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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리한 아이
엄마, 뽀뽀해 주세요 나라를 잃은 폴란드 사람들 이별 도둑 공부 브로냐 언니를 위해 2. 마리라고 불린 파리 생활 빛 바랜 꿈 다시 파리로! '마리'라는 새 이름 폴란드 피아니스트 소르본의 공부 벌레 3. 퀴리 부인이 된 마리 피에르 퀴리 자전거를 탄 신혼 부부 첫아기 이렌의 탄생 박사 학위 논문 새로운 원소들 조국에 바친 원소 4. 라듐에 바친 일생 라듐을 찾기 위하여 위대한 발견 노벨상을 탄 퀴리 부부 안녕, 피에르! 제1차 세계 대전 알 수 없는 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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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퀴리는 여자들에게 실망을 많이 하고, 여자에 대해 좋지 못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에르가 결혼을 하지 않고 노총각으로 지내고 있는 것도, 여자는 자신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피에르 퀴리는 1859년 5월 15일, 프랑스 파리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공업에 많은 공헌을 한 유명한 집안의 딸로 머리도 좋고 성격도 밝은 여자였습니다. 피에르의 아버지는 원래 생물학자였지만, 첫아들인 자크와 피에르가 태어난 뒤로 많은 돈이 필요하자 의사로도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핵 예방 접종법을 연구한 유능한 학자일 뿐 아니라, 콜레라가 유행할 때는 의사가 없는 지역에 찾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할 만큼 봉사 정신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또 프랑스의 2월 혁명 때에는 노동자의 편을 들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양심이 바른 인도주의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피에르는 형 자크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도 두 아들을 데리고 생물학 연구를 위한 채집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피에르와 자크는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동물과 식물의 변화를 관찰하며, 그에 대한 지식을 몸으로 배우고 익혔습니다. 피에르의 아버지는 매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암기하는 것을 주로 하는 학교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두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교육 시켰습니다. --- p.10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