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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존재의 미학으로 들어가는 길 예술과 존재의 역사 존재의 미학을 위한 주제들 1. 얼굴 2. 어여쁨 3. 거품 4. 뜻 5. 도시 6. 나도 모르는 무엇 7. 창조 맺음말: 오래된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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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출은 우연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필연이라는 것. 이 말은 어쩌면 예술가를 모두 장님으로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곁을 스치는 세계의 한 자락을 건드릴 뿐이라면 적어도 똑같은 작품의 반복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창조가 아니라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것의 의미를 밝혀내는 재해석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은 오직 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창조라고 부를 것입니다. 따라서 개성의 깊은 비밀은 여기에 있을 듯합니다. 그곳은 바로 작가의 자발적 압력과 필연의 사출이 만나는 경계입니다.
---p.341~342「창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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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삶이다, 존재의 미학이다
미셸 푸코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쾌락의 활용』과 『자기의 배려』라는 책 두 권을 남겼는데, 여기서 그는 '존재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재의 기술이란 바깥으로부터 행동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기술이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푸코는 이를 두고 '존재의 미학'이라고 했다. 스스로 자기를 다스린다는 뜻에서 '자기 통달의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책, 『존재의 미학』의 출발점은 여기다. 작품으로서의 삶, 삶으로서의 작품을 그려보기 위해 삶과 아름다움이라는 나침반 하나만 들고 떠난 탐사, 그 탐사의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타율성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문제, 즉 생명의 형성을 미학적으로 이해하는 문제는 푸코도, 들뢰즈도, 가타리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고 있었지만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했던 실로 대단한 과제였다. 이 책은 이런 어려운 과제를 한순간에 풀어내겠다는 꿈을 꾸지는 않는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존재의 미학을 위한 주제의 단편들이 앞으로 누군가에 의해 완성될 본격적인 존재의 미학을 위한 소묘쯤으로 쓰일 수 있다면 기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이 꿈꾸는 것이 비록 소박한 것일지라도 그 소묘의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독자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상의 언어로 섬세하게 그려낸 존재의 미학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자기표현의 과잉에 시달린다. 작가 자신이 주제가 되고 예술 자체가 주제가 되어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에 무관심과 무감동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 지점에 '존재의 미학'을 끌어들인다. 존재들은 세계에 속하지만 세계는 존재들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우리에게 외부로 존재하며 이 세계와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우리 삶이 왜 개인적인 주관을 넘어서 외부와 이어져 있는지는 우리 몸이 유한하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숨 쉴 공기가 없으면 목숨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삶이 이루어지려면 수많은 사물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나의 삶을 위해 사물들을 불러 모으는 결합력이 곧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를 깨닫는 감성은 삶을 헤아리는 마음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삶을 헤아리는 마음은 예술과 연결되어야 한다. '생의 기록으로서의 예술', 이것이 진정한 창조인 것이다. 미학의 대중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지만 아직도 우리 서가에는 학문적 이론만 나열하거나 '미학'이라는 이름만 멋들어지게 갖다 붙인 책들이 넘쳐난다. 삶과 아름다움, 삶과 예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미학 책이 기다려지는 이때, 『존재의 미학』이 그 목마름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풍부한 감성과 독창적인 시야를 통해 새롭게 그려낸 세밀화 이 책은 '존재의 미학'이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책에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을 갖추고 있다. 지은이는 경어체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길을 마련하고,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문학과 회화를 넘나드는 풍부한 감성으로 우리의 삶과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탐색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의 미학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수의 독창적인 예와 연결 고리들을 등장시켜 논지의 설득력을 더한다. 우리는 인간과 고기에 관한 들뢰즈의 사상을 엿보면서 『수호지』에 나오는 장청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고, 생명과 삶을 닮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동기창을 떠올리면서 존재의 미학을 꿈꾸던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난초에 사람의 얼굴을 담아냄으로써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려내지 못했던 무한한 주체의 생성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일순을 만나볼 수 있고, 삶을 기록하는 예술의 전형을 보여준 온 카와라와 강선학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자로 잰 듯한 기하학적인 형상에 매달려 시간의 변화를 거스르고 육체와 권력의 쇠퇴를 거역하려 했던 로마인들의 모습과 인간적 규모를 넘어서는 대형 광장을 건설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도시의 소음이요 송충이 취급을 받으며 외곽으로 쫓겨나면서도 도시의 중심으로 되돌아오곤 했던 토막민들의 삶과 서울의 중심에 기거하며 기존 체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노숙자들의 모습을 병치시켜볼 수도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의 논지를 따라가다가 문득 자신이 얼마나 낯선 곳에 와 있는지를 발견하며 신선한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존재의 미학으로 들어가는 길'과 '존재의 미학을 위한 주제'로 나뉜다. '존재의 미학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예술 개념의 성립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예술과 존재의 역사를 다룬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둘러싼 주체의 성립과 재난, 그리고 광기의 등장까지, 본격적인 존재의 미학을 위한 소묘에 앞서 간략하게 예술사를 되짚어본다. '존재의 미학을 위한 주제'는 총 일곱 가지이며 이 주제들은 모두 아름다움과 부정(不正)의 관계라는 큰 축으로 모아진다. 1. 「얼굴」에서는 '생명'을 이야기한다. 얼굴이라는 주제를 두고는 헤겔과 들뢰즈를 맞대볼 수 있다. 보편주의를 지향했던 헤겔과 해체주의를 지향했던 들뢰즈, 이 둘이 생각했던 예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헤겔이 서로 다른 정신들의 광범한 동일화를 시도하는 예수의 얼굴을 이야기했다면 들뢰즈는 유럽인의 얼굴과 정신을 지배하는 예수 얼굴의 해체를 이야기한다. 이 둘의 사상은 극명한 대립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둘의 화해를 이야기한다. 즉 보편성을 차마 이룩할 수 없는 이념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허허롭게 떨쳐버리려는 절대 자유 또한 단지 꿈에 불과할 수 있으니 이 두 이념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 두 이념의 공존의 실마리를 생명의 흐름에 주목한 들뢰즈의 사상에서 찾는다. 들뢰즈는 '삶의 선'이라고 해도 좋을 생명의 흐름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제도의 경직성이며 이 흐름을 다시 터놓으며 이 약동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보았다. 더 큰 생명의 흐름을 놓고 보면 사회제도가 부여한 모든 것은 인위적인 외피에 지나지 않으며 이 껍질을 벗어날 때 생명의 바다, 즉 또 다른 뜻의 보편성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들뢰즈가 보여주지 못했던 또 다른 얼굴을 하나 더 제시한다. 들뢰즈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통해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에서는 삶의 힘과 삶의 빛을 형상화하는 얼굴을 함께 찾아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한한 생명의 무한한 측면들을 지향할 때 생명의 아름다움은 온전하게 드러날 것이다. 2. 「어여쁨」에서는 고리[環]를 이야기한다. 어여쁨이란 마냥 오월 하늘같이 깨끗하기만 하고 공명정대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어여쁨은 오히려 조금은 일그러지고 가련함이 느껴지는 것에서 우러나는 미감이다. 즉 삶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것을 함께 끌어안을 때 솟아나는 미감인데, 우리 탈춤에 등장하는 미얄할미는 이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겉보기에 차마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미얄할미는 탈춤에서 제일 야한 춤을 추는 생명력의 화신인 동시에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시들어가는 지모신이다. 이 미얄할미 과장에서는 일직선으로 흐르는 시간보다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시간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지은이는 이 시간 구조야말로 현실적인 시간 개념의 원형이며 미학적 토대라고 생각한다. 흐름, 생성, 순환과 연결되는 어여쁨의 미학이 여기서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우리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어여쁨의 미감뿐만 아니라 프랑스어의 '졸리joli'에 나타난 미감과 일본 미학에 대한 분석까지 보여주고 있어 여러 문화를 횡단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3. 「거품」에서는 디오네를 이야기한다. 거품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품 속에서 태어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디오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디오네는 제우스의 여성명사이다. 디오네라는 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제우스의 여성적인 측면을 가리켜 그렇게 불렀는데, 호메로스에 의하면 제우스와 디오네의 딸이 아프로디테이다. 여기에 거품의 미학의 단서가 있다. 제우스가 밝은 하늘의 광명이라면 디오네는 대지의 그림자 또는 숲 그늘과 연관된 무엇이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듯이 제우스와 디오네는 짝을 이룬다. 거품 또한 물결과 분리되지 않고 물결은 물과 분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거품과 물은 둘이 아닌 것이다. 거품의 윤곽의 흐릿함, 여기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사물은 흐릿한 표면을 통해 자신의 단단한 윤곽을 넘어 자신을 둘러싼 하늘과 땅을 담아낼 수 있고, 이 표면에서 예기치 못한 의외성이 탄생할 수 있다. 거품의 미학은 우리의 사유를 유연하고 가볍게 만드는, 부정확함을 이상으로 삼는 미적 사유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4. 「뜻」에서는 뜻밖을 이야기한다. 이 장에서는 새로운 의미의 건설에 주목한다. 어린아이의 놀이가 어른들이 힘들게 쌓아 올린 의미 구조를 무너뜨린다고 했던 니체, 문학의 표현 형식이 늘 다수자들의 언어 안에서 그것을 바꾸는 방식으로, 기존 언어를 '더듬거리게'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했던 들뢰즈. 우리는 끊임없이 뜻의 창조를 이야기했던 사상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 우리네 「찬기파랑가」를 읊으면서, UFO같이 정체를 알 수 없던 달의 궤적을 쫓다가 그 뜻이 향한 바("마음의 끝")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경험이 다른 의미 계열 속에 자리 잡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솔가」가 탄생한 상황도 비슷한 미감을 전해준다. 하늘에 두 태양이 떠서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았는데, 월명사는 「도솔가」를 불러 다시 태양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여느 신화들에서처럼 태양에 화살을 쏘지 않았다. 다만 꽃 한 송이를 보냈는데 이 꽃이야말로 다른 세계와 이 세계의 의미적 통합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예술이 있다. 뜻밖의 의미가 기존 언어를 찢어버리고 새로운 의미 계열 속에서 되살아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예술적 가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5. 「도시」에서는 소음을 이야기한다. 도시의 위상학적 구조는 도신인의 삶을 드러낸다. 천안문 광장이라는 네모난 구멍을 중심에 둔 베이징은 보이지 않는 중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마치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고삐로 잡아놓는 듯한 의미 구조를 체현한 것이다. 또 로마의 네모반듯한 도시 구조는 시간을 초월한 듯한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변화를 거스르고 자신들의 지속성을 거듭 확인하려 했던 로마인들의 정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궁궐은 산 아래에, 저잣거리는 도시 중앙에 두었던 옛 서울의 구조는 자연과 권력의 통로를 임금이 독점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서울은 어떤가? 이 책은 도시의 미학을 바꿔놓을 가능성으로 서울역의 노숙자를 끌어들인다. 진정한 새로움이란 굳어버린 체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모험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현행 교환 질서에 속하지 않는 잉여라고 할 수 있는 노숙자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테네가 외부의 적이었던 포세이돈을 내부로 녹여낸 것처럼 우리의 삶과 미학도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6. 「나도 모르는 무엇」에서는 외적 원천을 이야기한다. '나도 모르는 무엇'의 형태로 주어지는 외부, 즉 외적 원천은 예술가가 창작을 진행해가는 실마리이다. 이것은 우연히 던져진 단어일 수도, 형상이나 색채일 수도 있다. 이것은 '나'가 아닌 것이다. 즉 외부가 외부인 이상 그것의 전모를 대번에 이해하거나 표현할 수 없으며,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내부일 것이며 여기서 새로운 것의 창조를 발견할 수는 없다. 초현실주의는 이 외부를 재인식했다는 점에서 예술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무의식의 측면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들은 자의식을 해체하여 창작을 진행하고 우연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진정한 삶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생산적이기보다는 분열과 반복 강박에 갇힌 측면이 많았다. 7. 「창조」에서는 진정한 창조로서의 사출(寫出)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예술적 창조란 무엇인가? 여기서 '사출'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사출은 기본적으로 '~에서 나오다'라는 뜻으로, 마치 잭슨 폴록이 <벽화>를 그릴 때 빈 캔버스를 6개월 동안 응시한 뒤 단 하룻밤의 작업으로 캔버스 전체를 완성한 것처럼, 더듬고 더듬는 어느 한순간 확! 쏟아지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영감이라는 말로, '나도 모르는 무엇'이라는 말로 예술의 원천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창조를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끈질긴 교호 작용으로 외부를 길러내는 힘과, 결코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는 완전한 타자마저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고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창조는 우연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작가의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본문을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지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