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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손에 대한 이야기
미지의 사람 하느님은 왜 가난한 사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가 러시아에 어떻게 배신이 찾아왔는가 티모페이 노인은 어떻게 하여 노래하며 세상을 떠났나 정의의 노래 베네치아의 유대인 거리에 있었던 정경 돌에 귀 기울이는 사람 골무가 하느님이 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필자 불명의 추기 절실한 필요에서 생긴 협회 거지와 자존심이 센 소녀 어둠에게 들려준 이야기 작품 해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보 |
Rainer Maria R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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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은 서로 앞을 다투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잘못했습니다. 인간에게 인내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그저 살고 싶어하기만 했습니다. 우리 둘은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 둘에게는 결코 죄가 없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정말로 노했습니다. 하느님은 두 손을 뿌리쳤습니다. 두 손이 앞을 가리고 있어서 지상을 내려다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들과는 이제 그만이다. 너희들 마음대로 하거라.’ 그때부터 두 손은 자기들끼리 해보려 했습니다만, 무엇을 해도 시작만 하고 끝났습니다. 하느님 없이 완성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두 손은 마침내 지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온종일 무릎 꿇고 참회를 하고 있답니다. --- p.16 내가 갖가지의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은 것은 무척 오래전의 일이고 그 후로 나는 과히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기억해야만 했기 때문에, 혹시 여기저기에서 틀릴지도 모릅니다. 인생에는 그러한 일이 곧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인생에 대해서도 나의 이야기에서 자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 p.22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잠시 후에 나는 계속했다. “다른 많은 것도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하느님이 내려주었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어떠한 옷이나 음식도, 어떠한 덕성이나 죄악도 사용하기 전에 하느님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 p.42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 집 밖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고도 그것을 모르고,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데려옵니다. 죽음은 실로 게으름뱅이니까요. 사람이 노상 죽음을 집적거리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죽음은 잠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 p.63 아브라함 노인처럼, 합장한 손에 기적의 구현자인 성 니콜라우스의 초상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간곡히 유언한 사람이 죽으면 역시 성상화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노인은 천국에 있는 많은 성자들과 자기가 가진 성상화를 맞추어 보아서, 자기가 평소에 특히 숭배하던 분이 어디에 계신가를 제일 먼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 p.68 ‘이제 이 세상에 정의는 없다. 정의, 아, 정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제 이 세상에 정의는 없다. 정의는 모두 부정의 법률에 굴복해버렸는가. 가엾어라, 지금 정의는 감옥에 묶이고, 우리가 본 것은 곳곳에서 정의를 비웃는 부정의 모습. 부정은 영주들과 한패가 되어 황금 의자에서 뻐기고 있다. 황금 방에서 영주들과 함께 뻐기고 있다. (…) 오, 정의여. 그리운 어머니여. 독수리와 같은 날개를 되찾으라. 희망을 잃지 말라.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가 당장에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하느님, 힘을 주소서. 하느님만이 가지신 힘으로 올바른 사람의 나날을 고난 없게 하소서. --- pp.73-74 하느님은 기우뚱하게 앞으로 몸을 굽혀서 창조하는 사나이의 모습을 찾아냈습니다. 그러고는 돌을 더듬으며 무엇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두 손을 그의 어깨 너머로 한참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돌에도 역시 영혼이 있는 것일까? 왜 저 사나이는 돌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 p.91 그는 무릎을 꿇고 몸을 움츠려서 주위의 벽이 하는 대로 내맡겼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겸허한 마음이 솟아나고, 어떻게 하든 작아지고 싶다는 욕망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미켈란젤로, 네 속에 있는 것은 누구인가?’ 비좁은 방에 웅크리고 있던 사나이는 이마를 무겁게 두 손 안에 묻으며 나직이 대답했습니다. ‘하느님, 다름 아닌 당신입니다.’ 그때 하느님의 주위가 금세 넓게 퍼졌습니다. 하느님은 이탈리아 위에 엎드리고 있던 얼굴을 이제 마음껏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외투를 입고 법관을 쓴 성자들이 서 있습니다. 천사들은 목말라 허덕이는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마치 반짝이는 맑은 물을 가득 담은 병을 나르듯이 잇달아 노래를 주고 갑니다. 보이느니 하늘은 끝이 없습니다.” --- p.95 그런데 내 생각에 부모가 우리를 내버려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만약에 부모들이 일반적으로 바보가 된다는 증거, 아니 퇴보한다는 증거만 없다면 우리는 참을 수도 있을 거야. 어른들의 몰락을 우리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어. 우리는 하루 종일 어른들에게 감화를 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면 함께 앉아서 차분하게 이치에 닿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온 집안 사람이 램프 불을 켜고 앉아 있 어도 정말 애처롭기만 하고, 어머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조차 알지 못해. 대체로 그런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거야……. --- p.99 어른들은 아마도 멍청하게 있거나 일에 쫓기며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하느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해. 그러나 하느님은 절대로 필요한 거야. 하느님이 없으면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가 없어. 해도 뜨지 않고, 아기도 태어날 수 없고, 빵도 없어질 거야. 빵은 빵집에서 굽는다지만, 하느님이 앉아서 커다란 맷돌을 돌려서 밀가루를 만드는 거야. 왜 하느님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라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어. 그러나 어른들이 하느님을 문제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해. 그러므로 우리 어린이들이 대신 하지 않으면 안 돼. --- p.100 ‘그 무렵에 하느님이 제 몸속에 깃들어 있었다면, 저는 하느님을 밀쳐내야만 했겠지요. 그러나 하느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완전히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피렌체에서 비로소 제가 난생처음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동시에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을 배웠을 때, 그때 저는 다시 하느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느님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그림에서 하느님의 미소의 그림자를 알아보았고, 소리에는 하느님의 목소리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각에는 하느님의 손이 새긴 흔적이 있었습니다.’ --- pp.154-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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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문학의 거장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박하고도 따뜻한 교훈을 주는 동화 같은 소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20세기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 잡기 이전,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초기 산문집이다. 특히 릴케가 청년 시절 러시아를 여행하며 새로이 깨달은 시인으로서의 철학과 심상이 담겨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는 열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졌으며, 화자가 아이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열세 가지 ‘하느님의 이야기’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곤조곤 전달하는 형식을 띤다. 각 단편 속 문장은 동화처럼 단순하고 맑으며, 사건은 크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제목에 ‘하느님’이 들어가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지만, 릴케는 엄숙한 교리나 신학적 논증을 설파하려고 이 작품을 집필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릴케는 인간의 삶 가까이에 머무는 하느님과 그 뜻에 따라 순수하게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이야기한다. 하느님은 멀리 떨어진 절대자가 아니라, 일상의 고통과 침묵 속에서 언제나 함께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곁을 조용히 보살피는 존재로 등장한다. 독자는 소설의 완성도를 판단하기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되고, 그들을 겉으로만 이해하는 대신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독자 스스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드는, 가장 릴케다운 방식이다. 릴케의 문학이 종교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설교로 흐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시아와의 만남으로 피어난 순수한 정신의 세계 갓 자립한 릴케 초기의 문학을 만나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는 릴케가 독일어 문학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기 이전, 그만의 문학관과 가치관이 막 형성되던 시기에 탄생한 중요한 초기 작품이다. 릴케는 1894년 첫 시집을 출간한 이후 기존 작가들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던 중, 1899년과 1900년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를 여행하며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이 여정에서 고향인 보헤미아와 전혀 다른 자연, 소박한 농민들의 삶, 정교회 전통이 만들어내는 신비롭고 엄숙한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러시아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를 직접 만나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릴케에게 러시아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사유하던 신(神)을 일상에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릴케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순수한 정신을 탐구하는 시인으로 자립하게 된다.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에는 릴케가 러시아에서 받은 영적 울림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작품 전반에는 영험하고 신비롭고 엄숙한 기운과,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존재들의 순수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공존한다. 이 단편선은 릴케 문학의 출발점이자, 그가 어떤 세계를 바라보고 어떤 질문을 품은 채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를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검소하고 겸허한 삶, 진실하고 순수한 인간의 삶을 위해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물론 러시아의 이반 뇌제처럼 절대 권력을 누리는 황제나 미켈란젤로처럼 유명한 천재도 이야기의 주인공을 하나씩 차지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검소하고 겸허한 가치관을 향해 흐른다. 게다가 “인간은 가난해야 하는 거”라고 하느님이 생각했다는 이야기(35쪽)를 통해 이상적인 삶은 바로 가난한 삶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릴케에게 가난은 물질의 부족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거짓과 욕심을 덜어낸 가장 순수한 삶의 형태에 가깝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비록 사회적으로는 낮은 위치에 있지만, 삶의 본질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정직하고 충만하다.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들도 결국 자신에게 불필요한 허영을 깨닫고 가장 진실한 본연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여기에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곁에 있다’라는 릴케 특유의 종교관을 따라, 하느님은 인물들의 삶 도처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야기 속 인물들이 참된 삶의 자세를 깨닫도록 넌지시 이끈다. 릴케는 이렇듯 신성과 진리를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일상 속에 녹아들도록 만들어, 언제 어디서나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진실된 삶을 살 것을 촉구한다. 릴케가 던지는 질문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닿는다. 릴케는 인간의 부유한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더 진실하게 살아가고, 어떻게 성숙한 마음으로 세계를 받아들일 것인지 묻는다. 빠르고 소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릴케의 문장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그의 언어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순수하지만 뻔하지 않다. 진실을 추구하는 릴케의 문인적 시선과 태도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어떻게 순수하고 성숙한 삶을 이어갈지 재고하기를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