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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1부 희망이라는 반찬 01. 분노의 역류 (2004/3/22 시민의 신문) 02. 탄핵안 발의는 의회쿠데타이다 (2004/3/10 중앙일보 e칼럼) 03. 만두 빚기, 또는…… 공화국 레서피 (2003/2/10 아웃사이더 11호) 04. 노 대통령의 말 (2004/2/17 부산 국제신문) 05. 여성전용선거구제 도입하자 (2004/2/5 서프라이즈) 06. 국민을 바보로 아는 정치인들 (2004/2/4 중앙일보 e칼럼) 07. 갑자기 돌아온 부끄러움 (2004/2/4 서프라이즈) 08. 친일 청산과 거대 언론 (2004/1/28 중앙일보 e칼럼) 09. 친일행위규명특별법에 대한 참여정부의 소극성을 비판한다 (2004/1/19 부산 국제신문) 10. 이제는 유권자 혁명이다 (2004/1/18 중앙일보 e칼럼 ) 11. 한나라당의 계절 감기 (2004/1/8 중앙일보 e칼럼) 12. 이경제 의원의 '주물럭' 성희롱 발언 (2003/12/30 중앙일보 e칼럼) 13. 정치개혁법안 개악을 막아야 한다 (2003/12/22 중앙일보 e칼럼) 14. 청계천에 전태일 동상을 건립하자 (2003/12/15 서프라이즈) 15. 억장을 무너뜨리는 한나라당 (2003/12/13 서프라이즈) 16. 정운찬 총장은 답하라 (2003/12/3 중앙일보 e칼럼) 17. 추미애 의원의 틀린 계산 (2003/11/16 강원일보) 18. 극우 단체의 무책임함 (2003/8/26 강원일보) 19. '둘'을 능멸하는 '하나' (2003/7/13 강원일보) 20. 박근혜를 여성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 (2002/3/28 주간한국) 2부 부러진 칼 조각 사이의 길 01. 황금의 질주와 장소 02. 선생님의 시선 03. 두 개의 부러진 칼 조각 사이의 길 04. 고정희를 기리며 05. 김현에 대한 추억 06. 이연주를 기억하며 07. 인문학자로 살기 08. 불면의 밤 09. '믿음'보다는 '희망' 10. 여성과 성스러움 11. 고통의 의미-실존주의를 넘어서 12. 신비의 빛과 존재자의 고독 3부 더 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은 외출 01. 시의 길 02. 신화의 문화적 수용 03. 이제 더 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은 외출 04. 문학과 문화-잘 말하는 살을 위하여 05. 문학의 미래 06. 시와 영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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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말하는 김정란 - 꿈꾸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5년째 서울대와 싸우고 있는 김민수 교수가 천막농성을 막 시작했을 때다. 하루는 김정란 시인이 격려차 천막을 방문했다. 날씨는 을씨년스러웠고, 천막은 옹색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김정란은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응원하러 온 김정란을 외려 김민수 교수가 위로해야 했다. 편집회의에서 누군가 베트남 여성들이 결혼을 빌미로 윤락을 강요당한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행여 대한민국이 못 살았으면, 이라고 했던가. 이내 굵은 눈물방울을 떨군다.
김정란은 울보다. 폭력에 노출된 소수자들과 지독하게 왜곡된 현실을 마주할 때…… 운다. 아무리 미세한 사안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곤 마주보는 상대에게 감정이입. O양이 됐다가, 베트남 여성이 됐다가, 노무현이 된다. 글쎄. 그건 과거 체험에 대한 기억의 축적이 빚은 소산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슨 소리냐. 스스로 바깥에 섰던 체험 덕분에 아웃사이더의 시선을 가지게 됐다는 말이다. 몇몇 글에서 김정란은 이렇게 적었다. "유약했던 유년시절. 늘 힘센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았다. 비겁했고, 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자기 완결성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사춘기 시절은 고통스러웠다. 나는 책을 엄청나게 읽어댔고,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혼자였다. 그것은 무리에 섞여 몰려다니기 싫어하던 내가 자청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독은 몽땅 내 몫이었다."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마주했다. 김정란은 겁난다고 모른 척 외면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그 과정에서 깨지고 상처도 입었다. 개의치 않았다. 아니다.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화살을 맞고 온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 정도의 상처는 극복하고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리라. 그간 쌓아온 문학적 기반도 깡그리 잃어버렸다. 물론 스스로도 알고 시작한 일이다. 후회는 없다. 다만 김정란의 문학은 그대로인데 갑자기 생긴 미움 때문에 쓸쓸할 뿐이다. 권력? 차라리 그런 거라도 있었으면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덜 안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김정란은 시인이다. 팔자에 없는 사회 비평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시인이다. 과연 언제쯤이면 모두들 자신이 꿈꾸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시인은 시인으로 공화국의 시민은 공화국의 시민으로 말이다. 사람들이, 그 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들을 김정란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때, 아마 그때가 아닐까? "저야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제일 좋고, 시를 쓸 때 가장 행복하죠. 제 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론가로서 더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 정말 문학을 잘 아시는 분은 '김정란의 시는 김정란의 평론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씀하세요(웃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인인데, 시인들은 어쨌든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해도 시를 아니까요. 제 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결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이해하는 거죠. 시를 쓸 때, 나는 가장 나다워요. 그래서 그때 가장 행복하고요." <김홍민 _「아웃사이더」 편집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