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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32년, 두만강 넘어 시드니
연합뉴스 기자의 30년 동행 취재기
김재홍 저
황금알 2024.08.30.
베스트
정치/외교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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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ㆍ4

귀순대학생, 평양옥류관 서울분점 창업

외화벌이 골동품 중개…돈의 위력 절감ㆍ16
첫 직장 도로공사…고려대 입학ㆍ21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정주영 회장도 단골ㆍ26
상하이 영어전용 국제유치원…사스 급습에 물거품ㆍ34
호주로 이민, 시드니 골프장 청소부ㆍ38
우버 기사…87개 나라 1만여 명 실어 날라ㆍ41
카센터 설비 세일즈…꿩 먹고 알 먹고ㆍ46
마침내 호주회계사ㆍ49
노틸러스연구소·UNDP와 북한 자원개발연구 프로젝트ㆍ50
개성상인 DNA는 못 숨겨ㆍ55

두만강과 장백산맥 넘어 목숨 건 탈북

아버지의 세계지도…바깥세상 나침반ㆍ60
첫 대학시험 낙방…청진 광산금속종합대학교 수석ㆍ63
유학 꿈 좌절되자 평양서 골동품 밀매ㆍ68
일본 골동품상·해외유학생 전해준 바깥세상에 큰 충격ㆍ70
청진역에서 깡패들에 ‘거사자금’ 다 털린 뻔ㆍ72
초겨울 두만강과 장백산맥 넘어…부친 묘소 향해 큰절ㆍ76

하나님 말씀에 뜻밖의 위안

“북조선 사람 한국 망명 도와달라”…거절당해ㆍ80
택시기사 선양 북한영사관 앞에 내려줘ㆍ83
베이징 한국 대사관도 사실상 퇴짜…진퇴양난ㆍ86
‘고수레’…카시오 시계 길에 던져 운명 점쳐ㆍ88
북한VIP 호송요원 행세…바다 헤엄쳐 인천행 선박 타ㆍ90
탈북과정 혹독한 조사…하나님 말씀에 위안ㆍ94
북한 공민증, 한국 주민등록증, 호주 시민권증서…3개국 신분증ㆍ96

남과 북 대학 교육환경 달라도 너무 달라

북한 군대식 기숙사 생활…한밤중 ‘식량조절’ㆍ100
군 입소 훈련…아무도 못 막는 사과 서리ㆍ102
고려대-북한 대학 오리엔테이션 극과 극ㆍ105
2학년 편입학 대신 1학년 입학ㆍ108
교양과목…남한 세계 이해 길잡이ㆍ112
북한 지리여행·투자서 잇따라 출간ㆍ114
대학 초청강사 안보강연ㆍ119
영국 유학…세계인 첫걸음ㆍ122
시드니 경영대학원서 회계사 자격 취득ㆍ126

아내의 신장 한쪽…시한부 에디 되살려

아내 “제2 인생 하나님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달라”ㆍ130
“외할아버지 목소리 닮아 친근”ㆍ138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일곱 살 아들의 권유ㆍ141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교사 출신 노동당원ㆍ146
어머니 음식 ‘만두와 돼지고기 장조림’ㆍ149
소중한 인연…끝없는 동행과 배려

만남과 헤어짐…안타까운 여동생ㆍ152
1993년 탈북 동기생…가까운 친구이자 가족ㆍ155
함께 온 죽마고우…한의원 박사 원장님ㆍ159
기자와 취재원 인연…30년 세월 동안 동행ㆍ162
실향민 어르신들…자식 같은 후배로 맞이해준 고마운 분들ㆍ165

남북관계 변화 온탕 냉탕…절망보단 희망

남북 공동번영의 길 아직도 오리무중ㆍ168
문재인 평양 군중연설…남북 공존공영 기대 물거품ㆍ173
북한 1인 후보 선거…남한 대통령 후보 누굴 찍어야ㆍ176
남한의 혈육 친척을 찾았지만…ㆍ179
대북 투자 대박 유혹…신기루 같은 사기 많아ㆍ181

낯선 문화…양아치는 어느 곳에나

하숙집에서 솔직한 말 때문에 봉변ㆍ186
런던 지하철역에서 소매치기에 가방 뺏겨ㆍ190
캐나다 토론토 술집 된통 바가지ㆍ193
유럽 여행 중 ‘망명’ 북한 선배 뜻밖의 사업 제의ㆍ198
모스크바행 직항 못 타 ‘빙빙’…지하철 평양과 너무 비슷해 놀라ㆍ201
북한 남한 호주 연애와 결혼 풍속도ㆍ205
한국 전국 일주…쏘나타 타고 순례ㆍ208
북한과 남한 냉면 재료부터 큰 차이ㆍ210
사교육…남, 북, 호주 부모 등골 부러져ㆍ212

한반도 공존번영 ‘금맥’…호주 기업도 ‘군침’

지구물리탐사 전공…호주서 컨설턴트에 도움 ㆍ216
한반도 공존번영 ‘금맥’ 북한 지하자원ㆍ220
호주 기업들, 북한자원개발에 군침ㆍ225
북한 여행…열차가 가장 중요한 수단ㆍ228
아들·딸과 함께 되돌아본 백설의 백두산ㆍ230
꿈속 고향 묘향산, 금강산, 주을온천ㆍ235
다롄에서 대북사업…고속열차 타고 중국 전역 여행ㆍ242

북한은 탯줄, 한국은 새 세계 디딤돌, 호주서 전문가로

흙 내음 그리운 북한 자강도…태를 묻은 땅ㆍ248
한국…세계로 향한 디딤돌ㆍ252
호주 밑바닥부터 시작 북한 투자전문가로ㆍ255
탈북 32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북한 잊고 악착같이 돈 벌어라.”ㆍ257

참고자료ㆍ260

저자 소개 1

연세대 행정학과, 국제학대학원 행정학과 석사, 조지타운대학교 자본시장연구소 객원연구원,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정책전공 박사 수료. 연합뉴스 워싱턴특파원, 연합뉴스TV 경제부장, 연합뉴스 마케팅부장, 증권부장, 한민족센터 본부장 등 역임. 저서 『미국중앙은행 금리결정의 비밀』 등.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52*225*20mm
ISBN13
9791168150843

책 속으로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정주영 회장도 단골

에디는 고려대학교에 다니면서 친구와 함께 정보제공 사업(Information Provider)을 시작했다. 남한에서 시작한 첫 사업이었다.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전자미디어 업체에 북한의 신세대 뉴스와 사업 아이템을 매주 유료로 제공했다. 당시엔 이들 업체가 첨단 매체였다. 북한 투자사업 정보를 전자통신 업체들에 단독으로 제공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한 달 매출이 500만 원을 넘었다. ‘신세대X파일’ 이라는 신개념 정보 제공자로도 유명해졌다.

이런 내용을 소재로 낸 책이 『북녘의 신세대 X파일』(한뜻 펴냄)이다. 남한에 ‘야타족’이 있다면 북한에는 ‘야좀타자족’이 있다며 남한과 북한의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신세대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평양과 북한 각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북한의 신세대 문화와 가치관,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북한에는 재미교포나 재일교포 친척이 있는 주민들이 간혹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데 북한 여성들은 자가용에는 몹시 약해 속으로 ‘야, (나도)좀 타자’하고 있다가 자가용 운전자가 유혹하면 너나없이 넘어가는 여성들을‘야좀타자족’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 책은ㆍ압구정동과 창광거리ㆍ남한의 야타족과 평양의 야좀 타자족ㆍ미스코리아와 기쁨조ㆍ노래방과 온치(음치)ㆍ포르노 테이프 유행 등 1백4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됐다.

3년 이상 축적된 정보와 기술을 바탕으로 에디는 NK(북한) 컨설팅 회사를 창업한 데 이어, 북한과 교역을 전문으로 하는 무역업체를 설립했다. 북한과 교역하던 업체들을 대상으로 사업 아이템들을 제공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북한의 제품과 생산품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사업도 성공을 거뒀다. 김대중 정부 출범을 계기로 ‘햇볕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남북한의 관계가 해빙기에 들어섰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북 유화정책의 기조를 지칭한 용어로, 화해와 포용을 바탕으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을 증대시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대북정책을 말한다. ‘대북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나 ‘대북 화해 협력정책’도 같은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햇볕정책이란 말은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4월 3일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 뒤부터 널리 사용됐다.

겨울 나그네의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강한 바람(강경정책)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유화정책)이라는 이솝 우화에서인용한 말이다. 비료 지원 및 쌀 지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북한 방문, 금강산 관광사업 등이 햇볕정책을 기조로 실시된 것 들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햇볕정책(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에디는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판단, 북한에서 생산한 메밀을 이용한 평양옥류관 서울분점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주변에서 투자자금으로 18억 원가량을 끌어 모았다. 이 자금을 자본금으로 삼아 주식회사 옥류관을 1998년 11월 설립했다. 조총련계 기업의 중개를 통해 북한 내각 직속 대외봉사국 산하 조선옥류관무역회사와 분점 개설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에서 물자 반출은 대남교역권을 가진 조선개선무역총회사(전 광명성총회사)가 일괄 수행했다.

물자는 남포와 인천 간 직항로를 이용해 북한에서 직반입 했다. 옥류관 개점 직전 반입 물량은 메밀 9,480㎏, 찰수수 1,520㎏, 수저, 냉면 그릇, 접시 각각 1천 개 등에 달했다. 이외 북한의 공훈예술가 문화춘의 조선화 ‘옥류관전경’, 김정철의 조각 ‘선녀상’과 자수제품 등을 반입했다. 주식회사 옥류관 대표이사는 김영백 씨가 맡았다. 음식조리장은 평양옥류관에서 북한 냉면 비법을 전수한 재일조총련계 동포 요리사 박수남 씨가 맡았다. 박수남 씨는 냉면 제조 비법을 전수할 때 가장 애를 먹은 것들 중의 하나는 냉면 맛을 좌우하는 육수 제조법을 알아내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수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비법을 전수할 수 있었다. 북측 요리사는 박씨의 노력에 감동, 냉면 외에도 쟁반국수, 꿩고기 국수, 평양 왕만두, 회국수 등 다양한 요리법도 전수해 줬다고 한다.

평양옥류관 냉면 서울분점은 1999년 5월 3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3번지에서 역사적인 개점식을 했다. 이 자리에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 정대철 국민회의 부총재 등 여야 정치적 거물들과 조남호 서초구청장 등 VIP를 비롯해 음식점 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 등 300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 한마디로 성황을 이뤘다. 개점식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옥류관 개점 소식은 방송과 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최고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하루 매출액이 어마어마했다. 서울, 경기 지역 실향민들이 대거 몰려왔다. 부산, 목포에서 실향민 어른들은 옥류관 냉면 맛을 남한에서도 보게 됐다며 아침부터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줄은 100m 이상 길게 늘어나기도 했다. 대기표를 나눠줬다. 손님들이 지치지 않도록 그늘 밑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유명연예인, 기업인 등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아왔다.

특히 실향민 출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자주 들렀다. 정 회장의 고향은 현재 북한 지역인 강원도 통천이다. 정 회장이 방문할 때는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비서진이 며칠 전에 식당을 찾아왔다. “회장님은 움직이기 불편하시니 2층 룸에 못 올라가신다. 따라서 1층 홀에 칸막이를 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해달라.”는 등등의 주문을 했다. 정 회장 방문 당일에는 에디가 문 앞에 나가 직접 맞이했다. 정 회장은 동생인 정세영 회장 등 5∼6명을 대동하고 왔다. 에디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최고 기업가인 정 회장을 맞이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직접 앞치마를 하고 정 회장 일행이 식사하는 곁에서 음식을 날라주는 직원들을 거들었다. 정 회장은 식사 후 직접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다. 아마 에디 기억에 한번은 10만 원권 수표 3장을 밥값으로 꺼냈다. 에디가 “회장님이 찾아 주신 것만 해도 영광입니다. 돈은 안 내셔도 됩니다.”라며 밥값을 사양하자, 정 회장은 에디에게 귓속말로 “돈 벌자고 하는 노릇인데….”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그냥 나갔다. 그때 음식값은 28만 원이었다.

그해 10월에는 롯데그룹에서 전국 백화점에 분점을 내자고 했다. 특히 롯데월드 안의 인공섬에 공동으로 특별 분점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또 경기도 분당, 전남 목포, 대전 등지에 6개가량 분점을 내고 경기도 가평지역에 식품공장까지 만들어 회사를 크게 키우자고 했다. 금강산 사업을 벌이던 현대그룹에서도 여러 제안을 했다. 금강산을 방문하는 실향민들을 서울 옥류관 분점에서 1차로 식사를 하게하고, 강원도로 출발하도록 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장사가 워낙 잘 되는 데다 이미 전국에서 몰려와 줄까지 서서 기다리는 실향민 어른들 때문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옥류관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현대그룹이 옥류관 사업에 욕심을 냈다. 현대그룹은 옥류관 서울분점 사업의 성공을 보면서, 북한 아태평화위원회에 판문점 지역에 북한과 현대가 공동으로 150억 원을 들여 평양옥류관 분점을 열자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디 측과 공식적으로 계약하고 계약금까지 받았던 북한당국이 갑자기 합작사업을 거부했다. 나중에는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비난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북한의 비난을 MBC가 전하면서 옥류관 분점 사업은 점차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MBC는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 더 깊어진 가짜 의혹 평양옥류관 서울점’이라는 리포트에서 “평양옥류관 서울점이 가짜라는 의혹을 단독 취재해 보도한 바 있다.”며 “북한의 평양옥류관 측은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서, 옥류관 서울점과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MBC는 또 평양옥류관 서울점은 북한 중앙통신의 공식 발표가 있고 난 뒤에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고, 자신들의 계약에는 아무 하자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99/nwdesk/article/1782038_30729.html)

이 사건은 19년이 지나서도 화제가 됐다. 경향신문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평양냉면을 언급한 사실을 언급하며, 4월 27일 자 온라인판 서울에 ‘옥류관 서울분점’ 있었다는 기사에서 평양옥류관 서울분점 개점과 이후 소송전을 자세히 언급했다. 이 신문은 옥류관 서울분점은 비슷한 시기에 개포동에 문을 연 다른 평양옥류관이 상표권을 주장, 상표 등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분쟁에 휘말렸으나 소송은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고 전했다. 서울지법은 1999년 8월 24일 “두 업체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옥류관 분점을 추진해온 만큼 어느 한쪽에 남한 쪽 독점권을 인정할 수 없고, 어느 쪽이 북한 측으로부터 진정하게 분점 개설권을 취득한 업소인지 여부뿐만 아니라 과연 이 음식점들이 과연 북한 평양에 있는 옥류관의 분점에 해당하는지 여부조차 분명하지 않다.”며 가처분소송을 기각했다.
(https://www.khan.co.kr/politics/north-korea/article/201804271624001)

현대가 제안한 옥류관 판문점 프로젝트도 남북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북한과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 원조상표를 둘러싼 상표권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예고편으로 변리사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허법인 인벤싱크 김영두 대표 변리사는 ‘[상표 변리사 김영두] 평양옥류관 냉면을 서울에서 먹을 수 있을까…옥류관 상표권 분쟁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올린 블로그에서 옥류관 상표권 소송과 그 뒷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북한과 여러 산업교류가 활발해지면 연관된 상표 이슈도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https://blog.naver.com/jewson222/221267486214)

탈북 32년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북한 잊고 악착같이 돈 벌어라.”

에디는 귀순자, 정치적 망명자 신분으로 1990년대 초반에 남으로 내려온 귀순(탈북) 1세대이다. 북한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지 30년이 넘었다. 남한, 영국, 호주 등에서 청장년기를 보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에디는 이런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를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첫째 나이와 상관없이 가능한 남한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라. 대학교육도 좋고 전문기술학교 교육도 다 좋다. 미용, 요리 등 직업 기술도 좋다. 교육을 받으며 한국의 전문학교에서 남한의 학우들을 사귀고 동료의식을 깨우쳐야 한다. 앞으로 평생 벌어 먹고살 나만의 기술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빌딩 청소를 하려고 해도 청소 관련 지식과 기술을 익혀야 한다. 전문기술이 있으면 청소노동자로 취직해도 남보다 1.5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

둘째 북한에서 태어나 겪은 모든 가슴 아픈 기억을 모두 잊어라. 출신 성분 차이에 따른 차별과 그 속에서의 실패와 좌절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남한에 온 이상 자본주의의 꽃인 돈벌이에 집중해야 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라. 돈을 모으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돈을 번만큼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점차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북한에서 왔는지 어느 지방 출신인지 관계없이 사람 대접받고 살 수 있다.

셋째 종자돈을 만드는 기간(약 10년으로 본다)에는 탈북 동기나 고향 친구 또는 관련 기관 사람들과도 인연을 끊어라. 번 돈을 저축하고 돈이 쌓인 통장을 보면서 기쁨과 환희를 느껴라. 그 돈이 1억 원 이상 될 때까지는 북에서 배고프고 슬펐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다음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넷째 결혼은 가능하면 남한 사람과 해라. 북한 출신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끼리 결혼하려고 한다. 부부 둘 다 외로우면 더 서럽다. 가능하면 처가댁이나, 시댁이 있어 그들에게 의지하며 외로움을 푸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배울 점이 훨씬 많다. 남한 사람들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워야 자식들이 다문화 가정이란 말 안 듣고 살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만이라도 부모의 상처를 대물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섯째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 고향을 생각하며 부모 형제를 도와라. 남한에서 자리 잡고 어느 정도 살게 되면 당장은 행복하다. 하지만 나 때문에 고생하고 고초를 겪은 부모형제, 친척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 성공해도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고 그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그러한 자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금의 10%라도 그들을 위해 써야 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목숨을 걸고 탈북한 청년 에디의 한국과 호주 등에서의 삶을 응원해온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의 30년에 걸친 동행 취재기다. 모든 것을 걸고 두만강 여울을 건너온 대학생의 탈북 32년 다큐멘터리이다. 주인공인 에디는 실존 인물이다. 저자와 에디는 2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에피소드를 구상, 에디가 초안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사건을 당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했다고 한다. 이 책은 모든 내용이 사실에 근거를 둔 기록이지만 독자들이 읽기 쉽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에디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소설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에디는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9년 가까이 서울에서 대학생, 방송인 그리고 사업가로 활동하다 호주로 이민을 떠나 회계사가 됐다. 탈북 귀순자 신분으로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된 1995년 3월 말, 에디는 고려대 캠퍼스에서 연합뉴스 김재홍 기자를 만났다. 둘은 처음 만나 고려대 근처 안암동 골목 오소리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에디가『북한의 지리여행』(서울:문예산책, 1995)이라는 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 게 30년 동행의 시작이 됐다고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열풍이 불 때였다. 에디는 북한에서 청진광산금속종합대학 지구물리탐사학과를 다녔다. 지리탐사 실습을 위해 북한 곳곳을 다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조선 전역을 답사한 북한판 조선시대 김정호를 닮았다.

이 책 출간 이후 에디는 KBS 북한 관련 프로그램 ‘남북의 창’에 고정 출연자가 됐다. 이어 『평양 가서 돈 버는 108가지 아이디지리여행』등 북한 관련 책들을 잇따라 출간했다. 사업에도 손을 대어, 평양옥류관 서울분점을 강남에 열었다. 실향민 등 전국에서 온 손님들이 옥류관 냉면 맛을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어학연수 겸 유학을 떠났고 아이들 장래를 위해 호주 이민을 결행했다. 에디 아내가 시드니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 호주 시민권자라는 점도 호주 이민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 생활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골프장 청소원, 우버 기사, 카센터 세일즈맨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당장의 생활안정도 중요하지만 늙어서 자식들에게도 존경받으려면, 에디는 전문직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려대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력을 살려 호주에서 경영대학원(MBA)에 진학, 회계사(IPA) 자격을 취득했다. 덕분에 회계사와 대북투자전문가로서 성공 궤도에 올라서게 됐다. 호주에서 북한 지하자원 투자전문 회계사로도 인정을 받았다. 에디는 북한의 지하자원이 남한과 북한, 한반도가 공존 번영하는 데 미래의 금맥이 될 수 있게 기여하고 싶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선천성 신장기형이 에디 몸에서 발견됐다.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몇 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절망 끝에 기적이 찾아왔다. 에디 몸에 아내의 신장을 이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신장 하나를 내어준 아내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서 인천항을 통해 한국으로 귀순, 자유의 새 삶을 얻었는데 또 한 번 생명을 얻었다.

시한부 삶에서 벗어나자, 탈북 32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삶이 될 것 같았다. 에디는 북한, 한국, 영국, 호주 등 체제와 환경이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다. 환경과 언어, 체제가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 등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호주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누구보다 잘 적응할 수 있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디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개성상인의 DNA가 자신의 심장을 두드려 깨웠다고 생각한다. 개성상인 DNA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성공에 대한 욕구이자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요즘 세계가 주목하는 K-기업가 정신과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디는 또 북한을 떠나온 후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이 책에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이와 상관없이 가능한 남한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라. 남한에 온 이상 자본주의의 꽃인 돈벌이에 집중해야 한다. 돈을 모으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돈을 번만큼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다.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하면 고향을 생각하며 부모 형제를 도와라. 등이다. 필자는 이 책에 나온 에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호주에서 에디의 끝없는 도전은 탈북자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남과 북 그리고 새로운 한반도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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