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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기심이란 건……. 만약 내가 그 늙은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면, 그녀가 뭐라고 말했을지 알고 싶어……. 사람들은 ‘만약 이렇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고 흔히 생각하는데, 여기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법이거든. 이 세상 어떤 일도 우리가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과 똑같이 일어나지는 않더라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한번 직접 해보고 싶었던 거야……. 사람들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 ‘아마도 그런 것?들이 실제로 나타난다면! 나는 창조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 ‘아마 그럴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 애정을 갖는 것……. 만일 내가 국가라면 나는 나를 가두어 버릴 텐데.'
--- p.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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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창문 위로 그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아메데는 넥타이의 위치를 바로잡으려고 창문 쪽으로 몸을 굽혔다.
?그가 정신을 팔고 멀리 앞을 내다볼 때 내 손아래 있는 이중 잠금장치를 움직이는 거야! 생각보다 아주 쉽게 열리거든. 12까지 천천히 세는 동안 들판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자의 목숨을 구해주자. 시작. 하나, 둘, 셋, 넷(천천히! 천천히!),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불빛이다…….? 아메데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라프카디오가 뒤에서 밀어서 눈앞에 갑작스럽게 깊은 구렁이 나타나자, 그는 몸을 지탱해 보려고 크게 팔을 휘저었다. --- pp.33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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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의 세계에 갇힌 신의 도덕에 대한 의문 『교황청의 지하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독특한 소설의 형식에 있을 것이다. 서사 위주의 기존 소설과는 다른 구조로, 앙드레 지드 자신 또한 이 작품을 ‘소티’(sotie, 프랑스 중세의 시사풍자적인 익살극)라고 부르며 자신의 순수 소설(roman)과 구분했다. 그는 이 형식을 빌어 종교적인 도덕과 인간 본연의 자유에 대한 갈등을 부각시키고 신의 존재와 인간 욕망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지드는 여러 시점을 다양하게 채용하며 이러한 주제를 이리저리 뒤섞는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익살극에서와 같이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명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먼저, 쥘리위스는 안락한 환경과 보장받은 지위 속에서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얻는 것에 노심초사하는 소설가로, 가장 이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동서인 앙티므는 과학자이며 종교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인물이었으나 기적을 체험한 후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게 된다. 아메데는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나 지네 일당의 사기에 휘말리면서 뜻밖의 결과를 맞이한다. 라프카디오는 쥘리위스 백작의 아버지가 낳은 사생아이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인습적인 도덕을 초월하고 자유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아메데를 죽이는 동기 없는 살인을 감행하게 된다. 라프카디오는 지드가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나게 하는 독특한 성격의 인물이다. 그는 종교적 교의에 얽매인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의미와 그것의 한계를 되묻게 만든다. 그가 저지른 동기 없는 살인은 단순히 악한 의지의 발로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 자유와 규율의 양극단을 오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부조리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지네 일당의 사기 행각은 라프카디오의 역할을 보다 분명히 부각시킨다. 진짜 교황이 감금당했다고 사기를 일삼는 지네 일당에게 속아넘어가는 인물들은 신의 세계에 관여하고자 버둥거리는 인간의 가장 세속적이고 개인적인 욕망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 속성은 라프카디오를 규제하고자 하는 그들의 가치관이 가식적이고 허위적인 정신에 기반해 있음을 알게 한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보여지는 느닷없는 라프카디오의 반성은 종교적 가르침이나 도덕 등은 신이 일방적으로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깨달아서 도달할 수 있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교황청의 지하실』은 전통적인 종교와 도덕의 구속과 타율성을 거부하고 진정한 도덕성의 탐색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구원, 즉 인간 본연의 자유에 이를 것이라는 주제를 전하고 있다. 『교황청의 지하실』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독자들이 익히 만나왔던 그의 다른 작품보다 한층 무게 있고 발랄한 그의 새로운 지성을 만날 수 있는 숨겨진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앙드레 지드는 1914년 이 작품을 발표하고 1950년 직접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1년 앙드레 지드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고(故) 문호근 감독이 직접 번역하고 각색하여「교황청의 지하도」라는 제명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하면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작가의 내면에 공존하는 두 요소의 대립과 조화 앙드레 지드는 11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청교도적 엄격함을 고수하던 어머니 밑에서 가정교육을 받았다. 가뜩이나 병약했던 그에게 강요된 종교적 계율은 자아 형성기에 있어 견디기 힘든 체험으로 남아 작가로서의 창작에 중대한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억압된 유년기를 보낸 지드는 1893년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인생의 전환을 겪게 된다. 유럽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프리카의 야성적 풍습들과 자유로움은 그를 구속하던 종교적 윤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지드는?나는 가톨릭교도도 아니고 신교도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도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교회의 제도나 교리에 구애받지 않는 자율적인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자 했다. 『교황청의 지하실』의 등장인물들은 지드의 내면에서 치열하게 충돌하던 종교적 도덕과 개인의 자유라는 두 개의 요소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의 맹목적인 신앙과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한 다툼을 ‘가짜 교황’이라는 희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종교적 위선과 그 도덕관의 기만성을 꼬집고 있으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려 했던 자신의 갈등과 문제의식도 함께 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