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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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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말테의 수기

9월 11일, 툴리에 가에서 9
비블리오테크 내셔널에서 49

도슨트 변지영과 함께 읽는 『말테의 수기』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7

얼굴과 얼굴 없음 • 11
소멸의 공포 • 13
텅 빈 종잇장처럼 • 18
물려받은 얼굴들 • 24
환상과 치유 • 31
살로메, 그리고 클라라 • 39
떠나기 위해 돌아온 집 • 45

저자 소개 3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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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er Maria Rilke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등 문학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10대 초반이던 발튀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으며, 이후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부친은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퇴역하여 철도회사에 근무하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양친은 성격의 차이로 해서 릴케가 9세 때 헤어지고 말았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
20세기의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등 문학사에 남을 걸작을 내놓았다. 10대 초반이던 발튀스의 재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으며, 이후로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75년 프라하에서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다. 부친은 군인이었으나 병으로 퇴역하여 철도회사에 근무하였다. 릴케의 어머니는 릴케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르네Rene라 짓고,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 양친은 성격의 차이로 해서 릴케가 9세 때 헤어지고 말았다. 열한 살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로베르트 무질의 첫 장편『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의 배경이 되는 육군고등사관학교로 옮기나 결국 자퇴한다. 1895년 프라하대학에 입학하고서 1896년 뮌헨으로 대학을 옮기는데, 뮌헨에서 릴케는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평생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독일식 이름인 라이너로 바꿔 필명으로 사용한다. 1901년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만나 결혼한다. 그녀가 로댕의 제자였으므로 그 자신도 로댕을 만나게 되어 예술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2년 파리에서 로댕을 만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는다. 클라라와 헤어진 릴케는 로마에 머무르며『말테의 수기』를 완성하였으며, 이후 1911년에 마리 폰 투른 운트 탁시스-호엔로에 후작 부인의 호의로 두이노 성에서 겨울을 보낸다. 이곳에서 바로 전 세계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 릴케 만년의 대작이며 10년이 걸려 완성할『두이노 비가』의 집필을 시작한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릴케는 스위스의 뮈조트 성에 머무는데, 이곳에서 그는 폴 발레리 등과 교유하며 여생을 보낸다. 발레리의 작품을 독어로 번역하고 또 직접 프랑스어로 시를 쓰던 시인은 1926년 백혈병으로 스위스의 발몽 요양소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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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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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조절초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내 감정을 읽는 시간』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때론 혼란한 마음』 등이 있으며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는 대만에서도 출간되었다. 현재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증진과 자기조절 역량 강화를 위한 심리교육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조절초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내 감정을 읽는 시간』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때론 혼란한 마음』 등이 있으며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는 대만에서도 출간되었다. 현재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증진과 자기조절 역량 강화를 위한 심리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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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幸淑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서강대, 명지전문대, 한국교원대, 충북대, 중앙대 등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강대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 독일문화사 강의를 하면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타이타닉의 침몰》, 《디지털 보헤미안》, 《거대한 도박》, 《의사결정의 함정》, 《레아》, 《은하수를 여행했던 천재들의 역사》, 《신의 반지》, 《여름의 마지막 장미》, 《헤겔의 미학강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서강대, 명지전문대, 한국교원대, 충북대, 중앙대 등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강대에서 독일어와 독일문학, 독일문화사 강의를 하면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타이타닉의 침몰》, 《디지털 보헤미안》, 《거대한 도박》, 《의사결정의 함정》, 《레아》, 《은하수를 여행했던 천재들의 역사》, 《신의 반지》, 《여름의 마지막 장미》, 《헤겔의 미학강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레스테이아》, 《스마트한 선택들》, 《데미안》,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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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135*210*17mm
ISBN13
9791194513513

책 속으로

(…) 엄청나게 빠르게 자신들의 얼굴을 하나씩 붙였다 뗐다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의 얼굴을 영원히 유지할 거라고 믿지만 나이가 사십쯤 되면 그 얼굴은 최후의 것으로 되어 버린다. 물론 그들에게는 비극적인 일이다. 그들은 얼굴을 소중히 여길 줄을 모르기 때문에 한 주일만 지나고 나면 누더기가 되고 만다. 구멍이 생기고 여기저기 종잇장처럼 얇아지면서 이윽고 점점 밑쪽 살이 드러난다. 그러면 그것은 얼굴도 뭣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 p.13

나 브리게는 이미 스물여덟 살이 되었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 혼자 앉아 있는 나는 완전히 무명의 존재이다. 그런데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무엇을 사고해 보려고 시작하고 있다. 낡은 집의 오 층 하숙방에서, 파리의 잿빛 오후의 하늘 아래서 생각을 이어 가고 있다.
--- p.31

많은 글을 썼더라면 좋았을걸. 내겐 온갖 시상과 많은 것에 대한 추억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생활은 그와 반대였다. 왜 그랬는지는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내 낡은 가구들은 어느 헛간 속에 던져져서 썩어 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나 자신은, 맙소사, 어디에도 나 자신을 거둘 지붕조차 없다.
--- p.56

나는 오 층 방의 내 침대에 누워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하루는 바늘 없는 시계의 문자판과 같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물건이 어느 날 아침 처음 있던 그 자리에 불쑥 놓여 있는 것과 같다. 망가지지도 않았고 괜찮다. 오히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처럼,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새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아이일 적에 잃어버렸던 것이 내 침대의 담요 위에 놓여 있다. 마치 새것 같다. 그리고 사라졌던 온갖 불안도 되돌아왔다.
--- p.80

내 손은 지금껏 내가 가르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바닥을 훑어 내려가면서 전에는 내가 본 적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손이 앞으로 나아가면 그대로 따라갔다. 나는 흥미가 생겼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때, 벽에서 갑자기 다른 손이 나타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전에 본 적 없는, 내 손보다 크고 유난히 얇은 손이었다. 그 손은 반대쪽에서 내 손과 비슷한 방식으로 더듬어 왔으므로, 각자 뻗은 두 손은 서로를 향해 무작정 움직였다. 내 호기심은 제대로 살아나기도 전에 끝났고 갑자기 공포감이 들었다.
--- p.113

그러나 나는 이미 그전에도 공포를 느낀 적이 있다. 내가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였다. 그 개는 제 죽음이 나 때문이라고 원망할 것이다. 개는 중병을 앓고 있었다. 내가 온종일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개가 짧게 짖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방에 들어왔을 때 늘 하던 대로 그렇게 짖는 것이었다. 그런 경우 개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내게 알리곤 했다. 나는 무심코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죽음’은 이미 개의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개의 눈을 살펴보았고, 개도 내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개는 작별 인사를 하려는 것 같지 않았고 나를 무정하고 낯선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개가 늘 나를 과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분명히 알았다. 개에게 사정을 이야기해 줄 시간도 없었다. 개는 낯설고 쓸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죽어 갔다.

--- p.191

출판사 리뷰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길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세계가 단지 밈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단지 하나의 문일 뿐이다. 독자는, 도슨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 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아홉 번째 권으로 출간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서 도슨트 변지영은 임상심리학 박사라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얼굴’이라는 키워드로써 타인의 시선과 기대 속에서 끊임없이 해석되고 규정되며,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을 피할 수 없었던 인물의 심리를 파헤쳐 나간다. 세상에 드러나는 가장 쉬운 평가 대상인 얼굴은 나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자주 노출되며, 타인의 반응에 따른 변화를 그대로 보여 주는 신체 부위인데, 경험과 상상, 실제와 허구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소설에는 ‘얼굴’이라는 단어가 144번이나 등장한다. 과연 릴케에게, 그리고 말테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였을까?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케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케 한다. 문학이라는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왜소해질 것이다. 문학의 세계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완충지대가 될 뿐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만의 특별한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종종 난관에 빠뜨린다. 그리하여 작품은 표면적으로만 이해되거나 읽기가 애초에 포기되기도 한다. 이에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이 기획되었다.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는다면, 그리하여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든다면,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날 것일 터이므로.

종종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으로 취급되지만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다르다.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가 있다. 문학 고전을 처음 읽는 독자들, 자신만의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을 위한 중요한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표지를 앞표지처럼 구성하여 해설을 첫 페이지처럼 읽게 했다. 문학과 맞물린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말테를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

삶의 요소들이 전적으로 이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은 늘 불충분하고 결단은 항상 불확실하며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해설 10쪽)

1900년대 초반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회 구조의 변화, 가족 구조의 해체, 개인의 정체성 위기 등을 초래했다. 릴케는 대도시의 익명성에서 경험했던 소외, 고독, 파편화를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 매끄럽게 연결된 이야기 구조가 아닌, 여러 개의 파편과도 같은 글들을 이어 붙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포와 열망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한 겹 한 겹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들, 열망들을 붙여 나간다. 이 조각들은 저마다 특성도, 길이와 구조도, 문체도 다르지만, 단편적인 조각들을 다 읽고 나면 놀랍게도 하나의 완성된 모자이크 작품으로 느껴진다. 한 조각 한 조각이 맞물려 서로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전개된다. 첫 번째 차원은 말테가 파리에서 겪는 현재의 경험, 두 번째 차원은 덴마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리고 세 번째 차원은 역사적 사건과 예술가들에 대한 말테의 사유와 상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세 차원은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그 관계와 의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계속 변화하는 어조는 서사적 안정감을 의도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독자는 읽는 내내 미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고립과 불안, 자아 해체라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자기 변혁의 과정으로 바꾸어 내다!


릴케는 자기와 타인, 내면과 세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자아가 해체되는 상태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이 상태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분열형 인격 장애나 조현병 증상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치료가 필요한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러나 릴케는 그 경험을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한 자기 변혁의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 과정을 기록한 것이 『말테의 수기』인 것이다.

주인공 말테에게 내면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낯선 세계이며, 외부의 것들이 거침없이 침투해 와 흔들리는 공간이다. 자기와 타인의 경계, 바깥세상과의 구분이 종종 희미해지는 이러한 경험은 주인공 '말테'의 불안과 혼란을 더욱 심화시킨다.

나는 몸이 화끈거리고 화가 치밀어 거울 앞으로 달려가 가면을 통해 내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거울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이제 복수할 시간이 찾아왔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져서 어떻게든 내가 변장하려고 몸에 걸친 것들을 벗으려 애썼다. 그러나 거울은 어찌 된 셈인지 나로 하여금 억지로 얼굴을 쳐들어 거울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영상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대하고 낯설고 끔찍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데도 내 의지와는 반대로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현실이었다. 이제 그것은 더욱 심해졌고 나는 거울이 되었다. 내 앞에 있는 미지의 존재를 응시하면서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이 괴이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순간 최악의 일이 벌어졌다. (본문 127쪽)

어린 시절, 말테는 방에서 몰래 다양한 의상을 입고 가면을 써 보며 변장하던 중에 거울을 보다가 의상과 가면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다. 벗어 던지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그것들을 떼어 낼 수 없어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외친다. 타인과 관계 맺을 때, 말테는 자신이 타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반응하면 결국 그들의 얼굴과 닮아 가며 자아를 잃어버릴 것 같은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얼굴은 자아를 상징하며, 얼굴이 덮이거나 대체되는 것은 자아의 소멸을 의미한다.

릴케는 자신의 공포와 혼란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층 성숙한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릴케가 평생 분열과 혼란 속에서 살아가며, 현실에서 온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지기 어려웠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통제하려 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우울했던 그녀는 아들의 감정이나 내면에는 무관심했으며, 이러한 관계는 릴케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 주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내적 갈등과 고립감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립과 자아 해체의 불안 속에서, 그러나 릴케는 하나의 전체, 즉 전일성에 헌신했다. 그는 하나의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여럿으로 나누어 보았고, 전체를 이루기 위해 파편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모든 불일치와 거짓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소설을 쓰면서 릴케는 평생 동안 자신을 이끌었던 질문, “인간 세계의 유한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의식은 과연 형이상학적 전일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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