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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서론 ― 저급 이론 1장. 반란을 극화하기, 반란의 애니메이션 2장. 야, 내 팔루스 봤냐? ― 잊기, 잃기, 반복하기 3장. 실패의 퀴어 예술 4장. 그림자 페미니즘 ― 퀴어 부정성과 급진적 수동성 5장. ‘내 안의 킬러는 네 안의 킬러’ ― 동성애와 파시즘 6장. 실패에 생기를 불어넣기 ― 끝내기, 도망가기, 살아남기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
Jack Halberst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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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보상을 해줄까? 아마도 가장 분명한 건, 제멋대로인 어린 시절에서 정숙하고 평범한 성인으로 이끈다는 목표 아래 행동을 규율하고 인간의 발달을 관리하는 처벌 규범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일 테다. 실패는 경이로운 무정부 상태를 일정 부분 보존하고, 성인과 아동, 승자와 패자 사이의 뚜렷하다고 여겨지는 경계를 흐린다.
--- p.18~19 페미니즘의 측면에서 보면 실패는 종종 성공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 여성의 성공이 항상 남성적 기준으로 재단되고 젠더적 실패가 종종 가부장적 이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할 때, 여성 되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바로 이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해왔다. --- p.21 진지하게 여겨지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이미 증명된 지식 생산의 길을 답습하도록 강요하는 힘이다. 나는 그런 지식 생산의 길 주변에 몇 가지 우회로를 그려보려 한다. 진지함이나 엄밀함 같은 용어는 학계에서든 다른 상황에서든 학문적 올바름을 뜻하는 암어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용어들은 지식에 관한 승인된 방법론에 따라 이미 알려진 것을 공식화하는 훈련 및 학습의 한 형태를 나타내지만, 시각적 통찰이나 분방한 상상력은 감안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든 간에 훈련은 벤야민식의 지식 접근법, 즉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을 따라 “틀린” 방향으로 걸어가기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명확히 밝혀진 영역에 머물러 있겠다는 뜻이며, 출발하기도 전에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 p.25 프레드 모튼과 스테파노 하니는 (…) 「대학과 지하공동체: 일곱 가지 테제」에서 (…) 비판적 지식인, 학자, 그리고 ‘비판적 학계 전문가들’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모튼과 하니에게 비판적 학계는 침략적인 전문화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동일한 도구와 적법화 전략을 사용해 그것을 연장시켜 ‘전문 교육의 동맹’이 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 그러면 대학의 지하공동체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시험 성적과 평가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는 일련의 지적 실천을 통해 탈주하는 지식인들로 구성된 비전문가 집단을 구성하고자 한다. 이 비전문가화의 목표는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튼과 하니는 탈주하는 지식인을 이것의 제거와 폐기, 저것의 건립과 재건립에 반대하는 존재로 설정한다. 그것은 “교도소의 폐기보다는 교도소나 노예제, 임금제를 가질 수 있는 사회의 폐기, 그러므로 뭔가를 제거하기 위한 폐기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건립하기 위한 폐기다.” --- p.29~30 저급 이론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왜 그것을 고급 이론의 타자로 위치시키는 이분법을 뒤엎는 대신 승인하는 듯 보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저급 이론은, 이론이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향하는 우회로”라는 스튜어트 홀의 유명한 개념에서 내가 추출해낸 사고 모형이다. 다시금 우리는 길 찾기보다 길 잃기의 유용성을 생각해볼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벤야민식 산책 혹은 상황주의자들의 표류derive처럼 계획되지 않고 기대되지 않은, 즉흥적인 도보 여행을 고안해내야 한다. --- p.44 실패가 떠올리게 하는 부정성의 어두운 심연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해, 애니메이션에서 탐구되는 행복하고 생산적인 실패로, 그다음에 무용함, 불모성, 공허함, 상실, 일반적인 부정적 정동, 자발적 퇴행의 양태 등과 연관되는 실패의 더 어두운 영역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따라서 책의 전반부는 실패의 의미를 이 세계에서의 한 가지 존재 방식으로 제시하며, 후반부는 실패가 비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비존재와 자발적 퇴행의 양태가 지식과 관계를 달리 맺을 가능성을 제안한다는 사실에 대해 논한다. --- p.59 관객이 많이 드는 성인 대상의 주류 영화들 중에는 혁명적 활동이라는 위험한 영역을 건드릴 배짱이나 대담성을 지닌 경우가 거의 없다. (…) 숨어 있는 대안을 실제로 발견할 수 있는 영역은 애니메이션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대담한 주장일까? (…) 새로운 형태의 애니메이션과 오늘날 대안적 정치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벤야민이 애도했듯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애니메이션이 유토피아 기획을 지탱해낼 수 있을까? --- p.68 내가 여기서 다루는 새로운 형식의 애니메이션 등은 모두 인간과 동물, 기계, 삶과 죽음, 생동과 소생, 생활, 진화, 되기와 변형되기를 가르는 인위적 범주의 의미와 용어, 위치를 질문하고 또 바꿔놓는다. 또 그것들은 인간 예외주의를 거부하고, 인간을 다중적 존재 양태의 세계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 p.75 대안적 존재 방식에 관한 꿈은 종종 유토피아적 사고와 혼동된 다음, 근대 권력의 속성을 나이브하거나 단순하게 혹은 뻔하게 오해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다른 존재 방식, 다른 인식 양태, 정의와 불의가 다르게 배치되는 세계, 돈과 노동, 경쟁 대신 협력과 교역, 공유를 더 중시하는 존재 양태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은 모든 종류의 지식 프로젝트를 활성화하며, 이는 불필요하거나 나이브한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 p.112 멍청함은 일반적인 지식 형성만큼이나 깊이 젠더화되어 있다. 그래서 남성의 무지가 때로 남성적 매력의 일부로 여겨지는 반면 여성의 무지는 결핍을 나타내고, 그에 따라 어쨌거나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사회질서가 정당화된다. 사회는 여성의 멍청함을 처벌하는 한편으로 그것을 자연화하지만, 백인 남성의 멍청함은 용서할 뿐 아니라 잘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한다. 백인 남성성은 지배, 지혜, 거대서사와 가장 자주 연관되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나 소설에서 백인 남성 인물이 어리석거나 무지하게 그려지더라도 이내 그것은 취약함이라는 유리한 형태로 바뀌어 전반적으로는 그가 매력을 가진 것으로 반전된다. --- p.117~118 기억과 망각에 관해 다르게 생각해보고 싶다는 말은 사실상 우리가 진보와 성과를 표시하는 데 사용하곤 하는 불가피하고 유기체적인 듯 보이는 모델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일어난 적은 있는지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떻게 변화를 확인하고 알아차리는가? 변화가 모든 것을 끝장냈다거나(죽음) 변화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고(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음) 말하지 않고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게 가능할까? 옛것을 버리지 않고서 새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시간과 변혁의 여러 구조를 동시에 고수할 수 있을까? --- p.148~149 데리다는 「아카이브 열병」이라는 글에서 죽음충동을 망각과 연결하며 죽음충동이 “침묵 속에서 작동하고, 결코 그 아카이브를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망각이라는 무정부주의적 공간 혹은 죽음이라는 반(反)아카이브는 아카이브 열병을 추동하는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는 (말 그대로) 보수적 잠재력과 혁명적 잠재력을 모두 가진 기억에의 의지다. 아카이브 열병은 가장 전통적인 형태일 때 “근본악”에 가깝다. ---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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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루저와 약자들의 무기이자 비판의 한 양식이다!
21세기의 첫 10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는다. 노동자들은 부실담보대출로 집을 잃고, 중산층은 불량 상품에 투자한 대가로 퇴직금을 잃은 데 반해, 부자들은 엄청난 구제자금으로 자기 주머니를 넘치게 채울 수 있었고, 은행은 다른 사람 돈으로 게임을 하는 카지노 자본주의가 진면모를 드러냈다. 저자는 이제 실패를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루저의 수많은 역사, 이른바 자본주의의 그림자 역사가 모든 성공 이야기 뒤에 숨어 말없이 존재하며,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는 실패일 뿐이지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인가? 저자는 ‘약자들의 무기’라는 개념을 활용해 실패를 저항과 비판의 한 양식으로 개념화한다. 그는 실패가 반식민주의 투쟁, 젠더와 종 다양성, 인종 감수성과 생산적으로 연결될 때, 그리고 성공이 단지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드러낼 때 어떤 종류의 바람직한 정치적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탐구한다. 이를테면 소작농들의 저항이나 반식민주의 투쟁에서 게으름, 수동성, 무능력처럼 실패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지배 집단의 사업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훌륭한 전략이었다. 이기려 하지 않고, 소비문화에 매몰되지 않고, 재화 축적을 열망하지 않고, 지배적인 규율에 도전하는 것처럼, 실패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자본주의적 성공에 저항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실패를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면서 실패의 활기찬 내면을 발견해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성공에 관한 관습적인 이해 바깥에서 다른 존재 방식, 다른 앎의 방식을 탐구해보면 성공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불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4등을 차지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치킨 런〉의 진저, 〈꼬마 돼지 베이브〉의 베이브, 〈니모를 찾아서〉의 도리와 같은 만화 캐릭터들이 틀리고, 길을 잃고, 지는 것에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각자의 실패를 한데 모은다면 이들 애니메이션처럼 행복하고 생산적인 실패를 통해 승자를 충분히 끌어내릴 수도 있다. 실패는 다른 종류의 성공이 될 수 있다. ‘저급 이론’과 ‘실없는 아카이브’에서 새로운 존재 양식을 탐구하다! 성공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뒤집기 위해서는 기존의 앎의 아카이브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핼버스탬은 주장하며, 이를 위해 ‘저급 이론’을 제안한다. 저급 이론은 기이한 아카이브에서 파생된다. 저자는 이 저급 이론을 무기 삼아 독자들이 뒷골목으로, 음습한 지하실로, 저급한 이론의 창고로 도발적인 여행을 떠나보라고 하다. 북미의 이데올로기와 감성에 만연한 ‘성공’ 서사를 방해하기 위한 실패 이론. 핼버스탬은 급진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퀴어 사상의 복잡한 이론적 패러다임과 대중문화의 기이하고 때로는 암울한 유물 사이를 두루 살피며 실패의 의미를 탐구한다. 물론 이 여정에 죽은 백인 철학자들의 판테온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대신 애니메이션, 대중영화, 자연 다큐멘터리, 스포츠 사진, 소설, 아방가르드 퍼포먼스가 소개된다. 승자의 반열에서 비껴나 “영예의 뒷자리인 동시에 오명의 앞자리”를 차지한 4등 수영선수 사진, “미래는 없다”는 구절로 영국의 박탈당한 이들을 결집시키고자 한 섹스 피스톨스, 퀴어한 반란을 도모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 사춘기 남성을 위한 바보 같은 코미디, 밸러리 솔래너스의 반남성 선언문, 자발적 퇴행을 수행하고자 하는 오노 요코와 퀴어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안티 히어로와 반영웅이 세밀하게 분석된다. 인간중심주의에 반기를 든 퀴어한 사고방식과 존재들! 저자는 실패를 진정한 삶의 방식으로 주장하기 위해 인간성의 규범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생동감 넘치는 동물원, 피와 살을 가진 종의 동물원이 자본주의, 이성애적 질서, 친족 관계 구조에 기반한 인간의 세계를 우아하게 초월한다.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애니멀리티(동물성)/애니미즘이라는 3각축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상상, 생명과 비생명, 사물과 주체 사이의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핼버스탬이 ‘픽사반란’ 장르라고 부르는 이 어린이 영화들은 이기적 개인주의보다 집단적 협력을, 무분별한 소비보다 다양한 공동체를, 가족 친족보다 사회적 유대를 우선시함으로써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치 체제 모두에 위협이 되는 고도의 정치적인 기획으로 독해된다. 핼버스탬은 이 책에서 ‘퀴어’라는 단어를 결코 동성애에만 국한시키지 않는다. ‘퀴어’는 이성애 규범적 자본주의 사회에 비추어볼 때 ‘타자’로 간주될 수 있는 것, 혹은 주류에서 비켜난 ‘아웃사이더’의 관점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 또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이를테면 〈니모를 찾아서〉에서 도리는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고, 현재 시점에 망명해 있으며, 인지력이 짧고, 계속해서 맥락이 결여된 감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퀴어한 시간성 혹은 망각이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전승에 강력한 제동 장치로 작동한다. 욕망을 결부시키지 않은 채 목적 없이 여행을 하는 도리는 우리에게 보상이나 보수에 의한 동맹에 의존하지 않는 협력의 강력을 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치킨 런〉에서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닭 진저는 닭장 안의 자매들을 깨워 반란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그가 “자유로운 닭으로 죽든가, 자유로워지려 애쓰다가 죽든가 둘 중 하나다”라고 힘차게 연설할 때, ‘멍청한’ 닭 밥스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게 유일한 선택지인가?”(261쪽)라고 묻는다.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성공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다른 사고방식, ‘어리석음’, ‘유치함’이 저자가 제안하는 넓은 의미의 퀴어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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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경제가 붕괴하고, 국가가 휘청이며, 부정행위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핼버스탬은 (…) 성공의 횡포 바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 반직관적이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설득력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비평적 지평을 제한하는 수많은 장애물과 교착상태를 뚫고 나아간다.” - 호세 E. 무뇨스 (『크루징 유토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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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루저는 그들에 앞서 실패한 이들의 계승자다.’ 이 책은 거부, 부조리, 생동감 있는 존재에 관한 유쾌하고 매력적인 무법자 희극을 해당 예술가들 편에 서서 서술한다. (…) 어떤 예술가나 비평가도 지워진 역사나 손상을 복구할 수 없지만, 핼버스탬은 지성이 (그리고 만화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활용해 인습이라는 혹독한 작업에 대적한다.” - 로런 벌랜트 (『잔인한 낙관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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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하고, 도발적이며, 유쾌하다. 무엇보다 분과학문의 규율적 엄격함과 ‘고급 이론’의 가식을 능숙하게 적출해낸다. ‘실없는 아카이브’와 ‘저급 이론’에 대한 저자의 옹호는 저 혼자 진지한 학문을 축제적으로 꼬집는 작업을 넘어선다.” - 리사 두건 (『평등의 몰락』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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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화연구를 위한 선언문이다. 묵살되고 폐기될 위험을 무릅쓰면 서 대안적인 분석 대상, 인식 방법론, 소통 방식을 구한다. (…) 이 책이 다루는 재료들을 무명으로부터 밝혀내려 하기보다 잊히고 노후화된다는 것의 가치를 드높인다. 주요 작품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편하려 하기보다 마이너한 작품들을 당당하게 다룬다.” - 엘리자베스 프리먼 (『퀴어 시간성과 퀴어 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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