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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商在,월남(月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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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한산(韓山). 호 월남(月南). 본명 계호(季皓). 충청남도 서천(舒川)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서울에서 박정양 (朴定陽)과 사귀어 l0여 년 간 그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다가, 1881년 그가 신사유람단 (紳士遊覽團)의 한 사람으로 일본에 갈 때 그의 수행원이 되어 도일(渡日), 동행하였던 홍영식 (洪英植)· 김옥균 (金玉均) 등과 깊이 사귀었다. 1884년 우정국 총판(郵政局總辦) 홍영식의 권유로 우정국 주사(主事)가 되어 인천에서 근무하다가, 갑신정변 (甲申政變) 후 낙향하였다.
1887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駐美公使)에 임명되자 그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였으나, 청나라 의 압력으로 이듬해 사신 일행과 함께 귀국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후 박정양이 내무독판(內務督辦)이 되자 우부승지 (右副承旨) 겸 경연참찬(經筵參贊)이 되었고, 이어 학무아문참의(學務衙門參議)로 학무국장(學務局長)을 겸임하면서 신교육령(新敎育令)을 반포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895년 학부참사관(學部參事官)·법부참사관(法部參事官)을 지내고, 1896년 국어학교 교장·내각총서(內閣總書) 및 중추원 1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을 거쳐 의정부 (議政府) 총무국장이 되었다. 서재필 (徐載弼) 등과 독립협회 를 조직, 부회장이 되어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를 개최하고, 1898년 독립협회사건 으로 구금되었다가 10일 후 석방되어 의정부 총무국장을 사임하였다. 1902년 개혁당(改革黨)사건으로 3년간 복역하는 동안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에서 일본이 이기자 특사로 출옥, 1905년 의정부참찬(參贊)에 임명되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파견 준비차 내밀히 한규설 (韓圭卨)· 이상설 (李相卨)의 집을 왕래하던 중 체포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2개월 후 석방되었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황성기독교청년회 (YMCA) 종교부 총무 및 교육부장을 겸임하던 중 3·1운동에 민족대표 로 참여교섭을 받았으나 참가를 거부하였다. 1921년 조선교육협회 ( 朝鮮敎育協會) 회장이 되어 베이징 [北京]에서 열린 만국기독교청년연합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 후 1923년 소년연합척후대(少年聯合斥候隊: 보이스카우트 ) 초대 총재가 되고, 이듬해 조선일보사 (朝鮮日報社) 사장에 취임하였다. 1927년 신간회 (新幹會)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 장례는 한국 최초의 사회장 (社會葬)으로 집행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