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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앵두네 집 …… 13 기억의 시작 …… 18 엄마 …… 24 앵두네 집, 사람들 ……29 조막네 아주머니 …… 35 앵두 …… 43 책 장사 아저씨 …… 50 새달 아저씨 …… 63 글자 공부 …… 83 초 씨 어르신 …… 94 학교 …… 104 독구·메리·쭁과 병아리 …… 113 텔레비전과 승택이 …… 125 점방 아주머니 …… 132 수상한 손님 …… 148 복숭아꽃, 도화 언니 …… 161 눈물의 씨앗 …… 178 모든 슬픔은 아름답다 …… 186 떠나간 사랑 …… 202 성장통 …… 209 안녕, 앵두 …… 228 불어오는 근대화 바람 …… 238 송옥화의 변론 …… 250 그리움을 찾아서 …… 258 앵두네 집 …… 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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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에 살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장은아의 세 번째 장편소설 『앵두네 집』이 출간되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와 5·16 군사 정변을 겪으며 폐허 위에서 도시든 농촌이든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격동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한 편의 흑백사진 같은 소설은 불과 50여 년 전의 서울의 모습이다.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살았고 살아왔다. 암울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60년대를 지나고 어떻게 70년대를 견디며 이겨 나왔는지, 마치 허물을 벗어낸 매미처럼 눈이 부시도록 성장한 오늘을 만들어낸 주역들의 아프고 서러웠던 세월. 그러나 그립고 아름다웠던 삶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눈이 덮인 언덕 길가에 철물점, 연탄집, 문방구가 어린아이가 그린 듯 조악한 간판을 매달고 고만고만 늘어섰다. 어느 구멍가게에서 등이 잔뜩 굽은 노인네가 두꺼운 스웨터 앞섶을 여미며 연탄재를 버리려 나왔다. 가게 옆 담벼락 앞에 연탄재를 내려놓은 노인네가 엎어질 듯 언덕길을 오르며 울고 있는 나를 돌아보고 혀를 차며 무어라 하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의 무대는 서울 변두리 동네의 쇠락한 양반 집안인 초 씨 어르신의 오래된 한옥이다. 모두 말 못 할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산다.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60년대를 막 벗어난 70년대 서울 변두리에 모여든 이들 중에는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식모살이를 떠났던 누이도 있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간 이모도 있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여 오늘날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일으킬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풍요로운 해학과 익살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나 덜 가진 사람이나, 조금 더 배운 사람이나 덜 배운 사람이나 차별이나 편견 없이 서로를 인정했던 사람들이다. 아옹다옹 날마다 서로 투덕거리면서도 바깥채 세 집은 모두 한 울타리 안에서 한 우물물을 먹으며 함께 살았다. 날이 밝으면 눈 비비고 일어나 나란히 붙은 각자의 가게에서 장사했고 날이 저물면 또 나란히 붙은 각자의 살림방에서 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잤다. 성격이 서로 다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지만 한 집에서 밤낮 붙어 지내는 한 식구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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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살고 있으며,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가난하던 젊은 날의 기억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가 자하문 밖 옛집을 추억하게 된다. 그 집은 어머니뿐 아니라 나에게도 소중하게 기억되는 집이다. 산림청 공무원으로 일하던 남편을 사고로 잃은 엄마는 친정 오빠가 있는 서울로 왔으나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 오빠네 집에서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올케에게 설움을 겪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오빠 집을 나와 자하문 밖 초 씨 어르신의 한옥에 세 들어가게 된다.
초 씨 어르신의 한옥은 주인집 식구들이 사는 안채와 세입자들이 사는 바깥채로 나뉜다. 집안의 중심 역할을 하는 초 씨 어르신에게 조금 모자라는 아들 새달과 며느리 조막네가 있었다. 바깥채에는 살림방이 딸린 가게가 셋 있었다. 엄마가 하는 편물가게와 두부 할머니가 하는 손두부 가게, 그리고 박 씨 부부가 주전부리를 늘어놓고 파는 점방이 있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좌충우돌하며 살게 된다. 항상 병약한 며느리 조막네가 죽은 후, 새달을 찾아온 여자는 어린 딸을 하나 데리고 들어오면서 평화롭던 집안에 소동이 벌어진다. 새달이 술집에서 만났던 여자였는데, 아이가 새달의 딸이라고 했다. 나는 굴러들어온 돌 앵두가 박힌 돌 나를 밀어내고 안채의 딸로 귀염을 받는 것에 잠시 샘을 내긴 했으나 이내 자매처럼 친구처럼 잘 지내게 된다. 두부 할머니에게 월부책을 팔러 다니는 아들 형석이 있다. 형석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속없이 착하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없는 나에게 책가방도 사주고 공책도 사주었다. 글자를 모르는 나와 앵두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점방 박 씨 부부는 아이가 없이 두 내외만 살았다. 남의 험담하기 좋아하는 점방 아주머니에게 어느 날 장성한 딸이 찾아오게 되면서 점방 아주머니와 박 씨가 정식 부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초 씨 어르신은 새달 아저씨에게 옥화가 찾아온 충격으로 쓰러져서 앓다가 죽고, 그때까지 눈치를 보며 주눅이 들어있던 옥화는 갑자기 새달을 휘어잡으며 안채를 장악하게 된다. 옥화는 친척 동생이라는 남자를 집에 들이고 안채와 바깥채를 나누어 담장을 치고 안채에 술집을 내기까지 한다. 안채가 술집이 되면서 책 장사 형석은 안채 앵두네 집에 들어온 도경과 사랑에 빠진다. 대학까지 마쳐놨더니 작부와 눈이 맞았느냐고 따지고 드는 두부 할머니에게 형석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연좌제에 걸려 아무런 꿈을 이룰 수 없는 자신의 처절한 심정을 토로한다. 대학까지 마쳤지만, 술집 작부 도경과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옥화가 최병수와 함께 사기를 치고 도주해 왔다는 사실이 발각되고 옥화와 최병수는 경찰에 잡혀갔다. 그때 경찰을 앞세우고 들이닥친 옥화의 옛 애인 나봉수의 얼굴을 본 식구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만다. 그의 얼굴은 앵두와 판에 찍은 듯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새달은 이미 앵두가 자기 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앵두와 정이 들기도 했고 남들이 자기를 우습게 보는 것이 두려워 비밀에 부치고 있었는데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고 말았다. 모든 것에 화가 난 새달은 앵두의 이모에게 연락하여 당장 앵두를 데려가라고 호통친다. 점방을 하던 박 씨 네가 다른 곳으로 가게를 확장하여 이사했고, 도경과 엄마가 동업으로 작은 의상실과 봉제공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은 이제 옛날처럼 한데 어울려 북적대지 않았다. 식구들 모두를 잃은 새달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옥화와 앵두를 그리워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