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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기억하고 즐기고 싶은 옛이야기의 그림, 고사인물도
들어가는 글? 고전 학습에서 삶과 소망의 표현으로_ 조선 후기부터 근대기 고사인물도의 흐름 1장 현명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맞으려면 01 강태공, 긍정과 희망을 기다리다_ 태공조위도 02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성군이 된다_ 이윤경신도 03 칼 가는 숫돌, 배 젓는 노처럼_ 부열판축도 04 왕업을 이룬 제왕의 스승_ 이교수리도 05 인재를 맞으려면 마음을 다하라_ 삼고초려도 2장 은자들의 세상을 그리다 06 전설의 은자들, 허유와 소부_ 영상세이도 07 신선들의 바둑놀이_ 상산사호도 08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정_ 수양채미도 09 초야에 묻힌 청아한 절개_ 부춘조어도 3장 시인과 문장가의 아취를 담다 10 파교를 건너 매화를 찾아 나서다_ 파교심매도 11 풍류 시인, 강물에 비친 달을 잡다_ 시선농월도 12 깎아지른 계곡 물줄기, 세상 먼지를 씻어내리다_ 관폭도 13 좌절은 음주로 풀고 시로 승화시킨다_ 취옹도 14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_ 방학도 15 전원생활로 돌아간 은둔시인_ 무송반환도 16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_ 동리채국도 4장 풍류 군자의 흥취를 옮기다 17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묻다_ 송하문동자도 18 수레를 세우고 단풍을 감상하다_ 풍림정거도 19 거위를 사랑한 서예가_ 관아도 20 기행 일삼은 문인서화가_ 제벽도 21 거리낌 없이 자유분방하게_ 섬계회도도 22 거문고 음률에 의미를 실어서_ 탄금도 23 인생은 한바탕의 꿈_ 오수도 5장 성현의 가르침은 깊다 24 도학의 진리를 추구하다_ 도학자들의 고사인물도 25 군자의 꽃, 연화를 사랑한 학자_ 애련도 26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은일처사_ 천진교완월도 미주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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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조어도(姜太公釣魚圖)](도10)를 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장병들이 조선의 복식인 점이 흥미롭다. 주문왕을 수행한 병사들은 머리에 전립(戰笠)을 갖춘 융복을 착용했는데 이는 조선의 군복인 것이다. 인물은 청·녹·적·황·백·흑의 화려한 진채를 사용한 데 반해 산수 배경은 수묵으로만 처리하여 특이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산수는 인물에 비해 지나치게 작게 묘사되어 해학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렇듯 문왕의 행차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듯 앉아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강태공의 이미지는 ‘무왕벌주(武王伐紂)’의 역사 설화를 다룬 『서주연의(西周演義)』와 『강태공전(姜太公傳)』 등의 고소설이 조선 말기 이후 대중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던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강태공은 무왕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데도 모른 체하고 오로지 낚시하며 반나절 이상을 기다리게 했다. ---「01 강태공, 긍정과 희망을 기다리다_ 태공조위도」중에서 소부의 생각은 이것이다. 허유가 세상을 등지고 제대로 은둔했다면 그 이름이 요임금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니 천하를 맡아달라는 청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건만, 그는 스스로 알려지기를 바라며 명예를 구한 것이었으니 수치스럽다는 것이다. 소부는 이후 다시 허유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허유와 소부는 상고시대의 인물들로서 어떤 기록에는 허유와 소부가 같은 사람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어쨌든 허유와 소부는 세속의 부귀공명을 버리고 산수에 파묻혀 살았던 고결한 은사의 표상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숭앙되고 있는 것이다. [소부세영도(巢父洗穎圖)](도34)는 《예원합진첩》에 있는 그림으로, 화폭의 왼편 아래쪽에 화가의 이름 진재해(秦再奚)가 쓰여 있다. 진재해는 영조 때 최고 수준의 화원 중 하나이고, 이 서화첩은 궁중에서 감상되던 것이다. 허유와 소부의 고사는 왕실과 상류층이 향유한 그림 주제였을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주제였다. ---「06 전설의 은자들, 허유와 소부_ 영상세이도」중에서 임포의 아취 있는 삶을 그린 고사인물도는 조선시대 내내 인기가 있었는데, 매화가 피어있는 고산에서 하늘을 나는 학을 쳐다보는 임포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다루어졌다. ‘고산에서 학을 놓아주다’는 의미인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의 정형이다. 그런데 근대기에 그려진 임포의 이미지는 학을 놓아주는 모습이 아니고 마당에서 노니는 학을 바라보는 매처학자 모습이 주로 다루어졌던 듯하다. 임포의 고사를 담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매처학자도](도77)는 도연명의 고사를 담은 그림과 한 세트를 이룬 대련 중의 한 폭이다. 그림에서 임포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앉았는데, 등 뒤에는 가리개를 두었고 앞에는 책상을 펼쳐놓고 있다. 이렇듯 야외에 가리개며 책걸상 등의 가구를 놓는 것은 중국 강남 지방의 문인문화를 반영한 것인데, 다만 이 그림에서는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바닥에 앉는 조선식 좌식 문화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중국 고사인물도의 조선식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4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_ 방학도」중에서 풍류문사 두목의 수레에 기녀들이 던진 귤이 가득 찼다는 고사는 제주 관덕정(觀德亭)의 벽화에도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관덕정은 활쏘기 등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 1448년(세종 30) 제주목 관아 곁에 지어진 대형 건물이다. [적벽대전(赤壁大戰)], [호렵도(胡獵圖)] 등 상무적인 주제의 그림과 함께 두목의 고사도가 그려졌는데, 그 이유는 제주의 특산물 ‘귤’이 연결고리가 되었을 것이다. 관덕정의 [취과양주귤만헌(醉過楊州橘滿軒)] 벽화(도109)에서 화면 오른편 성벽 위에 다수의 기녀들이 귤을 던지고 있고, 성벽 아래에는 두목의 수레가 지나가고 있다. 눈웃음치고 있는 기녀들과 가마꾼들의 복식이 모두 한복이어서 중국 고사의 토착화 양상을 살필 수 있다. ---「18 수레를 세우고 단풍을 감상하다_ 풍림정거도」중에서 이렇듯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조선의 선비들이 다투어 추종하는 대상이 됐고, 「애련설」은 문인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애호됐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 최북崔北이 그린 [애련도](서강대학교박물관 소장)는 주돈이의 고사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연못가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인물은 주돈이를 그린 것이다.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민화에서도 사랑받는 주제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고사도 병풍 중의 [애련도](도132)에는 연꽃을 감상하는 주돈이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린 동자 두 명이 시립해 있는데, 한 명은 책을 가득 들고 있다. 이 그림은 연한 담채를 사용해 산수와 인물을 담백하게 그렸다. 주돈이의 고매한 인품에 걸맞게 채색을 더욱 아껴서 수목화에 가깝게 그려낸 그림이 국립민속박물관의 [애련도](도133)이다. 바위 뒤에 기대어 서있는 주돈이의 모습은 산수 속에 묻혀 보일 듯 말 듯하다. 근경의 연못에는 꽃을 피우지 않은 연잎만이 소박하게 무리 지어 있다. ---「25 군자의 꽃, 연화를 사랑한 학자_ 애련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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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을 주는 그림에서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가 되다 · 고사인물도는 어떤 그림인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치 않는, 후세에 모범이 되는 것을 ‘고전(古典)’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에게 요구된 덕목은 “한 가지 일이라도 ‘고전’에 상고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군왕뿐 아니라 조선의 모든 군자에게 요구된 가치였다. 우리 선조들은 옛사람들의 본받을 만한 행적을 기억하고 본보기로 삼아 그들의 삶이 언제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했다. 이를 위해서 역사와 유교 경전의 학습이 중요했으며, 고사인물도는 그 학습과 실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성리학을 신조로 한 조선의 문사들에게 그림은 도를 수양하고 도에 도달하는 매개로서 가치를 지녔다. 이러한 고사인물도를 확인할 수 있는 화첩이 전해 내려온다. 《고사인물화보(故事人物?譜)》와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 《예원합진첩(藝苑合珍帖)》이다, 그림 제작에는 진재해(秦再奚), 한후방(韓後邦), 장득만(張得萬), 양기성(梁箕星) 등 18세기 전반의 화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왕실 주문으로 제작하고 감상된 것으로 보이는데, 《만고기관첩》과 《예원합진첩》의 경우는 해당 고사의 원전을 발췌하거나 관련된 시문의 텍스트를 쓴 서폭이 그림과 짝을 이루고 있어 그림을 감상하면서 고사의 내용을 학습하기에 용이하다. 그림과 글을 통해 고전을 익히고 본받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유교적 이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을 것이다. · 고사인물도에서 다룬 주제 그렇다면 고사인물도에 그려진 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을까. 또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고사인물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 네 가지 주제로 분류된다. 첫째, 새로운 왕조를 창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뛰어난 지략가 혹은 나라의 중흥을 이끈 능력 있는 재상의 이야기이다. 한나라를 개창하는 데 공헌한 장량의 고사나 후한 말 제갈량을 제사로 모시기 위해 유비가 남양의 초당을 세 번이나 찾아간 삼고초려의 고사, 이윤, 강태공 같은 신하를 찾아내 기용한 고사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이야기가 인기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은둔하며 청절을 지킨 은자 이야기이다. 조선 선비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할 것인지 은일하며 도를 연마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역사 속에는 허유와 소부, 백이와 숙제, 상산사호 등 은일을 택한 현자들이 다수 있었으니, 이들의 삶과 행적은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셋째, 인구에 회자되는 명구를 지은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치 시대였던 조선조 선비들은 대문호에 대한 숭상이 깊었다. 수많은 시인 중에서도 도연명, 맹호연, 이백, 임포 등이 고사에 많이 등장한다. 이 중 도연명은 다양한 도상으로 그려져 조선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시인으로 여겨진다. 넷째, 성현으로 추앙받는 학자들, 특히 유교의 사상과 교리를 밝힌 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 주돈이, 정호, 정이, 소옹, 주희 등 유학자들의 행적과 언행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 고전 학습에서 한국인의 ‘삶의 이야기’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 민간의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고사인물도 병풍 또한 상당히 인기였다. 고사인물도는 대부분 중국의 옛이야기를 그린 그림이지만, 마치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실감 나게 풀어놓아 친근하게 느껴지는 점이 흥미롭다.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한복을 입고 좌식 생활을 하는 한국인으로 표현된 경우를 마주치기도 한다. 하지만 고사인물도는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화목(畵目)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너무나 익숙하고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지만, 한자 문화의 전통과 단절된 요즘은 더 이상 이들 고사를 떠올리거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사인물도의 주인공들이 보여준 지혜와 지략, 용기와 도전, 인품과 멋, 재능과 철학은 시대를 초월한 지고한 가치이다. 이러한 옛이야기가 오늘에 되살려져 현대인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편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고전으로 삼았던 옛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지표”가 되기를 바란다. 100점이 넘는 고사인물도 작품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책이 단절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이 되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