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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가치에 대한 긍정, 현실에 대한 담담한 묘사
작가 계용묵을 일러 흔히 ‘인생파 작가’라 일컫는다. 계용묵의 초기작들은 최서해 등 경향파 작가들의 작품들과 같이 사회 하층민들을 집단적으로 등장시켜 식민화로 인한 궁벽한 시대적 현실을 그리는 데 주력한 바 있다. 지주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나 유민으로 전락하는 소작인을 그린 「최서방」이나 일본 탄광 노동자로 끌려갔다가 불구의 몸이 되어 버린 인물을 등장시킨 「인두지주」 같은 작품이 그러한 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품들이 경향성이라는 다소 경직된 관점에 일관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면, 1935년의 작품 「백치 아다다」에 이르러 그는 ‘인생파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백치 아다다」에서는 소박한 인간적 가치에 보다 주목하게 된 것이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는 순수와 욕망이라는 두 개의 극단화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신체적 결함을 지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보이고 있으며, 그 바보스러움에서 외견상의 정상인이 갖지 못한 순수함을 찾아낸다. 이는 계급적 대립이나 궁핍한 상황 자체의 노출에 주력하던 전작들에서보다 더 누그러진 시선으로 삶의 세세한 가치들을 주목하는 것으로, 혹자는 현실과의 적극적인 대결을 꾀하지는 않고 갈등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계의 거시적 맥락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고 생의 단면적 제시에만 국한”된 작가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담담하게 묘사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치 아다다」에 이르러 기존의 경향성을 벗어났다고는 하나 초기작부터 말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계용묵은 지속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엇보다 계용묵은 ‘소박한 행복에의 기대와 그 기대의 좌절’을 연민 섞인 관조적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생의 비애와 삶의 질곡을 담담하게 성찰했으며, 궁극적으로 물질에 대한 욕망에 의해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는 인간이 가지는 선량함과 순수성을 옹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인정신이 빚어낸 언어적 품격 모두 44편의 소설을 모은 제1권과 102편의 산문이 실린 제2권의 짤막한 글들에서 빛나는 것은 언어적 조탁의 흔적이다. 원래 과작인 데다 콩트풍의 단편만을 썼으나, 짧은 것일수록 기교를 중시하고 예술적인 정교한 맛이 풍부한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작은 작품임에도 울림만큼은 작지 않게 느껴진다. 앞서 발간사에서 엮은이가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 수가 적은 이유 역시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유별난 그의 장인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계용묵은 문장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공을 들였으며, 허투루 작품을 남발하지도 않았다. 성실한 작가, 계용묵의 미덕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소품에 불과한 짧은 작품에다가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넉넉하게 담아낼 줄도 알았다. 계용묵은 우리에게 단편 소설 「백치 아다다」뿐 아니라, 교과서에도 실렸던 수필 「구두」를 통해서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징을 박은 구두를 신고 가던 사내의 구두 소리가 앞서 가던 여자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는 이 일화에서도 인물의 심리가 재치 있게 잘 그려지고 있다. 또한 「심월」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는 인물의 심리를 재미있게 묘사하며, 「후심」에서는 함정을 파놓고 동네 아이들에게 뜀박질 경쟁을 시키는 인물과 함정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뜀박질을 하다가 거기에 빠져 낭패를 보는 아이들을 통해, 짓궂은 인간의 내면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더욱이 계용묵은 평북 선천 출신답게 작품 속에서 평안도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다. ?심월? 같은 짧은 작품에도, ‘쉬쌀’(‘수수쌀’의 방언), ‘뒤란’(‘뒤뜰’의 방언), ‘가리’(‘어리’의 방언. 병아리 따위를 가두어 기르는 물건), ‘곰배님배’(‘곰비임비’의 방언. 일이 계속하여 거듭되는 모양), ‘술가리’(‘언저리’의 방언) 등 감칠맛 나는 평안도 사투리들이 수두룩하다. 이는 김동인 이외에 평북 언어를 구사한 작가가 드문 현실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현상이다. 또 ‘재냥스레’(동작이 매우 재빠르고 야무지다), ‘방싯이’(문 따위가 소리 없이 살짝 열리는 모양), ‘얼결수’(얼떨결에 이루어진 수), ‘물러걸음’(뒤로 물러나는 걸음) 등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운 우리말도 계용묵의 작품이 지닌 미덕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