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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정의 서막: 자타 공인 최고의 바 챕터 원(Chapter One)과 시작 화가의 아들: 타고난 대로 살지 못하면 그것이 곧 비극이라 숙희(熟喜)와 기질 프루스트의 마들렌: 잊을 수 없는 파리 여행의 추억 뽐(Pomme)과 회상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은 없을까 요츠바(Yotsba)와 계보 배우면서 마시면 더 맛있는 법 미스터 사이몬(Mister Saimon)과 배움 주(主)님을 모시는 자와 (酒)님을 마시는 자 루바토(Rubato)와 신앙 골목길 탐방: 사실은 술보다도 사람 보러 가는 것 바람과 모험 고전의 무한한 변주: 매력 넘치는 클래식 칵테일 순례 칵테일 투어와 탐닉 감각의 향연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와 쾌락 정신의 닻줄을 내리며: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 시호(時好)와 고독 이런 술벗 한둘이면 인생은 충분해 기슭과 우정 Sip it, Don’t shoot it: 그때 우리가 처음으로 마셨던 술은 뭐였을까 더 팩토리(The Factory)와 성장 제가 이런 데 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바 인 하우스(Bar in House)와 환대 In Aqua Sanitas: 칵테일만큼이나 기억에 남은 물 한 잔 연남마실과 건강 프리다 칼로와 폭탄을 둘러싼 리본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와 운명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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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처음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무척이나 불쌍히 여겼다. 당시에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와 돌이켜 보니 나는 불운한 사건을 겪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결코 동정의 대상은 아니다. 정말로 위로를 받아야 할 이들은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아내 자신과 평생 엄마의 존재를 모르고 자라야 하는 내 딸, 그리고 장성한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분이다. 나는 무너진 담장 아래서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가끔 뒤돌아보며 눈물 흘릴 때도 있겠지만 이제 나에게는 텅 빈 마음 달래기 위해 찾아갈 곳이 있으니까.” 해녀들이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고 물질을 하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며 참았던 숨을 일시에 토해낼 때 고음의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를 ‘숨비소리’라 한다. 저자 역시 한동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잔잔하게 웃다가도 갑자기 발작하듯 울컥하며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자주 연락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번호를 연락처에서 지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나아가 다시 예전처럼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바텐더들 덕분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집 앞의 그 바에서 만났던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느닷없이 찾아가 뜬금없이 퍼붓는 질문 공세와 폭발하듯 내뱉는 불만과 짜증을 고스란히 감내해 주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 말라비틀어질 것 같은 그 순간에 주저 없이 찾아가 숨통 틔울 수 있는 저자만의 휴식처. 부디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그런 공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바든 아니든 어디든지 말이다. “가끔은 암이라는 존재를 처음 발견했던 그때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혹은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 아이를 갖자고 했던 나의 제안을 아내가 받아들였다면 지금 두 사람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을지 상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다는 더욱 아이러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바를 좋아하는 이유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들렀던 그곳을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지 여부다. 화려한 장식이나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음악처럼 자극적인 요소들은 몇 번만 경험하고 나면 금세 질린다. 그러나 바텐더와 주고받은 진심 어린 몇 마디는 얼핏 심심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인상에 선명하게 남는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라디오 채널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어야 선명한 소리가 나듯 대화의 결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다. 소통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감동이 뒤따르고 그것이 마음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맴돌다가 언젠가는 다시 찾아가게 된다. 어느 시대에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품격의 맛이 깊다면 내 눈앞의 술도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 서울 곳곳의 바를 그렇게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나 보다. 그래서 매일 밤 취한 채 모르는 동네의 골목골목을 쏘다니던 지난 4년간의 여정은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에게 있어서만큼은 집밖의 내편과 쉼터를 찾기 위해 기꺼이 자임한 즐거운 성지 순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