수치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나자신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눈을 감고 슬픔에 잠겨 머리를 내저었다. 지금 이것은 나와 의사소통을 해보려는 최초의 따뜻한 시도였지만 나는 그에 응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 정신의 암흑으로 뛰어들어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소용이 없었다. 고통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 「1권」 p.343 그것이 당신의 새 이름이오.” / 잭이 말했다. /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은 자신에 대해 그 이름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시오. 그 이름을 명심하여 한밤중에 누가 부르더라도 금방 대답이 나오게 되도록 하시오. 얼마 안 있으면 당신은 그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지게 될 것이오. 다른 이름에는 대답해선 안 되오. 알겠소?” --- 「2권」 p.28 그들은 나를 어둠 속으로 차 넣음으로써 내가 꿈꾸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중요한 것을 이룩할 가능성을 보게해주었다. 여기 뒷문으로 통하지 않는 길이 있었다. 흑백에 제한받지 않고,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가장 높은 보상을 받게끔 해주는 길이었다. 여기 거창한 결정들을 내리는 데 한몫을 할 수 있는 길이, 나라와 세상이 돌아가는 그 오리무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거기 어둠 속에 앉아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한인 종일 원이 상의 어떤 존재가 될 가능성의 가능성을 일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존재했다. 꼭대기에 이르자면 나는 오로지 일하고, 배우고, 살아남기만 하면 되었다. --- 「2권」 p.93 그래, 나는 내 불가시성을 받아들이리라. (…) ‘예’라는 말이 그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래, 나는 그들에게 예, 예,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은 내가 예, 예,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예, 예, 함으로써 그들을 토하게 하고 토해놓은 것 위에서 뒹굴게 할 것이다. 그들이 내게서 원하는 것은 오직 한마디 긍정일 테니까 나는 그걸 큰 소리로 말해주리라. 예! 예! 예! 다들 우리에게서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우리가 말소리로 들려야지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란 존재는 이예, 이예, 이예! 하는 한가락의 우렁차고 낙관적 합창 소리로 들려와야 하는 것이었다. 좋다. 나는, 예예, 위, 위, 시, 시. 온갖 언어로 긍정할 것이며 그들을 또한 보리라. 그리고 나는 징박은 구두를 신고 그들의 오장육부 속을 걸어 다니리라. 위원회 회의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초거물급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하나의 기계를 원하는 것일까? 좋아. 나는 그들의 그릇된 생각에 반응하는 초고감도의 확인 기계가 되리라.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시대의 올바른 일부가 되려는 척하리라. 정말이다. 나는 그들을 잘 섬기리라. 그리고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느껴지게 금하리라. --- 「2권」 pp.310-311 나는 그 일을 도왔고 도구로 이용당했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도구가 되었다. 맞장구치는 것처럼 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의 뜻을 따르고 만 셈이었고, 거리의 불길과 총격의 빛에 드러나 보이는 저 웅크린 형체와 이제 밤이 죽음의 준비를 끝내가는 모든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2권」 p.376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것을 기록하려는 바로 그 행위가 나를 혼란에 빠뜨렸고, 얼마간의 분노를, 얼마간의 통한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난 비난을 하면서도 변호하는, 아니 변호할 태세가 된 것 같은 지경이 되어버렸다. 나는 단죄하면서도 긍정하며, 아니라고 하면서도 예스라고 말하고, 예스라고 하면서도 노라고 말한다. 나는 왜 비난하는가? 그것은, 나도 연루되어 일부 책임이 있긴 하지만, 지옥과 같은 고통을 받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될 정도로 깊은 상처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 「2권」 p.413 나는 지금 낡은 살 껍질을 떨쳐버리고 있다. 그것은 이 땅굴 속에 남겨둘 작정이다. 나는 밖으로 나갈 것이다. 과거의 껍질을 벗어버린 데서 안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밖으로 나갈 작정이다. 그리고 지금이 아무래도 아주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동면이라는 것도 지나칠 수 있는 법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 최대의 사회적 범죄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오래 동면을 한 셈인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인간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부여된, 떠맡아야 할 직분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 「2권」 p.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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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가며 고유한 정체성을 찾는
랠프 엘리슨의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은 1952년 출간되자마자 전미도서상을 받고, 《북위크》에서 196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온 도서 중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도 20세기에 나온 미국 문학 작품 중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단순한 사회고발을 넘어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는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 랠프 엘리슨은 20세기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나,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어려워진 생계를 유지하려고 청소년 시절 구두닦이와 웨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재즈 밴드에서 활동하며 키운 트럼펫 연주 실력으로 흑인 대학교의 음악학과에 진학했지만, 그곳 역시 백인을 위한 다른 기관만큼이나 계급 의식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어느 곳에서도 주류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은 그의 날카로운 문체와 풍자 기법, 그리고 평생의 역작인 《보이지 않는 인간》 집필에 영향을 주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임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 남부 출신 흑인인 ‘나’는 백인 사회의 질서에 따라 성실히 살아가면 평안한 삶으로 보답받으리라 믿고, 흑인으로서 받는 모멸감과 생명을 위협하는 모독까지 견디며 사회에 순응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철저히 배제한다. 사소한 실수로 대학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잃고 북부 도시로 향한다. 그는 노동자로, 정치 단체의 연설가로, 때로는 사회운동의 상징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어디에 속하든, 사회는 그를 이용하기만 할 뿐 결코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세상의 어떤 시선에도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간’임을 깨닫고 지하실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묻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의식 속에서 존재를 찾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겪는 비참한 여정은 흑인이 백인 위주 사회에서 겪는 억압과 소외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인종이라는 굴레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무너지는 대신, ‘보이지 않는 인간’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회복할 길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바로 현실에 주관 없이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게 살고 현실에 저항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사는 일이라는 알고 각성하며 그는 비로소 기나긴 “불가시성의 땅굴”(412쪽)에서 헤어나온다. 인간은 언제 ‘나’로서 뚜렷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인종의 경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묻다 《보이지 않는 인간》은 언뜻 흑인의 사회적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처럼 보이기 쉽지만, 이야기의 핵심에는 ‘정체성’이라는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 자리한다. 이 작품은 어둠 속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흑인의 이미지를 통해,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 묻혀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상을 그린다. 주인공은 암흑 같은 상황과 검은 피부색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조건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어둠이 인간적이고 고유한 개인의 모습을 말살하고 있는데도, 주어진 삶의 조건을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이고 불합리한 사회에 복속한다. 주인공은 타인에게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규정받으며, 심지어 이름까지도 자신의 본래 이름을 밝히며 살지 않고 다른 이에게서 받은 역할과 직책에 따라 살아간다. 백인 위주로 흘러가는 사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굴욕을 견디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하라는 대로 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한 탓에, 자신만의 고유한 삶에서 멀어지며 인간성을 상실하고 몰락한다. 주인공은 소설의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어둠 속에 계속 머물러 있었기에, 자신의 두 발로 빛을 찾아 걸어 나오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듯 엘리슨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이고’ ‘보이지 않는지’ 탐구하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며 사는 인간은 결국 온전한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인간다움과 정체성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엘리슨은 무력한 개인만을 탓하지 않으며, 사회가 소외된 인간들을 무수히 더욱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도 함께 성찰한다. 엘리슨은 이 철학적 문제를 미국 사회의 구체적인 인종 현실과 결합해, 개인의 정체성 상실과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두 축을 통해 20세기 사회의 잔혹성을 다층적으로 비판하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투명한 존재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이지 않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인간》이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히 과거 미국의 인종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이 소설이 국경과 사회를 넘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존재론적 불안과 사회적 소외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리슨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작품 내에서 등장인물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밝히지 않는다. 이는 피부색이 삶의 중요한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개인이 지닌 고유한 인간성을 구별하는 기준은 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읽힌다. 사회는 거대한 체제로 개인성을 말살하지만, 자신이 ‘보이지 않음’을 자각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가?” 《보이지 않는 인간》은 단지 한 시대의 사회 비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