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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한평생 가슴에 품었던 지도자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으로 들뜬 조선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이끈 그들의 지도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감격과 환호 속에서 사람들이 외친 이름은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민중의 곁을 지켰던 지도자 ‘여운형’이었습니다. 여운형은 일제에 맞설 때는 태양처럼 뜨거운 사람이었지만, 헐벗고 굶주린 조선 사람들을 향해서는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로워 ‘해를 품은 지도자’로 불렸습니다. 1945년 당시 여운형은 ‘조선을 이끌어 갈 양심적인 지도자’, ‘최고의 혁명가’로 꼽힐 만큼 민중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여운형은 삼일 운동의 주춧돌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수 일장기 삭제 사건’의 주역이기도 했지요. 여운형은 독립운동에 관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일본의 저명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당당히 조선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을 할 만큼 담대한 인물이었지요. 그러나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주요한 역할을 했던 여운형의 이름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긴 시간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이야기. 여운형은 해방 후 조선이 두 가지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통일된 정부를 세우는 일, 다른 하나는 친일 세력을 몰아내는 일이었지요. 그는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는 일이 또 하나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운형은 민족의 운명을 외세에 맡기지 말고, 사상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통일 정부를 세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섯 차례나 삼팔선을 넘어 북한을 방문하여 민족 통일 전선을 구성하기도 했지요. 소신을 굽히지 않는 발언으로 좌익, 우익, 친일파 등에 의해 테러를 당하기도 했지만, 여운형은 통일된 정부를 세우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47년 7월, 반대 세력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둘 때까지도 그의 걱정을 오로지, 자신의 조국인 조선뿐이었지요. 그동안 많은 역사 동화를 써 온 정란희 작가는 이번에는 남과 북에서 동시에 존경받았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비난받았던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삶을 전합니다. 긴 시간 우리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민족의 지도자 여운형의 이야기와 인물과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만나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잊혔었던 독립운동가, 한평생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꿈꿨던 가슴 뜨거운 지도자, 여운형의 삶을 만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