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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계단과 불에 탄 축대
The forty steps and the fire-burned terrace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승리 The ture victory is the one for the people of the country 위트컴 장군의 한국 사랑, 부산 사랑 Gen Whitcomb's love for Korea and Busan 한복 입고 모금에 나선 위트컴 장군 Gen Whitcomb dressed in Hanbok on the road for fundraising 부산의 도시 기능을 살리다 The restoration of city function of Busan 부산대의 미래와 한국 청년의 도약을 위해 For the future of Pusan National University (PNU) as well as the Rise of the young generations in Korea 한국유엔기념공원에 잠든 유일한 장성 The only general buried in the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ary in Korea (UNMCK) 한국 고아의 아버지 The father of Korean orphans 장진호에서 싸운 미 해병을 기억하라 Remember the US marines who fought in Chosin reservoir (Jangjinho) 마미를 부르며 하늘나라로 간 미군들 The US soldiers who went to Heaven calling ~ Mommies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추서된 위트컴 장군 Gen Whitcomb, who posthumously honored by Mugunghwa Medal of Order, Civil Merit of Korea 한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위트컴 장군 Gen Whitcomb who loved Korea more than Korean peo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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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컴 장군님이 미국으로소환되었대. 감옥에 갈 수도 있대. 이 텐트하고 침대, 이불, 식량 같은 게 전부 군수물자라는 거야. 군인들을 위한 물자를 민간인한테 준게 큰 죄라고 하네."
박씨 아저씨의 말에 어른들은 우리 때문에 장군님이 벌 받으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어. "I heard the news that Gen Whitcomb was summoned to his country. He could go to jail for his misconduct of giving us beds, blankets, foods, etc, which were meant to be military supplies. It is said to be unlawful in the US to use military supplies for civilian use." The people were frightened to hear Mr. Park's comments and worried that Gen Whitcomb would get in trouble for helping us. --- p.24~25 "영도구 피란민촌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산원을 마련할 겁니다. 앞으로 거기서 아기를 낳으면 됩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위트컴 장군님이 참 고마웠어. 그날 위트컴 장군님이 메리놀병원을 아주 크게 지을 거라고 말했어. "미국에 불려갔다가 돌아올때 받아온 구호금으로 AFAK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미군대한원조처'라는 뜻입니다. 이 단체에서 많은 일을 할 텐데 메리놀수녀의원을 지상 3층 16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He announced, "We will build a maternity ward at the refugee camp in Youngdogu, so women can give birth there in the future." I was happy to hear the news and extremely grateful that Gen Whitcomb was thinking about every aspect of our lives. Later that day, he announced the plan to build Maryknoll Hospital. "While I was back in the US, we received a grant which enabled us to establish AFAK (Armed Forces Aid to Korea). This organization will do much good for Korea, including a plan expand the Maryknoll Sister's clinic to a general hospital, which will have three floors and 160 beds." --- p.32~33 어느날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을 봤어. 키가 크고 덩치가 큰 위트컴 장군님이 한복에다 갓까지 쓰고 있었거든. 늘 군복 차림이던 위트컴 장군님이 한복을 입고 있으니 이상했어. 왜 그런 모습으로 거리를 누비는지 아줌마들의 대화로 곧 알게 됐어. "장군이라는 사람이 체신머리 없이 왜 저래." "그런 말 마. 눈길을 끌어 모금을 많이 하려고 그러는 거지." "얼마나 고마운 분인데. 늘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야." One day, I was shocked to see Gen Whitcomb, who was very tall, dressed in Hanbok, completed with Gat (Korea traditional hat) on his head. It was odd to see him in Hanbok, since I was used to seeing him in his military uniform. But I soon found out why he was walking around in Hanbok from the village women who were gossiping. "What made him behave like that? Isn't he a general?" "Hey, don't talk about him like that. He is trying to get people's attention for fundraising." "We should be thankful. He is always trying to help us." --- p.4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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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 화마와 가난으로 고통받는 부산 시민을 도운 진정한 영웅
전쟁 고아를 도운 ‘한국 고아의 아버지’,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유일한 장성 위트컴 장군 사후 40년 만에 최고 영예인 무궁화장 추서 위트컴 장군은 제1·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안 전투’에서 공을 세워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훈장인 제1무공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준장으로 입대해 한국에서 복무했다. 위트컴 장군이 부산역 화재 사건 때 군수물자를 민간인에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본국에 소환되어 청문회에 불려 나갔을 때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당당히 말해 의원들을 감동시켰다. 미국에서 조성해온 자금으로 AFAK(미군대한원조처)를 설립하고 5년 동안 6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부산의 도시 기능을 살리고 메리놀병원을 비롯한 여러 병원을 돕고, 부산대학교 부지 조성 등 수많은 사업을 펼쳤다. 70년 전의 600만 달러면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위트컴 장군은 메리놀병원 건립 때 거리에서 한복을 입고 모금을 펼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아울러 미군 장병들에게 월급의 1%를 기부해달라고 호소해 기부금을 모았다. 위트컴 장군은 88개 미군부대를 부산지역의 각 기관과 연결해 자원봉사를 펼치게 하고 각종 기부 물품을 전달하게 했다. 위트컴 장군은 예편 후 한국에 남아 온 생을 바쳐 한국을 사랑했다. 민간단체인 한미재단을 설립해 전국의 많은 고아원을 돕는 과정에서 만난 한묘숙 원장과 결혼하고 한국에서 살다 한국에 묻혔다. 위트컴 장군은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는 유일한 장성이다. 숭고한 그의 삶은 2011년경부터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고 뒤늦게 공적을 인정받아 2022년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부산시는 시 차원에서 위트컴 장군 기념사업에 나섰고, 그 사랑에 감동한 3만여 부산 시민의 정성으로 동상을 세웠다. 위트컴 장군의 선행은 오랜 기간 묻혀 있었다. 늦었지만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한 위트컴 장군에게 감사하고 그 사랑을 기려야 하며, 그 정신을 이어받아 사랑 전파에 나서야 한다. 이 책의 그림은 북한을 탈출해 자유의 품에 안긴 이진주 학생이 그렸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이진주 학생이 평안남도 군수동원과 박격포탄연구소 제1보위대에서 복무하다 탈북했다는 사실에서 6·25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쟁임을 살감하게 된다. 6·25전쟁은 큰 슬픔이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깊은 사랑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위트컴 장군의 일대기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안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