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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개정판 서문 배경 / 제1라운드 ― 이송의 방법 / 제2라운드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방법 / 평화 협상 / 나치스의 홀로코스트에서 배운 것 / 추방 시나리오의 귀환 1부 이론과 역사 1 시오니즘 운동의 방향 설정: 유대 민족주의의 이론과 실천 - 시오니즘 사업의 규정 - 시오니즘 사업의 정당화 - 시오니즘 사업의 이행 2 사람 없는 땅: 조안 피터스의 ‘황무지’ 이미지 헤라클레스를 겁주다 지역 4의 이상한 경우 ‘인용의 기술’을 발휘하기 / 후기 3 전쟁 탓이지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다?: 베니 모리스의 ‘행복한 중립’ 이미지 증거 아랍방송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다? 추방의 배후 결론 4 정복이 아니라 정착이었다?: 아니타 샤피라의 ‘호의’ 이미지 ‘처녀지 혹은 황야’라는 신화 ‘자기방어’라는 신화 ‘무기의 순수성’이라는 신화 2부 전쟁과 평화 5 생존인가 죽음인가: 아바 에반이 ‘다시 쓴’ 1967년 6월전쟁 외교 기만 교착상태 6 힘의 언어: 10월전쟁의 진정한 의미와 그 여파 외교적 노력들 야링발의안 야링 이후 힘의 언어 7 오슬로협정: 아파르트헤이트의 방식 오슬로협정 팔레스타인의 무능인가 이스라엘의 억지인가 합의의 결과 정의 없는 주권 국가 자격의 문제 분리된 키메라? 부록 각주를 단 아바 에반 『6일전쟁: 1967년 6월과 현대적 중동의 탄생』에 대한 비판적 서평 주 찾아보기 연표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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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편견과 오류의 주범, 시오니스트 지식 권력을 고발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편견과 오류, 허구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한 책. 저자 노먼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은 나치스 강제수용소 생존자의 아들이지만 현재 미국에서 친이스라엘 보수파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시오니즘 지식 권력이 학술적 권위를 입혀 널리 대중적으로 유포시킨 편견과 허구를 하나씩 파헤친다. 그리고 바로 그들이 이스라엘의 야만적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향한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좌절시키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임을 지적한다.
시오니스트 지식인들이 퍼뜨린 거짓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이스라엘이 건국할 당시 난민이 된 상당수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얼마 전에 이주해온 사람들이며 팔레스타인은 원래 무인지대였다.(거짓말 1 참조) ㉯ 이스라엘 측의 학살과 만행이 수많은 아랍 난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상당 부분 부풀려진 이야기이며 설사 그런 불미스런 일들이 조금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정책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만들어낸 부산물이었다.(거짓말 2 참조) ㉰ 가자지구나 웨스트뱅크의 정착촌들은 자발적인 개인들이 평화적으로 일구어낸 개척이지 정복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폭력이 동원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엄격한 도덕적 원칙에 근거해 사용되었으며 또 그것은 골리앗과도 같은 거대한 아랍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거짓말 3 참조) ㉱ 이스라엘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으나 말이 안통하고 주먹만 통하는 아랍 세력들이 이를 거부했다.(거짓말 5 참조) 이 모든 엉터리 신화들은 지금 팔레스타인 분쟁을 설명하는 권위 있는 언어로 대접받고 있다. 핀켈슈타인은 이 주제에 관한 가장 풍부한, 가장 최신의 정보에 근거해, 가장 근본적이고 엄격한 기준에서 이러한 허구적 신화들을 논박해나간다. 핀켈슈타인은 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거물급 지식인들의 주장을 해부하고 그 모순과 허구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가령 이스라엘 건국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관해서는 조안 피터스Joan Peters의 인구통계학적 연구와 중도파 역사학자로 잘 알려진 베니 모리스Benny Morris의 주장을 검토한다. 또 정착촌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니타 샤피라Anita Shapira 등의 주장을 검토하고 6월전쟁에 관해서는 아바 에반Abba Eban의 주장을 논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스라엘 초기 건국 과정부터 6월전쟁(3차중동전쟁), 1973년 10월전쟁(4차중동전쟁), 오슬로협정 등 중요한 맥락을 모두 짚어낸다. 핀켈슈타인은 가장 엄밀한 학자적 양심, 역사가로서의 양심을 기준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한다. 인용 과정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바꿔치기한다든가, 맥락을 제거한 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끌어온다든가, 복잡한 계산을 엉뚱하게 단순화하는 시오니즘 지식인들의 파렴치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개념 규명을 철저히 하지 않은 채 말장난으로 논지를 이어가는 학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불순한(혹은 충분히 반성적이지 못한) 정치적 의도가 만났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바른 근거를 제시하고 바른 논증과정을 거치면서도 거기서 감히 바른 결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애매한 양비론에 머무는, 베니 모리스와 같은 유명한 중도파 학자의 온정주의적 행태 역시 날카롭게 지적한다. 핀켈슈타인이 보기에는 이 역시 지식인으로서, 역사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물론 핀켈슈타인이 단순히 이들 지식인들이 비열한 거짓말쟁이이고 사기꾼임을 폭로함으로써 우리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가 이렇듯 ‘폭로’를 방법론으로 택한 것은 이러한 거짓말들이 현실에서 강력한 담론이 되어 팔레스타인 분쟁의 진실을 가리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며,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 거짓말들을 논박함으로써 우회적으로나마 사태의 진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 핀켈슈타인이 본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들을 효과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토 점령을 옹호하는 관변 시오니즘의 언어가 얼마나 나치스의 논리와 닮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든가 현재 아랍 세력들의 무장투쟁을 영국 식민통치시기에 시오니스트들이 자행한 테러리즘과 비교하는 대목은 실제로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핀켈슈타인이 파악하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은 유대인들이 그 땅에 ‘유대민족만의 배타적인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것이다. 시오니즘은 소수 민족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억압과 차별(반유대주의) 속에서 자라났지만 그러한 반유대주의와 정면대결을 하는 대신에 그것과 타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에서 비유대인들은 설령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군더더기 이상의 지위는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서 시오니즘을 실현하겠다는 야망은 애초부터 토착 아랍인의 처지를 다수파인 유대인이 묵인해주는 덕분에 감지덕지하며 사는 신세로 바꾸어버린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핀켈슈타인의 진단은 매섭다. 결국 이스라엘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켰다. 이스라엘은 다만 팔레스타인 한복판에 제국주의의 교두보를 만들고 그 노예를 자처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전세계 유대인들의 정신적 횃불이 되지 못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소위 갈루트(망명) 상태에 있던 유대인 사회보다 확실히 문화적으로 척박하다. 노동당 시오니즘이 최초로 정권을 잡았던 이스라엘은 유대민족을 일하는 민족으로 바꾸어놓지 못했다. 기껏해야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기생적 계급으로 변형시켰을 뿐이다. 그들은 값싼 아랍인 노동력과 외국의 대규모 원조를 착복하는 삐에누아르(식민지에 기생하는 식민본국인) 혹은 매판자본가가 되었을 뿐이다. ■ 거짓말들 1.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가장 심각한 거짓말 ― 팔레스타인 땅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조안 피터스의 책 『태고적부터』From the Time Immemorial는 이스라엘 건국 당시 난민이 된 상당수 팔레스타인인들이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직전에 이주해온 사람들이며 따라서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원래 주인이 아니고 난민도 아니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탑셀러 목록에 올랐고 온갖 매체에서 많은 지식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이 낯 뜨거운 서평 문구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인용되어 있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에 따르면 이 책은 아랍-이스라엘 갈등에 관해 이제까지 출간된 연구 가운데 가장 거창한 사기이다. 전체 조직의 난맥상을 다 거둬내 지적하지 않으면 오류를 보여주기가 어려울 정도로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핀켈슈타인은 이러한 사기 행각을 두 범주로 나누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아랍인이 팔레스타인에 불법적으로 대량 이주한 자료라고 피터스가 제시한 증거들은 거의 전부가 거짓이다. 다음으로 피터스가 팔레스타인의 토착 아랍인에 관한 인구학적 연구에서 끌어내는 결론은 자기가 제시한 자료에서 도출되지 않는다.(게다가 이 모든 과정은 대대적인 표절에 기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힘을 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출간되자마자 그 정체가 폭로되었다. 이 책 2장에 실린 후기에는 이와 관련된 후일담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는데, 사실을 폭로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을 어떤 수로든 막아내려는 움직임 등 학계와 언론 출판계의 대응과 태도는 문화전쟁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신화로 회자되던 주장을 학술적 저작으로 만들어내고 학계가 그것을 진실로 인정한 후 정치가가 그것을 공식적 담론으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시오니즘 담론의 작동 방식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까지도 이러한 조안 피터스의 주장을 거의 토씨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네 공식 입장을 포명하는 언어로 사용한다. 조안 피터스는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을 도모하고 평화와 화해를 거부하는 데 필요한 아주 적절한 핑계의 어휘들을 제공한 셈이다. 2.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중도파의 음흉한 거짓말 ― 참혹한 살상과 추방은 이스라엘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일어난 의도치 않은 결과다 베니 모리스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관변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를 비판한 신역사학,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첫번째 저작인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의 발생 1947~1949』The Birth of Palestinian Refuge Problem, 1947~1949는 전세계적인 고전이 되었고 학자적 엄격성과 공정성의 전범이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오니스트들이 아랍인들을 사전에 모의하여 쫓아냈다는 아랍 측 주장과 (1차 중동전쟁 당시) 선제공격을 한 아랍 국가들이 아랍인들에게 탈출을 강요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을 모두 반박하고, 진실은 오히려 이 두 극단 사이의 ‘광대한 중간 지역’에 놓여 있다고 절충시킨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은 그가 이스라엘 측 자료와 아랍 측 자료들을 다루는 방식에 이미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모리스는 이스라엘 측 자료들을 아주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수차례 경고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결정적인 국면에서 아무런 반성 없이 이스라엘 지도부의 선전 문구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반면 아랍 측 주장은 대단히 객관적인 자료일 때도 과장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베니 모리스는 중도파답게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좀더 고차원적인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극의 원인을 찾는다. 이스라엘 건국 기간에 아랍인들이 대규모로 탈출을 감행한 것은 대체로 아랍인과 유대인이 가졌던 공포감에서 비롯했으며 1차 중동전쟁의 특징인 지난하고 가혹한 전투의 산물이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아랍인들의 공포는 단순히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벤구리온이 이끈 시오니즘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유도한 결과라는 증거가 모리스 자신의 저작에서도 수도 없이 발견된다. 즉 D계획(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측 군사 지도자들이 만든 전략으로 적대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을 유대인 국가의 예상 영토에서 몰아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이나 잔혹한 학살의 증거를 모리스 자신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 모리스는 시오니즘 지도부가 그러한 자발적 탈출에 경악한 것이 그들의 비의도성을 입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을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부가 자신들이 그 모든 과정을 예상하고 준비했다고 밝힌 수많은 사적 · 공적 기록들을 제시한다. 결국 이스라엘 지도부는 아랍의 침공과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 그리고 아랍인들의 탈주를 모두 성공적으로 예상하고 계획했던 것이다. 핀켈슈타인에 따르면 모리스가 자신이 제시한 근거들과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 측의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모리스가 애초부터 시오니즘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동기를 분석하지 않고 구조적이고 심리적인 원인만을 강조함으로써 난민 문제의 원인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구역사학의 노골적인 언어보다 세련되기는 하지만 더 음흉하다는 것이 핀켈슈타인의 비판이다. 3. 정착촌에 관한 낭만적인 거짓말 ― 정착촌들은 침략 행위가 아니라 자발적인 개인들이 평화적으로 일구어낸 개척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이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엄격한 도덕적 원칙에 근거해 사용되었으며 그것은 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요즈음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정착촌과 분리장벽의 문제, 곧 샤론의 분리 정책이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즉 ㉮ 가자지구의 정착촌에서 이스라엘 군을 철수시키는 대신 ㉯ 그렇게 해서 단순화된 경계선을 따라 높은 분리 장벽을 세워 두 민족을 분리시키겠다는 것(사실상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키겠다는 것)이 그 전략의 골자이다. 정착촌은 통상 자발적인 개인들이 평화적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낸 개척지이지 점령지가 아니라고 이해된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은 이것이 동유럽을 정복한 나치스와 북아메리카 서부를 정복한 영국인들, 남아프리카 대륙을 정복한 네덜란드인의 수사를 그대로 빌려온 것일 뿐임을 풍부한 자료와 함께 입증해낸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신화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들은 자신들이 일구어낸 땅이 처녀지 혹은 황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거기에 원래 살고 있던 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나치스나 미국 초기의 서부 개척자들은 그곳의 원주민들이 실제로 인간의 임무인 문명을 꽃피우지 못했기 때문에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리고 이러한 수사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권리를 설명하는 데에도 똑같이 동원된다. 또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이 자기방어였다고 변명한다. 여기서 주로 사용되는 것이 “도구라고는 오직 도끼와 총”뿐이던 굳센 개척자들의 이미지, 즉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군인이기도 했던 사냥꾼, 나무꾼, 농부”의 이미지이다.(이는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서부의 획득』The Winning of the West에서 한 말이다.) 또 그러한 폭력의 사용이 방어행위일 뿐 아니라 엄격한 도덕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나치스의 오른팔 히믈러의 연설을 되풀이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를 파괴하려 했던 이 민족을 파괴해야 할 도덕적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 아무리 뼛속 깊이 동정심이 사무친다 한들 게르만족으로서 우리는 증오심으로 가득 찬 보복자 세대를 자라나게 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너무나 나약하고 비겁해서 그들을 살려둔다면 그 결과를 바로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쪽에서 이를 학문적으로 승인한 이는 역시 권위 있는 학자인 아니타 샤피라인데, 그녀는 박해당하는 소수가 자기들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다른 나라에 피난처를 구하겠다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해당하는 소수가 다른 나라의 토착민들을 정치적으로 또 아마 물리적으로까지 퇴거시킬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핀켈슈타인의 상식적인 지적이다. 4. 6월전쟁에 관한 황당한 거짓말 ― 6월전쟁은 이집트의 나세르가 이스라엘을 자극한 결과이며, 이스라엘이 이 전쟁에서 획득한 영토는 국제사회에서 이미 인정받았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대해 군사 행동을 감행하여 6월전쟁(이른바 3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시나이반도를 불법으로 점령했고, 그 중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고 있다. 6월전쟁의 신화를 밝히기 위해 핀켈슈타인은 아바 에반의 서술을 주로 검토하고 비판한다. 에반은 이스라엘 외교 문제에 관한 한 가장 권위 있고 설득력 있는 발언자이며 중동 갈등에 관한 미국의 인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핀켈슈타인은 에반의 해석이 기반하고 있는 취약한 근거를 노출시킴으로써 6월전쟁을 둘러싼 신화뿐 아니라 그 신화를 지탱하는 지배적 문화의 심층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에반은 6월전쟁의 원인을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Gamal Abdel Naser에게 떠넘긴다. 나세르가 티란해협을 봉쇄하여 분쟁의 소지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나세르는 이스라엘과의 갈등을 한사코 피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또 핀켈슈타인은 이스라엘이 모든 전쟁 준비를 마치고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구실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도 충분히 제공한다. 당시의 자료들에는 이미 그 전부터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가하리라는 입소문과 보고서가 전 지역에 퍼져 있었고, 전쟁 직전까지도 나세르와 UN측이 이스라엘에게 협상을 제안했던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에반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앞서 정착지에 관한 거짓말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 ‘자기 방어’의 신화로 정당화하고 있지만 이는 공식적인 자료 몇 가지만 훑어봐도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특히 에반은 이 전쟁이 끝난 뒤 도출된 UN 결의안242호(전쟁에 의한 영토 정복을 인정하지 않는 UN헌장에 근거해 이스라엘의 즉각적인 철수를 결의한 합의문)에 담긴 국제적 합의를 엉뚱하게 해석한다. 즉 그것이 철수 지역을 명확히 거론하지 않고 있으며 또 그것이 당시 UN안보리의 중심 의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6월전쟁 이후) 불법적으로 점령한 지역에서 완전히 철군해야 한다”는 그 핵심 내용은 당시의 모든 공식 ·비공식 기록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표현이다. 핀켈슈타인은 당시 UN안보리의 의장을 비롯한 여러 국제 외교 인사들의 증언까지 끌어와 그들이 이 내용에 있어 한 치의 모호함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쓴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5. 10월전쟁과 캠프데이비드에 관한 거짓말 ― 이스라엘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힘의 언어만을 이해하는 팔레스타인 측이 평화적 제안을 거부했다 키신저 행정부가 자랑하는 캠프데이비드에서의 아랍(이집트)과 이스라엘의 평화협상은 드물게 긍정적인 외교 활동이었다고 평가받는 사례이다. 1967년 이후 진행된 평화협상에 대한 표준적인 서술은 대개 다음과 같은 골자로 전개된다. 역사상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이 시기에 이스라엘인들은 더욱 강력하게 평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아랍인들이 근본적으로 힘의 언어만 통하는, 곧 말이 안 통하고 주먹만 통하는 종족이었기에 이스라엘의 노력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1973년 10월 정당한 명분도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장에서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자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는 군사력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의 갈등을 해결할 희망은 없으며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수단만이 가능하다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로써 아랍 세계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주권국가로서 아랍 세계 안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면 언제든 그 대가로 시나이 전체를 돌려줄 의향이 있었던 이스라엘은 시나이에서 즉각 철수하는 데 합의했다. 마침내 평화라는 목적이 달성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이 온갖 외교 문서와 공식, 비공식 자료들을 검토해 밝혀낸 것은 이러한 서사가 현실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1967년 6월전쟁 이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평화라는 대가를 제시해도 이스라엘은 불법 점령지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갖 외교적 대안들이 모두 사라지자 이집트는 전쟁을 시작했고 예상외로 인상적인 선전을 펼쳤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쟁이 끝난 뒤 그전에 사다트가 제안한 외교적 해결책에 합의했다. 한마디로 힘의 언어에 굴복한 장본인은 이집트가 아니라 이스라엘이었다. 당연히 그 후로도 평화가 진전된 것은 아니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다만 이집트가 다른 아랍 세계들과 달리 일종의 "영토 제비뽑기"에 당첨된 것뿐이었다. 6. 오슬로협정에 관한 슬픈 거짓말 ― 오슬로협정은 평화를 향한 길이다 1993년 아라파트Yasaar Arafat PLO대표와 라빈Yitzhak Rabbin 이스라엘 총리가 오슬로협정을 이끌어냄으로써 팔레스타인 지역은 평화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것처럼 보였다. 이 협상을 주도한 아라파트와 라빈, 그리고 시몬 페레스Shimone Peres는 1994년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핀켈슈타인은 오슬로협정의 진정한 의미가 점령 상황이 계속되도록 팔레스타인인들이 공식적으로 동의해주었다는 것임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역시 『평화와 그에 대한 불만들』Peace and its Discontents에서 예루살렘, 물, 보상, 주권과 안보, 땅이라는 모든 핵심적 사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사실상 전혀 얻은 것이 없다고 1차 오슬로협정에의 진상을 폭로한 바 있지만, 핀켈슈타인은 실제 상황이 이보다 더 취약하다며 사이드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그리고 핀켈슈타인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바에 따르면 1차 오슬로협정 이후 다져진 이러한 불평등을 기반으로 2차 오슬로협정에서는 각종 구체적인 권리와 제약들이 노골적으로 공식화되기에 이른다. 오슬로협정이 조인되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제 여론은 (이스라엘이 6월전쟁을 통해 불법적으로 점령한 영토인)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독립국가를 만드는 안을 지지했다. 하지만 오슬로협정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권리는 동등해졌고 그 지역은 ‘논쟁 지역’이 되었다. 2차 오슬로협정이 공식 채택한 지도를 보면 1차 오슬로협정 이후 사이드가 예언했던 대로 예루살렘은 암묵적으로 이스라엘에 포함되었고, 물에 관한 사용도 기존 소비량 유지라는 조항이 들어가면서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이 80%, 팔레스타인이 20%를 차지하게 되었다. 보상 문제도 2차 오슬로협정에서는 이스라엘 지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소극적으로) 저지른 일들 때문에 발생한 모든 책임과 의무는 새로 선출된 팔레스타인위원회에 떠넘겨졌다. 심지어 기존에 보상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 행정부가 즉시 전액을 이스라엘에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 및 안보와 관련된 사안을 보면 2차 오슬로협정에서 팔레스타인위원회는 예루살렘, 정착촌, 군사주둔지의 구체적 위치, 팔레스타인 난민, 국경, 외교 관계, 이스라엘인과 관련해서는 독자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권한에 제약이 가해진다.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 어디에서든 이스라엘인이 가해자로 혹은 피해자로 연루된 모든 범죄에 관해 전면적 사법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영토 역시 웨스트뱅크에서 30%만이 팔레스타인의 사법 관할 구역으로 남게 되었고 심지어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러 개의 고립되고 단절된 지역들로 나뉘어 기형적인 모양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