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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시작하며 1장 다큐멘터리 이야기 영화와 다큐를 구분하는 한 가지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다큐멘터리 만들기 2장 우리의 전통과 문화 달마와 함께한 20일 세계의 도시, 서울 전통문화, 그 길고 긴 프로젝트 전통주 빚기 3장 사람들의 이야기 다큐 이사람 나의 영웅, 브루스 리 영화 같은 인생들 효도우미 0700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 진정한 명의들 4장 역사 속으로 독도 수호신 안용복 일제강점기의 우리 영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270일간의 기록 대륙에 떨친 우리의 민족혼 안중근, 그의 길을 걷다 5장 외교와 사회 이슈 동북아의 등불을 켜다 경제와 교육을 중심으로, G20 취재기 공교육의 미래 석유가 있는 곳으로 글을 마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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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우리 삶의 실상을 가감 없이 다룰 수도 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지상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사회에 해악이 되는 추악한 사실들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도 있지만, 그 기획의 본질 또한 ‘표현’에서 출발한다. 예술에 왕도랄 것은 없다. 하지만 완성도를 이루어내는 일이니 어느 정도의 정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영상의 흐름과 음악, 미학적 요소를 담으니 방송은 종합 예술이며 매 시각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고 그 실현이다. 신문기사처럼 사실의 육하원칙적인 전달만 가지고는 완성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가 안고 있는 함정이며 위대함이다.
--- p.28 중국 촬영은 보통 까다롭고 예민하다. 카메라 반입은 지금도 쉽지 않을 것인데 당시 기준으로 촬영 허가 비용이 10만 불이었다. 그것마저 당국의 허가 없이는 안 된단다. 그들의 오케이 사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면 제날짜에 방송은 불가능했지만, 우리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바로 업무협약을 맺은 CETV(중국 교육방송)였다. 촬영 허가는 물론 촬영 장비와 인력 제공을 해 주기로 얘기가 되어있었다. 물론 제반 비용은 모두 우리가 부담하였다. 카메라맨 이윤규 씨는 처음으로 카메라 없이 출장을 왔다. --- p.53 이 편은 휴먼 프로그램의 연출자로서 고민이 많았던 회차다. 앞서 말했던 균형감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메시지를 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왜곡이 생겼다. 김광룡 씨의 춤 스승과의 사연이 결코 뺄 수 없는 이야기인데 그 부분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PD가 개입하여 풀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와 담당 작가는 그 스승을 찾아가 소통을 시도했다. --- p.95 나는 그가 묵고 있던 서울 소재 프레지던트 호텔로 찾아가 정식 인터뷰 요청을 하였다. 그는 웃으며 ‘인터뷰가 뭐가 이렇게 급해?’ 하고 말했다. 그러곤 자신의 저서 『조국은 저하늘 저멀리』 두 권을 우선 읽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로 책을 구해 다 읽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그에게는 나와의 약속이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리고서야 신 감독은 드디어 인터뷰 날짜를 잡아주었다. --- p.109 많은 것이 바뀌어도 명의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명의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골구석에도 있었는데 그들이 묵묵히 환자들을 진료하는 모습은 쉽게 잊을 수 없는 따뜻함 그 자체였다. --- p.140 출장 일정이 버겁기도 했지만, 안용복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며 ‘역사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단 한 가지 교훈이 남기를 바랐다.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고, 옳지 않은 행태라면(그것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부정부패일지라도) 굴복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마음. 그런 의식이 안용복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배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 p.150 아쉬움을 뒤로 하고 민가의 사찰을 돌아다니는데 우리를 본 앞집 할머니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사진 한 장을 갖고 나왔다. 한인 소녀를 안고 있는 일본 군인의 사진이었다. 일본군과 아이의 표정이 시선을 끈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듯 긴장한 소녀는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에 남자는 소녀와의 인연을 간직하려는 따스한 표정이다. 구도 때문인지 소녀는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있다. 사진 뒷면엔 ‘소화 17년(1942년) 7월 19일 조선 함경남도 연포, 토리스코(본인 이름), 반도의 아이와 함께’라고 적혀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그들은 무슨 관계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 p.176 추운 겨울을 보낸 여순 감옥 장면은 이곳이 최적지였다. 철창 안의 안중근 의사를 연기한 유영국 배우는 흡사 안중근 의사 그 자체였다. 그도 격한 감정을 억누르며 메소드 연기로 몰입되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안중근 의사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팀워크가 살아나니 장면이 잘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도 엄숙한 그 무엇에 압도되어 모두가 침묵했다. 편집 작업에 촬영감독까지 직접 매달렸을 만큼 모두가 열정적이었다. ---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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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예술 분야 중에서도
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가 바로 다큐멘터리다.” 살아있는 다큐멘터리 역사 최초로 제시했던 이야기들 최근 안중근의 유묵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돌아왔고, 독도 영유권을 두고 비판이 이루어졌으며, 불교 유적지로 유명한 중국의 둔황 비행기 노선이 마련되어 이슈로 떠올랐다. 그뿐 아니라 진정한 명의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사교육과 빈곤 문제의 미래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까마득히 남아있다. 사실 이 관련 이야기들은 이미 몇십 년 전에 TV 다큐멘터리로 다루어졌다. 다름 아닌 안태근 감독 연출의 작품들인데, 오래전부터 날카로운 통찰력과 탐구심으로 우리가 더 일찍 주목해야 했을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한다. 다양한 촬영 에피소드는 물론 다큐멘터리의 의의와 우리가 취해야 할 인간적인 자세에 대해 섬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이 책이 건강한 시대 정신에 있어 슬기로운 해답이 되길 바란다.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다큐멘터리 정신 다큐멘터리 정신은 우리가 삶을 정의롭게 살아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면에서도 분명 통한다. 전통과 문화, 사람, 역사, 사회 문제와 이슈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온 안태근 감독은 냉철해야 할 때는 냉철히, 대담해야 할 때는 대담히, 따뜻할 때는 따뜻하게 행동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 준다. 장르별로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작가는 순수하고 선한 심성은 고정관념을 없애주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며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긴 작업 생활을 지속해 왔다. 책을 덮은 후 몰려오는 감동은 그다음 장을 이어갈 우리에게 삶의 모든 장르 앞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발산할지 깨닫게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기 이상의 소재들과 역사적 의의 이 도서의 강점은 단순히 제작 에피소드를 풀어낸 것 그 이상에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과거에 시의성을 담아 방송한 다큐멘터리는 지금에 와서도 이슈로 떠오르는데, 아직 많이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가 이 책에는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의 영화인들,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세계화 등 예견에 가까운 다큐 소재는 곧 떠오를 이슈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미래의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주목할 만하다.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사상 이런 책은 없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의 제작 일화부터 사회적, 역사적 답사까지 한국의 다큐 3세대로서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들은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앞으로 연구에 착수될 기록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모든 것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는 지금, 다양한 영상 제작 방법 또한 존재한다.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기』는 대한민국 3세대 다큐멘터리스트가 집필한 만큼 전통적인 방법을 해설하였는데, 독자는 기존 방송 프로그램 송출 과정을 통해 원고, 녹음 등 미리 준비하면 좋을 기본 제작 프로세스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다큐멘터리의 정의부터 다큐멘터리 정신, 체계적인 제작 공정까지 영상만의 화법에 다가가 보자! 다큐멘터리 감상 시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은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