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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 공주형
사람살이, 그림살이 조용한 날의 찬가 - 베르메르 내 마음속의 정자 - 김상유 난 혼자가 아니야 - 박수근 해답은 문제 안에 있다 - 송현숙 평화를 빕니다 - 밀레와 고흐 우리는 가족입니다 - 레핀 어머니, 당신은 천국의 이정표입니다 - 윤석남 마법의 바늘, 치유의 색실 - 부르주아 괜찮다, 괜찮다, 무조건 괜찮다 - 미켈란젤로 함께 가다 - 도미에 내 삶의 한 줄기 선한 빛 - 고흐 차 한 잔 하실까요 - 마네 앙상하고 메마른 도시의 골목길에서 - 위트릴로 결혼에 대하여 - 얀 반 아이크 그림, 꿈을 꾸다 내 고향 풍경 - 강운구 행복해질 거야 - 샤갈 숲 속에 눕다 - 루소 낭만적 사랑과 사회 - 로댕 꿈은 이루어진다 - 리베라 책상은 책상이 아닐 수도 있다 - 마그리트 인생은 아름다워 - 르누아르 시모네타, 나의 베아트리체여! - 보티첼리 거울아, 거울아 - 루벤스 탐식의 끝 - 보스 부자가 되고 싶다 - 라 투르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 - 브뢰겔 부자의 식탁, 빈자의 식탁 - 브뢰겔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 아르첸 그림은 힘이 세다 사각의 링, 가파른 생의 낭떠러지에서 - 벨로스 무엇을 어떻게 바꿀까 - 워터하우스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 - 휘슬러 위대한 예술을 낳은 환희의 산실 - 칼로 나는 창조자다 - 달리 아무도 가지 않은 길 - 세잔 나는 나의 몸이다 - 자코메티 알게 될 거야,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렸는지 - 드가 이것은 누드가 아니다 - 모딜리아니 지상에서 영원까지 - 뭉크와 말레비치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다 - 모네 위대한 황제, 더 위대한 예술가 - 다비드 천상에서 가장 가까운 - 로트렉 예술가의 부활 - 벨라스케스 나는 왕이로소이다 - 앵그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 다 빈치 추천의 글 : 따뜻한 마음으로 보기,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읽기 - 이주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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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에서 인간이 외따로 떨어져 등장하는 예는 흔치 않다. 혹 한 사람이 등장하게 될 경우, 그는 나무나 우물 또는 책과 같이 함께 할 벗을 고려한다. 우리는 안다. 환희와 절망의 세상을 함께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를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박수근을 위대한 화가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의 그림들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선함과 진실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신실함과 거짓 없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 p.28, '난 혼자가 아니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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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에서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했을 그에게 생년월일시와 붓질의 획수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붓질은 아득한 형상을 머금는다. 그것은 마치 바지랑대에 널어 둔 모시 같기도 하고, 댓돌 위에 놓인 고무신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소중한 징검다리가 되었던 몇 개의 붓질은 이제 더 이상 작가 송현숙만의 것이 아니다. ...송현숙의 그림은 범위를 넓혀 물질적인 가치를 향해 전력투구했던 지친 사람들에게 한 뼘의 위로로 당당하게 자리한다. 이처럼 송현숙의 예술 세계는 '나 자신을 아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좀더 나은 삶'의 당당한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담박하게 증거한다. 모든 해답은 바로 문제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pp.33~34, '해답은 문제 안에 있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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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의 사진은 과거와 만나는 뭉클한 재회의 장이다. 이런 것을 감동이라 불러야 할까. 우리는 그의 사진 속에서 어린 시절 외갓집 풍경을 만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큰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느 추운 겨울 집을 나간 강아지를 추억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집에 두고 떠나 온 부모님을 생각한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강운구의 사진은 단지 카메라가 정교하게 잡아낸 산골 마을 풍광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제는 가질 수 없는 순수에 대한 기억이며, 부족했지만 따뜻할 수 있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 pp.106~108, '내 고향 풍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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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의 광고판에 잠식당한 대도시의 황량한 벽면에 익숙한 21세기의 신인류에게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는 생경한 풍경일 수 있다. 예술적 지향과 정치적 입장이 담긴 디에고 리베라의 벽면이 격리와 소외가 아닌 참여와 통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념을 향한 사람들의 하나됨을 중재했던 바로 그 매우 특별한 벽면 위에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적 소명과 역할에 대한 해답도 존재한다.
--- p.132,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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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기사, 학자 할 것 없이 모두 잔뜩 먹고 신나게 자고 있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이 정녕 브뢰겔이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습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풍족함이 넘쳐흐르는 브뢰겔의 〈게으름뱅이의 천국〉에서 어이없게도 결핍의 증후와 맞닥뜨린다. ...내일의 벅찬 미래가 오늘의 살진 안락함에 저당 잡힌 곳에서 진정한 천국의 풍경을 읽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 pp.177~178,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릴진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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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숲 속에 한 마리 사슴이 있다. 얼굴은 사람이고, 몸통이 사슴이다. 여러 개의 화살이 몸통을 관통해 혈흔이 낭자하지만, 고통의 표정은 없다. 우리는 이미 치유의 수순을 거부한 듯한 사슴의 얼굴에서 한 사람과 만난다. 〈상처 입은 사슴〉은 이 세상 희로애락의 굴레를 초월한 프리다 칼로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 pp.222~223, '위대한 예술을 낳은 환희의 산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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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의 '명화(名畵)'는 무엇입니까●
근래 들어 부쩍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에 열린 '샤갈'전은 무려 3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하지요. 밤 아홉 시까지 전시장을 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주일을 더 연장해도 길게 줄을 서서 봐야 할 정도로 사람들은 그림 보는 데 목말라 합니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이제 그림들이 넘쳐납니다. 더 이상 그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미술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째서 훌륭한 작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블로거들은 그림을 빌어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 개인적인 메시지들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술작품'을 이렇게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봐도 좋을까요?" 애써 마음에 든 그림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한 블로거가 묻습니다. 아직도 자신에게 예술작품이란, 하얀 벽의 미술관에 걸린 액자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서서 봐야 하는 것 같다면서요. 여기 그 블로거의 불안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어깨의 힘을 빼고, 마음에 든 그림을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돕는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바로 이 책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입니다. "명화(名畵)란 어떤 그림일까. 사람들은 묻는다. 나에게 명화란 이름 있는 작가의, 널리 알려진 그림이 아니다. 어떤 그림이 있어 그 그림이 오늘 저녁 퇴근길에 아름다운 동행이 되고, 어느 울적한 가을날에 따뜻한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떤 그림이 있어 그 그림 앞에서 가쁜 호흡을 고를 수 있고, 거친 맥박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나에게 명화란 내가 엮어 가는 소소한 일상이자, 내가 써 내려가는 내밀한 고백과도 같은 그림들이다."(저자의 여는 글,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에서) 추운 이 겨울, 당신의 가슴을 녹여줄 마흔네 편의 따뜻한 그림 이야기● 이 책은 학고재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 전문가' 공주형의 글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글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지 마시길! 어느 일요일 오후, 지은이는 화랑을 처음 찾은 한 가족과 만나게 됩니다. 인사동에서 시작해 소격동 끝까지 여기저기 화랑 유람을 한 가족들의 얼굴에는 피로함과 어려운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당혹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지요. 지은이는 그들에게 차를 권하며, 마침 화랑에서 전시하고 있던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흔히 사람들은 화가 이름을 많이 알고, 미술사를 줄줄이 꿰는 사람만이 그림을 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학이나 미술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림을 좀더 전문적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림을 직업적으로 보는 사람은 몇 명이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림과 만나고 싶다는 의지이고, 얼마나 정직하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풀무원 사보『자연을 담는 큰 그릇』, 2001년 7·8월호, '소중한 것은 당신의 느낌'에서) 서먹서먹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그 가족들은 저마다 지은이에게 그림을 보고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히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비록 미술사적이고 비평적인 어려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그림들이 그 가족의 가슴에 부딪쳐 만들어낸 파문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지은이는 그림을 본다는 것이, 작품 목록을 외우고 그 작품이 미술사의 계보 안에서 놓일 위치를 재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랑'과도 같이 저마다의 마음에 부딪쳐 오는 감동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이 그림을 보면서 얻고자 하는 삶의 위안, 즐거움이 됩니다. 여기서 앞서 블로거의 고민에 작은 답변을 내려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본 그대로, 자신있게 느끼라'라구요. "이 세상에는 명료한 답과 결론이 있는 그림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깊고 넓은 숲처럼 삶에 위안을 주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한다.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주는 풍부한 울림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에게 상대방의 어떤 면이, 무엇이 그리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마 비슷한 답을 듣지 않을까."(풀무원 사보『자연을 담는 큰 그릇』, 2001년 7·8월호, '소중한 것은 당신의 느낌'에서) 사랑한다면 그림을 보여줘● 어느 일요일의 우연한 만남 후, 지은이는 저마다의 가슴속에 저마다의 의미를 갖고 있을 '명화'를 어떻게 소개할지에 골몰하게 됩니다. 지은이는 어렵고 갑갑한 미술이론으로 외피를 두르고 독자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대신, 오랫동안 끈기있게 익힌 미술이론을 녹여 바닥에 깔고서 독자들이 '독자 자신의 감상'에 이르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지은이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변화를 따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그림을 소개하는 것이기도 하며, 지은이 자신의 내밀한 삶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는 모든 것을 다 품어줄 것 같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초상을 보고, 잠시도 쉴 틈 없던 어머니를 기념한 윤석남의 설치 작품 〈어머니의 방〉에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 어머니라는 자리의 위대함과 또한 어머니의 딸로서 느낀 감사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도미에의 〈삼등열차〉를 통해서는, 매일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보는 수많은 가장들의 초상과 겹쳐 직업을 가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세상살이의 힘겨움과 고단한 일상을 되새깁니다. 이렇듯 지은이는 어머니, 딸, 사회인, 미술전공자라는 다양한 역할살이를 하면서, 새삼 느끼는 삶의 이치를 조곤조곤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 다양한 지은이의 역할살이가 이 책을 읽을 누군가의 일상과 겹치면서, 그의 그림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고, 새로운 눈으로 그림을 다시 쳐다보게 합니다. 마흔여 명의 작가들이 마흔네 편의 글에 한 명씩 등장하는 이 책은, 그래서 그림을 빌려 지은이가 전하는 미술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 자신의 고백이자 이 책을 읽을 독자 여러분의 삶 이야기가 됩니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살이, 그림살이'에서는 그림을 빌어 여성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직장인으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소회를 토로합니다. 그리고 그림은 이에 화답하듯, 속에 숨겨 둔 작가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나 배경을 보여주지요. 이 둘이 이 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듯 어우러집니다. 박수근의 〈실직〉에서는 어느 누구도 홀로 외로이 남겨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다독여 주는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고흐가 그린 〈룰랭의 초상〉에서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소중하고 선한 벗 '룰랭'을 통해 새삼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웁니다. 송현숙의 작품을 통해서는, 외국에서 타향민으로서 느끼는 어려움을 넘어 한국적인 형상을 발견해낸 작가의 작품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결국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될 난관들은 스스로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두 번째 장 '그림, 꿈을 꾸다'에서는 그림을 통해 향수,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한없는 추구, 물질적 욕망, 사회 변혁의 이상 등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꾸게 될 꿈들을 보여줍니다. 강운구의 '마을 삼부작' 사진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고향의 원형으로 간직한 아름답고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을 상기시킵니다. 로댕의 〈입맞춤〉에서는 사회적 금기, 관습을 넘어선 치명적인 사랑을, 보티첼리의 〈봄〉은 모델인 시모네타에 대한 작가의 숨은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리베라의 벽화를 통해서는 변혁의 시대에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작가의 열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르첸의 '시장 그림', 보스의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등을 통해서, 끝없고 허망한 인간 욕망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 횡행한 물질주의에 대해 반추하게 합니다. 세 번째 장, '그림은 힘이 세다'에서는 어떠한 제약에도 꺾이지 않는 예술가들의 강인한 창작의지, 예술이 예술이 되기 위하여 겪어온 분투 과정이 펼쳐집니다. 불행했던 삶을 넘어서서 작품으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의 작품 〈떠 있는 침대〉가 그녀의 삶에 대한 고백이라면, 〈상처 입은 사슴〉에서 보이는 정면을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은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과감한 '누드 작품'의 전시를 둘러싸고, 당시의 사회적 제약과 분투하던 모딜리아니와도 겹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당당히 귀족의 옷을 입은 자화상을 그려 넣은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는, 일개 궁정 화가에 머무르지 않고 '창조자'로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 예술가의 초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장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전쟁과 왕조의 교체를 견디고 살아남아 루브르를 지킨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인간사의 복잡다단함을 넘어서 영원히 지속될 예술의 힘을 웅변하는 예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