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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하여
Ⅰ. 멕시코에서 유학생으로 살기 hola! 멕시코 사랑은 비행기 편도 티켓 같은 것 멕시코에서 유학생으로 살기 렌트비 얼마 내세요 산카를로스 미술학교 로베르토의 커피 에납의 실기실 산카를로스 출신의 거장들 [예술가] 벽화를 그려 번 돈으로 토우를 사들인 디에고 리베라 [미술관] 소칼로 광장 근처의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Ⅱ. 원주민, 그들의 미술 아르떼 뽀뿔라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장 소칼로 페인트칠한 담벼락을 보며 원주민 옷에 환상을 입혀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독종의 미술, 아르떼 뽀뿔라르 벽화운동은 인종에 관한 개념미술이었다 신을 모신 우이촐족의 실 그림 신을 의인화하다 예술적인 괴물 알레브리헤 [예술가] 원주민의 아이콘 히메네스를 위한 이력서 [미술관] 늑대가 사는 마을, 코요아칸의 예술가들 Ⅲ. 여행에서 만난 멕시코 은광 마을에서 산 아마테 그림 마야 문명과 카리브 해가 만난 곳, 칸쿤 타일의 도시 푸에블라 내가 만난 도공들 그릇, 상대방을 배려한 예술 [예술가] 멕시코다운 열정과 배짱 루피노 타마요 [미술관] 소치밀코 호수와 돌로레스 올메도 Ⅳ. 멕시코의 일상에 스민 예술 멕시코에선 싸구려 양철도 예술이 된다 궤짝 위의 회화 멕시코의 제삿날 피에스타 없이는 못 살아 깃털처럼 가벼운 키스, 베시타 이토록 맛있는 타코 핑크색 시장 멕시코를 쇼핑하다 [예술가] 호소력 있는 삽화가 포사다 [미술관] 폴랑코의 미술관 & 멕시코시티의 갤러리와 서점들 에필로그1- 에납의 실기실에서 에필로그2- 작가 갤러리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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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버릇처럼 늘 멕시코 미술을 사랑한다고 하고 내 영혼은 멕시코에 잠식되었다고 말해왔건만, 정작 내가 멕시코 미술을 위해 한 게 딱히 없었다. 멕시코 미술에 큰 빚을 져놓고 말이다. 사람들이 멕시코에 뭐하러 갔냐고, 심지어는 멕시코로도 유학을 가냐는 질문에 시원하게 한 방 날려줄 만한 멕시코 미술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p.7 어떤 성당 앞을 지나는데, 어찌나 눈부시던지 우리 모두의 혼을 빼놓고 말았다. 장엄하고 고고하기까지 한 높다란 콜로니얼 건축물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놓았는데 마치 거인이 어린이 파자마를 입고 서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형태와 색이 이렇게 안 어울릴 수도 있을까? 내가 배운 조형미술 원리에 의하면 형태와 색은 하나를 이뤄야하는데, 그 성당은 서양미술의 그런 가르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완전 제멋대로였다. 이렇게 황당한 뜻밖의 색감을 연출하는 곳이 멕시코였다. --- p.95 만약 나에게 멕시코에서 그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뭐가 남았냐고 묻는다면, 아르떼 뽀뿔라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분명 살아 있는 자연이 아닌 무생물이지만, 나에겐 살아 있는 것, 그것도 아주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 p.123 알레브리헤의 화려한 색감과 기이한 형태를 보노라면 이런 감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싶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꽃인 마술적 사실주의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려나. 착각이고 환상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실인 양 넉살 좋게 행세하는 알레브리헤는 자칫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하지만 환상과 혼종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멕시코적인 예술품인지도 모른다. --- p.145 멕시코 사람들에겐 ‘그 정도면 됐다’라는 선이 없다. 정도껏이라는 말이 먹히질 않는 장식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있다. 그들에게 장식은 본능에 가깝다. --- p.241 멕시코의 제삿날에는 해골 사탕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핑크색 해골 사탕은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드는 웃음 바이러스가 있다. 해골 사탕의 이마에 흰 종이가 붙어있는데, 여기에 받는 이의 이름을 적어서 선물하는 것이 멕시코의 풍습이다. 이렇게 선물 받은 해골 사탕은 고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 해골 사탕과 함께 제사상에 올려진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석하는 셈이다. 죽음을 뛰어넘는 어우러짐, 이런 게 바로 죽음을 대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자세다. --- p.259 그들의 토우를 보고 있으면 세련되지도, 앙증맞지도 않지만 어수룩한 게 매력이자 강점이다. 기교 따위는 부릴 줄 모르는 순진무구함이 토우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투박함에 진심이 묻어났다. --- p.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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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그리고보는 나라, 멕시코 미술 체류기
낯선 멕시코와의 갑작스런 만남 한국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멕시코에 가게 된 저자는 낯선 멕시코 땅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미술을 만나고 거기에 매혹되고 만다. 멕시코는 디에고 리베라 같은 벽화 거장들이 국가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나라며, 프리다 칼로와 마리아 이스키에르도 같은 드라마틱한 여성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활동하던 나라다. 그러나 멕시코의 미술은 이름난 예술가들의 것만이 아니었으며, 일상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다. 서민들이 되는 대로 칠한 건물과 담벼락의 페인트칠에 감동하고 원주민들의 옷차림에 눈을 뗄 수 없었으며 시골 마을 여인들이 만든 토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화려하고 유쾌한 색감의 나라 세계에서 가장 컬러풀한 도시로 꼽히는 과나후아토 같은 도시들은 멕시코의 색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둘투둘한 회벽에 그 질감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색이 칠해져 있곤 한데, 저자는 이 조합이 마치 미녀와 야수같이 낯설었지만 의외로 어울렸고,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유쾌했다고 술회한다. 주류색과 배경색의 구분도 없고 배색에 있어 눈치를 보지도 않는 멕시코의 색칠된 담벼락은 속마음이 훤히 드러나는 아이의 해맑은 표정처럼 착하고 순진했다. 이렇게 화려하게 색칠된 벽은 기원전에 세워진 테오티우아칸 피라미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꾸밈없는 색감이야 말로 멕시코의 오래된 취향이자 전통일지도 모른다. 앞집에서 뒷집으로 옮아서 번져가듯 색에 대한 취향은 생생하게 살아서 공유되고 있으며 리카르도 레고레타, 루이스 바라간 같은 세계적인 멕시코 건축가들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적인 미술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소개하는 멕시코 미술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다. 멕시코만큼 다양한 토우가 존재하고 사랑받는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저자가 특히 애정을 가지고 소개하는 것은 콜리마 토우인데, 자유로운 인체 표현과 인간적인 나긋나긋함이 특징이다. 많은 예술품이 강력함, 완벽함, 무시무시한 존재감과 공포를 보여주려고 하지만 콜리마 토우에는 그런 강박이 없다. 오히려 잔잔한 일상의 묘사를 통해 인간적인 동질감을 이끌어 낸다. 저자는 삶의 힘든 순간을 겪으면서 콜리마 토우에서 굳이 외부에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 정직함과 홀가분함,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소박함을 발견했다. 지금도 멕시코에서는 토우가 만들어지고 있다. 멕시코의 도예마을 중에는 여성들만 토우를 만드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노동 틈틈이 흙을 빚고 색을 칠해 자기들만의 토우를 만든다.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생활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굳이 그 둘을 나눌 필요도 없어 보인다. 멕시코에서 예술은 멀리 있지도, 거창한 것도 아닌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 아르떼 뽀뿔라르 원주민 전통 예술을 뜻하는 아르떼 보뿔라르는 가장 오래된 멕시코 미술이자, 모든 멕시코 미술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멕시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아르떼 뽀뿔라르를 꼽으면서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그것도 아주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이야기한다. 아르떼 뽀뿔라르는 원시예술, 샤머니즘 성격의 축제 예술,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조형미술, 생활과 밀접한 민속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으며 스페인 정복 이후에는 유럽 요소도 받아들여 더욱 풍요로워졌다. “아르떼 뽀뿔라르는 메스티소처럼 혼혈된 것이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전승된 북미 인디언의 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아르떼 뽀뿔라르는 마치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꿋꿋이 살아 있는 선인장이나 피라미드의 무너진 돌 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주변 환경을 포용하면서 살아남았다. 그 끈질긴 생명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성이 바로 멕시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