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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의 슬픈 옛 이야기가 긴 강물처럼 흘러갔다.
“해리를 만나고 나서부터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어.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도 좋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엄마 같은 사랑을 주는 것도 참말 기쁘더라…….” 고모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고모도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른이 된 고모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구나. 이 세상에 없더라도 엄마는 평생 그리운 거구나…….’ 고모에게 엄마 자리를 대신해 주려는 우리 아빠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굴도 못 본 할머니의 이야기에 애잔한 그리움이 가슴 밑바닥부터 안개처럼 스며들었다. --- pp.45-46 그때 언젠가 고모가 한 말이 떠올랐다. “공군 파일럿한테 직접 들은 얘기야. 직업이라 자주 하는 일인데도, 기체가 무한한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때는 일순간 아득한 두려움에 빠진대. 하지만 지상에서 한 손에 깃발을 들고 두 손 높이 들어 오래 흔들어 주는 동료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는 거야. ‘나를 위해 저렇게 열정적으로 손 흔드는 사람이 있구나…….’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는 거지. 그래서 그 조종사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면 언제나 그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힘껏 손을 흔들어 준대.” 이 순간 문득 고모가 저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 나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고모의 텔레파시를 받은 것처럼 푸른 하늘에 대고 마구 손을 흔들었다. 먼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새가 고모처럼 느껴졌다. 바람결 속에, 어쩌면 흰 구름 속에 고모가 들어앉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 pp.139-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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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네 집’은 은조의 아빠가 로사 고모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지어 준 별장이다. 아빠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일찍 여읜 여동생(로사 고모)을 자식처럼 정성들여 돌봐준다. 하지만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모는 늘 해리 걱정뿐이다. 해리는 고모가 고등학생일 때, 길가에 떠돌아다니던 유기견이다. 은조와 가족들은 고모에게 해리가 자식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걸 잘 알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해리만 챙기는 고모의 모습에 답답함과 서운함을 느낀다. 그런 와중에 나이가 많이 든 해리가 부쩍 힘이 없어지고 여기저기 몸이 아파, 고모는 늘 안전부절못한다. 그런 해리를 걱정하느라 자신의 몸도 관리하지 못했던 고모에게 뜻밖의 위기가 닥쳐오는데……. 분신과도 같았던 해리와 이별을 하는 고모의 모습을 보며, 같이 아파하고 힘이 되어주었던 은조.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마저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은조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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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해리와의 만남에서 이별까지
슬프지만 아름다운, 살아가는 내내 힘이 되는 이야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동문학 작품이 '죽음'을 다루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어린이 독자들이 불안해하기에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주는 선생님과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책을 선정할 때 꺼려했다. 하지만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는 걸 아이들도 알 필요가 있다. 그저 '지금 알 필요 없는, 먼 이야기'로 치부하고 덮어 두기에는 죽음이 아이들의 삶에 어느 순간 끼어들지 모르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청개구리 출판사에서 출간된 『해리네 집』 역시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말하기에 앞서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를 이야기한다. 주인공 은조가 사랑한 고모. 고모가 사랑한 가족과 같은 강아지 해리. 몸이 약한 고모를 마치 부모처럼 챙겨주는 아빠와 엄마……. 언뜻 보면 주인공은 이러한 관계를 지켜보는 관찰자로 보인다. 하지만 고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렇기에 초등학생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는 단순히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와 또래인 주인공은 사랑하는 고모와, 고모가 사랑한 해리라는 강아지의 죽음을 통해 한층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죽음이란 단순히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헤어졌던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백승자 동화작가는 「작가 후기」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평생을 산다 해도 마음과 마음이 닿아 위안이 되는 인연. 마음을 바치는 것과 영원한 이별을 주제로 한 동화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는 이 세상 누구에게 '로사'가 되고 '해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한다. 작가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 주려고 노력하는 삶,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는 인생을 독자들에게 나직히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울음이 왈칵 쏟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실컷 울고 나서 삶과 죽음이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듯, 만남과 이별 역시 맞닿아 있다는 진리를 아이들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그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길 희망한다. 작가의 말 오래 소망하기를, 책을 낸다면 꼭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번 써 보고 싶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 평생을 산다 해도 마음과 마음이 닿아 위안이 되는 인연. 마음을 바치는 것과 영원한 이별을 주제로 한 동화를 쓰고 싶었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이 모든 추억과 그리움이 또 우리의 남은 생애를 밝히고 키워 준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소중한 한순간 한순간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태어난 동화가 『해리네 집』이다. ―백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