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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머리말조선왕공족 가계도서장 제국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의 황제제1장 한국 병합과 황제의 처우: 폐위됐지만 신하는 아니다이토 히로부미의 대한(對韓) 정책왕공족의 탄생: ‘대공(大公)’ 대신 ‘왕’이왕 책립: 서구 근대의 규칙을 중시제2장 제국 일본에 뿌리내리는 왕공족: 각자의 처세술준황족 대우: 「왕공가궤범」을 둘러싼 분규왕공족 26명의 민낯: 공순(恭順)인가 반항인가I 이왕가: 대한제국의 적류(嫡流)와 황족 출신의 비II 이강공가: 품행 불량한 초대 당주, 빈궁한 후계자III 이희공가: 쿠데타를 계획한 음지의 계보궁내성의 『왕공족보』 편찬제3장 ‘황제’의 승하와 제국 일본의 고뇌이례적인 ‘국장’ 선택: 조선인 회유를 위해묘비와 만장에 ‘황제’ 기재 요구이태왕과 이왕 실록 편수: 제국의 정통성을 위하여제4장 쇼와 시대의 왕공족, 그들의 조국은‘프린스 리’ 이은의 서양행육군 장교의 생업과 충의: 왕공족 군인 3인종전, 상실, 그리고 빈곤: 차디찬 눈길종장 제국에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후기참고문헌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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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城道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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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존속을 대가로 나라를 넘긴 임금, 일본 황실의 왕족·공족이 된 그 일가족―조선 왕공족,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였는가총 한 방 안 쏘고 나라를 넘기다조선은 왕이 국가를 사적인 세습 재산으로 취급하던 가산제(家産制) 국가였다. 나라가 원래 왕의 것인데, 그래서 왕이 나라를 팔겠다는데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옮긴이의 말, 321~322쪽)1910년의 한일합방을 이보다 더 직설적으로 일갈할 수 있을까? 『조선 왕공족』(신조 미치히고 지음, 이우연 옮김)은 나라를 일본에 넘기고 그들 자신은 일본제국 황실에 ‘조선 왕공족’으로 편입된 고종과 그 형, 순종과 그 후손들까지, 제국 일본의 신민(臣民)이 된 4대 26명의 이후 행적을 파헤친 책이다.한일합방 조약 조인 직후 연회에서, 당시 조선 통감이고 합방 후 초대 총독이 되는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무력으로 침입한 임진왜란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퇴한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를 회상한다. 그의 감회처럼 한일합방은 “군인 한 명 움직이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근대적 조약의 형식을 빌려 이뤄 낸 쾌거였다(한국어판 서문, 6~7쪽). 흔히 ‘을사오적’이라 지목하는 중신(重臣)들은 차치하고, 대한제국 황제는 어떻게 그토록 순순히 나라를 통째로 내줄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씨 황실이란 ‘가(家)’의 제사의 보전이 그 대가였다고 지적한다. 조선은 물론 대한제국도 군주 1인만이 주권을 갖는 전제군주제 국체(國體)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왕공족 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 황제와 직계 및 그 배우자들은 일본의 왕족으로, 방계와 배우자들은 공족으로 편입되었다. 덴노(천황)를 정점으로 한 일본제국 황실 아래 편입된 이들 ‘조선 왕공족’의 면면을 보자. 아들에게 양위하고 ‘덕수궁 이태왕’으로 물러난 고종과 그 형인 흥왕 이희, 합방조약의 당사자인 ‘창덕궁 이왕’ 순종은 독립한 조선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순종의 형제자매들인 영왕(영친왕) 이은, 의왕(의친왕) 이강, 덕혜옹주와 2대 후손들까지, 책은 모두 4대 26명의 조선 왕공족을 조명한다. 망국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 대부분은 철저히 일본 황족의 일원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며 살아갔다.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거침없이 쓸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감안해도, 일본제국에 대한 이들의 충성스러운 태도나 일부 인사들의 조신하지 못한 사생활은 같은 한국인이 읽기에 낯부끄러울 정도다.‘망국의 임금’ 순종이 일본제국과 덴노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극명하게 말해 주는 것은 1917년 창덕궁에 대화재가 일어난 직후 순종이 한 발언이다. 이완용은 화재를 복구하기까지 잠시 덕수궁으로 이어(移御)할 것을 추진했으나, 막상 순종은 합병 때 덴노가 하사한 덴노와 황후의 진영(眞影)이 소실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천황폐하로부터 받은 창덕궁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117~119쪽).순종의 이복동생으로서 황태자에 책봉되고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어 어린 나이에 일본에 유학한 영왕 이은은 일본 황족과 마찬가지로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제국 군인의 길에 충실했다. 태평양전쟁 중 일본 항공대가 미국에 연전연패할 때는 아들 이구에게 “폐하께 면목이 없다”고 했고(252쪽), 도 “우리들 왕족은 일본의 황족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특별한 신체 사정으로 폐하의 허락이 있는 경우 외에는 육·해군 어느 쪽인가의 길을 골라야 한다”(288쪽)고 타일렀다. 책은 그 밖에 이은·이강보다 덜 알려진 그들의 2대 후손들까지의 일화로 그득하다.한편 이은은 일본 덴노의 방계인 마사코 공주(이방자)와 결혼했고, 이복여동생 덕혜옹주는 쓰시마 번주(藩主)의 후손인 소 다케유키(宗武志) 백작과 결혼했다. 이런 일들은 조선 지배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일본의 계획에 따른 정략결혼 아닌가? 책은 그렇게만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신분제도가 아직 공고하던 일본에서, 아무튼 황족에 편입된 조선 왕공족과 혼인으로 연결되는 것은 일본의 황족·왕족·지방귀족의 입장에서도 가문과 위세를 유지하는 데 확실히 보탬이 됐다는 말이다.대한제국 황실, 쓸쓸한 말로국권을 회복한 후 옛 황실을 다시 모시려는 복벽(復?)의 움직임은 없었을까? 철저히 일본 황실의 일원으로 살아간 이은 자신부터 뜻이 없었다. 결국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嫡統)은 이은의 외아들 이구(李玖)가 하필이면 이은의 도쿄 사저였던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객사(2005)함으로서 끊기고, 제사는 이강의 손자가 이구의 양자로 입적해 계승하고 있다. 혈통으로 가장 적류(嫡流)에 가까운 인물은 이구 사망(2005) 당시 일본 가이세이(開成)고 교감으로 있던 모모야마 고야(桃山孝哉, 이강의 손자)이지만 그는 스스로 “백 퍼센트 일본인으로 생각한다”고 선언했고, 한국에서는 이강의 서녀(庶女)를 여제(女帝)로 선포하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과 다투는 단체도 있다(282~283쪽).한일 각자의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 문제를 넘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이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헤이그 밀사사건(1907) 후 고종의 황제 양위를 압박하며 “사직이 중하고 임금은 가볍다”고 한 이완용의 말(43쪽)에서 ‘사직’은 과연 황실의 가문만을 의미하고 나라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고종과 순종 인산(因山) 날의 3·1만세운동(1919)과 6·10만세운동(1926)을 한갓 ‘소요’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에는 음으로 양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거의 유일한 황실 인물로 알려진 의왕(의친왕) 이강을 반골·부랑아처럼만 기술한 것 등, 일본인의 입장에서 작심하고 쓴 만큼 향후 제대로 치열하고 따라서 더 생산적일 수 있는 논쟁거리도 책은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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