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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갈래의 금강산 유람길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첫 출발지 : 누원(樓院, 다락원) 한양으로 넘나드는 고개 : 축석령(祝石嶺) 국가의 비호를 받은 왕실 원찰(願刹)이었던 곳 : 회암사지(檜巖寺址) 이백의 시구에서 이름이 만들어진 곳 : 백로주(白鷺洲) 박순을 추모하며 시를 짓던 곳 : 창옥병(蒼玉屛) 볏단을 쌓아 올린 듯한 기우제를 지내던 곳 : 화적연(禾積淵)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살아 있는 곳 : 삼부연(三釜淵)폭포 홍명구와 유림의 충정이 어린 곳 : 철원 충렬사지 2. 역사가 담긴 금강산의 권역들 지친 심신을 치유해 주는 권역: 내금강권 유람객의 숙식처가 되는 권역 : 외금강권 바다와 산이 공존하는 권역 : 삼일포·총석정권 황홀한 일출과 월출의 권역 : 낙산사·경포대권 3. 단계 김인섭의 금강산 유람기 금강산으로 유배 간 김인섭 금강산 일화를 담은 「금강음이십일절」 탁흥우의(托興寓意)를 통한 입도(入道)의 표현 「금강구곡시」산수의 서정(抒情)을 통한 자아의 치유 김인섭의 ‘금강산시’를 기리며 마치는 글 금강산의 9대 절경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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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모든 것으로부터의 상처, 그리고 치유를 말하다! “치유는 상처받은 이에 대한 진심과 인내와 신뢰를 보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다.”치유인문 컬렉션은 이름 모를 풀꽃들의 테피스트리다. 우리는 처음부터 정교하게 의도하지 않았다.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고 진정 일이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했고, 주고 싶을 때 주도록 내버려 두었다. 글은 단숨에 읽을 분량만 제시했을 뿐, 그 어떤 원고 규정도 두지 않았다. 자유롭게 초원을 뛰어다닌 소가 만든 우유로 마음 착한 송아지를 만들어내듯이, 편안하게 쓰인 글이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는 읽는 이들이 이것을 통해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새롭게 각성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면 그뿐이다. 읽는 분들이여, 읽다가 지루하면 책을 덮으시라.1.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눈 앞에 보이는 길부터 걷다.우리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걱정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길을 걷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또 만나게 되는 그 길은 우리를 새로운 희망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금강산 유람길’이 그러리라…. 걷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를 새로운 ‘희망의 나라’로 인도한다.2. 지친 심신을 치유, 유람객의 숙식처, 바다와 산이 있는 유람금강산은 뛰어난 경관이 유람을 위한 완상처이자 문학적 공간, 그리고 속세를 떠나 세속적 욕망의 좌절에 대한 치유를 얻고자 하는 치유 공간이기도 하였다. 내금강의 장안사, 백화암, 표훈사, 정양사 등 지친 심신을 치유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외금강의 유점사, 신계사, 발연사, 발연, 구룡연 등 유람객의 숙식처가 된다. 또 삼일포, 사선정, 단서암, 해산정, 총석정 등 바다와 산이 있는 유람이 있다.3. ‘구도(求道)’를 찾은 단계 김인섭의 시선 단계 김인섭은 자연 속에서 부족하고 부질없으며, 세상에 버려진 존재라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자연에 동화되어 온전히 몰입된 모습이다. 금강산의 자연을 보며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학문의 길을 찾는다. 그리고 그의 문학적 시선은 ‘진경에서 노니는 마음’으로 ‘도에서 노닌다’면 그 가운데 도가 존재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인문으로부터 나아간 치유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인문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 안에 시간의 역사나 사유의 결을 추적하는 이성도, 정서적 공감에 의지하여 문자든 소리든 몸짓으로 표현하는 문학 예술도, 주거 공간이 갖는 미적 디자인이나 건축도, 인간의 몸에 대한 유기적 이해나 공학적 접근도, 하다못해 기계나 디지털과 인간을 결합하려는 모색도 있다. 이렇게 인문을 정의하는 순간, 인간의 삶과 관련한 모든 노력을 진지하게 살필 수 있는 마음이 열린다.치유는 주체의 존재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자신을 스스로 조절해가는 자정 능력을 표현한다. 치유는 상처받은 이(그것이 자신이든 타인이든)에 대한 진심과 인내와 신뢰를 보내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보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눈빛과 모든 이의 아픔을 보듬겠다며 두 팔을 수줍게 내려 안는 성모마리 아의 자애로운 손짓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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