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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서정성의 타자로서의 정치성의 가치
1부 쟁점들, 정치성의 존재방식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의 시, 미시파의 네오이미지즘 전형기의 피로, 수사학의 탕진 문학-정치 담론의 지형도 시적 정치성의 세 가지 조건 미적 자율성의 곤경 시적 논리와 파시즘의 논리 이념과 문체 사이의 몇 가지 빛깔 2부 시인들, 정치성의 스펙트럼 미네르바의 시학 ― 김광규론 근대시의 세계에서 미학성과 정치성의 관계 ― 김진경론 방법적 드러냄의 정치성과 그 한계 ― 김혜순 시의 본질 환상이 세계에 이르는 아늑한 길 ― 서안나 시의 시적 진화 3부 희작, 정치와 놀기 풍자경(諷刺經) ― 풍자의 본질에 대한 경전 청와대 납품용 봉황의자 사용설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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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은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문학평론가의 문제적인 평론들을 엄선하여 모은 ‘울력 비평선’의 첫 번째 기획 작품이다. 《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은 시의 정치성 문제에 초점을 맞춘 글만 엄선하여 실은 압축적인 평론집이다. 우리 문단이 지금까지 ‘순수’와 ‘참여’의 문제로 첨예하게 양분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우리 문학의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러 글들을 싣고 있다.
《서정성과 정치적 상상력》은 시의 본질에 대하여 깊이 있는 이론적 천착을 보여준 박현수 교수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서 그리고 시학 연구자로서 현대시의 본질과 문제 상황에 대한 의미 있는 평문들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현대시가 봉착한 미적 자율성이라는 협착한 세계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대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정치성(혹은 사회성)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의 타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치성이 시의 타자가 된 것은 문학 자체가 종교와 정치로부터 독립하게 된 근대의 문학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문학은 이렇게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어 나오면서 미적 자율성의 세계를 자신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선언에 따라 문학은 사회, 정치와 무관한 것이 되었으며, 정치성은 자연스럽게 시의 타자가 된 것이다. 시의 본질적 특성이라 할 서정성이 정치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 것도 이런 문화사적 전개 때문이다. 지은이의 이런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미적 자율성의 곤경―항아리가 미술품이 되기까지”라는 평문이다. 이 글은 모더니스트 이상(李箱)이 1930년대에 항아리 같은 골동품을 애지중지하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조춘점묘》라는 흥미로운 글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이상은 “항아리 나부랭이는 말할 것 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의식적으로 미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간혹 꽤 미술적인 요소가 풍부히 섞인 것이 있기는 있으되 역시 여기(餘技) 정도요 하다못해 꽃을 꽂으려는 실용이라도 실용을 목적으로 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달항아리나 청자로 만들어진 옛날 항아리는 미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 실용적인 도자기일 뿐이라 단정한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미술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가 제시하는 미적 가치의 기준은 미적 생산물을 만들고자 하는 의식적인 태도, 즉 미적 자의식에 있다. 자신이 만드는 생산물이 미적 대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미적 생산물, 즉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이 근대의 문학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즉, 그는 진선미가 일체로 존재하던 근대 이전의 미를 인정하지 않고, 미가 독립적 영역으로 확립된 근대적 관점에서 미를 다루는 근대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적 자율성의 관점은 현재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시가 자율성의 세계에 갇히면서 평면화, 왜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상황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지은이가 ‘네오이미지즘’으로 이름붙인, 김기택 시인을 대표로 하는 미시적 묘사를 주로 하는 시적 경향이다. 최근 10년간 이런 문학적 경향에 대한 극복으로 제시된 이가 랑시에르지만, 지은이는 그의 이론 역시 미적 자율성 세계 내의 관점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지은이는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랑시에르가 지닌 기본적인 한계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랑시에르는 정치성을 모호하게 만들어 정치적 힘을 미학적으로 제거하는 미학주의자에 불과하다. 그의 정치성은 감성의 영역으로 축소되고, 정치는 정치적인 것으로 제한된다. 그것은 곧 정치의 소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문학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정치를 흡입할 수 있도록 정치의 함의를 변형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기형적인 결론에 도달하였고, 이를 이어받은 우리 ‘문학-정치 담론’은 문학만 열심히 해도 정치가 획득된다는 기괴한 논리를 개발한 것이다. 지은이가 현대시가 봉착한 이런 난관에 대한 극복으로 제시한 것이 진선미(혹은 지정의)가 합일된 상태의 문학 개념이다. 즉, 이광수 이전으로 돌아가서 문학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여 그것을 지금 여기에 호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적 자율성이라는 지평을 인식한 이후의 새로운 문학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그가 “미적 자율성의 곤경―항아리가 미술품이 되기까지’의 마지막에 김상봉 교수의 말, 즉 “오직 예술이 삶 전체를 규정하는 원리가 될 때, 다시 말해 그것이 현실 전체를 인도하는 원리가 될 때에만, 예술은 진정으로 자율적일 수 있다”는 말을 제시한 것도 이런 의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시와 정치성의 관계에 주목하여 현대시의 문제 상황을 점검하고, 문학-정치 담론의 지형도를 그려주고, 그런 담론이 지닌 기본적인 문제점과 그 극복의 가능성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2부에서는 김광규, 김진경, 김혜순, 서안나 시인의 시를 통하여 시와 정치의 문제를 더욱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다. 3부는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직접 다룬 흥미로운 글 두 편을 싣고 있다. 나꼼수 열풍을 분석한 글과 지난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던 안철수, 문재인을 분석한 글이 그것으로 여기에서 제시된 논점은 지금에도 시의적절한 것으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