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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安重根義士의 一生 ------ 6
2.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 ------ 7 3. 안중근의 가문과 가계 ------ 10 4. 소년 안중근의 학문과 어린시절의 성품 ------ 12 5. 안태훈과 천주교의 만남 ------ 32 6. 선교사 안중근과 초대 홍석구(본명 윌헬름)신부 ------ 34 7. 안중근의 교육운동 ------ 40 8. 안중근의 재판 ------ 60 9. 유언과 순국(최후의 유언) ------ 66 10. 안중근의사의 獄中 便紙 ------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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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重根義士의 一生
1879년 9월 2일 순흥 안씨 진사 안 태훈 공의 장남으로 황해도 해주부에서 탄생하다. 1884년 6세 조부와 부친을 따라 신천군 두리면 청계동으로 이사하다. 1894년 16세 동학을 빙자하여 양민을 괴롭히는 무장 폭도들을 진압하다. 김 아려양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다. 1895년 17세 천주교에 입교하여 홍 석구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고 「도마」 라는 믿음의 이름을 받고, 황해도 여러 지방을 순회 전도하다. 1905년 12월 27세 일본의 불법 침략을 세계 각국에 호소,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청국 「상하이」에 여행하다. 귀국, 부친별세, 청계동에서 장례식 엄수. 1906년 3월 28세 청계동을 떠나 가족과 함께 진남포로 이사한 후 가산을 기우려 두 곳에 삼흥 (三興)학교와 돈의(敦義)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영재를 양성하다. 1907년 29세 가을 진남포를 떠나 북간도 각 지방을 3개월 동안 시찰한 후 노령 블라디보톡에 도착하다. 이윤범, 김두성, 엄인섭,김기룡등과 의군을 양성하다. 특파 독립대장이 되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삔 역두에서 동양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의 원흉 일본의 이등박문을 사살함으로써 세계 인사들로부터 「코리아」가 아직 살아 있다는 대 찬사를 받다. 1910년 2월 14일 32세 중국 여순 일제의 법정에서 6회의 공판 끝에 사형이 언도되다. 이날 오후 2시에 정근, 공근, 두 아우는 안의사를 면회하고 지진의 말씀을 전하다 「네가 국가를 위하여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1910년 3월 8일 진남포로부터 찾아간 홍석구(프랑스인) 신부와 만나다. 1910년 3월 9~10일 홍신부로부터 안의사의 「永生永樂」을 위하여 「告解聖血」을 받아모시는 大禮式에 감옥소의 일반관리들이 모두와서 침례했다. 1910년 3월 26일 안의사의의거후 152일이 되는 3월 26일 상오 10시에 사형이 집행되다. 어머님께로부터 보내온 한복을 갈아 입고 형장에 임하여 「나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 일이니 한일 양국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로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부탁을 남기고 순국하디다. 의사의 유해는 보통 사형수와 달리 새 송판으로 침대관을 지어 입관하고 의사께서 몸에 품었던 예수님의 성화를 덮어 여순감옥 수이(囚人)묘지에 안장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