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개정판
가격
10,000
10 9,000
YES포인트?
5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이 상품의 태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1부
2부
편자가 독자에게

작품 해설
옮긴이의 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연보

저자 소개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관심작가 알림신청
 

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다른 상품

193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1953년 [문예]에 시 「소녀상」이 추천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작품으로는 시집 『너와 나의 목숨을 위하여』가 있고, 옮긴 작품으로는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릴케 『말테의 수기』, 『어느 시인의 고백』, 『릴케 시집』, 헤세 『데미안』, 『게르트루트』,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시집』,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 『삶과 죽음의 번뇌』, 레마르크 『개선문』 등이 있다.

송영택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40*210*20mm
ISBN13
9788931025750

책 속으로

벗이여, 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운명이 우리 앞에 던져주는 하찮은 불행에 대해 전처럼 구질구질하게 번민하지 않을 작정이네. 현재를 즐길 셈이네. 과거는 다만 과거일 뿐. 확실히 자네가 말한 대로라네.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만일 인간이 이렇듯 알뜰하게 상상력의 날개를 펴서 지나간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는 따위의 짓을 하지 않고, 해롭지도 이롭지도 않은 현재를 찾아다니면, 이 세상의 괴로움은 틀림없이 줄어들 거네.
--- p.12

인생이란 한갓 꿈에 불과하다는 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일이지만, 이 기분은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지지 않아. 인간이 활동하고 탐구하는 힘은 어떤 한계 속에 갇혀 있지.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온갖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거고, 욕구란 우리들의 가엾은 생존을 연장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네. 또 연구가 어느 정도 완성에 이르렀을 때 그걸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는 것 역시 망상적인 체념에 지나지 않지. 결국은 갇혀서 사는 감옥의 네 벽에 가지각색의 모습과 밝은 풍경을 그리는 것과 같은 거야. 이런 걸 생각하면, 빌헬름이여, 내게는 이제 쏟아놓을 말이 없네. 나는 다시 나 자신 속으로 되돌아와 거기서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네. 그렇지만 그 세계는 명확한 표현이나 생생한 힘을 지닌 세계가 아니라 예감과 몽롱한 소망 속에 나타나는 거야. 여기서는 모든 것이 우리의 감각 앞에 어리고, 그리하여 나는 꿈꾸듯이 멀리 이 세계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네.
--- pp.20-21

“그녀를 만나자!”
아침에 일어나서 화사하고 아름다운 태양을 우러러보며 나는 소리친다네.
“그녀를 만나자!”
그러고 나면 나는 온종일 그거 말고는 아무런 소망도 갖지 않는단 말일세. 모든 게 단 하나의 소망 속에 삼켜지고 말지.
--- pp.61-62

“정신적으로 절박한 인간을 잘 살펴보십시오. 온갖 인상이 그 사람 안에서 작용하고 관념이 고정되어 끝내는 점점 높아지는 불안감 때문에 평정한 사고력을 모조리 빼앗기고 마침내는 파멸합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인간이 이러한 불행한 사람의 상태를 검토해보았자 소용없습니다. 훈계해보아도 마찬가지죠. 이것은 건강한 인간이 병자의 머리맡에 서 있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한 조각도 나누어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 pp.75-76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게 동시에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는 사실, 이게 이 세상의 운명일까?
--- pp.79-80

어차피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와 또 자기들의 모든 것과 비교해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행불행이라는 것도 우리가 견주는 그 상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건 확실해. 따라서 고독만큼 위험한 건 없네. 우리들의 상상력은 부풀어오르려는 그 본성의 부추김에다 문학의 환상적인 이미지까지 덧입혀 많은 피조물을 만들어내고 쌓아나가지. 그중에서 우리는 제일 낮은 자이고 자기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지 훌륭하게 보이며 타인은 모두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네.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
--- p.98

정신을 놓고 멍청하게 있는 이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여 만일 당신이 보신다면……. 감각은 말라버리고 한순간의 만족도 없고 한순간의 행복도 없습니다. 공허! 오직 공허뿐! 마치 만화경(萬華鏡) 앞에 서서 눈앞에 작은 인간이며 작은 말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착각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 기분입니다. 때때로 이웃 사람의 나무로 된 손을 잡아보고는 깜짝 놀라서 물러납니다. 밤에는 해돋이를 보려고 마음먹지만 아침이 되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한 낮에는 달빛을 즐기려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저녁이 되면 방에서 나가지도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무엇 때문에 자는지, 나 자신도 잘 모릅니다.
--- pp.104-105

게다가 또 공작은 나의 지성과 재능을 나의 감정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러나 감정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자랑으로서 이것만이 모든 것의 근원이네. 힘도 행복도 불행도 모두 여기서 솟아나지. 아아, 내가 알고 있는 것쯤은 누구라도 다 알 수가 있네 - 그러나 감정만은 나 혼자의 것이네.
--- p.119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네. 바다처럼, 심연처럼, 그 검은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안에 나타나서 내 이마의 모든 감각을 채우지. 인간이란 무엇인가. 반신9半神)으로 칭송받는 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이르러 그 힘을 잃고 마는 것이 아닌가? 기쁨에 춤추고 슬픔에 가라앉는 그 어느 경우에도 때를 맞는 바로 그때에 좌절하지 않는가. 널리 존재하는 무한자 속으로 녹아들기를 바라는 바로 그 순간에, 무겁고 냉철한 의식으로 다시 끌려 나오지 않는가?
--- p.150

그러나 가슴속의 불안은 그의 정신이 지니는 힘, 그 발랄한 원기, 그 명민한 통찰력을 좀먹어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인 듯 차츰 불행으로 그를 이끌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무례한 말이나 행동이 늘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알베르트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 p.154

출판사 리뷰

시대를 초월한 감성의 고전, 다시 만나다
독일 문학의 정수이자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점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표작!

“눈을 감으면 그 사람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네.
바다처럼, 심연처럼, 그 검은 눈동자는
내 앞에, 내 안에 나타나서 내 이마의 모든 감각을 채우지.”

개인의 감정을 문학적으로 승화한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점이자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괴테가 스물다섯 살 때 쓴 작품으로, 샤를로테 부프에 대한 괴테 자신의 연애 체험이 주요한 소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괴테의 작품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체험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괴테 자신은 작품에서와 달리 자살하지 않고 이 작품을 완성하여 생활의 위기를 타개해나갔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괴테의 인간적이고 작가적인 성장의 발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성과 질서가 지배하던 계몽주의 시대를 넘어, 감정과 주체적 내면을 강조한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시작점이자 대표작이다. 괴테는 이 작품으로 문단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독일적 개성 해방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의 중심인물로서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했다. 괴테가 20대 중반에 쓴 이 작품에는 이미 범신론적인 감정과 선의가 넘치고 있다. 베르테르와 같은 성격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 과잉이며, 또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 시대사조를 그에 상응하는 문제를 가지고 문학적으로 드러내고 뿌리내리게 했다. 이 책이 출판되자, 일개 무명작가인 괴테가 일약 범유럽적인 작가로 이름을 얻게 될 만큼 널리 읽힌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이 괴테를 직접 방문하여 작품 이야기를 나누었고 프랑스어 번역판으로 이 책을 일곱 번이나 읽었으며 이집트 원정 때에도 이 책을 휴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베르테르 효과’
전 유럽을 들끓게 한 문화사적 파급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출간과 동시에 유럽 전역을 뒤흔들며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겪는 열정적 사랑과 내면의 고뇌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문학사에서 개인의 감정을 중심으로 한 심리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주인공의 고통과 감정을 1인칭 서간체로 섬세하게 풀어낸 구성은 현대 심리 소설의 원형이라 할 수 있으며, 후대 문학에서 인물의 내면 탐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작품 출간 이후 유럽 전역에서 주인공 베르테르를 모방한 패션과 행동이 유행하며, 심지어 자살 모방 현상까지 발생했던 ‘베르테르 효과’는 문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연애소설을 넘어선 시대의 문제작
인간 본연의 감정을 되살리라는 괴테의 외침


연애소설로 너무도 유명한 이 소설은 베르테르의 서간 및 자필 쪽지와 그의 사연을 잘 아는 사람들의 보고를 모아 제공하는 형식을 취했다. 작품의 서두에 쓴 짧은 문장과, 〈편자가 독자에게〉라는 부분에 나타나 있다. 편자는 베르테르의 정신과 성격에 찬탄과 사랑을, 그의 운명에는 눈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단지 하나의 행위도 보통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날 경우에는, 그 진정한 동기를 발견하기가 극히 어렵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형식과 시각에 이미 암시되어 있듯, 주인공 베르테르의 사상, 감정과 운명은 그 자체로 극히 주관적이며 작자 괴테가 매우 객관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젊은 괴테의 기본적 구상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깊고 순수한 감정과 진정한 통찰력을 가졌음에도 열광적인 몽상에 마음을 빼앗겨, 사변에 빠진 나머지 점차 의기소침해지고, 마지막에는 불행한 정열, 특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착란을 일으켜, 머리에 권총을 쏘아버린’ 한 청년의 자아 붕괴의 역사였다. 단지 문제는,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청년이 왜 이러한 능력에 근거해 뜻있는 생을 보내지 못했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당시 독일 사회 제도가 시민 계급 출신의 청년들에게 아직 활동의 장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을 종종 절망으로 몰아세웠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같은 시민 출신인 알베르트가 유능한 관리로 활약하고 로테도 최후에는 베르테르의 정열을 거부한 것을 생각한다면, 베르테르의 성격 내지 사고방식 그 자체에 자살의 궁극적 원인이 잠재했다고 볼 수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통증을 그린
청춘의 초상과 감정의 보편성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대부분의 사람이 일생에 한 번은 겪는 청춘기의 위기를 심리적으로 깊이 파헤쳐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괴테 개인이나 그 시대를 초월한 전형으로서 의미가 있다. 250년이 지난 지금도, 베르테르가 겪는 혼란, 좌절, 절실한 사랑은 여전히 현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 특히 감정이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베르테르의 진정성 있는 고백은 위로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삶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 한계를 보여주며, 정체성의 모색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던진다. 이 작품은 지금도 많은 청춘이 겪는 사랑, 상실, 성장의 통증을 가장 날 것 그대로,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다. 문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서로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9,000
1 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