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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사상이나 생각, 저술, 경험 따위를 모은 지적인 삶이 한 시대의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개인의 삶이 시대를 비출 수 있을 만큼 역동성을 지닐 경우, 그 사람의 전기는 곧 한 시대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역사가의 프리즘으로 바뀐다.
이 프리즘은 과거 사실을 특정 시각을 가지고 재해석해서 성격을 완전히 바꾸고 새롭게 정의해 내놓는다. 이런 점에서 스코트 니어링(1883~1993)의 삶은 상징적이다. 니어링의 삶이야말로 20세기 미국을 고스란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 p.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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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창조와 성실성으로 멋지게 그려낸 스코트 니어링의 독특하고도 열정적인 삶 ‘스코트 니어링’은 우선 한 권의 책으로서 훌륭합니다. 보기에 따라 흔한 전기물 중의 한 권이면서도 웬만한 학술 저작을 능가하는 꼼꼼한 주와 성실한 참고문헌 소개, 색인이 돋보입니다. (…) 학문적인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는 사람조차 ‘마구잡이 칭찬 일변도의 위인전’을 쓰기 일쑤인 국내 전기물 저작 풍토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살트마쉬는 니어링 부부에 반해 여기에 자신의 삶을 걸다시피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본의 이익을 위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폭압하고, 야만적인 전쟁으로 자국민을 서슴없이 내모는 미국 지배층의 문제를 폭로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니어링의 투쟁을, 흥분과 주관을 극도로 자제하며 차분하게 그려내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제 마음에 떠오른 것은 수천, 수만 개의 벽돌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모자이크 작품, 또는 엉뚱스럽게도 몇 년 전 성철스님이 남긴 누더기 두루마기였습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건축물은 책에 구체화한 스코트 니어링의 생애와 사상쯤 되겠지요. 수천, 수만 개의 벽돌은 저자가 스코트 니어링의 삶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한 무수한 인터뷰와 저작, 신문이나 각종 저널에서 폭넓게 수집한 각종 아티클입니다. 저자는 이를 창조적이면서도 성실하게 배치해 더러 마하트마 간디와도 비교되는 스코트 니어링의 독특하고도 열정적인 삶과 사상을 멋지게 그려냈습니다. 이런 책을 읽으며, 언젠가 적잖은 감동을 받았던 성철스님의 누더기 옷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스님의 솜씨 좋고도 꼼꼼한 바느질 솜씨에 더해, 체취가 배어 있는 듯한 그 누더기를 보며 스님을 직접 대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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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미국 사회사와 니어링 사상이 성숙하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다
니어링은 어렸을 때, 군인이 되고자 한 적도 있고, 목사가 되려 한 적도 있다. 반전주의자이고 비타협적인 투사로서 니어링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는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언제나 개인의 소망을 사회라는 차원과 일치시키고자 했던 니어링이기에 그럴 수 있을 법하다. 이 책은, 부유층에서 태어난 스코트 니어링의 소박한 열망이 어떻게 사회과학과 만나고, 정치운동과 결합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글쓴이 존 살트마쉬는, 이런 니어링이 걸어온 길을 꼼꼼하게 추적해서 재구성했다. 또한 이러한 니어링의 행적이 당시 미국 사회와 어떻게 갈등을 빚고 충돌했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한다. 따라서 니어링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의 줄기를 이룬 20세기 초 중반 미국 사회의 변화상도 비판적으로 살핀다. 현대 자본주의의 초석이 놓이고, 기둥이 세워지고 있던 미국의 20세기 전반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개인과 사회의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니어링. 그의 모습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험한 바다를 떠도는 고난에 찬 순례 같고 장중한 서사시 같기도 하다. 땅으로 가기 전이나 뒤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 니어링은 특권층에서 자랐지만 특권을 버리고, 아동 노동에 반대하였으며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여 두 차례나 교수직에서 해직되었다. 사회 정의를 이끌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 운동가로, 여기서 다시 귀농으로 나아가면서, 자꾸 낮아지는 니어링 삶의 궤적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니어링이 땅으로 돌아간 뒤의 모습이 마지막 제18장에서 짧게 다뤄진 점은, 그의 귀농에 관심이 많은 일부 독자들한테는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스코트가 저항하고 모험을 벌이며 스스로의 이념을 발전시키다, 조화롭고 충만한 삶을 위해 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글쓴이에 따르면 스코트 니어링은 자본주의 미국의 착취구조, 물질적인 부의 허구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 지배 문화의 한계,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실용주의, 사람과 우주와의 부조화를 버리고 대신에 ‘진정한 자유와 깊이 있는 삶, 그리고 조화’를 찾아 땅에 뿌리박은 삶을 택했다.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착취와 대량 소비에 터 잡은 미국식 자본주의, 즉 현대 주류 문명에 대한 스코트의 오래 전 비판과 해법이 차츰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저자가 그려낸 허구와 모순으로 가득한 20세기 전반의 미국은 21세기 초반인 지금의 미국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니어링 부부 같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