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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을 펴내며
1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내 고향 학사평 · 대청봉을 바라보며 · 엄마의 ‘동동구리무’ · 연애편지 · 식구 생각 · 꿈에 본 아버지 · 부의금 노트 · 어머니와의 이별연습 · 차례를 지내며 · 나의 어버이날 · 수능시험 · 63빌딩 2 - 그리워라, 옛 동무들 꼬꼬들의 합동축제 · 고교 졸업 기념문집 『젊음』 · 옛날 편지 · 대학생 야학 선생님 · 초등학교 여동창과의 만남 · 깜박 잊은 친구 아들 결혼식 · 친구의 결혼 25주년 · 이런 만남도 있었네 3 - 가르치고 배우고 몽당연필 · 꿈을 꿀 수 있는 용기 · 박사과정을 끝내고 · 열정 · 명함 · 연구실 · 제자의 선물 · 정년퇴임 · 게재 불가 논문 · 나의 식육학 연구 · 정년 후의 인생 · 휴식하는 법 · 인도네시아 제자의 눈물 · 탄자니아 연수생들 4 - 선인들에게 배운다 도산 안창호 · 백범 김구 · 이당 안병욱 · 박경리와 소설 『토지』 · 시인 한하운 5 -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기행 겨울 산 · 오세암의 밤 · 금병산 · 공지천 · 마적산 · 남한산성 · 울릉도 · 영남 기행 단상 · 북간도 · 일송정 푸른 솔은 · 반 고흐 미술관 · 벨기에에서 맞은 성탄절 ·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6 - 교수가 본 세상 축구 4강 진출 ·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 · 양극화가 세상을 망친다 · 만들어진 오리엔탈리즘 · 몸의 가치 · 금강산도 식후경 · 풀 냄새와 피 냄새 · 광우병 · 구제역 · 조류인플루엔자(AI) · 두 젊은이 · 쌀 두 말로 바뀐 운명 · 연탄 나누기 봉사 7 -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단상 1 시공 / 어느 날 / 시간 / 봄 / 입추 /세월 / 나이 / 흰머리 / 자네 / 친구 단상 2 뭉게구름 / 눈 / 낙수 / 노폐물 / 코로나 / 청양고추 / 한국화 / 옹이 / 강의 단상 3 아름다움 / 독백 / 혼돈 / 집착 / 설렘 / 그리움 / 느림 / 흔들림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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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lilac은 우리말로 수수꽃다리이다.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달리는 꽃의 모양이 수수를 닮아 ‘수수꽃다리’라고 한단다. 4월이면 수수꽃다리의 매혹적인 향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꽃말은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우정’ 등이다. 그래서 라일락은 그 진한 향기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꽃이다. 꽃의 이미지보다 향기로 인한 느낌이 더 강렬하다.
라일락 향기와 관련한 여러 추억이 있다. 라일락 향기는 어릴 적의 ‘동동구리무’와 ‘박가분’을 생각나게 한다.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언제나 바쁘셨고, 자식들에게 보리밥과 죽이라도 먹이려고 애쓰셨다. 그러니 자식의 공부보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하셨다. 새벽 일찍 밥을 해놓고 논밭으로 나갔다가 어두워지면 집에 돌아오셨던 어머니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어머니의 얼굴은 ........ --- p.23 개인과 사회, 국가가 발전하려면 각각 맡은 바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 자기 계발의 노력을 게을리할수록 사회 발전이 저해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 교수들이 연구를 게을리한다는 뉴스가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대학 평가에서도 교수들의 연구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하니 교수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히 교수는 학문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신임 교수 때는 전공 분야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었다. 때로는 의욕 과잉으로 자만심과 오만함도 보였다. 그러나 젊었기 때문에 그 모습도 아름답고 순수하게 보였다. 그러나 중견 교수로, 원로 교수로 갈수록 초심이 꺾이거나 사라져가기 쉽다. 공부의 열정이 식으면 당연히 연구 성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열정은 뜨거운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솟아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부자연스러운 감성의 불꽃은 오래가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평생 가꾸고 지켜야 할 목적 지향적 가치가 있다. 교수라면 학문에 대한 지속적인 열정이 요구된다.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오는 긴장을 풀고 기지개를 켜 보자. 달려오면서 누적된 스트레스로 지친 자아에도 재충전할 수 있는 잔불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불태우는 능력은 자기에게 달려있다. 지적 호기심이라 할까, 새로운 분야를 추구 할 때의 희열이라 할까, 이런 내재한 에너지를 끄집어내기 위해 굳건히 실행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p.107 도산은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 직후 일본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김구나 이승만처럼 해외에 있었다면 더 길게 독립운동에 헌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산 서거 즈음의 독립활동 환경은 심히 혹독했다. 총독부의 회유와 유혹도 많았다. 이광수, 주요한 같은 흥사단 단우團友는 변절했지만, 도산은 죽는 날까지 신념을 굳게 지켰다. 그는 우리 사회의 내부 분열을 걱정했다. 변절자가 속출하였지만, 그럴수록 도산은 독립의 희망을 품었다. 민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갈라진 독립 진영을 통합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해방의 빛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지만, 도산은 이후 남북한 정부 수립과 동족상쟁이라는 극심한 좌우 대립을 예견했었는지 모른다. 도산은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키며 독립을 염원한 위인이다. 오늘날 정치, 경제, 통일,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양극화를 보면서 도산의 대공 복무 정신과 통솔력이 그립다. 도산은 갔어도 그의 위대한 사상이 우리 곁에 있어 다행이다. --- p.145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다가 갑자기 우뚝 가로막는 큰 섬을 만났다. 갈매기가 먼저 맞아주는 울릉도! 거기에 있어 줘서 반갑고, 거기를 지켜 줘서 고맙다. 울릉도는 푸른 산과 푸른 하늘, 푸른 바다가 아우러져 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희미한 원형의 수평선 위로 우주가 하나 떠올라 있다. 비가 오나 바람 부나 걱정스레 독도를 보살피는 엄마 섬 울릉도! 울창한 삼림과 깎아지른 절벽, 청잣빛으로 뿌려놓다가 부서지는 흰 파도, 자연의 속살 냄새로 유혹하는 바다가 싱그럽다. 용암이 해안가 절벽을 타고 흘러내려 부끄러운 듯 음습한 동굴을 만들었다. 물속에서 솟아올라 코끼리와 사자바위도 만들고, 선녀바위를 만들었다. 작열하는 태양은 우리의 동반자다. 여치 우는 소리, 매미 비벼대는 소리 들으며 냉풍 계곡을 지나 땀방울로 목욕하며 성인봉 정상에 올랐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가파른 산과 깊은 골짜기뿐이다. --- p.189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세월이 가면서 바뀐다. 취향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 어찌 음식뿐이랴. 좋아하는 음악도 클래식, 오페라, 국악, 대중가요들로 바뀔 수 있고, 취미생활도 세월 따라 바뀌어 간다. 오늘은 업무 때문에 빨리 가기 위해 KTX를 타지만, 나이 지긋한 어느 날은 완행열차를 타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이해할 수 없어도, 그 자리를 떠나 다른 장소에 와서, 또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일상은 바로 순간마다 첫 경험이다. 곧 인생이란 첫 경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긴장하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실재는 언제나 변치 않고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의 인식이 변하고 있을 뿐이다. --- p.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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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을 펴내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외부로 발산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곧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느낌, 알고 있는 사실을 표현하고, 또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아주 오래전의 인류가 그들의 일상을 바위에 새긴 것이 그 증거이다. 심지어 알타미라의 어두운 동굴에서도 그림으로 그들의 생활상을 표현하려 했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류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내면의 자기 생각을 드러내 보이려는 행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일기와 같이 자기만의 고백을 기록하여 간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내면세계를 타인에게 알려 공감을 얻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이다.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기만의 고백으로 진행될 때는 훨씬 자유롭다. 그러나 대개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타인과 공유하거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자기표현에 대한 모순된 욕망의 심리이다. 그래서 자기 글을 남에게 보이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글쓰기는 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강조하거나 자세히 설명하려 들기 때문이다. 근래에 나는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약간의 아쉬움과 홀가분함 속에서 중장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전공은 농업, 그중에서도 식육학食肉學이었다. 말하자면 내 전공은 자연과학 중에서도 응용과학의 영역이다. 그러하니 지금까지 전공을 살려 강의용 교재 등 여러 권의 식육학 관련 책을 썼지만, 그것은 드라이한 과학서일 뿐이었다. 이제 퇴직으로 식육학의 현장을 떠나고 보니 인간의 삶, 곧 인간과 사회를 아우르는 삶의 넓은 스펙트럼을 내 사유의 목표로 삼고 싶었다. 나는 그 목표를 그리워하는 본능적 열정과 현실적 능력의 한계 사이에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꿈을 찾아 한발 한발 나가다 보면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혼란스러운 생각에 주저주저하게 된다. 내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듯, 자기 생각을 고백하면 글쓰기가 쉽다는 점을 안다. 일기책은 나만의 비밀스러운 창고이니, 잘 쓰고 못 쓰고 남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독자의 반응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전에 벨기에 겐트대학교 방문 연구교수를 끝내고 귀국하여 『벨기에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 어느 친구가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책을 내고자 계획하셨군요”라고 덕담을 했다. 그러나 벨기에 체류기를 쓸 목적으로 여행을 하고 글을 썼다면 책으로 출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내가 보고 체험하고 느낀 사실들을 단순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썼기 때문에 글이 모일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글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낼 수 있었다. 연구소와 대학에 몸담았던 동안, 바쁜 일상에서 잠시 일탈하여 안식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의 대화였다. 가끔 생활에서 느낀 생각이나 자연에서 받은 단상을 적어 두곤 했다. 일종의 내 시공간에서 즐기는 취미였다. 분명 자연과학도의 책무와는 거리가 먼 영역이다. 아마도 그런 행위가 나에게는 그리움과 안식처를 제공했고, 때로는 놀이였나 보다. 글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며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글들이 쌓여 내가 살아온 작은 역사가 되고, 삶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 된 것이다. 몇십 년 동안 간간이 써 놓은 기록이 이제 버리기 힘든 유산이자 계륵鷄肋이 되었다. 새삼 돌이켜 보니 기록은 존재에 관한 확인 작업이었고, 고독에 대한 위로였다. 그리고 나를 지탱하고 이끈 꿈의 실천 행위이기도 하였다. 이번에 용기를 내어 그 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오래 묵은 체증이 가시듯이 시원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안식하고 싶다는 본향에 대한 그리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해가는 일상사에 대한 소박한 고찰,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자연 과 생명에 대한 사색, 대학 시절부터 몸담아 온 흥사단 활동과 민족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책으로 묶으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힘들고 슬픈 내용은 제외하였다. 그렇지만 유년과 청소년 시 절부터 중장년에 접어들기까지 가슴에 머물렀던 속살은 모두 들춰내었다. 이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이 고백에 공감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우리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니 말이다. 2022년에 출간된 『세상의 모든 고기』에 이어, 이 책도 나의 둘째 딸 지수가 솜씨를 발휘해 삽화를 그 려줘 아버지로서 흐뭇하다. 지수의 도움으로 책이 훨씬 예뻐졌다. 『벨기에 이야기』(2003)부터 인연을 이어 와 『세상의 모든 고기』(2022)도 출판해 주신 학민사의 양기원 대표가 이 책도 맡아주셨다. 너무나 감사하다. 2024년 7월 이 성 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