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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위원 김갑수
이현세의 만화 [천국의 신화]가 기소된 지 3년만에 최근 유죄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동물과의 수간, 잔인한 살해장면 등 반인륜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폭력 외설물이란다. 대뜸, 그렇게 인륜을 걱정하시는 판사님께서 그리스 로마신화는 왜 그냥 놔둘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신화집이야말로 수간, 시간(屍姦)에 능지처참이 난무하는 '반인륜적 저작'의 극치 아닌가.
그러나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예외없이 1순위로 꼽힌다. 왜 그런가. 서구문명의 원류를 이해한다는 효용론을 넘어서 신화적 상상력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와 과학에 기초한 역사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기초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상공간을 접하면 인류의 현존질서라는 게 참으로 왜소하고 잠정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신화를 두고 인륜 운운하는 발상은 대체 무슨 뚱딴지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삼국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많은 판본이 있다. 대개 토마스 불핀치의 저작을 정본으로 삼지만 각 문화권과 언어권의 특성에 맞게 편찬된 평역본들이 더 많이 읽히는 게 사실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제대로 된 토종 그리스 로마 신화 전문가가 있다. 작가이자 번역가 이윤기. 이미 나온 세 권짜리 [뮈토스]를 시발로 장차 50권을 쓸 거라는 그의 신화 기행 계획은 원대하고 차라리 황홀하다. 그 작업이 완료된다면 아마도 작가 자신이 신화가 될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웅진닷컴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주요 키워드를 추출해 구성한 상당히 말랑말랑한 이야기책이다. 이윤기 특유의 격조 높은 입담이 종횡무진 누비는 가운데 '잃어버린 신발'이라든지 '사랑의 두 얼굴', '노래는 힘이 세다', '술의 신은 왜 부활했는가' 등등으로 우리가 어슴프레 이름만 기억하는 제신들의 내력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언젠가 그리스 로마 신화집을 들추다가 도무지 황당하기만 하고 가닥이 잡히질 않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키워드로 접근하는 이윤기본이 안성맞춤일 것 같다. 여기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 하나. 내용을 뒷받침하는 이 방대한 그림과 조각품의 사진 자료를 대체 어떻게 구했는지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저자의 능력인지 출판사의 부지런함인지 어쨌든 간추린 서양미술사 테마여행 노릇도 하는 뜻밖의 소득을 안겨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