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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한국화교는 누구인가
01. 정착기(1882~1904년) 오무장공사 원세개의 화상 육성 거상 동순태 화상과 중계무역 02. 발전기(1905~1930년) 거주지 제한 '비단이 장사 왕서방' 화교 경제의 전성기 '장꾸에이' 화교 경계론 03. 침체기(1931~1945년) 침체의 서막 화교 배척 사건 전시 경제의 영향 04. 일시적 회복기(1946~1949년) 적성국민에서 '일등국민'으로 '마카오신사' 화교 경제의 일시적 회복 북한 화교 05. 쇠퇴기(1950~1989년) 화교 무역상의 몰락 한ㆍ중(대만) 경제 관계의 약화 (화농), '왕서방'이 사라지다 화교 주물공장의 흥망성쇠 자장면의 비애 화교 차별 화교 엑소더스 06. 도약기(1990년~ ) 청천백일기가 오성홍기로 친대만계와 친중국계 단체의 대립 화상의 후예, '따이꿍'과 '궁터우' '신화교'의 등장 외환위기 이후 마치며 정부 : 제도 개선 노력의 허와 실 기업 : 화교 인재의 양성 민간 : 연구와 교류의 장 마련 부록: 한국화교사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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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교 120년의 역사를 정리하다
세계의 화교 및 화교자본은 사회, 경제, 문화인류학적 연구의 주요대상이고 상당히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특히 중국의 고도경제성장, 화교의 동남아경제 장악 등으로 동아시아에서 화교 경제가 가지는 의미는 지대하고 최근에는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로 화교의 영향력이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또한 한국 화교가 어떻게 자본을 축적했는지 그리고 왜 경제력을 상실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기본적인 자료도 축적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의 화교 경제에 관해 120년이라는 역사적 텀을 두고 한국화교 경제의 과거와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120년의 화교 경제사를 파악하는 것은 현재 벌어지는 중국의 고도경제성장, 화교의 동남아경제 장악, 한ㆍ중경제관계의 강화, 화교자본유치의 필요성 등의 여러 상황속에서 한국 화교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현실적 문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 책은 이런 한국 화교 경제사에 기반하여 국내 화교와 한국 사회가 부(負)의 역사를 청산하고 발전적 공생관계를 만들려면 정부, 기업, 민간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차이나타운 없는 유일한(?) 나라, 한국화교 경제 왜 몰락했나? 한국 화교의 역사는 120여년을 헤아린다. 지난 120여년의 한국화교 경제는 19세기말, 1920년대, 해방 초기는 크게 융성하여 한반도의 경제를 위협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각 시기 화교경제의 융성은 대중수입무역을 근간으로 화교 네트워크를 활용한 상업자본 축적이 그 기초를 이루었다. 구한말의 한국 화교는 영국산 면포의 중계무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상인과 조선상인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이어 식민지기 들어 중국정부의 정치적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1920년대에는 영국산 면포가 일본산 면포에 경쟁력을 상실하여 더 이상 수입하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상당한 경제력을 발휘했다. 그 원인은 중국산 삼베와 비단의 수입을 독점, 이를 국내 화교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화교경제가 1930년대ㆍ40년대초, 1950년대 이후 쇠퇴를 경험한 것은 대중교역의 단절과 일제와 한국정부의 화교 탄압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화교의 경제력 신장을 경계하여 고관세를 부과하여 정책적으로 이를 저지했다. 게다가 1931년 국내 화교 배척사건, 중일전쟁, 대중무역이 대만주무역으로 이동하면서 대중무역의 담당자인 한국 화교의 활동공간은 점점 좁아져 갔다. 이리하여 해방직전 화교 경제력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특히,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식민지 정권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에 서 있었으며, 시민 사회마저도 대체적으로 화교를 비롯한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했다. 더욱이 기업은 화교 기업을 경쟁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화교기업과 공생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0년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특히 외환위기 이후 화교와 화교자본에 대한 인식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화교는 양국 교역의 담당자로서 상업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중국의 대한투자의 증가, 신화교의 증가, 2005년 10월 개최되는 세계화상대회 등으로 국내 화교 경제는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한국 사회가 스스로 내부적인 의식개조나 제도개선을 통해 화교와 화교 경제와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기보다, 외부적인 요건, 구체적으로 탈냉전과 세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공존과 협력의 방안을 찾기 시작했던 셈이다. 또한 한국 사회는 아직도 국내 화교의 경제가 커지는 것에 위기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국내 화교 경제가 발전한다고 경계의 눈초리로만 바라보는 것은 '소국의식'의 발로이자 한국경제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국 경제와 국내 화교 경제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공생의 길을 적극 모색하고, 그 힘을 한국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