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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2권> 1 2 3 4 5 6 7 8 9 10 11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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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 번이나 약혼하고 세 번 다 파혼했다면 그 주인공은 대체 어떤 여자일까? 파혼을 한 것도 상대 남자의 재산을 모조리 흡수한 뒤에 한 것으로 유명하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은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마귀를 연상할 것이다.
‘이 집에 그 여자가 산다고?’ 재준은 까마득한 붉은 벽돌담을 올려다보았다. 벽돌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이런 곳에서 사니 그런 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집은 메마른 느낌을 풍기는 검은 유리로 된 창과 높고 단단해 보이는 지붕을 갖고 있었다. 툭. 갑자기 재준의 발밑으로 구슬과 꽃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예쁜 모양의 분홍색 구두 한 짝이 떨어져 내렸다. 투둑. 뒤이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또 한 짝의 분홍색 구두가 떨어져 내리더니, 불쑥 작은 여자의 얼굴이 담에서 솟아올랐다. 꽃처럼 솟아오른 여자가 끙끙거리며 담 위로 올라앉기 시작했다. 한 송이 꽃을 연상시킬 만큼 화사하고 아름다운 핑크 드레스를 입은 여자였다. 담 위로 올라앉은 여자의 진주와 꽃으로 장식된 스커트는 연꽃잎처럼 겹겹이 퍼진 것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 여자다!’ 단번에 결론을 내리고 재준은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소문대로라면 여자는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야 했다. 대체 저 얼굴 어디를 보고 남자들이 한눈에 매혹을 당했지? 꽃보다 예쁘다는 소문이 대체 왜 났을까? 여자는 예쁘긴 했지만,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워 남자의 혼을 뺏을 정도라는 소문에는 미치지 못했다. 살아 있는 매혹이라는 수식어를 이 정도 얼굴에 붙이는 것은 아무래도 과분한 일이었다. 70점! 그럭저럭 봐줄 만하니 말이다. 담 위로 올라앉은 여자가, 담 밖에 버티고 선 커다란 은행나무를 가늠하듯 바라보았다. 나무를 보며 시시각각 얼굴빛을 바꾸고 있는 여자는 아직 담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재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담에서 나무로 뛰어 건널 것 같은 무모한 결심이 앙다문 여자의 입술에서 느껴졌지만, 설마 뛰기야 하랴, 재준은 생각했다. 담은 아주 까마득해서, 자칫 떨어지면 목이 부러지든지, 목이 아니라면 최소한 팔이든 다리든 어디 한 군데는 부러질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니 나무로 건너뛴다는 것은 바보라면 모를까 결코 제정신의 인간이 선택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담 옆에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은행나무가 영차 하며 그녀의 곁으로 한 걸음 옮겨줄지 모른다는 생각이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하는 걸까? 여자가 하염없이 나무만 바라보았다. 80점. 점수를 조금 높였다. 아마도, 절대적인 미인이라는 선입견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80점은 넘었을지 모른다. 오밀조밀한 얼굴은 눈을 사로잡게 예쁘진 않았지만, 흠잡을 만한 곳도 없었다. 여자는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해 보였다. 게다가 투명한 하얀 피부는 햇빛에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것이 꼭 요정처럼 보여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다. 점수를 좀 더 높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재준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렸다. 갑자기 여자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금방이라도 은행나무로 건너뛸 것 같은 기세였다. 앗! 순간이었다. 여자가 정말로 나무로 몸을 날렸고, 여자가 떨어져 내릴 것에 대비해 재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후유! 재준은 저절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모양인지 아니면 신이 보호라도 했는지 여자는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나무에 건너앉아 있었다. 이상했다. 재준이 알기로 이 약혼을 원한 것은 여자였다. 터무니없는 조건까지 내걸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약혼은 그 조건을 다 들어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여자가 이렇게 달아날 이유는 없는 거였다. 이상하군. 뭔가, 여자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 재준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동안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른 여자가 나무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프숄더의 화려한 드레스는 나무를 타는 행동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떨어질 것 같은 위태함에 재준이 한 걸음 다가갔다. “잡아…….” 재준의 잡아주겠다는 말은 채 끝나지 못했다. 갑자기 여자가 나뭇가지를 잡더니 철봉에 매달리는 것처럼 휙 몸을 내렸던 것이다. 웃! 이것은 여자가 나무로 옮겨 앉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된 여자로 인해 재준은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탕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의 모습은 그다지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의 가슴 부근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완전히 뒤집어진 스커트는 충분히 재준을 놀라게 했다. 뒤집어진 치마로 인해 여자의 하체는 여과 없이 드러나 버렸다. 차라리 전부 나체였다면 덜 아찔했을지 모른다. 아슬아슬한 팬티에 살짝 가려진 새하얀 만월 같은 엉덩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재준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죽이는 각선미군. 여자의 다리는 침이 넘어갈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각선미가 훌륭해 다리 보험을 들었다는 연예인보다 훨씬 더 잘빠진 다리였다. 100점. 그만큼 완벽했다. 재준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페디큐어 곱게 발린 앙증맞은 발톱에서, 종아리로, 하얀 무릎 위로 그리고 허벅다리로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기가 막힌 속옷이군.’ 여자는 세 개의 얇은 끈과 중심 부분이 손바닥의 반도 안 되는 빨간 입술 모양의 천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얄궂고 충격적인 T팬티를 입고 있었다. 여자의 하얀 얼굴에 나타난 귀여움과는 달리, 노골적인 섹시함으로 두드러진 팬티였다.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면적으로 중요 부분이 가려진 팬티는 너무나 관능적이고 대담했다. 재준은 그동안 여자의 팬티를 충분할 만큼 보았다고 자부했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망사로 된 것, 끈 세 개가 전부인 것 같은 팬티 등, 야하기 그지없는 기묘한 속옷을 수없이 보았기에 충분히 면역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여자, 아무리 늘씬한 몸매의 여자도 보는 순간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는 상상에 빠져들게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여자의 다리는, 그의 허리에 두르고 몸 아래에서 헐떡이는 상상 속으로 단번에 재준을 빠져들게 만들어버렸다. 숨이 거칠어지면서 몸 한곳으로 모든 힘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재준은 생전 처음 여자의 팬티를 보는 소년처럼 우뚝 선 자신의 몸에 그만 당황해버렸다. “죄송한데요, 좀 도와주실래요?” 버둥대던 여자가 재준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구원을 요청해왔다. 1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발과 땅의 간격에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는 여자는 치마가 뒤집어져 자신의 아랫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재준은 움직이지 못했다. 여자의 다리를 본 순간 우뚝 서버린 몸의 한곳을 진정시키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좀 도와달라니까요!” 여자가 사정하는 시선으로 재준을 보다가 그가 움직임 없이 서 있자 도움을 받기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팔을 놓으며 아래로 뛰어내렸다. 걸린 치마로 인해 여자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당연했다. 이어 체중으로 인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치마가 찢어진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야!” 재준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자 고꾸라지던 여자가 그의 품 안으로 굴러 떨어졌다. 33, 23, 34! 순간적으로 읽혀진 여자의 몸 사이즈였다. 글래머는 아니지만 참으로 예쁜 몸이었다. 게다가 향기롭기도 했다. 꼭 끌어안으면 비눗방울처럼 터질까 아니면 풍선처럼 미끄러져 나갈까? 저도 모르게 재준은 감칠맛 나는 여자의 몸을 끌어안으려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여자가 더 재빨랐다. 여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자가 품에 머문 시간은 찰나처럼 짧았지만 너무도 작고 부드럽던 여자의 몸은 재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재희보다 더 가느다랗군. 재희는 세상의 모든 여자에 대한 기준이었다. 그러니 재희보다 가늘다는 것은 여자가 여위었다는 것이다. 하긴 여자의 가늘디가는 팔이랑, 쇄골이 깊은 어깨는 지나치게 말라 보였다. “아이, 참!” 여자가 치마를 탁탁 털더니 찢어진 모습을 감추려는지 이리저리 손으로 치맛자락을 매만졌다. 종아리까지 닿는 치마는 엉덩이에서 부터 끝까지 수선이 불가능할 만큼 너덜너덜 찢어져 있었다. 이리저리 치마를 만지던 여자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떨어져 있는 구두를 찾아 신기 시작했다. “안 다쳤습니까?” “지금 내게 다쳤냐고 물으신 거죠? 다행히 일찍 잡아주셔서 조금 다쳤답니다. 그리고 미리 도와줬으면 조금도 다치지 않아, 그런 질문을 안 받아도 됐을 거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네요.” 여자의 팔꿈치는 나뭇가지에 긁혔는지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맺혀 있었다. 여자가 팔꿈치 상처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혀를 내밀었다. 이 여자가 어디서 이따위 짓을 하는 거야. 핑크빛의 여자의 혀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매혹적인 여자의 모습에 재준은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입 안도 바짝 말라갔다. 이 여자가 왜 팜므파탈로 불리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여자는 눈부셨다. 별것 아닌 동작 하나로 여자는 그의 온 신경을 잡아채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부시다 해도 절대 매혹되면 안 된다.’ 그랬다간 한 방울의 기름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여자에게 흡수당할 것이다. 본능에 들어온 빨간 등, 그것은 위험신호였다. 재준은 시선을 돌리려 했다. 허나 고개가, 눈길이 못 박힌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저 여자가 자신의 팔을 핥는 동작을 목마르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성이 부르짖었다. 돌아서, 신재준. 이대로 차에 타. 그리고 여길 떠나. 지금 이대로 돌아선다면 분명 더 이상 이 여자와 얽히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재준은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저도 모르게 여자에게 다가서고 말았다. “다친 모양이군요?” 여자가 흘깃 재준을 바라보더니 새침하게 눈길을 돌려버렸다. 흥 하고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분명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잡아주지 않은 재준을 원망하는 것이리라. 여자의 색기는 아주 독특했다. 청순하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한, 그런 것이 적당히 섞인 것이, 줄줄 색기가 흐르는 보통의 미녀들과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귀염성 있는, 보통 여자처럼 보이는 예쁘장하게 느껴지는 얼굴은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리뜬 눈이나 약간은 뾰로통해 보이는 표정이 재준에겐 무척이나 자극적으로 보였다. 여자가 뭔가 대답을 하려고 그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아니, 수진 양, 거길 어떻게 내려갔지요?” 담장 위로 중년의 여자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담장을 올려다본 여자가 달아날 곳을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더니 재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턱으로 주차돼 있는 그의 차를 가리키며 다급히 물어 왔다. “저 차, 혹시 아저씨 차예요?” “그렇다면?” “저 좀 태워주세요.” 태워달라니, 이건 진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왜 달아나려는 거지? 약혼은 여자 쪽에서 원해 이뤄진 것인데. “수진 양, 어딜 가는 거예요? 어서 들어와요. 사장님께서…….” “아, 빨리요.” 여자는 재준이 차에 태워주지 않을 거라고는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이거 재밌어지는데? 약혼식을 앞두고 신부가 달아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답은 하나, 그럼 약혼식은 없는 것이다. 재준은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 “좋아. 태워주지.” “급해요. 어서 서둘러요.” 재준이 리모컨 키로 차 문을 열자 여자가 재준보다 먼저 조수석으로 올라앉았다. 연신 뒤를 돌아보던 여자는 재준이 운전석에 오르자 다급하게 탕탕 차창을 두드렸다. “어서 가요. 서둘러요.” 사이드미러를 통해 집 안에서 사람들이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요.” 힐끗 그들을 룸미러로 바라보며 재준이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차가 엔진 소리와 함께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