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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태학사판 서문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 옥중에서 매미소리를 들으며 역수에서의 송별 좌천되어가는 친구를 보내며 백발 늙은이 북망산 고향에 돌아와서 원씨의 별장에서 당신이 떠난 후론 달을 바라보며 거울을 바라보며 재상직을 그만두고 양주사 관작루에 올라 양주사 나그네 뱃길 연밤 따는 노래 서궁추원 봄 아침 전원의 즐거움 죽리관 장소부에게 답하여 향적사를 찾아 망천장에 돌아와서 비 갠 뒤 송별 집 생각 한강을 바라보며 숭산에 돌아와서 최처사의 임정에 들러 새소리 개울 소리 송별 목련화 핀 언덕 친구를 묻고 오며 반석 위에서 임을 보내며 봄을 보내며 산촌의 가을 저녁 망천별장을 떠나며 장성사 수 아미산의 달 옥계원 자야오가(가을) 자야오가(겨울) 봄바람에 누워 봄 시름 양반아 삼오칠언 혼자 마시다 술은 안 오고 달 아래 혼자 마시며 술잔 손에 들고 주거니 받거니 공산에 누우면 마주앉아 마시며 양양가 장진주 경정산을 바라보며 산중문답 여산폭포를 지나며 삼협을 지나며 신평루에 올라 봉황대에 올라 황학루에서 맹호연을 보내고 하지장을 그리워하며 금릉을 떠나면서 벗을 보내며 고요한 밤에 봄밤 피리 소리를 들으며 추포에서 여름날 산중에서 제야 황학루 강남곡 선원 눈 오는 밤 풍교 아래 밤배에서 강행 국사직을 보내며 아까워라! 달밤 위팔처사에게 못 믿을 봄빛 봄바람이 날 속여 늘그막의 봄맞이 가는 봄 창밖의 수양버들 강 마을 봄밤의 단비 강정 나그네 밤의 회포 친구를 맞아 밤배에서 병거행 신안리 석호리 동관리 신혼별 수로별 무가별 한스러운 이별 외기러기 등고 나그네의 밤 못 가는 고향 악양루에 올라 강촌(1) 강촌(2) 강촌(3) 제갈공명의 사당을 찾아 곡강에서 봄빛을 바라보며 또 만났구려 북정北征 봄꿈 고향 가는 벗을 보내고 안부나 전해주오 양원에서 동정호를 바라보며 춘사 친구를 보내며 가을 밤 벗에게 산에 살며 객지에서 옛 친구를 만나 강 마을에 돌아와서 춘원 유자의 노래 망부석 춘규 꺾여 나간 버들가지 농사일의 딱함 가을바람 낭도사사 꽃 보며 술 마시며 오의항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숯 파는 늙은이 태행로太行路 연꽃과 소녀 늙은 버드나무 다듬이 소리 죽지사 밥 먹고 나서 메밀꽃 황혼에 서서 원진을 생각하며 다 못 적은 사연 강에 내리는 눈 지는 꽃 아내의 여막에서 그대 좌천되다니? 이 산중에 있으련마는 상간수를 건너 장진주 감풍 소소소가 대제곡 임 기다리는 마음 장강을 내려가며 함양성 동루 봄은 온다만 홍안은 어딜 가고 강남의 봄 떠나는 마음 산길 금루의 권주 강루에서 비 오는 밤 아내에게 금슬 농서의 노래 금릉도 친구와 헤어지며 귀양 가는 길 찾아보기 원제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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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보내며(送春詞)〉 _왕유王維
날마다 사람은 헛되이 늙되 해마다 봄은 다시 오나니― 자! 웃고 즐기세. 술은 푸지네. 흩나는 꽃이야 날면 날라지― 日日人空老요 年年 春更歸라 相歡有尊酒커니 不用惜花飛라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인생을 즐기며 노래하는 자연시인 왕유의 이 유연悠然하고도 대범한 풍도風度, 이 태평스럽고도 낙천적인 인생관을 보라. 그러나 그런 그도 이백이나 두보처럼 이글이글 달아오르지 않는다 뿐, 차분한 그의 정관靜觀속에도, 어쩔 수 없이 인생을 탄식하는 쓸쓸한 일면이 없지 않으니, ‘人空老’에서 이미 그 한숨소리를 들은 바이지만, ‘不用惜花飛’에 이르러서는, 그 부정 속 긍정의 반어적反語的 표현에서 가는 봄에 대한 상심傷心의 도가 얼마나 큰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할 것이다. -110~111p 〈강 마을(江村)〉 _두보杜甫 맑은 강 한 굽이가 마을을 안아 흐르나니, 긴 여름 강 마을은 일일이 그윽하다. 멋대로 드나듦은 마루 위의 제비요, 서로들 정답기는 물속의 갈매길다.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드는데, 어린놈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를 치고 있다. 병 많은 몸, 바라기야 약이나 얻었으면 할 뿐, 이 밖에야 다시 또 무엇을 원하리요? 淸江一曲이 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라 自去自來는 堂上燕이요 相親相近은 水中鷗라 老妻는 畵紙爲碁局이요 稚子는 敲針作釣鉤라 多病所須唯藥物이니 微驅此外에 更何求아 작자 49세 때의 작품이다. 두보는 성도의 완화계가에 터를 얻어 초가 한 채를 얽으니, 이른바 ‘완화초당’이다. 고난을 거듭해오던 오랜 동안의 떠돌이생활을 끝내고, 이제 안주할 수 있는‘내 집’을 가지게 된 데 대한, 그와 그 가족의 기쁨과 안도의 감정이 전편에 넘친다. 淸江一曲抱村流長夏江村事事幽 이 치런치런 풍운이 도는 제1련을 보라. 이 느직하고도 넉넉한 흐름의 여유는, 이 시인의 느긋하고도 흐뭇한 가슴속의 여유이기도 하다. 이 시의 구성은 두괄식이요 연역적이어서, 2·3·4련은 다 1련의 ‘事事幽’의 내용을 사례별로 부연한 것이 된다. 평설 自去自來堂上燕相親相近水中鷗 처마 끝에 깃들인 제비는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이 날아갔다 날아왔다 하늘을 드나들고, 물에 노니는 갈매기들은 뜨랑 잠기랑 서로 정다이 놀고 있다. 사랑으로 가득한, 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그것은 곧, 작자의 심상心象에 어린, 그의 자연관이며 인생관이기도 하다. -244~246p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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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화의 위대한 꿈 당시를 순수한 노랫가락으로 읽다!
당시에 녹아 있는 리듬을 눈으로 보여주고 귀로 들려줌으로써 그 흥감興感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 대가의 당시 번역서! 구순九旬의 한문학 원로 손종섭 선생은 젊은 시절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심취했다. 지금도 우리말 문장에 대한 교본으로 꼽히는 《문장강화》는 산문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말 가락과 장단의 묘미가 그대로 녹아 있다. 문장의 리듬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이 책 《노래로 읽는 당시》에서도 살아난다. 인류 문화의 위대한 유산이자 꿈인 당시唐詩를 초당初唐의 왕발과 낙빈왕에서 성당盛唐의 이백과 두보를 거쳐 만당晩唐의 두목과 허흔까지 180여 수의 시로 집대성한 이 책은 당시를 우리말의 리듬과 운율을 살려 번역함은 물론, 평설에서도 우리말의 가락을 살려 유려하게 해설해내고 있다. 또한 모든 번역 시를 리듬에 따라 줄 바꿈하여 그 흥감을 돋구고, 원문에서도 한자를 의미에 따라 나누었으며, 우리말 토를 달아 노랫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압운법과 평측율에 의해 정형적인 리듬이 짜여 있는 당시 악보(247쪽·317쪽)를 수록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참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의 정형적인 리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두보의 〈강 마을(江村)〉을 꼽을 수 있다. 맑은 강 한 굽이가 마을을 안아 흐르나니, 긴 여름 강 마을은 일일이 그윽하다. 멋대로 드나듦은 마루 위의 제비요, 서로들 정답기는 물속의 갈매길다.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드는데, 어린놈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를 치고 있다. 병 많은 몸, 바라기야 약이나 얻었으면 할 뿐, 이 밖에야 다시 또 무엇을 원하리요? 淸江一曲이 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라 自去自來는 堂上燕이요 相親相近은 水中鷗라 老妻는 畵紙爲碁局이요 稚子는 敲針作釣鉤라 多病所須唯藥物이니 微驅此外에 更何求아 〈강 마을〉은 두보가 49세 때의 작품이다. 두보는 성도의 완화계가에 터를 얻어 초가 한 채를 얽으니, 이른바 ‘완화초당’이다. 고난을 거듭해오던 오랜 동안의 떠돌이생활을 끝내고, 이제 안주할 수 있는 ‘내 집’을 가지게 된 데 대한, 그와 그 가족의 기쁨과 안도의 감정이 전편에 넘친다. “淸江一曲이 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라”. 1연에는 치런치런한 풍운이 돈다. 이 느직하고도 넉넉한 흐름의 여유는, 이 시인의 느긋하고도 흐뭇한 가슴속의 여유이기도 하다. 이 시의 구성은 두괄식이요 연역적이어서, 2?3?4연은 다 1연의 ‘事事幽’의 내용을 사례별로 부연한 것이 된다. 제2연 “自去自來는 堂上燕이요 相親相近은 水中鷗라”. 처마 끝에 깃들인 제비는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로이 날아갔다 날아왔다 하늘을 드나들고, 물에 노니는 갈매기들은 뜨랑 잠기랑 서로 정다이 놀고 있다. 사랑으로 가득한, 이 자유로움과 평화로움! 그것은 곧, 작자의 심상에 어린, 그의 자연관이며 인생관이기도 하다. 시의 리듬뿐만 아니라 시의 해석을 바로잡는 면에서도 저자의 노력은 투철하다. 두보의 시 〈등고登高〉는 그의 가장 역작이요, 고금古今 칠언율시의 압권으로 정평이 나 있는 명시 중의 명시이다. 그런 만큼 이 시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교재로 채택되어 물 흐르듯 유창한 《두시언해杜詩諺解》의 역시와 함께 회자되어왔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마지막 연인 “艱難苦恨繁霜?하니 ?倒新停濁酒杯라”만큼은 ‘새로이 술을 끊은 것’으로 잘못 해석되어왔다. 이것은 ‘탁주잔을 새로이 든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 연 중 ‘정배停杯’란 ‘거배擧杯 → 정배停杯 → 함배銜杯 → 경배傾杯 → 건배乾杯’ 등 음주 동작의 여러 단계 중 하나로서,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손에 멈추어 들고 잠시 뜸을 들이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다. 이백, 백거이, 이숭인 등 여러 시인들의 작품들에서도 역시 술잔을 든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시작詩作 당시 두보의 건강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등고〉에서 의미의 흐름을 볼 때 ‘술잔을 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금의 많은 해설가들이 똑같은 오류를 범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오류가 되풀이돼온 이유는 과거 사람들의 해석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고루한 풍조가 큰 역할을 했고, 가장 중요하게는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감정을 느끼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감동이란 ‘감정의 떨림’이다. 떨림을 가진 감정은 리듬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고, 리듬에 의해 재생될 수 있다. 시를 감상함에 있어서 그 시에 내장되어 있는 리듬에 따라 노래로 나타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반응하여 독자의 가슴에 재생·재연될 수 있다. 시는 시대로 나는 나대로, 이편에서 저편을 바라보는 시는 구경하는 시일 뿐, 시신詩神에 접신하는 시가 되지 못한다. 아흔 살의 나이지만 홍안의 청년처럼 패기 넘치는 한문학 원로가 전하는 투명한 당시 가락에 함께 귀 기울여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