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말
울고 들어오는 나에게 장가영 디데이 윤다은 숨 권주현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방 김진미 |
김진미의 다른 상품
|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문 앞까지 들리는 시끄러운 TV 소리에 엄마가 집에 있다는 걸 알았다. 문고리를 잡고 돌렸지만, 추위에 얼어 붙은 문고리는 쉽사리 돌려지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물병을 꺼내 문고리에 천천히 물을 부었다. 그제야 문고리가 돌려져 어렵사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시끄럽게 켜져 있는 TV를 보곤 한숨을 쉬었다. 나는 먼지가 소복이 쌓인 TV를 껐다.
-왜 끄냐?” 엄마는 나를 노려보았다 --- p.16 「장가영_울고 들어오는 나에게」 중에서 민이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예고 없이 불어온 에어컨 찬바람에 민은 저절로 움츠러 들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 작게 들리던 노래의 진동이 바닥을 타고 민의 발바닥을 건드렸다. 실내화를 연습화로 갈아신고 몸을 일으켜 세우자 거울이 보였다. 동아리방의 벽 한쪽을 다 차지할 만큼 큰 거울에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부원들의 모습이 비쳤다. 민이 말했다. -안 맞던 거 다 맞췄지? 동아리방에 정적이 흘렀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만 가득했다. 민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 p.44 「윤다은_디데이」 중에서 현관문이 닫히면서 자그마한 물고기 모형 두 개가 매달린 주물 종이 한바탕 소음을 일으킨다. 등줄기로 새벽 시간대의 미묘한 찬기운이 머문다. 뒤늦게 반응하는 센서 조명은 5초 이내로 다시 꺼진다.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첩이 하나 빠진 듯한 소리가 나는 걸 보아 안방이다. 가만히 숨을 삼킨다. 성급하게 신발을 벗지 않고 상황을 주시해 보지만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이쪽으로 오는 듯한 발걸음이 내가 딛고 선 현관의 바닥까지 울려댄다. 발소리는 거실을 가로질러 마침내 현관 앞에 다다르자 멎는다. 움직임을 감지한 센서 조명이 사위를 밝힌다. 나는 핏발이선 두 눈과 마주한다. -이 시간에 어딜 다녀오니. --- p.70 「권주현_숨」 중에서 9시만 되면 도로의 모든 자동차 신호등이 적색 점멸등으로 바뀐다.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신호등을 볼 때마다 집으로 어서 들어가라는 신호 같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없다. 노인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해가 지면 모두 죽은듯 잠이 들고 새벽에는 일찍 깨어나 꿈틀거린다. 윤은 춥고 어둡고 지독하게 밤이 긴 이곳이 싫다. --- p.92 「김진미_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방」 중에서 |
|
들어가는 말
예천여자중학교에 발령받은 첫 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가영, 못 하는 것이 없는 다은, 쓰는 것이 모두 시가 되는 주현의 담임이었다. 국어 시간에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매일 글쓰기로 수업을 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오늘 또 쓰냐고 했다가 나중에는 오늘은 안 쓰냐고 물었다. 이 아이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자꾸만 쓰자고 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쌓였고, 아이들은 더 잘 쓰게 되었다. 그 해 우연히 아이들의 글을 모아 보낸 백일장에서 주현이의 시가 장원을 차지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모두 다른 반으로 흩어졌다. 다음 해 3월 가영이가 교무실 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선생님, 올해는 책 같은 거 안 써요?” 라고 묻기 전까지 아이들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아이들과 함께 출판한 기억은 끝내주게 좋았지만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가영이의 말에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다시 모인 것은 올해 3월. 나는 첫 부장을 맡아 서류가 책상 양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영이와 주현이가 여러 번 찾아와서 “올해는 진짜 안 하실 거냐?”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양옆의 서류로 화면 가득 채운 공문들을 보여주면서 올해는 진짜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번 찾아온 아이들을 보시면서 앞에 계신 내가 좋아하는 선배 선생님께서 “올해 애들이랑 국어 교과 수업도 안 하는데 같이 해 주면 어때요? 저렇게 하고 싶어 하는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얘들아, 올해 출판해 볼래? 우리가 같이 쓴 소설집.” 아이들은 좋다고 말했고 나는 들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소설을 함께 쓰면서 아이들에게 바로 사과했다. 작년까지 아이들의 글에 피드백만 하다가 막상 써 보니, 소설 쓰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작디작은 책을 쓰면서, 자꾸만 속상해졌다. 더 잘 쓰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 속상할 때마다 다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더 욕심을 부릴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들이 대단한지 아이들은 쓰고 또 썼다. 여기에 남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썼고, 많이 지웠다. 그 시간까지도 모두 알아봐 주길 바란다. - 김진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