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땀으로 얼룩진 거울
김재옥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인물기록집 양장
조철현
라운더바우트 2024.06.01.
가격
25,000
10 22,500
YES포인트?
1,2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국내배송만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 표지 설명에 부쳐 … 8
프롤로그 / 갑진년 새해 … 17

1장 : 따꺼, 슈샨보이

외로운 섬 … 41
불안한 행복 … 57
출생별곡 … 79
절제된 주먹 … 97
태권, 직업이 되다 … 117
못다 한 이야기들 … 142

2장 : 야망시대

가화만사성(家和滿事成) … 163
재종공취이방장(財從公取利方長) … 187
언행일치(言行一致) … 211

3장 : 노블레스 오블리주

장학금 1억 쾌척 … 241
‘물 마시듯, 봉사’ … 263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 287
못다 한 이야기들 … 318

4장 : 민족혼과 뿌리 찾기 집념

음수사원(飮水思源) … 335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 … 351
언론에 비친 민족혼① … 369
언론에 비친 민족혼② … 379

에필로그 / 작가의 변 … 389

저자 소개 1

Cho Chul-hyeon

기록문학가 겸 다큐멘터리 PD. 대학을 마친 뒤 방송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발간하는 방송전문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PD로 변신해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세계 주요 국제도서전에서 대한민국을 주빈국으로 초대했던 행사의 영상기록팀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지역을 집중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인물기록집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를 출판했고(2017), 고려인 1세대 독거노인들을 위해 한국과 우즈벡 정부가 타슈켄트에 함께 설립한 《아리랑요양원
기록문학가 겸 다큐멘터리 PD. 대학을 마친 뒤 방송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발간하는 방송전문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PD로 변신해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세계 주요 국제도서전에서 대한민국을 주빈국으로 초대했던 행사의 영상기록팀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지역을 집중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인물기록집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를 출판했고(2017), 고려인 1세대 독거노인들을 위해 한국과 우즈벡 정부가 타슈켄트에 함께 설립한 《아리랑요양원 10년의 기록집》(2020)과 중앙아시아 파견 1세대 한글 교사의 30년 인물기록을 다룬 《허선행의 한글아리랑》(2022)을 펴냈다.

또 2024년에는 베트남공산당 총비서 《응우옌푸쫑》 인물기록집과 김재옥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인물기록집 《땀으로 얼룩진 거울》을 출판했고, 2025년에는 한-이집트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인물기록집을 출판했다. 2014년 출판 활성화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조철현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152*224*30mm
ISBN13
9791196576493

책 속으로

책은 인천역 광장에 버려진 그의 인생유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양부와의 유년기 시절을 거쳐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양부가 세상을 뜨자 다시 ‘진짜 고아’로 살아야 했던 소년기 시절과 청년기 시절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기술했다. 이어 운명처럼 만난 아내(박계숙)와의 사랑 속에서 난생 처음으로 따뜻한 가정을 이룬 과정과 (주)유공 소속의 유조차 운전기사를 거쳐 1990년대 초 자신의 사업을 일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여정을 톺아냈다. 또 수원시민으로 살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수원시장학재단에 장학금 1억 원을 쾌척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자세히 소개했으며, 자신의 뿌리 찾기 집념과 민족혼 고취를 위해 독립운동가 선양사업에 적극 뛰어든 그의 최근 모습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 pp.9~10 「들어가며 : 표지설명에 부쳐」중에서

“내가 마흔 넘어서 아주 우연한 기회로 갓난아기 때 젖을 물려준 남씨 아주머니란 분을 알게 됐지요. 인천에서 나를 데리고 덕적도로 들어간 김형숙 아버지 부부가 젖동냥을 구한 모양이에요. 마침 남씨 아주머니란 분이 애를 낳아 자기 자식한테 젖을 먹이고 있었는데 인심이 좋아 나도 같이 물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을 찾아갔지요. 그러니까 그게 덕적도를 떠난 지 30년도 더 됐을 때예요. 여차여차해서 찾아왔다고 하니까 단번에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큰절을 올렸어요. 거기서 내 나이를 거의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같이 젖을 물렸던 그 집 아들이 53년생이래요. 그러니까 내 출생연도도 53년이나 54년쯤 되었겠죠. 그래서 호적 나이는 55년, 실제 나이는 54년이다, 이렇게 생각하곤 환갑도 2014년에 그 계산으로 치렀고, 칠순도 2024년으로 잡자, 그렇게 마음먹게 됐죠. 아들보다도 내가 젖을 더 잘 먹었다는 얘기를 남씨 아주머니한테 듣다보니 얼마나 울컥하던지, 에휴.”
--- pp.41~42 「외로운 섬」중에서

재옥은 방학 내내 이발소 앞을 서성였다. 자기보다 서너 살은 더 먹었을 ‘따꺼’의 손놀림이 이제는 어느 정도 파악됐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이발소 풍경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대머리 ‘깎새 김씨’의 가위손이 풍금 치는 선생님의 손가락보다 더 멋졌다. 그 옆으로 나란히 앉은 넉 대의 다른 이발의자에서도 현란한 손기술이 펼쳐졌다. 이발소 한쪽 구석에서 따가운 햇살을 받아가며 열심히 구두를 닦는 ‘따꺼’의 호호 부는 입술도 친근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감캐’ 역시 비누 거품 놀이가 즐거운지 온종일 벙긋거렸다. 재옥은 무엇보다도 ‘따꺼’ 옆자리의 깡통에 관심이 컸다. 시간이 갈수록 5원 권 지폐가 수북이 쌓였다. 그리고 해거름녘 도장에 갈 때쯤엔 그 돈들이 정갈하게 포개져 고무줄로 묶이곤 했다. 화폐개혁(1962) 직후라 모든 지폐가 빳빳했다. 재옥은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면서 기회가 오면 반드시 ‘따꺼’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결심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그의 심장에서 요동쳤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따꺼’ 모습을 그대로 흉내 내며 작업화로 신는 아버지의 군화를 손질했다.
--- p.69 「불안한 행복」중에서

어느덧 그의 나이도 17세에 이르렀다. 유행가의 변화처럼 그사이 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이발소에서 목욕탕으로 이직했고, 삶의 공간도 하인천에서 주안으로 옮겨 왔다. 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년 늦게 야간중학교에 등록했고, 태권도장도 목욕탕 근처로 옮겨 와 사실상 양부와 지냈던 하인천 시대를 마감했다. 그 사이 주먹 또래들과 깍두기머리 형님들과 90도 꺾기로 인사하는 후배들이 많아졌다는 점도 큰 변화 중의 하나였다. 그의 이름 석 자는 이미 인천과 주안 지역은 물론 멀리 부평과 부천, 김포 뒷골목에서도 유명했다. 또 서너 살 위까지는 맞먹었고, 계보 있는 중간보스들과만 어울렸으며, 여러 계파에서는 나와바리가 없는 그를 영입하고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가 입빠르게 유명세를 탄 건 하인천 시절의 여러 무용담들 때문이었다.
--- pp.98~99 「절제된 주먹」중에서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는 얘기였다. 그건 학교 교사나 학원 교사뿐만 아니라 도장 사범도 마찬가지였다. 보람도 크지만 신경 쓸 일도 많았다. 특히 예민한 시기의 10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고도의 경륜이 필요했다. 운동 쪽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학교 운동부는 그나마 ‘까라면 까는’ 시대였다. 하지만 사설학원 격인 도장은 갈수록 학부모들의 참견이 심해져 수련생 관리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1977년까지 이 일을 즐겼다. 열여덟 살에 시작한 사범 일이 스물두 살까지 이어지며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고, 전국 대회 수상자들도 대거 양산했다. 또 개인적으로도 이 시기 전국 고교 태권도 대회에서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둬 체육특기자로서의 임무에 충실했고, 덕분에 유승원 사범의 입지도 덩달아 올라갔다. 그 사이 그는 군(軍) 초청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며 고아로 면제된 군복무의 한을 풀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강화와 김포 지역은 물론 멀리 백령도와 양평, 포천 지역에서까지 그를 초청했다. 그때마다 잘 단련된 체력으로 장병들의 기선을 제압했다
--- pp.133~135 「태권, 직업이 되다」중에서

1982년 유공에 입사한 그의 직함은 ‘대리’였다. ‘따꺼’(11세)로 출발해 ‘보일러공’(14세)과 ‘사범’(18세)과 ‘관장’(22세)으로 이어진 그의 삶은 ‘대리’(28세)로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유공 유조차 운송부 내에서는 회사 직함 ‘대리’보다 조직 내 직함 ‘군기반장’으로 더 유명했다.
--- p.168 「가화만사성」중에서

그는 1992년 가을과 초겨울을 보내면서 경영 전략을 다시 짰다. 다른 경쟁 업소들과 완전 차별화된 배달 방식을 택해, 말로 전하는 양심 장사보다 눈으로 확인해 주는 양심 경영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소형유조차 홈로리 구입을 서둘렀고 금성계전이 개발한 ‘판매 금액 표시 주유기 장착’까지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이로써 1992년 연말, 수원 최초의 ‘소형유조차’가 [대림석유] 마크를 단 채 당당하게 수원 골목을 누비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됐다.
--- pp.200~201 「재종공취이방장」중에서

“김 회장님을 모시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가장 많이 본 아름다운 모습은 어렵게 사는 노인들을 못 본 척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따뜻한 면입니다. 길가에서 채소를 파는 노인들을 보게 되면, 차를 세우라고 하곤 나가서 ‘할머니 이거 다 얼마예요? 이거 저한테 다 파시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게 돈만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김 회장님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가끔 물어보곤 했어요. 너도 저렇게 할 수 있니? 그때마다 고개를 흔들게 되더군요.”
--- p.223 「이호세 사단법인 민족대표 33인 기념사업회 이사의 설명」중에서

1990년대 10년 동안 주유소 운영을 꿈꿨던 김재옥 사장은 마침내 47세 시절이던 2001년 10월 31일, [대신자연에너지]란 이름으로 자기 주유소를 갖게 됐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태장동(현, 영통구 신동)에 둥지를 튼 주유소는 그의 사업 감각이 빚은 또 다른 쾌거였다. 당시 주변 환경은 무척 썰렁했다. 그의 테니스 친구들은 주유소 적합지가 아니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그의 촉은 주변의 우려와 달리 적중했다. 적막했던 도로가 차량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주변으론 시시각각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유소 부지를 사들인 데 이어 개업 이후 차량까지 북적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업 감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 p.248 「장학금 1억 쾌척」중에서

그는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즉시 조직 개편부터 서둘렀다. 우선 내부 조직을 ‘1센터 3팀’으로 개편해 업무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수직 체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임원실을 없앴다. 그리고 직원들 간의 원활한 업무적 소통을 위해 공간 구성도 효율성 있게 재편했다. 또 수원 관내 여러 기관들의 낙하산 인사 요청을 거절하며 특유의 뚝심으로, 오직 ‘업무 중심’, ‘능력 중심’만 보고 새로운 사무처장을 영입했다. 그는 또 사무처 직원들의 주인의식 고취와 소속감 증진을 위해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외주 처리해 왔던 상의 건물 내외부 환경 정리를 직원들이 직접 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많은 비용 절감이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회원사들의 반응도 즉각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 p.299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중에서

그는 ‘민족대표33인유족회’를 찾은 이래 사무실 운영조차 어려운 형편이라는 걸 알고 또 다시 통탄했다. 가장 극진히 기려야 할 민족 대표 33인의 후손들인데,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할 때도 음식 값을 걱정해야 할 만큼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그래서 후원회장을 자처하고 2017년 5월부터는 매달 200만 원씩을 정기적으로 기부했다. 또 2018년부터는 100만 원을 올려 300만 원씩을 매월 후원하며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1월까지 총 1억 3,200만 원을 유족회에 기부했다.

--- p.356 「민족대표33인기념사업회’ 이사장」중에서

출판사 리뷰

‘도전 정신’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기록집

책의 주인공 김재옥은 자신의 성씨조차 모른다. ‘김가’(金家)는 길에서 주워 자신을 길러준 양부(養父)의 성을 따랐을 뿐이다. 또 생년월일조차 알 수 없다. 1950년대 중반 강보에 싸인 채 인천역 광장에 버려졌던 자신을 김씨 부부가 발견해 데려다 키워줬다는 것만 알뿐이다.

그의 운명은 덕적도 섬소년으로부터 시작됐다. 김씨 부부가 거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양어머니는 양부의 폭력에 집을 나갔고, 양부마저 인천으로 이사 온 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태생이 고아였던 그는 ‘진짜 고아’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구두닦이와 보일러공으로 혈혈단신 소년기를 보낸 그는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연마해 온 태권도와의 인연으로 청년기에는 태권도장 사범과 관장을 맡아보며 무예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관장 시절 조카를 데리고 도장을 자주 찾던 지금의 부인과 만나 난생 처음으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갖게 된다.

이후 태권도장을 떠난 그는 (주)유공에 취직해 대형 유조차 운전기사로 일하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유조차 10년 경험을 바탕으로 석유 부판장을 차리며 자기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김재옥 수원상의 회장을 단 한마디로 평하라고 한다면 ‘언행일치’입니다. 그리고 스포츠 정신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스포츠 정신이란 편법을 안 쓰는 자세를 말하지요. 항상 정직하게, 정공법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수많은 거래처들로부터 신뢰가 쌓이게 되고, 그 신뢰가 경영적인 성공으로 이어진 겁니다.”(212p, 정훈교 전 한신대 대학원 스포츠재활학과 교수 회고담 중)

그의 대학원 은사이기도 한 정훈교 교수의 말처럼 정공법으로 사업에 임한 그는 2000년대 들어 주유소 경영을 시작했고, 그것이 발판이 되어 지금은 중견기업인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수원시 생활테니스협회장 등을 맡아보며 ▲2002년 한일월드컵 수원 개최 홍보 지원 ▲금강산 지역 북한 주민 돕기 ▲캄보디아 해외 봉사 ▲1억 원 장학금 쾌척 ▲체육계 및 문화계 지원 등 여러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 수원시 관내에서는 그를 ‘물마시듯 봉사하는 사람’으로 칭할 정도다.

뿌리 찾기 염원과 독립운동가 선양

그의 집무실 한 쪽 벽면에는 민족대표 33인의 영정 사진들이 가지런히 모셔져 있다. 또 그가 운영하는 수원시 영통구의 대신자연에너지 한 쪽 벽면에는 진관사 대형 태극기가 정중하게 걸려 있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번 책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인가를 잘 설명해 준다.

그는 50대 이후 뿌리 찾기에 나서면서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됐다. (그 이유는 책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면서 천도교를 찾아 성미(誠米)를 시작하게 됐고, 의암 손병희 선생을 기리는 일에 앞장서게 됐으며, 한 발 더 나아가서는 민족대표 33인 유족회를 찾아 여러 기부 활동도 하게 됐다. 또 현재는 민족대표 33인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보며 나라 사랑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정 서는 중이다.

“김재옥 선생은 우리 유족들보다도 더 유족처럼 민족 대표 33인을 기리는 분이에요. 사업적으로 조금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다들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분은 뼛속까지 우리 민족혼이 들어차 있어 그런지 자기 돈 써가면서, 자기 시간 쪼개 가면서, 정말 온몸으로 우리 민족 대표들과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데 최선을 다해 주는 분이라 고맙기 이루 말할 수 없지요.”(351p, 나영의 전 ‘민족대표33인유족회’ 회장 인터뷰 중)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독립운동가 나용환(羅龍煥) 선생의 손자이자 소파 방정환 선생의 외손자인 나영의 전 민족대표 33인 유족회 회장의 말처럼 그는 요즘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일에 모든 열정을 바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명 역사 강사 설민석 씨의 3.1 혁명 관련 설화 사건 소송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 일체를 부담한 바 있고, 사재를 털어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독립영화 ‘아 꽃이여 별이여’를 제작하고, 직접 손병희 선생 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연임과
2024년 제51회 상공의날 대통령 표창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그는 전임 회장의 갑작스런 궐위로 비상시국의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게 됐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임기 3년의 회장에 다시 선임돼 무거운 중책을 이어가게 됐다.

2021년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뒤 그는 수원상의 로비를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기업들의 경영 상황을 독립운동 정신으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뿐만 아니라 일선 학교 학생들과 금융권 직원 특강을 통해 나라사랑 정신과 민족정신을 설파하며 총성 없는 국제 경제전쟁터에서 혼신을 다해 싸우는 무역 전사들이야말로 현대판 독립운동가들이라고 강조했다.

“2024년 우리나라는 반도체, 자동차 등 미래 산업에서 약 2% 성장할 것으로 보이나,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와 국제정세 불안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고자 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 모두 화합하여 잠재력을 발휘한다면 어떤 위기가 닥쳐도 이겨내고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입니다.”(20p, 김재옥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의 2024년 새해 신년사 중)

책은 프롤로그를 통해 김재옥 회장의 2024년 새해 신년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신년 인사말을 통해 ‘극복’과 ‘화합’과 ‘잠재력’과 ‘도약’을 강조했다. 이 4개의 워드는 김 회장의 70년 삶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10대와 20대의 ‘극복’을 통해 30대에는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40대에 이르러서는 가족과 직원, 친지 등 많은 사람들과의 ‘화합’을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극복’이 없었다면 나머지는 입에 올려볼 수도 없는 물거품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이날 연설에서도 그는 ‘극복’이란 낱말을 가장 강한 톤으로 올려 이 낱말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신년 메시지의 방점이 되고자 했다.

이 4개의 키워드가 이번 책의 핵심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책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또 실의에 빠진 직장인들에게는 한 사람의 드라마 같은 인물기록집을 통해 ‘힘내시라’는 응원 목소리를 전하고 있고, 성공한 기업인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메시지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국민들이 민족정기를 높이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번 책의 본질이다.

김재옥 회장은 지난 3월 20일에 있었던 제51회 상공의날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해외 대규모 박람회에 가보면 우리 기업들 모두가 진정한 애국자요, 독립군들”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툭 하면 기업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 우리 기업인들의 전의를 떨어뜨리는데,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꾸짖었다.

그는 또 “우리 기업들이 참 어려운 여건 속에 있다”면서 “부디 많은 국민들이 이들의 총성 없는 전쟁을 응원해 주시고, 특히 해외에 계신 800만 재외 동포들과 해외여행자들께서는 애국하는 마음으로 우리 기업들의 현지 홍보맨이 되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2,500
1 2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