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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차 속 세상의 모습을 보자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놀라운 거라면, 모두 똑같이 돈 내고 똑같은 표를 샀으니까, 분명히 똑같이 평등한 승객인데, 어떻게 그런 불평등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스운 거라면, 억지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자기 하나만의 구차한 편안을 꾀하여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하는데, 나중에는 결국 그 좋은 자리를 버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슬픈 거라면, 기차를 탄 시간 내내 착하고 순진한 승객들이 그저 입구에 쌓아놓은 짐 위에 앉거나 아이를 안고 노인을 부축하고 WC 입구에 서서 고생고생하면서, 게다가 검표원에게 욕까지 몇 마디 얻어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기차 속 세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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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삶의 진행이 완만한 비탈을 내려오는 것과 달리, 풍금 건반의 '도'에서 '레'로 갑자기 건너뛰듯 어제의 아이가 오늘 아침 갑자기 청년으로 변한다면, 또는 '도'에서 갑자기 '미'로 건너뛰듯 아침의 청년이 저녁에 갑자기 노인으로 변한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경악하고 감개하고 슬퍼할 것이요, 아니면 인생무상을 통감하면서, 자기가 사람인 것이 싫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삶은 '점점'에 의해 진행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여자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오페라 무대 위의 꽃 같은 소녀가 미래 어느 화롯가에 앉은 노파라고 하면, 누구나 믿지 않을 것이요, 소녀 또한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실 지금의 노파는 모두 꽃 같은 소녀가 '점점' 변한 것임에도.
--- p.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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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이를 먹었다. 그러나 그 의혹과 비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훨씬 많아지고 깊어졌다. 초등학교 때 학우와 교외로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우연히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지팡이로 사용했다. 나중에 그걸 밭에 버리고, 몇 번이고 되돌아 보면서, 자문자답했다.
"저 막대기를 또 볼 수 있을까? 앞으로 저 막대기는 어찌될까? 영영 못보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야!" 혼자 산책을 나갔다면, 차마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을 것이다. 어떤 때는 저만치 갔다가도 되돌아가서 버린 것을 다시 집어들고 정중하게 작별을 고하고 눈 딱 감고 버리고 돌아온 적도 있다. 그러고는 나중에 바보 같은 내 행도엥 혼자 웃는다. 그런 것은 인생에서 하나도 아까울 것 없는 자질구레한 것임을 잘 알지만, 그러한 비애와 의혹이 생생하게 내 마음에 가득 쌓여 그러지 않을 수 없게 하곤 한다. --- p.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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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글을 쓰고 글로 그림을 그리다!
펑쯔카이(1898-1975)는 붓놀림이 간단하면서도 함축적이고 재미있으며 사람을 웃게 하고 또 깊이 생각하게 하는 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한 가지만을 꼭 집어서 풍자하거나 찬송하지 않고 오로지 작가가 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감상들을 묘사하는데, 펑쯔카이는 중국에서 이러한 ‘서정만화(抒情漫畵)’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다. 전통적으로 시적 감정과 그림의 뜻을 중시해온 중국의 회화 전통을 이으면서도 독특한 자기만의 기법을 시도했던 펑쯔카이는 명실공히 중국 현대 회화계의 거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화가로만 알고 있다면 잘못이다. 국내에는 대표작 몇 편밖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펑쯔카이는 중국현대문학계의 일익을 담당할 만큼 번역가로도 산문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여기, 그림만큼이나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글 스물세 편을 모아 처음 선보인다. 삶의 오묘한 이치를 노래한 서정 산문! 펑쯔카이의 글에는 혼란한 세월에 냉정하고 꼿꼿한 글쓰기로 민중을 이끌었던 루쉰의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낭만과 서정이 있다. 세상에 나고 자라서 한 가정을 이끄는 어른이 될 때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느낄 법한 삶의 기쁨과 원망(願望), 후회, 아픔이지만 작가는 그것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길어올려 담박하게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추억, 학창 시절 어렵게 독학하던 일, 우연히 사범학교에 들어가 교사가 되어 분수에 없는 교사가 된 일, 스승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 등등.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한눈에 들여다보인다. 그의 글은 그만큼 솔직하다. 작가는 “내 일생은 모두가 우연이다. 우연히 사범학교에 들어가고, 우연히 음악 미술을 좋아하고, 우연히 독서하고, 우연히 책을 쓰고, 앞으로는 정말이지 또 무슨 우연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고 겸손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그의 관심이 한 개인의 인생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의 고민의 축은 늘 가정을 넘어 사회로, 사회를 넘어 국가에 향한다. 순간순간 성실하게 자기 삶을 더욱 곧추세우려는 지식인의 눈물겨운 노력이 행간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 또한 그의 글이다. 거기에는 늘 깊은 철학적 이치가 담겨 있을뿐더러 일제 침략의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나가야 했던 작가의 아픔과 고뇌도 묻어난다. 모래 한 알에서 세계를 보다! 「커다란 메모장」에서는 글을 쓰다 원고지 위에 떨어진 흰 복사꽃잎을 보면서 우주와 삶의 이치를 생각한다. “창가 뜰에 흰눈처럼 무수히 떨어진 꽃잎, 분명히 저마다 원래 붙어 있던 가지와 꽃자루가 있을 텐데, 누가 일일이 출처를 조사하여 그 꽃잎들이 원래 꽃자루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의혹과 비애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 마음을 습격했지만, 끝내 풀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지식이 많아질수록, 점점 큰 힘으로 습격해온다.” 「점점」에서는 “사람이 처지의 몰락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도 순전히 ‘점점’의 도움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부잣집 도령이 여러 차례 파산하며 ‘점점’ 가산을 탕진하여 가난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가난하면 품팔이를 해야 하고, 품팔이하다 왕왕 노예로 전락하고, 그러면 무뢰한이 되기 쉽고, 그러다 거지가 될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공공연히 도둑질을 하고……”라며 삶의 본질은 ‘점점’에 있고, ‘점점’은 바로 시간의 본질이라 얘기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깨치지 못하고 왕왕 “국부에 빠져서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다”. 작가는 “‘점점’에 기만당하지 않고 조물주에 속지 않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마음에 아울러 수축해놓는” ‘위대한 인격’이 되기를 꿈꾼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특히 그림도 그렇지만 펑쯔카이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글들을 많이 썼다. 자신이 직접 네 아이를 기르면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쓴 글들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닮고 싶어했던 작가의 글들은 때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를 만큼 익살스럽고 기지가 넘친다. 「나의 아이들에서」에서 작가는 “어른에 비하면 너희 창조력은 참으로 너무나 왕성하지. 잔잔! 너는 아직 키가 의자의 반도 안 닿으면서 늘 의자를 옮기려고 하다가 함께 나동그라지고, 차 한 잔을 고이 가져다 서랍 속에 보관하려 하고, 공이 벽에서 멈추게 해달라고 하고, 기차 꼬리를 붙잡으려 하고, 달님이 나오게 해달라고 하고,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하고 동심을 예찬한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걸핏하면 ‘자연으로 돌아가자!’ ‘생활의 예술화!’ ‘노동의 예술화!’ 이런 것들을 부르짖지만, 너희들 앞에서 참으로 너무나 추할 뿐이구나!” 하고 부끄러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자식」에서는 “오직 아이들만이 세상 만물의 진상을 가장 명확하고 완전하게 볼 수 있다. 그들에 비하면, 참된 마음의 눈이 이미 세상 먼지에 뒤덮이고 잘리고 부서진 나는 가련한 불구자일 뿐이다. 실로 나는 감히 그들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들을 수 없다. ‘아버지’가 존경의 대상이어야 한다면…” 하고 얘기한다. 또 「아버지 노릇」에서는 “이처럼 천진난만하고 광명정대한 봄 풍경 속에서 ‘좋은 것을 봐도 좋다고 하면 안 되고, 갖고 싶어도 갖고 싶다고 한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아버지가 서 있을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고 한탄한다. 「애들 놀이」에서는 “아이 대 아이가 교류하는 경우에는 이치를 따지지 않고 무력으로 서로 때리는 것이 통하며, 국가 대 국가의 경우에도 역시 이치를 따지지 않고 무력으로 전쟁하는 것이 통한다. 하지만 군자는 말로 해결하고 소인은 주먹으로 해결하는 법.” 국가간의 무력 전쟁은 어떤 면에서 “애들 놀이와 비슷하”지만 애들 놀이가 훨씬 명쾌하다고 얘기한다. 두려운 세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보하오의 죽음」에서 작가는 “나는 사숙하던 친구가 없어져, 비록 두려워하면서 복종하는 세월을 여전히 전전긍긍 보내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반감, 인류에 대한 혐오, 생활에 대한 염증 같은 것이 가슴속에 나날이 점점 쌓여만 간다”고 얘기한다. 일본 침략 당시 중국 지식인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아 선생님을 애도하며」에서는 “학교 문제, 회사 문제 등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관례대로 공적인 일로 처리하는데, 시아 선생님은 마치 제 집안 일처럼 진심으로 걱정했다. 국가의 일, 세계의 일, 다른 사람들은 역사 소설 정도로나 보는데, 시아 선생님은 모두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로 진심으로 걱정하고 눈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고 스승을 기억한다. 그리고 훗날 법사가 되어 등나무 의자에 앉을 때면 그 속에 살던 벌레가 죽을까 봐 의자를 한번 흔들고 나서야 천천히 자리에 앉을 만큼 모든 일에 성실했던 리수퉁 선생님이 있었다. 두 분 스승의 가르침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다는 작가의 삶과 글 속에서 두 스승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