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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발 헛디딤에서 기적의 반복으로
1부. 연구자가 세상에 말을 건네는 방법 1. 연구-글쓰기와 계속해서 새롭게 반복하기 2. 대학원의 공부법: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세미나였고 3. 급하게 꿀팁 찾는 세계에서 지식을 대하는 법 4. 모두가 꿀팁 찾는 세계에서 인문학을 나누는 법 5. 힐링과 사이다가 대세인 세계에서의 글쓰기 ①: 희망편 6. 힐링과 사이다가 대세인 세계에서의 글쓰기 ②: 절망편 7. 선생님, 글을 못 쓰는 병도 있나요? 2부. 연구나 하라고요?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1. 대학원생이 노동조합이라니 2. 대학원생이 노동자라니 3. 이 와중에 저는 운동이 처음이라 4. 대학원생의 노동조합은 대학을 바꿀 수 있을까: 선례들 5. 낭만주의, 회의주의, 탈脫정치와의 작별 6. 강제를 통해 자유를 7. 대학-학계의 두 가지 역사 연구자로 살기를 계속할 이유: 정혜진 인문학 전공 비정규교수: 김진균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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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오게 된 대학원에서 보낸 한때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 대한 환상과 오해를 바로잡고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 정도가 되겠습니다. 대학원 진학은 단순히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연구자’가 되기 위한 일이며, 공부와 연구 사이에는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 그 첫걸음이었습니다.
--- p.16 고통스럽지만 놓아버리기는 싫고 다 부질없는 일일까 싶다가도 이내 다시 매달리게 되는, 이 혼란하고 양가적인 상태 역시 애정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연구-글쓰기에 매료되었을 때의 그것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열정의 형식, 이것이 글쓰기의 반복과 지속을 이끄는 또 하나의 동력입니다. --- p.24 좋은 질문은 이처럼 궁금증을 소거함으로써 고민을 중단시키는 순간이 아닌, 견해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이를 자기화할 것인가를 궁리하도록 강제하는 순간들을 다시금 배치합니다. 질문의 전후에 배치되는 자기 분석과 그렇게 마련한 앎에 또 다른 견해들을 연결하는 일련의 절차야말로 지식의 획득에서 핵심적인 위상을 차지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지식은 획득보다는 구성되는 것입니다. --- p.50 하지만 비평이 잠시 몸을 피해 다른 방책을 도모할 장소로서의 ‘질서 바깥’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루 이틀 안에 플랫폼과 소비 자본주의를 철폐한 후 새로운 대안적 구조를 세우기는 어려우니 당장의 할 일을 할 따름입니다. 스스로 결단하여 문제적 상황의 안쪽에 머무르되 그 상황을 돌파, 재구성하는 계기로서의 균열 비슷한 무언가가 되는 길을 탐색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 p.96 이처럼 대학원생이 학위 과정 중에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 자신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도, 그리고 대학-학계의 요구에 의해서도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학원생의 노동 없이 유지, 운영될 수 있는 대학과 학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p.139 누군가가 사회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이 규정에 따라 그를 명명하는 일, 그 명명에 따르는 의무와 권리의 내용을 정한 후 전체 구성원 가운데 누가 얼마만큼을 가져갈 것인가를 판단하는 분배의 질서에 그러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하는 일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절차입니다. 대학원생의 삶에 이미 노동이 실재하고 그의 노동이 대학-학계의 유지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음이 현실이라면 이와 같은 현실이 일하는 대학원생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규정 그리고 분배에까지 반영되도록 하는 정치적 절차가 따라야 합니다. --- p.188 실제로 어떤 집단이든 그곳에 속해 그 집단이 부과한 책임과 의무를 따르는 삶은 예외 없이 개인의 자아에 어떤 ‘손상’을 입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손상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경우에 따라 이른바 ‘자아’의 손상은 자유와 연결되며 그로써 존재의 특정한 형상인 주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한 단계로 기능합니다. --- p.194 지금 대학의 자리가 어디든, 기존의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기꺼이 실현하려는 상상, 한층 불온하고 급진적인 질문들이 연구자 주체들의 정치적 개입에 의해 그곳에 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조직된 연구자들의 개입과 실천이 억압적 관성에 따라 주조되어온 대학의 역사 내부에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의 꿈이라는 대안적 역사를 적어 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전망인 동시에 믿음이며, 또 목표입니다. ---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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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하는 활동가’ 혹은 ‘운동적인 연구자’가 세상과 관계 맺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글쓰기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5분이면 온갖 것에 대한 ‘꿀팁’을 찾아낼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지식을 구하고 자기화하여 정연한 글을 써내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취미 생활용 ‘꿀팁’을 찾는 이들의 글쓰기 사례를 상세히 제시한다. 모호함과 복잡성을 견디고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돌아온 답변을 기점 삼아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즉 지식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물론 고통스러우나 그만큼 즐겁기도 하다. 취미 생활을 위해서라면 지식을 구성하고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멈추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적 연구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구자는 “기존의 지식 체계를 활용하는 한편 그 안에서 해당 체계의 일부가 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글은 같은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논문이든, 학계 바깥의 일반 독자를 향한 칼럼이나 단행본이든 “타자를 향한 말 건네기”가 되어야 한다. 연구는 “진리 탐색의 새 결과물이 지식 체계의 일부가 되게끔 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발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지적인 글쓰기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실수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잠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운이 좋다면 짧게라도 말을 걸어볼 수 있도록 붙잡기 쉬운 작은 손잡이 하나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목표는 다가서는 과정이 지난한 데다 근본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저자는 거듭, 새롭게 계속하려는 시도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다른 생각과 지향을 가진 상대의 세계에 “하나의 의미 있는, 주의를 기울여볼 만한 질문이나 제안”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일 테다. 두 번째, 조직 운동 “대학원생이 무슨 노동조합? 그럼 고등학생노동조합, 초등학생노동조합도 생겨야 되겠네?” 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같은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대학원생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진학하는 상급 교육 과정으로서의 대학원에 다니며 등록금을 내고 그에 걸맞은 교육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로서만 존재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수업조교, 연구조교, 행정조교, 학회 간사 등 대학원생에게 주어지는 직책과 그에 따르는 업무를 소화하다 보면 정작 공부와 연구에 할애할 시간은 충분치 않다. ‘대학원생의 노동’이 실재하며, 그 양과 강도는 흔히 말하는 ‘대학원생의 본분’을 위태롭게 할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은 꾸준히 외면 받아왔으며, 대학원생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 받을 길은 자연히 요원해진다. 2016년 겨울,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학과사무실 조교 근로장학금 삭감 사건을 마주한 저자와 동료들은 대학원생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한다. 2018년 마침내 대학원생노동조합이 출범하기까지, 그리고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대학원의 현실에 대한 바깥의 몰이해와 대학 본부의 저항은 물론 내부, 그러니까 대학원생-조교 당사자들의 망설임도 맞닥트려야 했다. 나름의 규칙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기를 선호하는 본래의 성품을 거슬러 수많은 변수를 감내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과 대면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건 “대학 내에서 일하는 대학원생이 노동자성을 지님을 인정하고 그 권리와 역할을 제도로써 공식화하는 가운데 대학을 민주적으로 다시 구성해내”는 일에는 집단을 조직하고 정치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 불가피함을 알았기 때문일 테다. 조직 운동을 하는 대학원생은 ‘학문의 순수함’을 뒤로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비난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 본부를 비롯해 기존의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진영조차 다양한 정치적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당에 굳건히 자리 잡은 현실에 균열을 내고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쪽이 탈정치적 순수성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음은 자명하다. 대학 본부와 전임 교원이 내린 제도적 결정에 순응하는 ‘미성숙한 피교육자’의 위치를 벗어나 뒤에 올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뒷받침할 구조를 내포한 지식 생산의 토양 또한 함께 건”넬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역시 “이 직업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된 순간 부과된 책임”임을 강조하며, 저자는 “조직된 연구자들의 개입과 실천이 억압적 관성에 따라 주조되어온 대학의 역사 내부에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의 꿈이라는 대안적 역사를 적어 넣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자 믿음, 꿈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