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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그림 읽는 즐거움, 그 행복한 세계로 초대합니다
1장. 걷는 남자, 고기를 먹지 않은 남자 - 우리가 몰랐던 빈센트 반 고흐의 또 다른 얼굴 2장. 자유도 셋, 평등도 셋, 박애도 셋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숨어 있는 삼색기의 비밀 3장. 물감, 화가를 살해하다 - 카라바조에서 휘슬러까지, 유화의 탄생이 빚은 뜻밖의 비극 4장. 나폴레옹, 일그러진 영웅의 초상 - 다비드 vs 들라르슈, 영웅의 참모습을 그린 사람은? 5장.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를 아시나요? - 어쩌면 다 빈치가 그렸을 또 다른 「모나리자」 이야기 6장. 칼과 산, 상처입은 명화들 - 「거울 속의 비너스」에서 「야간 순찰」까지, 명화의 수난과 반달리즘 7장. 베리 공의 호화로운 그림 속 숨은그림찾기 - 15세기 채색 필사본에 담긴 중세 농민들의 열두 달 8장. 카이사르의 용기로 바로크 시대를 살다 - 성폭력을 딛고 일어선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야기 9장. 안과 밖의 경계에 서서 - 화가의 눈에 비친 발코니 풍경의 매력 속으로 10장. 26년, 짧아서 더욱 찬란한 불꽃과 신화 - 요절한 여성 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가 바라본 세상 11장. ‘빛의 화가’, 빛을 포착하고 눈을 잃다 - 빛에 따른 사물의 변화를 집요하게 따라간 모네의 연작들 12장. 14명,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다 - 이반 크람스코이와 러시아 이동파 이야기 13장. 삶이란 어떻게 끌고 가는 것인가 - 러시아 미술의 완성자 일리야 레핀의 「볼가강의 배 끄는 사람들」 14장. 러시아 화가의 그림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 오래전 태극기를 그린 화가의 혁명과 함께한 삶 15장. 바이러스, 신의 분노, 그리고 죽음의 승리 - 현실보다 무시무시한 그림 속 전염병 이야기 16장. 300년 만에 부활한 ‘왕의 화가’ - 루이 13세를 위한 그림도 그렸다는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재발견 17장. 그날 밤, 가면무도회에서 생긴 일 - 나를 숨기는 은밀한 즐거움, ‘가면 속 얼굴’의 이모저모 18장. 올림픽 종목에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 승마에서 권투까지, 그림 속에서 펼쳐진 승부의 세계 19장. 파리의 뒷골목, 남몰래 흘리는 눈물 - 19세기 파리의 골목을 그린 ‘가난한 이들의 화가’ 페르낭 플레 20장. ‘일요일 화가’를 넘어 전업 화가로 우뚝 서다 - 남성 중심의 화단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너스 21장. 그 비싼 그림은 누가 훔쳐갔을까 - 화재, 도난, 분실로 사라져버린 명화들 이야기 22장. 하늘나라에서 받은 시민권 - 19세기 유럽의 무국적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의 떠도는 삶 23장. 아내라는 이름의 화가, 그녀의 빛과 그림자 - 인상파 여성 화가 4인방 중 한 명인 마리 브라크몽 이야기 24장. 엽기적인 남편, 아내의 관뚜껑을 열다 - 라파엘전파 화가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그로테스크한 사랑 이야기 25장. ‘블랙 아트’의 선구자를 소개합니다 - 명성을 얻은 최초의 흑인 화가 헨리 오사와 태너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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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고흐는 경보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훗날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고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던, 고흐가 구필 화랑 영국 지점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입니다. 고흐는 가끔 영국에 와 있는 여동생을 만나러 가곤 했는데, 런던에서 여동생이 살고 있던 램스게이트까지는 16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습니다. 이 길을 고흐는 사흘 만에 주파합니다. 하루에 50킬로미터 이상 걸은 셈입니다. 못 걸을 것도 아니지만 정말 빠른 걸음 아닌가요? 또한 고흐는 하숙집이 있는 런던 브릭스톤에서 사무실이 있는 코벤트가든까지도 걸어다녔는데 거리가 6.4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이 정도 거리를 걷는다면 얼마나 걸리시는지요? 고흐는 45분 걸렸습니다.
고흐는 신발을 주제로 몇 점의 작품도 남겼습니다. 빠른 걸음을 뒷받침해준 신발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까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난 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남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그는 죽음의 관문으로 향했지요. --- p.13~14 들라크루아는 자유의 여신이 들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삼색기를 세 군데나 배치했습니다. 하나는 여신이 들고 있고, 나머지 둘은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게 묘사했습니다. 오른쪽의 그림 세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의 붉은 허리띠와 하얀 속옷, 그리고 푸른 셔츠는 또 다른 삼색기입니다(오른쪽 위 그림). 화면 속 멀리 배경이 되는 노트르담 사원의 꼭대기에도 삼색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오른쪽 아래 그림). 1830년 가을에 완성한 이 작품을 두고 들라크루아는 그해 10월 21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조국을 위해 이 작품을 그리고자 한다.” 7월 혁명에 대한 들라크루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 p.32~33 모네는 기차에서 내뿜는 수증기가 대기 속으로 퍼지면서 빛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생 라자르역에서 루앙으로 출발하는 기차가 30분만 늦게 출발한다면 그때의 빛깔이 가장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명 화가였던 그의 요청을 철도 회사가 들어줄 리 없었지요. 모네는 근사한 꾀를 냅니다.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금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든 모네는 생 라자르역으로 가서 역장을 만납니다. 당시 모네의 뛰어난 외모와 패션 감각은 모델들이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자신은 화가인데 파리 북역을 그릴까 하다가 생 라자르역이 더 특색이 있어 이곳을 그리기로 했다고 역장에게 말을 합니다. 모네의 외모를 본 역장은 직원들에게 플랫폼을 청소하게 하고 기차를 정차시킨 후 모네가 원하는 양의 수증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기관차에 석탄을 가득 채웁니다. 서둘러 여러 장의 스케치를 끝내고 역장과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모네는 역을 떠납니다. 생 라자르역과 관련된 작품들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 p.154~156 이 작품은 태너의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파리 살롱전에 전시된 것으로 풍속화 형태의 회화로 미국계 흑인이 다른 미국계 흑인을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자 미국의 사실주의와 프랑스 인상주의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1890년대 미국 백인들이 가지고 있던 흑인에 대한 광범위한 고정 관념을 반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검소하지만 빈곤하지 않은 배경과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런 것들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지요. 같은 시기에 그려진 「백파이프 수업」과 같은 주제이지만 인물만 흑인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 「백파이프 수업」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전시되었지만 「밴조 수업」은 흑인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곳에 따로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시절이 그런 상황이었지요. ---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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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종목에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 빨리 걷는 남자, 고기를 먹지 않은 남자, 고흐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4명의 여인을 만나라? -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진짜 모습을 그린 사람은? - 마리 앙투아네트가 소유했던 「모나리자」가 있다? - 300년 만에 부활한 ‘왕의 화가’는 누구일까? - 러시아 화가의 그림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고갱의 영향을 받은 여성 인상파 화가가 있다? - 화가이자 시인인 남편이 죽은 아내의 무덤을 파헤쳐서 꺼낸 것은 무엇일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나리자」와 초라하게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와 관련하여 미술 교양의 지평을 넓혀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가 아는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언제나 사람들도 북적여서 가까이 가서 제대로 볼 수조차 없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방탄유리 속 작은 그녀. 그런데, 다른 곳에도 모나리자 그림이 있다고 한다. ‘원조 모나리자’보다 젊고 가냘픈 모습의 「아일워스의 모나리자」,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옆에서 제자가 그렸다는 「프라도의 모나리자」, 다 빈치가 그리다 만 그림을 제자가 완성했다는 「베르농의 모나리자」 등 3점의 다른 그림이 그것이다. 원조까지 포함하여 4점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비교 감상하는 경험은 신선하다. 심지어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모나리자」 한 점을 소유했었는데, 그 그림은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미 대륙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지중지했다는 모나리자는 「베르농의 모나리자」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프랑스 대혁명의 격동과 열기를 목격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모습은 말을 타고 망토 자락 휘날리면서 알프스산맥을 넘어가는 위풍당당한 그림이 가장 유명하지만, 과연 그것이 나폴레옹의 참모습이었을까? 아니, 그 전에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의 망토 색깔과 타고 있는 말의 색깔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폴레옹을 미화한 그림으로 유명한 다비드는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림이 ‘초대박’이 나면서 그 초상화를 여러 점 변주하여 그렸다. 망토 색깔을 노랑에서 빨강으로, 타고 있는 말을 흰 말에서 밤색 말로 바꿔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매끈하고 웅장한 다비드의 그림과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그린 들라로슈의 나폴레옹 그림 중 어떤 것이 더 사실적일까? 둘의 그림을 비교체험케 하여 화가의 관점과 시대상을 생각하게 한다. 약한 자들, 눈물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라 개인보다 사회적인 주제에 눈길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19세기 파리는 유럽의 중심으로 벨에포크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그런 화려한 도시에도 뒷골목은 있었고, 맨발에 굶주린 이들이 있었다. 지은이의 따뜻한 시선이 파리 뒷골목의 사람들 모습을 연민과 사랑을 담아 그린 ‘빈자들의 화가’ 페르낭 플레의 그림과 오버랩되면서 ‘지금, 여기의 우리는 과연 19세기 화가 플레보다 따뜻한 눈으로 약자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가만가만 묻는 듯하다.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훨씬 심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고, ‘블랙 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오사와 헨리 태너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 두 점은 모델의 피부 색깔 때문에 운명이 엇갈렸다. 백인이 등장한 그림인 「백파이프 수업」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일반 전시실에, 흑인이 등장한 그림이자 태너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벤조 수업」은 굳이 찾아가서 봐야 하는 전시실에 걸렸던 것이다. 등장인물이 어떤 인종이냐에 따라 그림의 가치가 평가받던 시절이 있었음을 기억하며,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큰 문제인 인종차별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보고만 있어도 좋은 ‘명화 극장’, 그 따뜻한 문이 열리면 그 밖에도 26년이라는 짧은 삶을 하루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치열하게 살았던 여성 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나 화폭에 우리 태극기를 담은 러시아 화가 보리스 쿠스토디에프 등 동서 유럽의 낯선 화가들은 물론, 300년 만에 부활하여 다시 유명해진 17세기 화가 조르주 라 투르 등 흥미진진하고 신선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중세와 바로크에서 인상파와 라파엘전파까지, 어떤 그림을 이야기하든 지은이의 어투는 잔잔하다. 드라마틱한 그림을 읽어줄 때도 관조적이고 특유의 조근조근, 정감 있는 어투 덕분에 독자들은 주변의 모든 소음이 제거된 듯 고요히 침잠하면서 그림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림 읽어주는 남자’와 함께하는 ‘하루 5분 미술관’의 문을 열면, 그림의 가장 큰 힘인 ‘휴식과 힐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