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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조련한 지 얼마나 됐어?” / “이, 일 년 됐는데.” / “이 년이야? 일 년이야?” / 조련사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 “일 년인데!” / “일 년 전부터 코끼리 조련에 침투시켰다.” / 형사가 타이핑을 한 후, 코를 노트북에 바짝 대고 킁킁댔다. / “냄새가 제법 구리다. 왜 코끼리 조련을 시작했지?” / “순하고…….” / “묻는 말에만 대답해! 왜 코끼리 조련을 시작했냐고?” / 형사의 목소리가 몇 옥타브를 넘나들었다. 조련사는 의사가 ‘왜’라고 물을 때와 다르게 질문을 지겨워할 새가 없었다. / “코끼리는 내 말을 잘 듣는데.” / “데, 데, 데, 데, 데?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하냐?” / 조련사는 마음뿐 아니라 몸도 졸아들었다. 몸이 저절로 번데기처럼 말렸다. / “요! 요! 인마! 왜 코끼리가 달렸다고?” / “달린 게 아니라 뛰어간 건데.” / 형사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조련사가 재빨리 덧붙였다. / “요!” ---pp. 69~70
“그날은 얘가 비번이었어요. (……) 공놀이 훈련을 시킬까 싶어 우리에 들어갔는데, 코끼리 뒤에 누군가 있는 거예요.” / 동료의 진술에 형사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 “이 사람이었나요?”/ “예. 바지를 내리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소변을 보는 줄 알았는데…….” / “그런데요?” / “근데 얘가 코끼리 거시기를 잡고 있더라고요. 다른 한 손은 자기 바지 속에 있었어요. 어찌나 손을 마구 흔들던지. 전 너무 놀라서 못 본 척하고 몰래 나왔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련사가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의사가 어렵게 조련사를 동료로부터 떼어 놓았다. / “아, 아닌데!” / 조련사는 분노와 답답함이 얼룩진 표정으로 강력하게 부정했다. / “거짓말! 거짓말인데.” / “변태성욕입니다. 변태성욕이 무슨 뜻인지 아시죠? 성애의 대상에 대한 도착과 성행위에 이상이 나타나는 걸 말하죠. 성애의 대상으로 동물애(動物愛)로의 도착이 있을 수 있죠.” / 의사는 확신에 찬 투로 설명을 했다. 형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 “그냥 종합 장애 세트라고 하세요.” / 조련사가 형사의 말을 비집고 혼잣말을 했다.---pp. 95~96 “거, 거기를 모, 모기한테 물렸었는데. 가려웠는데. 긁기도 힘들고. 주변만 긁다가 약 바르려고 코끼리 뒤에서 팬티를 벗었는데. 화끈거렸는데. 중심 잡으려고 코끼리 거시기를 잡고 있었던 건데.” / “이분은 단지 애정에 대한 색다른 환상이 있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동물에게로 향하는 것뿐이죠.” (……) “형사님, 이분은 좀 다른 것뿐이에요. 다를 수 있어요. 그건 선생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유전과 환경 때문이죠. 선생님도 피해자입니다.” (……) 형사가 핀잔을 주듯 가볍게 이야기를 받았다. / “골고루들 하시네. 이솝우화에, 성인물 에로틱 버전에.” / “증명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와 성정체성의 관계, 제 논문입니다. 트라우마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어떤 충격을 받았을 때, 정신적 충격이 깊은 상처로 남는 걸 말합니다. 이 논문은 세 가지 사례를 토대로 썼는데, 선생님은 두 번째 사례와 흡사한 지점이 많…….” / 의사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 “사주를 받은 거야!” /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듯 형사는 의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누구한테서 받았느냐만 밝히면 되는데, 계속 끼어드네. 정신 산만하게. 금치산자니 정신병자니 해서 빼낼 생각 마쇼. 그런 꿈은 아예 꾸지 않는 게 좋아! 피차간에.”---pp. 101~103 “다 시인했나요?” / “그럼요. 우리 애가 말한 그대롭니다.” / “뭐라고요?” / “잠시 뛰놀라고 코끼리를 풀어 준 건데, 그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대요.” / 어머니는 전혀 기죽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당했다. / “전형적 유형이시네요. 둘이 있을 땐 억압하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땐 감싸고. 방금 하신 말씀은 어머님 각본이죠? 어머님 덕분에 아드님은 코끼리와 애정 행각을 하고, 급기야 함께 도망치는 애정도피에까지 이르렀어요.” / 의사의 말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거리를 하려 했다. 하지만 형사의 짜증이 더 빨랐다. / “뉴스 좀 보세요! 임태규 의원이 전치 12주예요. 세상이 코끼리한테 얻어맞은 대선 후보 때문에 떠들썩한데, 무슨 도피를 해요? 애정 도피? 코끼리랑?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의사 양반, 심심해요? 경찰서까지 와서 농담합니까?” (……)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 의사의 말을 잘라먹고 형사가 주먹까지 쥐어 가며 소리쳤다. / “이건 정치적 음모예요!” / “형사님 음모가 아니고요? 음모가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 “음모요?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우리 애는…….” / “어머니!” ---pp. 143~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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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사회를 유쾌하게 비튼 블랙코미디
어느 날, 코끼리가 탈출했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유세장에 침입해 쑥대밭을 만든 코끼리들. 이 일로 담당 조련사는 조사를 받게 되고, 서로 다른 논리를 펼치는 세 사람과 취조실에서 마주하게 되는데……. “정치적 음모일까, 변태성욕자의 소행일까, 마음 약한 천사일까?” 코끼리 탈출 사건의 진실은? 코끼리 다섯 마리가 거리 퍼레이드 연습 도중 탈출한다. 도망을 치던 코끼리들은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는 것도 모자라, 근처 선거 유세장을 습격해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던 한 의원에게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힌다. 이 사건의 유일한 최초 목격자로 코끼리들을 담당했던 조련사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고, 그는 비둘기와 거위 소리에 놀란 코끼리들이 벌인 우발적인 사고라고 진술한다. 하지만 일관된 그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취조실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취조 과정에서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들어 이 사건을 정치적 음모가 얽힌 중차대한 범죄로 보고, 조련사를 바로 그 제일선에 있는 인물로 지목한다. 반면, 조련사의 정신 상태를 감정하던 정신과 의사는 그를 남성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코끼리를 성애의 대상으로 느끼는 성도착증 환자로 판단한다. 이 와중에 조련사의 어머니까지 가세해, 평소 유약하고 심성이 여린 조련사가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을 풀어 주기 위해 조련사가 되었다며, 이번 사건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풀어 주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다소 억지스런 주장을 펼친다. 너무나도 다른 세 명이 강요하는 논리에 조련사는 점점 지쳐가고, 그들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참다못한 그는 힘겹게 사건의 진실을 털어 놓기에 이르는데……. “오만 칠천육백이십일 번째 코끼리가 된 걸 축하해” 어긋나고 일그러진 말의 파편들로 가득 찬 세상, 그 속에 갇혀 코끼리가 되어 버린 사람들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상상 속에서 코끼리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대화가 끝날 때쯤 비로소 다시 땅에 착륙하곤 했다. ……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들이 외딴섬에서 공허한 외침을 해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도 그들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없는 게 문제라고,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이해가 부족할 뿐이라고 짚어 주고 싶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코끼리가 탈출해 어느 정치인의 유세를 방해했다는 조금은 황당하지만 있을 법한 사고. 그러나 진짜 황당한 일은 코끼리가 아닌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코끼리를 남들보다 조금 아꼈을 뿐인 어눌한 조련사는 순식간에 정치적 음모를 꾸미는 하수꾼으로, 변태성욕자로, 세상을 구원할 천사로 변한다.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조련사나, 그를 자신이 짜놓은 견고한 논리대로 설득하려 하는 형사와 의사, 어머니 모두 서로가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아닌데, 그게 아닌데.”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도 그들의 말은 교차점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진다. 결국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코끼리가 되어 버린 조련사뿐 아니라, 끝끝내 각자의 논리에 그를 무릎 꿇린 후 흡족해하는 세 사람의 모습은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포기한, 잔혹하리만큼 서글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 등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말과 정보가 오가게 되었지만, 소통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화두이다. 말은 차고 넘치지만 여전히 우리는 외롭고, 답답하고, 고독하다. 그럼에도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말을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만을 내세우거나, 얌전히 입을 다무는 것을 택한다.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 형제 사이, 친구 사이의 대화조차도 돌이켜보면 허무한 독백처럼 느껴졌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포기하고 코끼리가 되어 간다. 이 소설은 이제 “그게 아닌데…….”라는 말줄임표 속에 감춰진 말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되짚는다.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길 바란다. 그렇게 하면 저자의 말처럼 ‘코끼리가 되어 버린 우리의 이웃들을 하나하나 다시 소환할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