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시크릿 파일 서해전쟁+타깃 차이나
전3권
가격
48,000
10 43,200
YES포인트?
2,4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이 상품은 YES24에서 구성한 상품입니다(낱개 반품 불가).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 서문 / 해제 / 들어가는 말

제1부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일본 점령
| 제1장 | 왜 읽기 쉬운 일본 전후사인가?
| 제2장 | 패전과 함께 미국의 군사점령이 시작되다
| 제3장 | 점령기 미국은 어떻게 일본을 통치했나?
| 제4장 | 일본의 신헌법체제가 미국의 손에서 열리다

제2부 냉전冷戰시대의 서막과 일본의 경제성장
| 제5장 | 공산당의 전쟁 방파제로 일본을 이용하다
| 제6장 | 불평등한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
| 제7장 | 독립과 함께 밀려온 미국 종속의 파도
| 제8장 | 자주노선의 기치를 내건 정권들

제3부 일본의 정권 교체와 미국의 음모
| 제9장 | 보수 합동과 안보조약 개정
| 제10장 | 진보 세력을 이용했던 미국의 과감한 획책
| 제11장 | 자민당과 경제성장의 시대
| 제12장 | 오키나와 반환에서 중일 국교 회복까지
| 제13장 | 미국을 향한 자주와 종속의 치열한 싸움

제4부 냉전이 종결되고 미국에게 일본이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다
| 제14장 | 냉전 종결과 미국의 변용
| 제15장 |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후 세계

나오는 말 / 역자 후기 / 부록 (포츠담 선언 | 항복문서 | 전후사 연표) / 찾아보기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 서문 / 해제 / 들어가는 말

제1부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일본 점령
| 제1장 | 왜 읽기 쉬운 일본 전후사인가?
| 제2장 | 패전과 함께 미국의 군사점령이 시작되다
| 제3장 | 점령기 미국은 어떻게 일본을 통치했나?
| 제4장 | 일본의 신헌법체제가 미국의 손에서 열리다

제2부 냉전冷戰시대의 서막과 일본의 경제성장
| 제5장 | 공산당의 전쟁 방파제로 일본을 이용하다
| 제6장 | 불평등한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
| 제7장 | 독립과 함께 밀려온 미국 종속의 파도
| 제8장 | 자주노선의 기치를 내건 정권들

제3부 일본의 정권 교체와 미국의 음모
| 제9장 | 보수 합동과 안보조약 개정
| 제10장 | 진보 세력을 이용했던 미국의 과감한 획책
| 제11장 | 자민당과 경제성장의 시대
| 제12장 | 오키나와 반환에서 중일 국교 회복까지
| 제13장 | 미국을 향한 자주와 종속의 치열한 싸움

제4부 냉전이 종결되고 미국에게 일본이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다
| 제14장 | 냉전 종결과 미국의 변용
| 제15장 |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후 세계

나오는 말 / 역자 후기 / 부록 (포츠담 선언 | 항복문서 | 전후사 연표) / 찾아보기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 서문 / 해제 / 들어가는 말

제1부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일본 점령
| 제1장 | 왜 읽기 쉬운 일본 전후사인가?
| 제2장 | 패전과 함께 미국의 군사점령이 시작되다
| 제3장 | 점령기 미국은 어떻게 일본을 통치했나?
| 제4장 | 일본의 신헌법체제가 미국의 손에서 열리다

제2부 냉전冷戰시대의 서막과 일본의 경제성장
| 제5장 | 공산당의 전쟁 방파제로 일본을 이용하다
| 제6장 | 불평등한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
| 제7장 | 독립과 함께 밀려온 미국 종속의 파도
| 제8장 | 자주노선의 기치를 내건 정권들

제3부 일본의 정권 교체와 미국의 음모
| 제9장 | 보수 합동과 안보조약 개정
| 제10장 | 진보 세력을 이용했던 미국의 과감한 획책
| 제11장 | 자민당과 경제성장의 시대
| 제12장 | 오키나와 반환에서 중일 국교 회복까지
| 제13장 | 미국을 향한 자주와 종속의 치열한 싸움

제4부 냉전이 종결되고 미국에게 일본이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다
| 제14장 | 냉전 종결과 미국의 변용
| 제15장 |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 후 세계

나오는 말 / 역자 후기 / 부록 (포츠담 선언 | 항복문서 | 전후사 연표) / 찾아보기

저자 소개 4

마고사키 우케루

관심작가 알림신청
 

孫崎 享

1943년생, 1966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외무성에 입성. 36년간 외무성에서 근무한 외교 관리. 주 우즈베키스탄대사, 국제정보국장, 주 이란대사를 거친 뒤 2009년까지 방위대학교 교수 및 쓰쿠바대학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 국제문제에 관련된 매스컴 해설자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빈번히 출연하고 있다. 트위터(@magosaki_ukeru)의 3만 9천 명이 넘는 팔로어와 함께 ‘독도’ 문제 등 소신 있는 발언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에는 『미일 동맹의 정체―미로 속의 안전보장』, 『불유쾌한 현실―중국의 대국화, 미국의 전략 전환』, 『일본의 영토문제―독도, 센카쿠
1943년생, 1966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외무성에 입성. 36년간 외무성에서 근무한 외교 관리. 주 우즈베키스탄대사, 국제정보국장, 주 이란대사를 거친 뒤 2009년까지 방위대학교 교수 및 쓰쿠바대학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 국제문제에 관련된 매스컴 해설자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빈번히 출연하고 있다. 트위터(@magosaki_ukeru)의 3만 9천 명이 넘는 팔로어와 함께 ‘독도’ 문제 등 소신 있는 발언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에는 『미일 동맹의 정체―미로 속의 안전보장』, 『불유쾌한 현실―중국의 대국화, 미국의 전략 전환』, 『일본의 영토문제―독도, 센카쿠, 북방영토』 등 다수가 있다.

마고사키 우케루의 다른 상품

1966년생이다. 제14, 15, 16대 국회에서 국방 비서관 및 보좌관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국방전문위원, 이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유일한 민간인 행정관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냈다. 군사 전문지 [디펜스21+] 편집장을 맡아 운영했다. 국방부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위원과 평화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등을 맡았고,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군사안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종대의 다른 상품

해제문정인

관심작가 알림신청
 

文正仁

연세대학교 명예특임 교수,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 분교(UCSD) Krause 석좌 펠로우이며,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활동 중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켄터키 대학과 윌리엄스 대학, 그리고 듀크 대학 등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이후 연세대학 국제학대학원과 통일연구원 원장, 그리고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장과 다보스 포럼 교수 요원을 지낸 바 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연세대학교 명예특임 교수,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 분교(UCSD) Krause 석좌 펠로우이며,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활동 중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켄터키 대학과 윌리엄스 대학, 그리고 듀크 대학 등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이후 연세대학 국제학대학원과 통일연구원 원장, 그리고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과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다.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장과 다보스 포럼 교수 요원을 지낸 바 있다.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한 유일한 학자로서,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중동은 물론 북한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인적 연계망을 가진 ‘국제적 마당발’이다. 세계적인 저명 학술지와 각종 논문집에 300여 편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The Future of East Asia (2018), The Sunshine Policy (2012), 그리고 『중국의 내일을 묻다』(2010)를 비롯해 50여 편의 영문 저서와 편저가 있다.

문정인의 다른 상품

1984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1994년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박사 학위 취득.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교수,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현대일본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한일교류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일본분과위원장 등 역임. 2012년 일본 릿쿄대학에서 강의, 일본국제교류기금 펠로십 도호쿠대학에서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와 (사)한일미래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일본의 영토분쟁』(번역),『2010년 한일 지성의 대화』(공편), 「일본민주당의 정책노선과 생활정치」, 『신한일관계론』(공저), 『일본지역연구』(공저)
1984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1994년 일본 게이오대학 정치학박사 학위 취득. 미국 듀크대학교 방문교수,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전문위원, 현대일본연구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한일교류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일본분과위원장 등 역임. 2012년 일본 릿쿄대학에서 강의, 일본국제교류기금 펠로십 도호쿠대학에서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와 (사)한일미래포럼 운영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일본의 영토분쟁』(번역),『2010년 한일 지성의 대화』(공편), 「일본민주당의 정책노선과 생활정치」, 『신한일관계론』(공저), 『일본지역연구』(공저), 『일본의 지방정부와 정책 과정』 등이 있다.

양기호의 다른 상품

저자 : F. 윌리엄 엥달
1944년 8월 9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독일계 미국인이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공합과 법리학을,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원에서 전략경제학을 전공했다. 현재 뉴욕과 유럽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제회의에서 지정학·경제·에너지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경제 전문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국 내 여러 매체를 비롯해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시사월간지 [포사이트], 그랜트의 인베스터닷컴, [유러피언 뱅커], [비즈니스 뱅커 인터내셔널] 등 다수의 간행물에 정기적으로 기고해왔다. 저서로는 《전방위 지배》, 《파괴의 씨앗 GMO》,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등이 있다.
역자 : 유마디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대학 졸업 후 중국 국무원(國務院) 산하 신문출판국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월간조선]에 기고했다. 2010년 [주간조선]에 입사해 현재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중국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베이징(北京)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고, 칭화(?華)대학에서 국제발전학(MID) 석사를 마쳤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800g | 153*224*15mm

출판사 리뷰

이 책은 1945년 패전 후의 현대 일본사를 미국에 대한 자주파와 친미파 간의 대립, 갈등, 대결 구도로 해석했다. 미국이 일본 내 친미파를 육성, 지원해 정ㆍ재ㆍ학 관계에서 헤게모니를 잡도록 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36년간 일본 외무성 고위 관료로 재직하며 우즈베키스탄, 이란, 이라크,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일본 대사 및 영사로 부임했던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가 『일본의 영토분쟁』에 뒤이어 다시 한 번 일본에서 금기시 되고 있는 위험한 이슈를 들고 돌아왔다. 신간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 일본의 사례, 1945-2012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실질적으로 미국의 군사 식민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껏 미국을 추종하는 세력이 정?재계에 주류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일본의 국익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봉사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매우 예민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 2012년 출간 즉시, 정치와 시사를 다룬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20만 부 이상 팔리며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미국과의 굴욕적인 외교, 그 시작은 충격적인 패전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은 연합군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다시는 군사대국의 꿈조차 꾸지 않겠다는 천황의 맹세와 함께 연합국 총사령부의 일본 통치가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사실상 미군의 군사점령을 받은 것이다. 일본이 패전기념일을 종전일(終戰日)로 명명한 것은 “일본은 망했다. 무조건 항복했다.”라는 수치스러운 기억을 애써 무시하려는 자기 암시와 같았다. 패전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데서, 전후 새로운 일본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고, 미국의 세계 패권주의와 동아시아 지배 전략에 서서히 말려들면서, 미국 추종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 전후사는 “뼛속 깊이 친미”에 기반을 둔 요시다 노선과,
“자주적인 일본 우선”을 품은 이시바시의 대결로 점철된다.

“기대려면 큰 나무에 기대자!”를 주장한 점령 초기 요시다 시게루 외상. 그는 외무대신부터 수상으로서의 장기집권기까지 시종 일관 전후 일본을 미국 추종노선의 길로 인도한 장본인이다. 반면 미국에 저항하며 “우리의 주장이 맞다.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시바시 탄잔, 그의 계보를 잇는 자주적인 지도자들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자주노선을 주장하다가 미국과 틀어지게 된 거물급 정치인들이 권력에서 쫓겨나고, 심지어 의문의 죽음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구체적인 사료와 외교 현장에서의 경험, 그리고 해박한 지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미 자주파를 대미 추종파로 바꾸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미국이 일본의 자주파를 친미파로 바꾸는 시스템은 일본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고, 대표적으로 일본의 검찰과 언론이 이를 담당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검찰과 언론을 통해 달갑지 않은 일본 수상을 제거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가동되는지 저자는 구체적인 사료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가령 미국 대통령이 일본 수상을 잘 만나주지 않고 주요 언론이 문제로 삼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정권 유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시바시 탄잔은 패전처리비 삭감을 주장하다가 공직에서 추방되었고,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은 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다가 의문의 급사를 당했다. 소련과의 국교 회복을 추진한 하토야마 이치로 수상 또한 공직에서 추방당했고, 미군의 유사시 주둔 안을 주장했던 아시다 히토시는 쇼와전공 사건으로 정계에서 강제 은퇴 당했다. 미국보다 먼저 중일 국교 정상화를 주장한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 역시 록히드 사건으로 정계를 떠났다. 자위대 군사 협력을 거부했던 다케시타 노부루는 내각 총사직했고, 금융정책에서 독자 노선을 걸었던 하시모토 류타로 역시 일본치과연합회 사건으로 파벌회장직을 사임했다. 주일미군 감축을 추진했던 오자와 이치로도 리쿠잔카이 사건 등으로 강제 기소되었다. 이 외에도 미국의 뜻에 반했던 수상들이 정권은 물론 목숨까지 위태로운 경우가 많았다. 그 배후를 조종한 미국의 실체를 구체적인 사료와 고증으로 쉽게 풀어나간 저자의 탁월함이 본문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미국에 밉보인 지도자들의 잇단 실각과 죽음
미국에 의해 일본의 지도자들만 매장당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 미국의 총애를 받던 지도자들이 하루아침에 이용가치가 사라지면서 권력에서 축출되고, 심지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경우는 세계 도처에 있다. 미국의 바뀐 세계전략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죄목이다. 친미파의 대부였던 요시다 수상이 일본의 재군비를 반대하다가 수상 직을 내려놓았고, 미국에 적극 협조했던 이란의 팔레비 국왕 또한 미국에 의해 축출되었다. 2011년 이집트와 튀니지 독재자를 무너뜨린 ‘아랍의 봄’도 그런 경우였다. 패망한 월남 고딘디엠 대통령이 살해된 것이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처형된 것도 모두 미국이 개입된 사건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도 비슷한 시각에서 해석하며, 당시 한국 외교가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박정희는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미국에 협조적이었지만, 점차 민족주의 경향이 짙어지며 독자적으로 핵무기개발 계획 등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미움을 산다. 박 대통령은 암살당하기 앞서, 카터와의 정상회담에서 카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안보강의를 일방적으로 늘어놓았고, 미국이 청와대에 도청기를 설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대사관에 도청기를 설치함으로써 미국의 분노를 샀다.

일본의 학계가 친미파가 되기까지
…미국은 어떻게 이들을 조종했나?

교토대학이나 도쿄대학 등 일본 최고의 지성 가운데는 유난히 미국 추종주의가 만연해 있다. 전후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일본 국민은 가난과 기아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구체적인 데이터와 사료를 가지고 철저히 반박한다. 미국이 일본에 지원했던 생활안정 기금과 일본이 미군 주둔 경비로 지불했던 비용을 비교하면 오히려 일본이 미국에게 몇 배 더 경제적인 착취를 당했다는 것이다. 1996년 2월, 하시모토 수상이 뉴욕 강연에서 발언했던 대로,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팔기라도 한다면 미국은 언제 부도국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왜 일본의 많은 학자들이 미국을 떠받들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 뿌리를 점령기 일본을 원조한 GARIOA EROA 자금과 풀브라이트 장학금에서 찾는다. 미국이 지원한 생활자금이 대거 일본 엘리트들의 유학비용으로 사용되었고, 많은 유학생들이 귀국 후 미일 관계 강화를 위해서 움직였다. 특히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등 유명 대학에 미국학회를 만들어 자금을 지원하며 정신 교육을 한 것이 일본 학자들이 친미로 일관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원전 찬성파의 기세는 더욱 높아졌는데
…지진 대국 일본에 원자력발전이 총 54기나 되는 이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여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방사선이 누출되어 한때 도쿄를 포함한 동일본 전 지역이 거주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퍼져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원자력발전소가 지진 대국인 일본에 총 54기나 존재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일본에 원자력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54년 제5 후쿠류마루 호 피폭 사건 이후였다.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던 중 참치조업을 하던 제5 후쿠류마루 호 선원들에게 방사능이 노출된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는 미국에 대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를 무마하려는 미국과 이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 한몫을 잡으려는 일본인들이 손을 잡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운동을 벌임으로써 지진 위험국 일본이 원자력이라는 폭탄을 끌어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에는 원전 폐기는 좌익, 원전 찬성은 우익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친미와 자주 세력의 대립만큼이나 일본의 운명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미국,
…이번에는 TPP로 일본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고도로 성장했지만, 그것은 결코 일본의 자립적인 성취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냉전과 한국전쟁 발발로 미국의 대일 전략은 180도 바뀐다. 195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한 것은 미국의 냉전시대 전략의 일환이었다. 냉전시대가 끝난 1991년 이후부터, 미국의 적이 소련에서 일본으로 바뀜에 따라 CIA의 대일 공작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의 상징인 록펠러센터나 컬럼비아 픽처스 등을 일본 기업이 싹쓸이하면서 위험을 느낀 미국은 일본의 경제를 끌어내리려는 계획에 돌입했다. 걸프전쟁에 인적, 물적 공헌을 요구하며 일본에게서 13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챙겨간 것도 모자라 자위대 파견까지 강요했다. 고이즈미 정권이 추진한 우정민영화도 실은 미국 국채를 사라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었고, 현재 추진 중인 TPP(Trans-Pacific Partnership,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또한 일본 경제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TPP는 일본의 중국 접근을 막으려는 전략이자, 동시에 미국의 심각한 경제 부진을 해결하고자 서비스 부문을 일본에 개방하려는 속셈에 불과하다.

이 외에도 미국의 대일 공작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집요하게 진행돼 왔다는 증거를 저자는 충분히 들고 있다. 오히라 집권 시절에는 미일 동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스즈키 수상은 새로운 군사적 노력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나카소네 수상은 스스로 방위 분담을 하겠다고 표명했다. 수상들의 이런 노선은 결코 일본의 목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한미 관계는 미일 관계보다 훨씬 더 긴박한 순간이 많았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젊은 미군들이 피를 흘렸다. 미군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한국 문제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개입한 사례는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저자는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일본의 전후사를 통해 우리도 한미 관계의 교훈을 얻기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의 자주외교를 추구할 때 두 가지 사안에서 반대하는데, 하나는 주일미군 기지 축소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이다. 2013년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는 우리 역시 자주외교의 현안이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인 마고사키 우케루의 시각은 이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
미드보다 재미있는 논픽션
“대한민국을 둘로 갈라놓은 NLL 해역의 진실”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한국의 안보를 생각한다.


** 이 책은...
제1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12년 동안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 전투를 통해 서해의 교전을 일으킨 원인과 상황, 그리고 그 이면에 숨은 정치?외교 상황을 담은 안보 논픽션. 다섯 차례 전투는 모두 위기관리에 서툰 해군과 합참, 비합리적인 국방부와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합작품임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대한민국 안보의 무력한 맨얼굴을 볼 수 있다. 안보 분야에서 민간인 최고의 전문가인 《디펜스21+》의 김종대 편집장이 당시 현장의 최전선에 있던 수십 명의 장성, 전문가를 인터뷰한 끝에 서해 위기의 내막을 밝혀냈다.

** 이 책에서 처음으로 밝혀지는 사실들
《NLL 해역에서의 교전에 대해 수십 명의 전현직 장성이 입을 열다》
서해 전쟁은 지난 3년여 간 청와대, 국방부, 합참, 한미연합사, 2함대의 작전부서를 거친 등 수십 명의 예비역 장성과 현역장교, 전문가들의 증언을 모아 엮어졌다. 장성들은 대부분 실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은 보수냐, 진보냐는 구분을 떠나 국가 안보의 문제점과 대책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남북 간에 교전이 벌어진 구체적 상황과 사소한 요인까지 들춰지면서, 이제껏 우리가 알던 바와 전혀 다른 뜻밖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1. 다섯 차례 서해 전투의 진실은 정부 발표와 매우 다르다.

첫째, 1999년 6월 15일의 제1연평해전, 양쪽 모두 “쏘지 말라”고 했는데 왜 교전이 일어났는가. 남과 북의 해군은 똑같이 “절대 선제사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NLL에서 대치중이었다. 전혀 교전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총격이 발생했다. 군대가 명령을 어긴 것인가?
정부는 당시 ‘북한이 NLL을 도발해 와서 우리가 선체 충돌 방식으로 차단하다가 교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절반만 진실이다. 선체 충돌을 당한 북한군 병사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배 위에서 감자를 먹고 있었다. 전투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결정적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합동참모본부와 무능한 작전사령부가 그 중심에 있다.

둘째, 2002년의 6월 29일의 제2연평해전. 북한의 공격 징후가 있었기 때문에 2함대 사령관은 “북 함정과 3km 거리를 유지하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경비정은 북한 함정 150m까지 접근하여 느린 속도로 기동하다가 공격받았다. 왜 그랬을까.
함대 사령관은 결정적인 시기에 우연한 이유로 함대를 지휘하지 못했다. 여기에도 역시 합참이 상황 악화의 일차적 책임자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권이 바뀌자 일제히 전사자들을 영웅시하며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에 책임을 몽땅 전가하는 정치적 기회주의로 변신한다.

셋째, 2010년 3월 26일에 천안함 피격. 최접적 수역에서 최저속도로 기동하도록 해 마치 북 잠수정에 모든 공격 조건을 일부러 충족시켜주기라도 하는 듯한 기동을 한 이유가 뭔가? “이런 기동을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제독의 경고가 사건 일주일 전에 국방장관에게 전달되었고, 미군으로부터도 “북의 비대칭 도발에 대비하라”는 경고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해군의 설명을 믿지 않으려는 국방장관, 2함대와 극심한 갈등을 빚으며 시스템이 붕괴되는 합참, 그리고 군 전체를 믿지 못하는 청와대 사이에 조작과 기만, 암투가 벌어진다. 군은 또 천안함 피격 직후에는 중국 어선과 섞여 있는 북한 어선과 또 교전을 벌일 뻔한다. 그리고 합참의장의 부조리를 폭로하려던 연합사의 한 준장이 군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리고 진실은 또 은폐된다.

넷째, 천안함 피격 이후 서해상에서의 한미 연합해상훈련을 앞두고 미국은 한국의 오랜 숙원을 받아들여 “서해에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갑자기 이에 반대한다. “북한의 추가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한다”더니 무리한 포격 훈련을 벌여 북한의 연평도 맞대응 포격을 자초한다. 대통령은 지하 벙커에 숨어 “확전하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바로 그 다음 날부터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합참의장은 연합사령관과 설전을 벌이더니 “항공력으로 대응해도 되느냐”는 질문서를 보내고 연합사령관은 “한국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답변서를 보낸다. 합참의 장군들은 지휘권 행사 문제로 양분되어 논쟁을 벌인다. 전쟁할 줄 모르는 군대의 기이한 현상이 계속된다.

이런 의문을 쫓아가다 보면 이제껏 비정상적인 북한이 정상적인 우리를 위협하여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교전이 발생했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나타난다.

2. 북한이 알고 군도 아는데 우리 국민만 모르는 사실이 많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직후에 침몰된 참수리 고속정을 인양하자 우리 함정이 공격받으면서 단 1발도 제대로 응사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으나 국민은 지금도 모르고 있다. 북한은 당연히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아직도 당시 교전 상황은 해군에 비밀로 관리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영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참은 2010년에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12월에 연평도 부근에서 또 해상 사격훈련을 강행했다. 다음 날 언론에는 “북한이 우리 측의 단호한 태도에 겁을 먹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러나 사실은 그날 훈련에서 우리 측의 주력 화기인 K-9 자주포는 딱 1발이 발사됐다. 훈련도 1시간 만에 종료되었다. 합참은 그러나 어떤 화기를 얼마나 쏘았는지 국민에게 밝히지 않았다. 북한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
서해상 안보 위기 속에서 군이라는 조직은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결과의 논리’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적당의 논리’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북한이 알고, 한국군 관계자들이 아는 일을 우리 국민만 모르고 살아왔다. 청와대 특별조사까지 받아도 군은 여전히 희생자를 영웅시하고, 자신들의 실패와 실수, 무지는 덮는 것으로 일관해왔다. 이 결과 군의 기득권은 유지돼왔다.

3. 위기 속에서 실익을 챙기는 각 군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우리의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안보 위기 속에서 북한이 아닌 아군과 경쟁하고 갈등한다.
첫째, 3군과 해병대는 다른 조직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결과 바다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육군 주축의 합참이 해전을 주도한다. 해군 대령 하나에게 육?해군 장성 셋이 지시한다. 그 결과는 피할 수 있는 전투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격이다. 장병들의 희생이 이어진다.
둘째, 위기 중에도 권력과 명성에 집착하며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계산한다. 포상과 진급이라는 절대적 이익을 놓치려 하지 않기에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모든 잘못을 타 조직에게 전가한다. 결국 현실권력에서 앞서는 육군이 최종 승자의 자리를 유지하고 육군은 합참과 육본을 여전히 장악한다. 진실은, 은폐된다.
셋째, 위기 이후에도 서로 다른 조직 간에 감정적 알력과 갈등이 심화된다. 사후 대책은 모두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것으로 낙착된다. 그 대표적 결과가 ‘서북해역방위사령부’의 창설이다. 해병은 이 사령부 설치 이후 더 피곤해졌고, 전투력은 저하됐다.
정치 지도자들 역시 안보에 실패한 책임을 정치적 반대자에게 전가한다. 위기관리에서 처참하게 실패한 보수 정권은 색깔론 카드로 이 국면을 넘어갔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한 정치권력과 군의 책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야당과 진보 세력 같은 ‘종북론자’들이 전투 패배의 책임자인 양 상황이 호도된다.

서해전쟁은 종식되어야 한다
저자는 서해의 안전이 우리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일곱 가지 포인트를 통해 지금까지의 서해 전투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1) 국가의 핵심 이익이 있는 서해에서 남북한은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2) 남북한 간 분쟁에 편승한 강대국의 재균형 정책이 문제다.
3) 한국군 내 위기관리 전략과 시스템의 부재가 해역의 안정을 파괴했다.
4)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실종이 잦은 교전을 자초했다.
5) 작전본부와 사령부의 무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확전 요인이다.
6) 안보 실패를 국내 정치적 논란으로 확대한 정치권력이야말로 가장 큰 평화의 적이다.
7) 진실을 조작하고 감춘 결과 영웅은 속출하고 평화는 파괴했다.

아울러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험난하다고 예측한다. ‘안보 보수’ 세력이 계속적으로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한 평화가 더욱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안보 보수’ 세력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서해 평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에 이은 ‘메디치 WEA(Watching East Asia) 총서’의 두 번째 책. ‘메디치 WEA 총서’는 현재의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150년 만에 도래한 격변기로 설정하고, 동아시아 각국의 내부 사정과 외부 전략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여기서 동아시아는 지역 내에 자리 잡고 있는 남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대만 등 6개국을 지칭하며, 세계 해양세력의 대표이자 최대 패권국가인 미국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동아시아의 7대 상수를 개별 국가, 양자간, 다자간 조합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총서의 목적이다.
패권 국가로서 위기의식에 봉착한 미국이 8가지 전략(통화, 석유, 식량, 보건, 군사, 경제, 환경, 미디어)을 내세워 은밀하고도 치밀한 ‘중국 죽이기’에 나섰음을 보여준다. 현재로서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중국이지만, 중국뿐 아닌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주적’으로 삼고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일 패권 국가인 미국의 실상이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수상이던 파머스턴 경의 유명한 말처럼, 미국을 비롯한 패권 국가에게 “영원한 친구나 동맹은 없다. 오직 영원한 이해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대외정책을 펴온 미국이 중국을 비롯한 도전세력들을 어떻게 응징하고 있는지,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 중국의 내전을 이용해 정치·경제적으로 어떻게 유리하게 판도를 바꾸어나가는지 이 책이 하나하나 짚어줄 것이다.
저자는 독일계 미국인이자 미국 주류 사회가 싫어하는 대표적인 좌파경제학자·지정학자로서 동일한 논조의 저술을 계속해왔다.

미국의 패권을 떠받쳐온 두 개의 축, 군사력과 달러가 흔들리고 있다
저자는 미국이 1971년까지 유지된 브레튼우즈 체제를 포기한 이래 달러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의 부를 약탈하며 기생해왔다고 주장한다. 월가의 금융 세력들이 1973년 인위적으로 석유파동을 일으켜 달러 가치를 끌어올린 것을 비롯해, 1980년대 남미 등 제3세계의 부채 위기, 1990년대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화 충격 요법, 1997년 한국·말레이시아·태국 등을 강타한 아시아 금융위기를 교묘하게 조작해 이들 국가로부터 부를 빨아들여왔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군대를 파병하도록 여러 나라를 종용한 것 역시 중국을 견제하려는 방안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도움을 받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지속·강화함으로써 중국으로 들어가는 석유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이 담긴 행동이라는 것. 이 전쟁으로 미 정부는 엄청난 재정 적자에 빠지면서 군사적 실패를 맛보아야 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저자는 한국이 앞으로도 미국의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장차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음을 우려한다.

국제기구(WTO, IMF, WHO 등)를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다
미국은 1970년대 당시 미 국무부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말처럼, “식량을 통제하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했다. 그리하여 거대 농업기업과 합작해서 중국의 ‘음식 주권’에 공격의 토대가 될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킨다. 이후 2001년 빌 클린턴의 주도 아래 중국을 WTO에 가입시킴으로써 중국을 끝내 ‘국제화’라는 게임의 법칙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들 가입국들이 ‘승자’가 되기 위해 싸워온 방식이 아닌, 앞으로의 중국을 ‘패자’(loser)로 만들려는 속내가 감춰져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은 IMF를 앞세워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를 불구로 만들고 끝내 금융구제를 신청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말하자면 아시아 신흥국들이 미국의 달러 시스템으로부터 독립성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또한 중국을 겨냥한 약물 관련 아젠다를 기획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를 군사전략에 맞춰 ‘무기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미국은 다양한 국제기구를 대중국 압박 전략에 광범위하게 이용해온 사실이 이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인권 NGO 단체들을 훈련시켜 반중국 폭력시위를 부추기다
오래전부터 펜타곤과 기밀 첩보기관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권 NGO들을 동원해서 중국 접경지대를 비롯해 국경 안팎에서 일련의 작전들을 펼쳐왔다. 미얀마를 시작으로 티베트와 중국의 주요 석유 생산지인 신장위구르자치구까지 용의주도하게 소요사태를 조종해온 것이다.
특히 백악관은 서구에서 달라이 라마의 이미지가 높이 평가되는 것을 이용해,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중국 시위를 당시 망명 중인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대중국 항쟁과 연결시켜 중국의 인권을 문제 삼기에 이른다. 당시는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던 터라 미국에게는 티베트 항거의 배후에서 ‘색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티베트 국내외 현장에서 활동하는 NGO 단체들 대부분이 미 국무부나 CIA가 운영하는 단체들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 또한 1959년 인도로 추방되어 망명한 이래, 미국과 그 밖에 서구 첩보 세력 및 NGO들의 보호 아래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온 사실이 여러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다.

지구적 헤게모니의 일환, 중국으로 흐르는 전 세계 석유를 봉쇄하다
저자는 현재 중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에너지 위기를 미국의 봉쇄 전략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NATO 군대를 아프리카 지역에 주둔시킴으로써 중국이 전략적 석유 공급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해나간다. 또 미 육군에 아프리카 사령부를 신설해 아프리카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개입에도 나서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카자흐스탄에 새로운 송유관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계획을 방해하는 시도가 포함되어 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석유 및 가스 송유관이 바로 이곳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과 중국 사이의 에너지 관계는 양국 모두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의 대외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1997년 9~10월호)에서 밝힌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라시아는 세계의 중심축이 되는 초대륙이다.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권력은 서유럽과 동아시아에 대한 결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나아가 중동과 아프리카도 통제할 수 있다. 유라시아가 결정적으로 지정학적 체스판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유럽에 대해서는 이런 정책을 취하고, 아시아에 대해서는 저런 정책을 취할 수는 없다. 유라시아의 땅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1인자인 미국에게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p. 90)

펜타곤, 제약사와 결탁하여 신아편전쟁을 주도하다
중국의 힘과 영향력이 거대해지자 영미권 파워 엘리트들은 백신과 의약품을 앞세워 중국을 겨냥할 태세를 갖추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그리고 테드 터너는 ‘자선 활동’이라는 가면을 쓰고 세계 인구 감소 프로젝트를 후원하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출생을 통제하고 세계적으로 인구를 감소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을 겨냥한 약물 관련 아젠다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세계보건기구(WHO)였다는 것.
오늘날 중국은 영미권과 유럽의 제약사에서 생산하는 약품을 허가하거나 중국 현지 공장을 통해 약품을 생산하는 데 특별한 제약이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보면 1840년대 아편전쟁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전 세계 미디어를 장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엘리트들은 글로벌미디어를 통제하기 위한 막대한 자원 개발에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에 접어들어 미디어에 대한 막후통제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관영매체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그 과정이 워낙 교묘해 미국 시민들조차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일일이 조종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의 미디어 장악은 특히 전 세계 전쟁 지역에서 아주 유용하게 작용한다. 세계 주요 미디어들은 미군이 동행할 때만 전쟁터에 들어가 종군기자로 활약할 수 있기에, 미국은 전 세계로 퍼지는 언론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이집트 혁명’은 대규모 저항운동이라는 스토리 라인 속에 페이스북이 없었으면 이집트에 정권 교체란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미 정부의 ‘선제공격 전술’과 ‘민주주의 전파하기’의 패러다임에 미디어들 역시 협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 vs 한중 관계에서 이 책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오바마 행정부가 집권 2기를 맞아 군사·외교적 중심축을 기존의 유럽과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겠다고 천명한 ‘피봇 투 아시아’(아시아 회귀 전략)는 사실상 ‘피봇 투 차이나’ 정책이나 다름없다. 이에 맞서 중국도 군대를 강화시키고 단호하게 외교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맞불을 놓음으로써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와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 위협 및 군사 도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날로 증가하는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고려해 한중 관계를 확장시킬 것인가.
이 책은 미국을 바로 바라보고, 동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찰하며, 그 속에서 한국이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대응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한국에서 다양한 층위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와 월가 및 군수산업복합체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통상적이며 전혀 통상적이지 않은’ 수단들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 세계정부와 미국이라는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편재된 질서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들을 저하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안된 수단들이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판을 치고 있다. 이를테면 유전자변형 콩이나 옥수수의 수입, 통상 전쟁, 통화의 압박 그리고 군사정책 등이 그러하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이 외부 세력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때가 왔다.
― 한국어판 저자 서문 가운데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