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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 다시 한 번 걷기를 예찬하다
걷기의 위상 : 걸어서 여행하는 방법보다 매력적인 방법은 없다 다시 걸음을 옮기다 : 걷기,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 길 : 길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집요함을 표현한다 느림 : 한가로이 거닐며 자신의 시간을 충분히, 느릿느릿 차지할 것 온몸의 감각이 열리다 :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느끼다 길 위의 만찬 : 잠시 멈추어 한 입 베어 무는 음식의 맛 그곳에서는 별조차 다르다 : 땅의 맥박에 귀를 기울이고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하다 길을 걷는 여자들 : 길을 나선 여자들과 자유의 상관관계 뜻밖의 조우 : 걷는 여행의 또 다른 추억담 여정의 흔적 : 기록하라. 걷기에 대한 모든 것을 풍경 : 여행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위대한 아우라 지중해 : 오직 빛이 만들어내는 장관 본질로의 회귀 : 거대한 자연 앞에, 한낱 인간으로서의 유약함 세상의 경계가 무너지다 : 땅, 돌, 흐르는 물은 살아 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기 : 삶의 마지막까지 걸어야 한다 걷기의 쓴맛 : 낙담을 거부하는 용감한 보행자들 산책 : 느긋한 걸음걸이로 온갖 호기심을 채우며 빈둥거리기 도시에서 걷다 : 권태에 가까운 허무함 속에 걷는 도시인들 오래 걷기 : 우리는 걷고 또 걷는 꿈을 꾼다 숭고함 : 모든 보행자는 자기 내면의 신과 함께 길을 걷는다 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 : 걷는 것은 자신의 길을 되찾는 일이다 참고문헌_ 길 위의 동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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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이후 십 년, 여전히 걷기를 멈추지 않은 나는 그때와는 다른 글쓰기의 길을 걸으며 또 다른 경험과 만남 그리고 새롭게 읽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한때 몹시도 사랑했던 여정으로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여행자인 만큼, 내가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 여행자는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사람이어서 같은 길 위에서라 해도 그때와는 다른 것을 본다. 더구나 풍경 자체도 달라졌다. 그렇기에 비록 《걷기예찬》의 정신은 그대로라 할지라도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 자체도 다를 터이다.
-6p. (다시 한 번 걷기를 예찬하다) 길을 걷는 사람은 잠정적으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다. 오솔길을 걷는 그에게 다른 인물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을 걷는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순간과 스스로 성격을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 외에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익명의 존재가 된다. (…) 거리에 혹은 오솔길에 선 그는 낯선 이방인이다. 더는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조건, 타인들에 대한 책임감에 파묻히지 않는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나는 가뿐한 무중력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걷기는 자신의 역사와 잠시 휴지기를 갖고 길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29p. (다시 걸음을 옮기다) 오랜 시간 호젓하게 걸어도 절대 외롭지 않다. 오히려 떼를 지어 걷다가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동반자는 본 적이 없다.”고 소로는 말한다. 실제로 어떤 장소에서는 홀로 걸으면서 대로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인파에 둘러싸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숨결의 무게가 느껴지는 호젓하면서도 훈훈한 존재감이다. 고독하면서도 가득한 느낌이다. -36~37p. (다시 걸음을 옮기다) 프랑스 작가 쥘리앙 그라크Julien Gracq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위대한 풍경은 걸음으로써 소유하게 만드는 일종의 초대이다. 풍경이 전하는 열정이란 여정에 대한 취기이다.”장소의 힘은 그저 단순히 관객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잠기고 사방으로 가로지르며 관능적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깊은 열망을 불러 일으킨다. 풍경은 그저 하나의 대상처럼 앞에 있지 않고 감싸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한다. 풍경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정의되지 않아서 아무리 습관적으로 사물의 외관을 중시한다 해도 시선 아래에만 놓이지도 않는다. 풍경은 단순한 시각적 골조가 아니라 분위기이자 감각의 아우라다. -98~99p. (풍경) 도시의 보행자는 지나면서 서로의 삶의 사건들을 간파하고, 존재의 단편들을 주워 모으고, 도시를 자신이 일등석을 차지한 극장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는 현재 사건들이 불시에 일어나는 그곳에 있고, 남자든 여자든 행인들을 관찰하면서 줄거리를 구성한다. 그 점에 있어서는 보들레르나 네르발의 시가 떠오른다. 보행자는 사회적 코미디의 특혜 받은 관객이다. -179p. (도시에서 걷다) 걷는 것은 자신의 길을 되찾는 일이다. 돌연히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질병과 슬픔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처음 걷는 몇 시간은 걱정거리가 줄어들고, 깊이 생각하는 경향이 적은 사색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듯한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걷기는 잠시 바깥에서 오는 모든 유혹을 잘라내어 자신의 재정복을 구축하기 위한 재활성화이자 내적인 은신처이다. ---p.220(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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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이 필요한 시대,
두 발로 하는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철학적 경험, 걷기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 국내뿐만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 규슈 올레, 네팔 트레킹 등 사람들은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서 떠나고 있다. 빠르고 편한 이동 수단을 두고 오직 자신의 몸에만 의존해야 하는 원시적이고 불편한 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대에 걷기는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의 가지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지럽고 자극적인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켜 오직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일부러 고독해지기 위해, 또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걷기는 사회가 요구하는‘가면’을 벗어던지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되찾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작가 빅토르 위고가 했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내가 느끼기엔 이런 식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방법보다 매력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걷는 여행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활기찬 일이다. 걷노라면 길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들에, 점심식사를 하는 농가에, 잠시 몸을 기대는 나무에, 묵상에 잠기는 교회에 전적으로 오롯이 전념하기 때문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고 멈추고 다시 떠나도 무엇 하나 방해하지 않고 발길을 붙잡지 않는다. 우리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며 꿈을 꾼다. 걷다 보면 가만히 몸이 흔들리며 서서히 몽상에 빠져들고, 몽상은 피로를 덮어 가려준다.” 이는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동기와도 맞닿아 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10년 전 그 길을 걸으며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과 새롭게 느낀 걷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는 길 위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혼자 떠난 걷기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예상치 못했던 날씨 때문에 겪었던 사건, 별이 수놓은 듯한 밤하늘, 낯선 마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변수 등 당시에는 매우 당혹스럽고 고되게 만들었던 일들이 다시금 즐거움이 되어 우리를 계속해서 걷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한다. 걸으며 행복해져라, 걸으며 건강해져라 걷기에 꼭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걷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급할 이유도 없고 뭐라고 할 사람들도 없다. 막혀 있던 생각들을 가볍게 흩뜨리며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사색하는 힘을 키우고 싶다면 더 없이 좋은 게 바로 걷기 아닌가. 이 책은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감동들을 고스란히 옮겨놓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세밀하게 느껴지는 ‘걷기 예찬’은‘자신만의 길을 되찾아가는’긴 여행이 되어주기 충분하다. 또한 전작에 이어 베르나르 올리비에, 랭보, 빅토르 위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헤르만 헤세, 니체 등 걷기를 사랑했던 수많은 작가들의 글과 작품을 실었다. 발끝에서 탄생한 위대한 작가들의 글과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유려한 문장들은 잠시나마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느끼고픈 사람들에게 다시금 사색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